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우리동네를 바꾸지?
기사제공 mbnart 2009-04-03  조회: 10034 댓글: 0

  한 때, 캐릭터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 유행을 한 적이 있다. 아니다. 그 유행은 현재도 계속 되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어느 고속도로든 그것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이 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지나치는 지역마다, 그리고 그 지역의 특산물마다, 또 그 특산물을 놓고 벌어지는 축제마다, 캐릭터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 손과 발을 가지고 제법 귀여운 표정을 한 채 그 곳이 논이든 산비탈이든 가리지 않고 세워진 육중한 광고판 위에서 그들은 웃고 있다.

  당 연히 그 수많은 캐릭터들 중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도적떼들은 알리바바의 집에다 커다랗게 X 표시를 해놓았고, 현명한 알리바바는 도시의 모든 문에다가 X표시를 해 놓았으며, 알리바바만큼은 현명하다고 철썩같이 믿는 우리 역시 우리의 모든 것들에 캐릭터를 붙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 도시와, 또 그 도시의 특산물과 아무런 연관성도 갖지 못한 채, 아무런 이야기도 추억도 공유하지 못하는 캐릭터의 무리들은 현대의 X표시가 되어 우리들을 어떤 이미지의 과잉 속에 빠뜨리고 있을 뿐이다. 

  유행은 이렇듯 유령처럼 우리들을 손쉽게 거대한 착각의 늪에 빠뜨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 대다수는 그 캐릭터가 왜 우리 마을과 특산물을 대표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데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는 앞으로 자기가 우리 마을의 대표 캐릭터이니 그리 알라하는 통보만이 있을 뿐이다. 이 뜨악함이 기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캐릭터 사업에 대해 치러야 하는 비용의 시작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우리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부 캐릭터들은 추억도 공유하지 못하고, 이야기도 담아내고 있지 못한 채 지금도 물과 기름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저 혼자 저만치 떨어져있다. 

  요즘 우리 주위를 유행처럼 떠돌아다니는 말 중에 공공디자인이라는 것도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하지만 이는 절대로 기우가 아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 하겠지만 공공디자인은 잘못 되었을 경우 캐릭터에 비해 그 파장과 상처가 더욱 깊고 또 오래간다. 그것은 종종 땅에 뿌리 내리고 지어지는 조형물이고, 우리가 집에 가는 길에 매일 바라보아야 할 공간이고, 우리가 늘 바라보아 눈에 익고 정든 한 풍경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한 인간 활동이기 때문이다. 

  공공 공간을 새롭게 바꾸는 공공디자인 사업이 과연 무엇인가를 새롭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며 그 속도와 방법에 수많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공공디자인 사업은 무엇보다도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지역 당사자들의 의견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도시 미관을 바꾸는 사업에 해당 주민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것은 비단 감상적인 차원에서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과 조형물들을 무조건 대면해야 하는 이유 뿐 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 지역에서 생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의 문제에서부터 지역 주민들이 옳다고 믿는 환경에 관한 문제까지 모두 매우 직접적이고 필수적인 이유들이 산적해있다.

 즉, 주민참여는 공공디자인의 고려 요소가 아니라 필수요소인 것이다. 초기 계발단계부터 주민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은 공공디자인은 다시 말해 공공디자인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관 주도로 이루어지는 우리가 기억 못하는 수많은 캐릭터와도 같은 사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른바 ‘돈만 쓰고 뭐하는 짓인지 모를’ 사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도 문제이다. 그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사업의 주체는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사업의 객체로 치부 받았던 주민들만 남아서 고스란히 그 비용을 치르게 된다. 그저 눈앞의 풍경이 익숙해지도록 시간이 흐르길 바라는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도시와 사회에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불러 넣으며 도시 미관의 변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 받는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사업이 올해도 시작된다. 그 중 하나는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원터약수터 일대의 경관을 바꾸는 <오아시스 프로젝트>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시민과 함께 하는 사업 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주민이 참여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프로젝트 공모에 참여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서울시가 밝힌 바에 따라 “공공장소에 작품 구상 및 설치가 가능한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기획자 및 팀”으로 제한되고 작품의 심사 또한 서울시가 정한 전문위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여러 가지 행정적이고 실제적인 어려움도 물론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의 경관을 바꾸는 도시 갤러리 사업 방식이 과연 이러한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인지, 시민들은 언제나 설명을 듣고, 고개만 끄덕여 주는 존재여야 하는 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누가 왜 우리 동네를 바꾸는가?”라는 질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네가 예쁘고 멋지게 바뀌는 것이 싫다는 게 아니다. 도시 갤러리 사업에 언제까지 객체로 취급받아야 하는 거주민으로서의 권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도시 갤러리 사업은 전문가들끼리 모여서 한 두 달 만에 뚝딱 심사를 마치고 또 몇 달 안에 공사를 마쳐야 할 사안이 아니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도시갤러리 사업이 지역의 주민들과 공무원, 전문가들이 하나가 되어서 함께 만들어 가는 사업이 되길 바란다.

 

[mbn 아트 & 디자인센터 유호정 기자(rhj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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