아직 고정희 시전집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알게된 것들 중에 뽑아본 시.

(이곳에다가 올리는 것 맞나..? 시민문화워크숍이었는지, 이곳이었는지...스튜디오 였는지...헷갈려..)

 

차라투스트라

 

(한 손에 물통과 두레박을 메고

남은 발에 쇠고랑과 문명을 끌고

죽어서 날아간 새 눈물을 밟으며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가 가는 길)

 

1

 

그대들이여, 그대 정신 돌아왔는가

한 모금의 물이 고인 그대 영혼 돌아왔는가

여기 그대들이 버린 사막 한 복판

샘물은 말라 대지 갈라지고

여기 영혼의 빈 두레박

그대들 빈 접시 소리 떠돌아

잡풀 위에 말[言]들만 쓰러져 우는구나

 

잡목 위에 칼 가는 오기들 웅웅대고

빈 벌에 자지러진 자궁을 보아라

지나가는 독수리도 안중에 없어하고

숨죽인 대지도 묻어 주지 않는구나

버릇없는 장정 몇이 지나갔을 뿐이다

곳간에 넘치는 건

우후죽순 같은 오살놈의 한(恨)

해거름녘 아비는 서둘러 몇 석의 한을

작석하다 팔이 부러지고 끼득끼득

몇서지기 한 밑에 압사당한 상판들,

탈곡기에 타는 노을을 보아라

짚베늘 지나가는 봄을 보아라

비로소 죽은 햇빛을 보아라

 

대숲에서 들리는 건 피묻은 옷자락

부비는 소리, 마구간에서 들리는 건

발기된 남정네 외로운 탄식

허리띠 풀어 각시들 목 조르는 소리 들리는 건

하늘이 아니라 정게청이다

초대 식탁에는 뱀구이가 능청떨고

아이들의 위는 돌도 삭혀버린다

 

2

 

포도즙을 짜면서 목이 타는 그대

그대는 또 무엇을 잃었는가?

그대는 또 무엇을 버렸는가?

그대에게 멸시받은 것들을 그대는 잃었다

그대가 보지 못한 것들을 그대는 버렸다

그대 가슴속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결코 그대를 찌르지 않는다

가슴속 무성한 가시의 축제를

그대의 손은 더듬지 않는다. 가시 돋아

독 묻은 꽃송이를 어여삐 피우고

 

그대 몰골은 창밖에 떨고 있다

흔들리는 적도를 지나는 그대

삶 떠난 자를 위한 애도를 바친다

죽은 자를 위한 정(釘)을 박는다

 

3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의 일,

오 이천년대 시체 앞에 꽃을 꽂은

그대들아 오라 장례를 지내자

한 모금의 물이 고인 그대 영혼 위해서

앙금으로 주저앉은 그대 정신 위해서

수백년 나자빠진 빈 두레박

수십년 가불된 죽음을 보내자

경악으로 떠나가는 바람을 매고

(일찍이 없었던 황홀한 장례)

 

그대 기쁨 있거든 비처럼 쏟으라

그대 고뇌 있거든 산처럼 꽂으라

그대 여벌 있거든 이승 방방곡곡에

사흘낮 사흘밤을 만장(挽章) 띄우고

검을수록 슬픈 죽음, 여기 뉘어 있는

거대한 영구 위에

그대 검은 침을 죄다 뱉으라

독 묻은 꽂송이로 정을 박으라

 

그리고 다가와 일렬횡대로 서서

주검 속 번쩍이는 그대 거울을 향해

다소곳이 그대 허리를 구부리라

그때 그대는 알게 되리라

(그대가 만나는 최초의 그대)

우리가 보내는 이 최초의 장송 앞에서

슬픔도 기쁨 또한 떠나감을 보리라

이제 가라

가서 땀이 강처럼 넘치게 하라

그때 그대는 샘이 되리라

(일찍이 없었던 아름다운 장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