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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①] 인간과 시장기사입력 2009-07-14 오전 9:13:07 지난해 9월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이 한국에 가져다준 충격은 매우 컸다. 당장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컸지만, 못지 않게 지적, 심리적 충격도 컸다. '승승장구하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로의 편입 만이 한국의 유일한 살 길'이라는 우파의 주장에 좌파 역시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표상인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지난해 한국 지식사회에서는 헝가리 출신의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1886~1964)가 주목받게 됐다. 1990년대 폴라니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던 홍기빈 박사(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는 "솔직히 대학원 논문을 쓸 때만 해도 한국에서 폴라니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홍 박사는 최근 폴라니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길 펴냄)을 번역했다. 어쨌든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고 평가되는 현 위기에서 마르크스도 아닌, 케인스도 아닌, 폴라니가 신자유주의와 다른 경제질서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홍기빈 박사는 최근 폴라니 열풍에 대해 "폴라니가 하지 않은 얘기를 씌워서 비판하거나 환상을 갖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홍 박사는 지난 9일부터 4회에 걸쳐 참여사회연구소 주최로 '위기의 시대에 읽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강연을 갖는다. 홍 박사의 강연을 요약, 발췌해 게재한다. <편집자>
크게 3꼭지로 나눠서 얘기하려고 한다. 먼저 폴라니가 다른 경제사상가들과 어떤 다른가. 둘째, 인류역사에서 시장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셋째, 산업혁명과 기계제의 문제. 1. 케인스, 하이에크, 마르크스 그리고 폴라니 내가 지난 20년 동안 가장 크게 상처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그래서 대안이 뭐냐?'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끄떡없다. '당신들은 대안 있냐'고 물으면 누구도 대답하기 힘들다. 우선 대안담론의 허구성과 연결해서 얘기하고 싶다. 케인스, 하이에크, 마르크스. 이 세 사람과 폴라니의 대립점은 폴라니는 시장경제 자체를 허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세 사람은 시장경제에 대한 입장은 각기 달라도 시장경제 존재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폴라니는 시장경제라고 하는 틀로 사유하지 말라. 지금 살고 있는 사회도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존재하는 시장경제를 도덕성과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차원 두 가지로 판단할 때 완벽하다고 보는 게 하이에크다. 도덕성도 용납될 수 없고 합리성도 끝내 위기와 공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시장경제를 전면 부정하는 건 마르크스다. 시장경제는 도덕적으로도 완벽하지 않고 합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법령이나 정책으로 조정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케인스다. 시장경제의 틀로 보면 완전 긍정(하이에크), 완전 부정(마르크스), 조건부 긍정/부정(케이즈) 세 가지 밖에 없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 신자유주의 정치경제사상에서 제일 강력한 무기는 '대안이 뭐냐?'는 질문이었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영국 대처 수상이다. 1976년 IMF 위기에 빠지고 79년 집권한 대처 수상은 영국의 복지자본주의를 싹 다 뜯어고쳐야 한다면서 신자유주의를 강행했다. 문제제기하면 "신자유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이 굉장히 천박하고 경박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시장경제 입장은 3가지 밖에 없다. 70년대에는 완전 부정/긍정(케인스주의)이 한계에 부딪혔다. 90년대 초 현실에서 존재하는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따라서 대안이 뭐냐는 게 정치가가 만들어진 경박한 조어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역사철학이 담긴 말이다. 인류가 실험한 2개의 옵션이 무너진 상태에서 다른 제안이 뭐냐. 이걸 이론으로 정교화 한 게 후쿠야마다. 다른 옵션은 끝났다. 그래서 시장경제를 회피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요지였다. 프리드만도 '황금구속복'의 착용을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주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체제를 반대하고 비판하려는 사람들이 이 사고틀에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서구의 좌파가 두 종류의 나뉘었었는데, 시장 경제에 대해 모호한 방식으로 거부하는 부류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타협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시장경제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세 가지 경우의 수 밖에 없다. 이런 예를 들어 좀 그렇지만 콧물 한 사발과 고름 한 사발을 놓고 '어느 쪽을 마실래'라고 하면 어느 쪽이 나을까 고민한다. 정답은 안 마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프레임을 걸어 얘기하면 이런 바보 같은 고민에 빠질 수도 있다. 왜 시장경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 하나? 왜 여기서 사고를 시작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폴라니를 케인스의 아류나 마르크스의 아류로 얘기한다. 양쪽 다 잘못이다. 폴라니는 국가개입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학계가 이런 식으로 폴라니를 전유한다. 국가 규제와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주장한 사람이라고 단순화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폴라니가 마르크스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유익한 서브노트로 여긴다. 물론 폴라니가 시장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이게 폴라니의 중심적인 논지는 아니다. 폴라니는 인간의 존재에서 시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 결과 폴라니의 결론은 시장경제는 허구다.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다. 바로 이 점이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가 중대 기로에 서 있는 현 시점에서 폴라니를 읽는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이다. 2. 인류의 역사에서 시장의 존재란?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냐? 이기적인 존재다. 개인적 이기심을 추구하게 돼 있다는 것을 첫 번째 속성으로 지적한다. 두 번째는 합리적인 존재로 본다.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과 서로의 이익이 맞는다면 협조할 수 있다. 이를 이르는 말이 '호모이코노미쿠스'다. 가장 초기에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혼자서 다 구했다.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인간이다. 많은 분들이 어릴적 동화로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셨겠지만 사실 <로빈슨 크루소>는 18세기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다. 루소, 아담 스미스 등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로빈슨 크루소는 경제학의 단위로서 호모이코노미쿠스를 생각하는데 기본 바탕이 됐다. 처음 자급자족하던 인간이 필요에 의해 물물교환(예를 들어 노루와 생선)을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분업이 생기고(노루만 잡는 '노루맨'과 물고기만 잡는 '낚시맨') 결과적으로 물물교환에 더 기대게 된다. 물물교환이 불편하니까 화폐가 만들어진다. 또 정당한 교환이 아니라 무력을 동원한 약탈을 하는 무리들이 생기고, 이런 무리들이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니까 시장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생겼다. 이기심과 교환, 즉, 시장을 만들고자 하는 본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장은 종교, 정치 등 어리석은 이유로 억압하지 않으면 어디서나 자유롭게 생겨나고 어디서나 풍요를 보장해준다. 이게 시장의 기원과 속성에 대한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본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어이없는 일이다. 지금도 숱한 경제학 교과서에서 이게 진리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인류학적으로 뒤져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거짓말 중에도 이런 거짓말이 없다. 학문의 이름으로 19세기 내내 울려 퍼진 주문이다. 폴라니는 인류학적 증거들을 통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이런 강력한 논리적 체계는 아담 스미스가 만들었다. 아담 스미스가 가상으로 만들어놓은 것을 후대 학자들이 진리로 받아들였다. 물론 아담 스미스가 어떤 목적으로 갖고 만든 것은 아니다. 당시 서양인들의 인류학적 지식은 실제로 지구가 기원전 4571년에 창조됐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왜? 성서에 그렇게 돼 있으니까. 인류역사의 초기가 이랬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억측'이라는 방법을 썼다. 18세기까지는 문제가 안 됐다. 인류학적, 역사학적 발견은 19세기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역사학이 과학이라는 인식은 19세기에야 생겼다. 사실 제국주의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인류학은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20세기 초엽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의 책을 보면 동양 고대사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터무니없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도 마찬가지다. 역사학과 인류학 발전의 첫 번째 수혜자가 막스 베버다. 그 당시가 돼야 어느 정도 자료가 축적된 것이다. 폴라니가 이 책을 쓴 것이 1944년이다. 폴라니도 역사와 인류학 발전의 혜택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 신화(mytos)는 진위의 영역으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 로고스(logos)는 진실과 거짓을 꼬장꼬장하게 따지는 영역이다. 폴라니가 보기에 시장의 기원과 발전은 로고스 차원에서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시장의 기원에 대해 아무도 로고스 차원에서 따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200년이 지나서 신화가 됐다. 마르크스도 이런 식의 물물교환이 존재했을 것이란 가정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폴라니가 이걸 따져보자는 것이다. 물물교환 과정이 불편해 화폐가 생겼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화폐의 가치는 단위가 커서는 안 된다. 세계 최초의 화폐 중 하나가 기원전 650년경 리디아 왕국(지금의 터키)의 동전이 있다. 이 동전은 소 5마리 가치였다. 또 페르시아에는 수도에 시장이 없었다. 페르시아를 통일했던 첫 번째 황제인 키루스가 그리스인들이 협상을 하자고 하니까 '도시 한가운데에 터 잡아놓고 조직적, 체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협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는 시장을 죄악시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시장이 허구라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과거에 있었던 경제는 어떻게 조직됐는가? 시장이 존재했는지는 모르지만 사회적 협업과 분업은 있었다. 인류는 처음 시작부터 노동분업을 했던 것은 틀림없다. 자유주의 신화의 맹점은 노동분업의 필연성에서 노동분업은 시장으로만 가능하다고 얘기한 것이다. 노동분업이 시장이 아닌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시장의 신화는 무너지는 것이다. 여기서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 시장이 아닌 노동분업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상호성과 재분배를 찾아볼 수 있다. 상호성 : 선물경제 첫 번째 방법 상호성은 쉽게 말하면 선물을 주고받는 형태로 노동분업을 조직하는 것이다. 쌍대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에 있는 두 사람(친구, 애인, 선후배, 이웃 등)이 교환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과연 이런 방식을 통해 곡식, 집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다 조달할 수 있을까? 인간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선물은 지극히 실용적인 개념이었다. 또 이런 방식으로 큰 규모의 경제적 분업이 가능했을까? 멜라네시아의 트로블리안 제도가 있다. 여러 개의 섬들로 긴 띠 모양으로 생긴 이 제도는 각 섬마다 생산되는 물건들이 다르다. 서로 교역의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 이걸 어떻게 조직했는가. 여기 사람들이 소위 '일촌'을 맺어 파도타기를 했다. A, B, C, D 등 여러 개의 섬에서 나는 물건들이 이런 교환을 통해 한 바퀴 도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수백명에 이르고,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고받는다. 이게 바로 선물경제다. 아주 간단한 조작을 하면 선물경제에서 쌍대성을 극복할 수 있다. 선물을 받은 쪽과 주는 쪽을 일치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학 다닐 때 선배들한테 술을 얻어 먹었다. 하지만 그 선배가 나중에 우리에게 자기가 쓴 술값만큼 술을 사라고 한다면? 그 선배는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다. 그 대가를 나중에 누구에게 지불하게 되나? 후배한테 하게 돼 있다. 줄줄이 내려가게 돼 있다. 그렇다면 선물경제는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좋은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앞에 선후배를 예로 들었던 것처럼 위계구조와 연결돼 있다. 이게 선물경제의 암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교환되기 때문에 굉장히 실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를 따라 큰 규모의 경제를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질문이 가능하다. 시장경제에 있어 시장참여자들 사이에 경쟁은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렇다면 선물경제에서 경쟁은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가? 앞에 얘기한 섬에서 보면 한 가족을 엄마의 오빠, 즉 외삼촌이 부양하게 돼 있다. 일년 농사를 다 지어서 여동생 집에 가져다준다. 이때 선물로 주기 전에 자기 집 앞에 곡식을 쌓아놓는다. 이는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가, 또 자기가 얼마나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인가를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다. 남들보다 더 좋은 곡식을, 더 많이 여동생 가족에게 선물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려는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시장에서 누가 1등을 하고, 2등을 하느냐. 이걸로만 경쟁이 조직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선수들이 무엇 때문에 경쟁을 했는가. 상금 때문인가. 아니다. 서로의 뛰어남에 대란 경탄을 하면서 나도 뛰어난 인간이 되겠다는 자극을 받아 경쟁했다.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는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인간의 뛰어남에 대한 찬가를 남겼다. 재분배 : 이집트의 피라미드 재분배를 통한 노동분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수렵이다. 멧돼지를 잡을 때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사전에 돈을 받거나 계약서를 쓰고 하나. 아니다. 다 같이 멧돼지를 잡고 그 결과물을 놓고 재분배에 들어간다. 상호성과 마찬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큰 규모의 경제를 조직할 수 있나? 국가 단위가 가능하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재분배로 경제를 조직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연인원 50만 명 정도가 참여하는 20년 정도가 걸리는 공사였다. 50만 명이 20년을 일하게 할 수 있는 경제는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했을 뿐 아니라 여기에 필요한 계산과 회계 역시 대단히 발전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현존했던 공산주의 경제도 전형적인 재분배 경제였다. 사회적 행동과 경제적 행동 상호성에서 경제에 참여하는 이유가 뭔가? 이익인가? 그렇지 않다. 선물이 실용적 측면이 있기는 아니지만 순전히 실용성만은 아니다. 선물의 사회적 관계, 서로 간의 정과 사랑을 강화한다는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서로간의 선의, 사랑이 밑받침돼 있다. 재분배에 참여하는 논리는? 의리, 충성 등 권력에 대한 복종의 논리가 깔려 있다. 참여 동기와 노동 분업이 조직되고 운영되는 원리가 순전히 경제적 돈 계산은 아니다. 위의 두 가지는 분명히 정치적, 사회적 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행위는 어디 있느냐? '묻어 들어가'(embedded) 있다. 상호성과 재분배에서 경제적 행동은 사회적 행동에 '묻어 들어가' 있다. 우리 현실로 돌아가보자.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에 직업을 순전히 경제적 이유에서만 선택한 사람이 있냐? 또 경제적 고려는 하나도 안 한 사람이 있냐? 다들 여러 가지 동기를 고려해 복합적으로 정한다. 고려해야 될 것 중의 하나로 경제적인 게 있다. 사람들의 실제 모습은 여기에 더 가깝다. 반면 시장경제는 어떤가? 참여하는 두 사람과 두 집단 사이에는 사회학 관계가 없다. 시장은 철저하게 돈 계산, 물질적 계획만 있다. 또 시장경제에서 참여 동기는 순전히 이익이다. 사회적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경제와 사회>에서 '시장관계는 공동체 내에서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장은 공동체 바깥, 즉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만 발생한다고 했다. 여기서 인간의 본질이 뭐냐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 신화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호모이코노미쿠스로 본다. 철저하게 이익에 기반한 인간이다. 그러다보니 시장이라는 패턴 설명해낼 수밖에 없었다. 폴라니는 어떤 문제제기를 하고 있나. 총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서양에서 2000년 동안 인문학의 핵심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뭔가였다. 이 질문의 답은 영혼이 있다는 것이고, 종교의 핵심 주제가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였다. 영혼은 욕망과 이상을 창조하는 매커니즘이다. 영혼이 있는 존재는 욕망과 이상과 꿈을 계속 생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가장 큰 특징으로 상상력을 꼽았다. 마르크스는 <경ㆍ철초고>에서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으로 동물과 다르게 욕망, 이상, 꿈을 창조하며, 그걸 현실화하는 게 노동이라고 지적했다. 폴라니는 잠시 몇백년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끄집어냈다. 인간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는? 배고파서가 아니다. 인간 경제의 패턴, 사람의 노동을 조직하는 동기는 무한히 다양하다. 실제로 그렇다. 사람의 영혼에서 어떤 욕망을 끌어내느냐는 사회에 달려 있다. 인간의 본성은 딱 규정할 수 없이 다양하다. 이걸 조직하는 것은 사회다. 19세기 근대 유럽을 제외하고 인류역사의 전 기간을 걸쳐 시장은 인간경제생활에서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핵심적인 물품과 욕망은 상호성과 재분배로 조직했다.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요구되는 물품을 시장에 맡겨놓으면 사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물론 시장은 구석기시대부터 있었다. 하지만 액세서리 이상의 위치를 넘어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시장이 어느 정도 위상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많은 기제가 있었고, 실제 일정규모 이상 팽창하지 못했었다. 1957년 고대사연구회에서 폭탄 같은 책을 냈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논쟁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누구도 고대 경제가 시장경제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3. 산업혁명과 기계제
어떤 사건은 그 사건을 어느 정도 시간이나 공간의 틀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산업혁명의 의의는 어느 정도 시간 틀에서 해석해야할까? 폴라니는 1만년 정도 시간 지평에서 볼 것을 요구한다. 산업혁명을 신석기 혁명과 대비 속에서 얘기하고 있다. 농경과 축산이 시작돼 정착이 시작된 신석기 이전의 인간과 이후의 인간은 다른 종이다. 군집을 이루는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충격에 비해 작지 않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도구나 기계가 인간 신체의 능력을 연장하는 수단이었다. 인간이 여전히 생산 활동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는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자연이 생산활동의 중심에 있는 게 아니고 기계의 투입물이 된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원리가 사람과 자연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기계가 중심이 되면 경제적 과정을 조직하는 원리가 기계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다. 인간과 자연은 부수적 투입요소가 된다. 이처럼 신석기 혁명으로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기계의 투입물로서 인간과 자연을 어떻게 다루면 제일 편한가? 상품으로 다루면 된다. 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선 투입되는 노동과 원자재의 양이 탄력적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필요할 때 투입하고 필요 없을 때 빼내기 위해서는 상품이 되는 게 필요하다. 이게 19세기 시장자본주의 경제였다. 폴라니는 과거 1만 년 동안 부수적이었던 시장이 인간과 자연을 먹어 버린 근본 이유가 산업혁명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상주의 때도 많은 것이 상품이 됐지만 인간과 토지까지 상품의 형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게 일어난 것이 산업혁명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풀어야할 과제의 성격은 총체적 인간이다. 인간과 자연이 기계의 투입물이 된 것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 경제적 착취나 쪼들림, 자연파괴가 아니다. 사람이 짐승이 됐다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의 영혼을 인정 안하고 스스로를 동물로 여기게 됐다. 이게 발전하면 전체주의적 사회가 된다. 파시즘에 대한 고발이다. 폴라니가 보는 19세기 자유주의 사회와 파시즘의 연속성이다. 기계제(산업생산)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병존하는 사회로 재조직해야 한다는 게 폴라니의 문제의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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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05:18:22
'위기의 시대에 읽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세 번째 강연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만든 자유주의 경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살핀다. 자유 시장과 제도적 규제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믿음이다. 하지만, 칼 폴라니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말한다. "자유방임 경제는 중앙계획을 통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중앙계획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통념과 달리, 자유 시장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의해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다. 금본위제를 비롯한 몇 가지 제도를 통해 인위적으로 지탱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 시장이라는 인공 구조물이 세계를 평화와 풍요로 이끌리라는 19세기 유럽인들의 믿음이 허구로 드러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믿음이 깨진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편집자> 첫 번째 강연 : "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두 번째 강연 : "모든 빈민을 죽게 두라"… 자유주의의 탄생 21세기 경제학과 14세기 의학 세 번째 강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경제 전망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종종 나온다. 불과 일주일 전에는 세계 경제 전망이 어둡다고 말했던 이들이, 금세 전망이 좋다며 말을 바꾼다. 이런 이들이 내놓는 전망을 소개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이 "21세기 경제학 발달 수준이 14세기 유럽 의학 발달 수준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14세기 팔레스타인 출신 유태인 의사가 유럽을 방문한 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유럽 의사가 다리를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식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다리를 자르면 살고 안 자르면 죽는다고 말한다. 그럼 환자에겐 무슨 선택지가 있겠나. 다리를 자르는 수밖에. 그런데 막상 다리를 자르니까, 환자가 쇼크로 죽었다.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 정신이 이상하다며,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소금을 뿌리는 장면도 나온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황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19세기 초만 해도 유럽 의사들이 만병 통치술로 여겼던 게 피를 뽑는 것이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이런 치료를 받다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치료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치료가 횡행한 이유가 뭘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가장 권위 있는 의학 지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경제학자들이 세계 경제에 대해 내놓는 처방을 보면, 옛날 유럽 의사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아주 긴 역사적 시각으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경제학자들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해도, 별 반발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뭘까. 아마 그들이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전 세계에 수많은 경제학자가 있지만, 사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과 영국 옥스브리지(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합의된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비리그와 옥스브리지에서 나온 이야기가 꼭 옳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확인하고 있다.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경제학 공부의 목표는 경제학자들의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정도면 좋게 이야기한 거라고 본다. 요즘이라면, "교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는 게 솔직한 대답 아닐까. 최근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흔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꼽는다. 타당한 이야기지만, 나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는가 싶다. 바로 경제학 자체의 문제다.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 대해 아무런 응답이 없다. 토론과 비판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학문과 제도는 무너지게 돼 있다. "개인도, 계급도 아니다. 사회다" '사회의 자기보호'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사회'다. 이 책 후반부에 가면 "사회 실재의 현실"이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데, 처음 읽는 독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다가 너무 갑자기 등장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가 이 책에서 워낙 중요한 개념인 까닭에 책 전체에 걸쳐서 개념이 녹아 있다. 폴라니가 이야기하는 '사회'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비교해 보자. 자유주의 사상에서는 단위가 개인이다. 개인을 단위로 삼아 모든 설명이 이뤄진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단위가 계급이다. 그런데 이 두 사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개별 단위의 움직임을 경제적 동기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사상에서는 개인의 경제적 동기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요소는 비합리적 선택으로 취급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생산관계를 둘러싼 인간집단, 즉 계급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경제적 동기를 가장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다. 폴라니의 사상이 돋보이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폴라니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회다"라고 말한다. 개인도, 계급도 아니다. 사회다. "사람은 돈 계산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폴라니의 사상에 대해 흔히 마르크스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계급투쟁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 않다. 폴라니는 사회 전체의 반응에 부응하는 계급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아간다는, 실현 불가능한 믿음을 현실에 무리하게 덧씌우려는 폭력에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시장과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이중적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운동의 단위는 개인이나 계급이 아닌 사회 전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계급투쟁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은 19세기 유럽 사회의 상식과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경제적 동기라고 믿었다. 다만, 사회 현상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단위가 개인이냐 계급이냐 하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폴라니는 인간이 경제적 돈 계산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봤다. 물론, 경제적 동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게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며,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이런 본성을 해치는 질서에 대해 사회는 자기 보호 운동을 진행한다. "문화적 공백은 시장이 메울 수 없다" 폴라니가 보기에 19세기 유럽에 등장한 자기조정 시장은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것이면서,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영어에 휴먼 트래쉬(Human Trash)라는 말이 있는데, '인간 쓰레기'라는 뜻이다. 시장이 사회에 들어오면서 인간은 짐승이 되고, 토지는 황무지가 됐다. 사회는 파괴되고, '인간 쓰레기'들이 생겨나게 됐다. 이에 대해 폴라니는 '생체 해부'로 비유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해부용 칼을 쑥 집어넣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사회가 겪는다는 게다. 생명체에 칼이 박히면, 몸 전체가 수축된다. 사회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게다. 이 책 424페이지의 설명을 보자. "그런데 이런 문화적 진공 속에서의 삶이란 결코 삶이 될 수 없다는 점에 기꺼이 동의하는 이들조차도, 경제적인 필요와 욕구만 생겨난다면 그것으로 문화적 공백도 저절로 메워지고 아무리 끔찍한 상태에서도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인류학적 연구 조사의 결과와는 날카롭게 모순되다. '개인들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노동의 목표란 문화적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식량의 부족과 같은 외부적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것의 성격이 문화적 차원에서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면 단순히 그 배고픔에 대한 인간 육체의 반응으로서 노동의 목적이 생겨난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마거릿 미드 박사는 말한다. '미개인들은 자신들의 집단이 파괴된 후 뿔뿔이 흩어져 졸지에 금광의 광부나 선원으로 전환하는 일도 있지만, 열심히 살아갈 모든 동기를 빼앗겨버린 상태로 방치되어 시냇가에는 여전히 물고기가 득실거리고 있건만 냇가에 그냥 멍하니 드러누워 고통도 모르는 채 그대로 죽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은 너무나 괴상하고 낯선 것으로 보일 것이며, 사회의 본성과 정상적인 작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병리학적인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덧붙인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외부에서 도입된 혹은 최소한 외부에서 생겨난 변화의 한가운데로 어떤 집단의 인간들이 휘말려들 때에 바로 이러한 사태가 보통으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그래서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던 집단의 인간들이 이렇게 폭력적인 접촉으로 인해 자신들의 사회적 관행과 도덕 관념을 뿌리째 뽑혀버리는 일은 너무나 자주 벌어지는 것이어서, 사회사가들은 이러한 과정에 응당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사회사가들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지금 식민지 세계를 혁명적으로 뒤집어놓고 있는 문화 접촉의 기본적 힘이 1세기 전 초기 자본주의의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만들어냈던 힘과 동일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착취보다 위험한 사회 파괴…사회의 자기보호 운동 등장 공동체가 파괴된 후, 열심히 살아갈 모든 동기를 빼앗겨버린 상태로 방치되어 시냇가에는 여전히 물고기가 득실거리고 있건만 냇가에 그냥 멍하니 드러누워 고통도 모르는 채 그대로 죽어가는 일. 이런 일은 경제적 동기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대부분이 그렇다. 잘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10대 가출 청소년의 경우를 보자.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사회에 던져지는 순간 인간이 아닌 그냥 몸덩이로만 취급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고 나서, 이들의 선택은 앞서 나온 예처럼 그냥 멍하니 있는 것이다. 시장이 사회에 들어오면서 인간이 상품으로 거래되는데, 이런 상황이 주는 충격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억지로 강요하는 순간, 반발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다. 이는 경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경제적인 착취를 문제의 핵심으로 설정하는데, 폴라니의 생각은 다르다. 착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파괴라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의 파괴. 이게 진짜 문제라고 봤다. 자유주의 삼위일체…舊구빈법 철폐, 곡물법 철폐, 금 본위제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하는 자유주의 경제 논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자유주의 논리니까, 자율적인 움직임에 따라 저절로 생겨난 걸까. 그렇지 않다. 제도가 만들어낸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 논리는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인간의 노동력, 토지를 비롯한 자연, 화폐 등이다. 이런 세 가지를 모두 상품으로 만들면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실현 불가능한 꿈이 생겨났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생겨난 세 가지 제도적 장치가 이와 맞물린다. 구(舊) 구빈법 철폐(신(新) 구빈법 제정), 곡물법 철폐, 그리고 금 본위제가 그것이다. 이들 세 가지 조치는 1832년 부르주아들이 영국 의회에 대거 진출하면서 생긴 이른바 '개혁의회'에서 잇따라 통과됐다. '자유주의 삼위일체'에 해당하는 조치들이다. 부르주아들이 주도하는 개혁의회가 탄생한 지 2년 뒤인 1834년, 스피넘 랜드법, 그러니까 구(舊) 구빈법 철폐됐다. 대신 신(新) 구빈법이 제정됐다. 이는 사람이 오직 노동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상품으로 거래되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노동자에 대해 직접적인 금전 지원을 하는 스피넘 랜드법이 사라진 대신, 구빈소가 세워졌다. 그런데 당시 기록을 보면, 가난한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구빈소는 지옥 그 자체였다.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도 잘 묘사돼 있다. 당시 제도를 만든 이들이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한다. 구빈소를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놓아서, 노동 규율을 세운 것이다. 공장에서 잘리면 갈 곳이 없도록 한 것이다. 요즘은 공장에서 산업재해를 입으면 보상이 이뤄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개념이 없었다.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가 해고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효용이 없는 상품에 가격을 지불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어도 이를 숨기고 일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공장 밖에는 자연의 징벌, 즉 굶주림이 있다는 공포가 노동자를 상품으로 만든 힘이었던 게다. 노동력 상품화의 계기였던 스피넘 랜드법이 철폐되고 10년 뒤인 1844년, 영국 총리 주도로 필 은행법(Peel's Bank Act)이 제정됐다. 화폐의 총량은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과 정비례해야 한다는 '금본위제'를 명시한 법안이다. 금본위제는 시장이 저절로 균형을 찾는다는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믿음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축 가운데 하나다. 이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금본위제'를 따르는 어떤 나라가 수출을 많이 해서 금이 많이 유입됐다고 하자. 그럼 국내에 물건은 줄어들고, 돈은 많이 풀리게 된다. 자연스레 물가가 오르게 된다. 국내 물가가 오르면, 이 나라는 수출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번에는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게 된다. 이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은 줄어든다. 화폐의 양은 금의 양과 비례하므로, 돈이 적게 풀린 상태가 된다. 이번에는 물가가 떨어진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다시 수출 경쟁력을 회복한다. 이런 식으로 경제가 균형을 이룬다는 게 '금본위제'를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나온 데는 배경이 있다. 이보다 이전에는 유럽에서 중상주의가 대세였다. 무조건 수출을 많이 해서 금을 많이 확보하는 게 국가의 부(富)를 늘리는 길이라는 믿음이다. '금본위제'는 이런 믿음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힘을 얻었다. 그런데 영국이 '금본위제'를 도입해서 정말 경제가 균형을 이뤘을까. 현실은 금본위제 신봉자들의 믿음과 달랐다. 필 은행법 제정 이후, 영국은 10년마다 금융공황에 시달렸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적절하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기업들이 위기를 헤쳐가기 어렵다. 그리고 한번 망한 기업은 저절로 살아나지 않는다. 적절하게 돈을 빌려주는 기능은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데 오직 금의 보유량에만 비례하여 화폐를 공급하는 금본위제 하에서는 이런 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 산업이 위기를 맞는 게 당연하다. 당시 유럽 지도자들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에는 금본위제와 중앙은행을 동시에 유지하는, 논리적으로는 모순인 선택을 유럽 국가들이 취하게 된다.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믿음을 구현하기 위해 도입된 나머지 하나의 조치는 곡물법 철폐였다. 잘 알다시피 영국은 토질이 안 좋은 편이다. 그래서 농사를 짓기에 좋지가 않다. 당연히 농업 경쟁력이 약하다. 수입 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물리는 곡물법이 오랫동안 유지된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1846년, 이 법이 폐지됐다. 지주들의 반발을 부르주아가 누른 결과였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가격이 정해지는 상품이 될 수 있으려면, 곡물법 폐지가 필수적이었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식량 가격을 낮춰야 임금을 탄력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조치는 농촌의 급격한 황폐화로 이어졌다.
규제 없는 시장은 작동 불가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믿음을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조치, 즉 구(舊) 구빈법 철폐, 금본위제, 곡물법 철폐는 삼위일체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게 폴라니의 생각이다. 어떤 이들은 이들 조치들을 따로 떨어진 채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만 이해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금본위제가 실시되면, 기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 자금을 융통하는 게 쉽지 않아 진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주, 즉 산업자본가가 살아남으려면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한다. 구(舊) 구빈법 철폐를 통해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하는 제도를 없애고 실업에 대한 공포를 심는 게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오직 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에 따라 탄력적으로 정해지도록 하려면, 임금 하한선이 최대한 낮아져야 한다. 결국 식량 가격을 낮춰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곡물법을 철폐해야 한다. 자유주의 삼위일체, 즉 구(舊) 구빈법 철폐, 금본위제, 곡물법 철폐 등을 통해 실현하려 한 자기조정 시장은 과연 제대로 작동했을까. 그렇지 않다. 통념과 달리, 그리고 자기조정 시장을 꿈꾼 이들의 믿음과 달리, 자유방임 시장은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 강력한 규제가 필수적이다. 상품이 된 노동에 대해 시장에서 매겨진 가격이 유연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은 현실에서 쉽지 않다. 노동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노동자도 사람인데,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임금이 떨어지면 가만히 있겠는가. 결국 자본가들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해 진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오히려 정부 기구가 확대되는 이유다. 영국이 실제로 이랬다. 자유주의 경제논리가 득세하는 내내 정부 기구는 확장을 거듭했다. 폴라니는 "자유 방임 시장은 중앙계획이 만들었다. 하지만 중앙 계획은 계획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국제수지의 자동적 균형을 위해 도입된 금본위제 역시 마찬가지다. 금본위제 하에서는 정부의 재정정책, 금융정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당장 급전이 필요한 기업가들은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불법,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급한 돈을 빌리려 한다. 정부 역시 당장 돈을 융통하지 못해서 기업이 파산하는 상황을 마냥 두고 보기 어렵다. 금본위제에 대한 저항이 필연적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저항 앞에서 정부는 현실적인 이유로 금융정책, 재정정책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화폐의 움직임을 오로지 시장 논리에만 맡길 수 없으며, 일정한 규제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농촌의 붕괴를 낳은 곡물법 철폐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조치를 밀어붙인 세력은 농촌을 곡식 제조 공장쯤으로 여긴다. 국내에서 곡식을 생산하는 비용보다 수입하는 가격이 싸다면, 수입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촌은 곡식 제조 공장과 다르다.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공동체다. 곡물법 철폐를 주장한 이들은 이런 특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경제 논리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불합리한 요소쯤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유지라는 면에서 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설령 수입 농산물보다 비싼 비용을 들여서 곡물을 생산하는 농촌이라고 해도,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농촌 공동체를 통해 전승되는 전통 문화는 사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식량 안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아무리 자유무역이 활발해도, 곡물가격 폭등 또는 곡물 수출 금지 조치 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늘 있다. 식량은 인간과 사회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재화인 까닭에, 식량의 이런 특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늘 있기 마련이다. 더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19세기 유럽의 경우, 농촌은 군인과 관료의 공급처였다. 부르주아의 자식들은 군인의 재목이 되지 못했다. 농촌에서 단련된 이들만이 군인으로 제몫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정부가 농업에 대해 오직 시장논리로만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시장에 규제를 가하는 조치가 뒤따르게 된다. 19세기 말, 군국주의 세력이 발호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19세기 중반께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했던 귀족 지주 세력이 군국주의적인 성격을 띠며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조건이 생겨난 것이다. 농촌의 몰락이 가져온 군사안보 위기와 사회 불안은 심각했고, 이는 농촌에 기반을 둔 귀족 지주 세력에게 기회가 됐다. 사회의 자기보호도 삼위일체 자유주의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조치들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처럼, 폭력적인 시장 논리에 대한 사회의 반응도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게 폴라니의 생각이다. 금본위제로 피해를 입는 기업가, 구(舊) 구빈법 철폐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조치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 곡물법 철폐 등으로 피해를 입은 농촌 지주 등이 제각각 내놓는 대응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폴라니의 사상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은 대목이기도 하다. 금본위제에 저항하는 산업 자본가, 노동력 상품화에 맞서는 노동자, 농촌 황폐화에 맞서는 귀족 지주가 한통속이냐는 비판이다. 독점자본가와 사회주의자, 반동 정치 세력이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지적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불쾌해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물론, 폴라니 역시 이들 세 주체가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폴라니의 비유를 들면, 물 위에 떠 있는 통나무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서로 통나무를 돌리는 것과 닮았다. 시장의 폭력에 대해 한쪽이 반응하면, 다른 한쪽 역시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 예컨대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노동력 상품화 조치에 맞서서 각종 사회 입법을 추진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등 조치다. 흔히 이런 조치는 사회주의자들만의 힘으로 이룬 성과라고 여긴다. 마르크스도 그랬다. 법정 노동시간을 못 박은 조치에 대해 "사회주의 운동의 위대한 승리"라고 예찬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노동시간 단축 등 사회입법 조치 가운데 상당수는 부르주아에 대해 반발하는 봉건 귀족 세력의 협조를 통해 이뤄졌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도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 있다. 사회 자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이런 조치가 없으면 사회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이를 계급투쟁에서 한쪽이 승리한 것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계급이 사회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계급을 결정한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인들에게 이런 생각은 새로운 것이었다. 시장이나 제도로 어찌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다는 생각이다. 잠시 군대 시절을 떠올려 보자. 군대에는 FM(야전교범)이라는 게 있다. 원칙대로라면,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FM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FM은 그저 FM일 뿐이다. 이걸 곧이곧대로 적용하려 들면, 군대 조직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공개적으로 인정하건 안 하건 많은 지휘관들이 속으로는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이 모여 있는 사회에서 규율과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게 폴라니의 사상이다.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자기조정 시장은 규율과 제도를 극단적으로 엄격하게 적용 해야만 작동할 수 있는데 이런 규율과 제도를 강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 자기조정 시장은 불가능한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다시 노동자들이 노동력 상품화에 맞서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취한다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노동자들은 결국 사회입법을 통해 최저임금을 설정하고 노동시간을 줄였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산업 자본가 입장에서는 비용이 늘게 됐다. 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내놓게 된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사회정치적 방식을 띤 것처럼 이들 역시 정부를 향해 대책을 요구하게 된다. 어떤 대책이 있을까. 결국 금융, 재정 정책이다. 돈 쓸 일이 늘었으니, 돈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이는 금본위제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집단의 시장에 대한 대응은 서로 맞물려 있다. 이는 결국 자기조정 시장을 구성하는 제도들을 허무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런 움직임을 거치면서 19세기 유럽인들이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은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이다. "헌정주의, 금본위제, 자기조정 시장, 세력 균형"…19세기 유럽의 꿈은 결국…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려 애썼던 19세기 유럽인들이 꿈꿨던 세상을 국내 정치, 국내 경제, 국제정치, 국제경제 등 네 항목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우선 국내 정치에서 이들은 헌정주의 국가를 만들려 했다. 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회 민주주의가 핵심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헌법에 따라 예산을 짜서 재정을 집행한다. 이렇게 되면, 돌발적인 재정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예컨대 전제 군주는 갑작스런 전쟁 선포 등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재정 지출이 늘어나고 해당 국가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 의회 민주주의 정치가 갖는 경제적 의미는 화폐 가치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떨어지는 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 경제에서 금본위제를 채택한 것과 맞물린다. 화폐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금본위제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 산업은 부침을 거듭하겠지만, 결국 균형을 이루리라는 게 당시 유럽인들의 믿음이었다. 이런 믿음은 다시 국내 경제에서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려 한 것과 맞물린다. 모든 자원의 분배를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큰 전쟁이 없어야 한다. 이는 국제 정치에서 세력 균형을 도모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정 국가가 갑자기 팽창하거나 군사력을 늘리면 나머지 국가들이 응징하는 것이다.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에서 이뤄진 이런 시도에는 19세기 유럽인들의 꿈이 담겨 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유럽이 평화와 풍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된 과정을 다시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으로 돌아보자. 우선 국내 경제. 자기조정 시장을 꿈꿨던 이들의 기대와 달리, 자기조정 시장은 점증하는 실업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실업이 늘어나자 정부는 돈을 풀어야 했는데, 금본위제로 인해 한계가 있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선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결국 수출을 통해 금을 들여오는 수밖에 없다. 또 값싼 원료를 통해 금 지출을 줄여야 했다. 원료 공급처 확보와 수출이 대외 경제 정책의 핵심이 됐다. 하지만, 기존 시장에는 한계가 있다. 서구 국가들이 택한 것은 아직 근대적인 틀을 갖추지 않은 나라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일본을 강제로 개항했을 때, 미국이 요구한 게 관세 철폐였다. 일본은 문명국가가 아니므로 관세를 매길 수 없다는 게 미국 측 논리였다. 야만국가에게 관세를 허용하면 제멋대로 관세를 매겨서 무역질서가 망가진다는 것. 이후 일본의 역사는 '우리도 문명국가다'라는 것을 서구 세계에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유럽인들이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에서 꿈꿨던 것들을 일본은 기를 쓰고 달성하려 했다. 이런 노력은 위에서부터 이뤄졌고, 그래서 일본 헌법은 제헌 헌법이 아니라 흠정 헌법이다. 서구 국가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메이지 천황이 만들어낸 헌법이라는 게다. 이런 노력의 끝이 러일전쟁이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 문명국가의 기준은 '세력균형'의 한 축이 되는 것인데, 이는 군사력을 통해서만 보장되는 것이다. 균형을 깨뜨리는 세력을 무력으로 응징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세력균형'의 한 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결국 일본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러시아와 전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이긴 뒤에야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경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조선을 집어 삼킨 것 역시 그 결과였다. 일본은 가까스로 제국주의 경쟁에 끼어든 경우였지만, 나머지 비서구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서구 국가들의 상품 판매처, 값싼 원료 공급처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중국마저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조정 시장을 믿었던 19세기 유럽인들의 꿈은 비서구인들의 눈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는 다시 유럽 사회의 혼란과 전쟁으로 되돌아 왔다.
2009.12.08 05:19:50
'위기의 시대에 읽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마지막 강연에서는 시장경제 이후 새로운 경제와 사회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봤다. 폴라니는 1만년 전 신석기혁명에 비견될 만한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사회가 질적변환을 거쳤다고 밝혔다. '기계제'와 '영혼을 가진 존재인 인간'의 만남은 어떠해야 하는가? 인간과 자연을 그저 기계의 투입물로 간주하는 시장경제가 아닌 새로운 경제는 어떻게 조직해야 하나? '자기조정시장'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인간의 역사와 사회를 직시한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폴라니의 지적이다. <편집자> 첫 번째 강연 : "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두 번째 강연 : "모든 빈민을 죽게 두라"… 자유주의의 탄생 세 번째 강연 :"19세기 유럽의 꿈은 어떻게 무너졌나" 마지막 강연에서는 제3부의 내용을 얘기할 것인데, 주로 21장의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그렇지만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다른 장들도 꼭 읽었으면 한다. 제국주의 19세기말 제국주의가 나타났다. 제국주의에 대한 설명은 기존의 우파(자유주의)와 좌파(마르크스주의) 둘 다 음모이론이다. 자유주의 쪽에서 얘기하는 원인은 한줌도 안 되는 군국주의자들과 비합리적인 집산주의자들, 그리고 비합리성에 영합해 들어간 정치가들이 합작해 원래 지켜야 될 합리성을 깨버리고 권력집중으로 나갔다. 원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 경향이 아닌데 그렇게 갔다고 설명한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해 독점자본가들과 금융 자본가들의 음모로 설명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이런 설명이다. 폴라니는 사회전체가 제국주의로 팽창하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기계로 변했다고 봤다. 19세기말 자기조정시장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이 제국주의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자기조정시장은 환상이고 실제 나타난 경제적 현실은 딱딱한 껍질을 가진 갑각류에 비유할 수 있는 민족국가였다. 이론적으로 구성된 경제의 상과 현실 경제의 작동을 분리해 파악하는 '이중적 운동'의 개념으로 제국주의를 설명했다. 마르크스주의자 중에는 부하린이 폴라니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슷한 설명을 했다. 이 사람이 1915년에 먼저 제국주의에 대한 책을 썼고,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이를 기반해 1917년에 나온 것이다. 부하린은 19세기말 제국주의가 된 근대국가는 노동자, 농민, 자본가들이 이해관계가 모여 하나로 묶인 '국가자본 트러스트'가 됐다고 봤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하린의 <제국주의론>은 60년대 영어 번역도 구하기 힘든 책이었는데,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돼 나왔었다. 1986년에 지양사라는 출판사에서 냈는데, 당시에는 책 한번 잘못 내면 잡혀가는 시절이어서 책의 저자나 역자도 밝히고 않았다.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있으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파시즘
파시즘이 정치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인가, 아닌가. 대부분 대답을 못한다. 히틀러가 독일의 현 복지국가 체제를 만들었다. 일본 파시즘이 일본의 종신고용체제를 만들었다. 일본 파시즘은 자본주의를 때려잡아야지만 민족이 살아난다고 봤다. 1933년까지 독일 나치당 권력서열 3위인 사람이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무솔리니는 이태리 사회당 기관지 편집장 출신이다. 정치경제체제로 가면 파시즘과 마르크스주의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파시즘이 나올 수 있는 체제를 만든 것이 서양문명이 인류에 저지른 가장 큰 죄악 중 하나다. 그러니 서양 역사가들이 이것을 제대로 연구하고 싶겠나. 비슷비슷한 연구가 반복됐을 뿐이지 파시즘에 대해서는 제대로 해명이 안 됐다. 동양이나 제3세계는 이런 혐의에서 자유로우니까 파시즘에 대한 규명을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파시즘이 나온 매커니즘이 제대로 규명이 안 되면 다시 나올 수 있다. 또 파시즘이 재현됐는데 그것이 파시즘인지 모를 수 있다. 따라서 파시즘이 무엇이냐는 것을 규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만 서구에서는 이를 방기하거나 실패했다. 폴라니는 파시즘이 정치경제체제 차원에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한 세트로 보고 다 날려버리고, 사상적으로는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정한다고 봤다. 폴라니는 민족주의와 파시즘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봤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즘은 민족주의와 결합했다. 그러나 파시즘은 민족주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집권에 유리한 흐름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용했다.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파시즘은 민족주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영국 모슬리, 프랑스 악시옹 프랑세즈,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나타난 파시즘 등은 민족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노르웨이 파시즘은 반민족주의였다. 노르웨이 파시스트였던 크비슬링은 독일 군대를 들여와서 노르웨이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독일 군대를 들여왔다. 그렇다면 파시즘의 본질은 뭐냐. 산업과 기계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극대로 올리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다 때려 부수고 기계적 합리성에 따라 전체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 기계문명 VS 인간사회 책의 마지막 얘기인 21장으로 가겠다. 어떤 경제와 사회를 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폴라니의 생각이다. 폴라니가 청사진을 꺼내온 사람이 아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다르다. 폴라니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스스로 모순된 얘기를 한 것이다. 첫 번째 강의에 했던 얘기를 잠시 상기해봤으면 한다. 마르크스, 케인즈, 하이에크와 폴라니의 차이점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완전 긍정(하이에크), 시장경제에 대한 완전 부정(마르크스), 시장경제에 대한 부분 긍정/부정(케인즈), 시장경제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이 세가지 밖에 답이 없다. 그런데 80년대말과 90년대 초 동구가 몰락하면서 현실 사회주의는 망했다. 2차 대전 이후 70년대까지 존재하던 복지국가체제도 실패했다. 시장경제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을 놓고 신자유주의로 갈 수 밖에 없다면서 '대안이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대답이 나올 수가 없다. 영국의 대처가 들고 나온 '대안이 없다'는 얘기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폴라니는 이 프레임 자체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이다. 시장이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였는지를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다보자는 얘기다. 경제문제는 전혀 고상한 얘기가 아니다. 당장 화장지가 제때 생산이 안돼 쓸 수가 없다. 현대인들은 일주일만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매일의 비루한 일상의 문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원칙 몇 개를 제시하는 것이 대안이냐. 사람들은 화만 낸다. 절대로 추상적이거나 도덕적 원칙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헬리콥터를 타고 나와 보니까 시장경제가 왜 발생했나. 고대 원시경제에서 시장에 의해 인간사회경제가 조직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핵심적인 경제활동이 시장으로 조직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장은 악세서리에 불과했다. 또 인간은 호모이코노미쿠스가 아니다. 자기 이익만으로 움직이는 인간관은 틀렸다. 실제 여러 종류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순수하게 이익을 동기로 일하는 사회는 거의 없었다. 우리사회에서도 직업을 고르면서 수입과 노동시간만 고려해 고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경제를 호혜성이나 재분배 같은 방식으로도 조직했는데, 이를 통해 경제를 조직할 때 다양한 사회적 동기에 경제가 묻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시장경제가 왜 갑자기 인간사회를 지배하게 됐느냐. 경제가 사회로부터 분리돼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인 것처럼 인식하게 됐나. 바로 기계제 때문이다. 폴라니 사상에서 기계는 매우 중요하다. 케인즈나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기계가 핵심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인간 역사에서 기계가 뭐냐'는 게 폴라니의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폴라니는 이 문제를 1만년 정도의 시간 틀에서 바라본다. 산업혁명이 신석기혁명과 맞먹는 일이라고 본다. 기계가 쓰인 이후에는 인류가 또 다른 '인간'으로 변화했다. 기계에 맞는 형태로 사회를 조직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의 주역이 인간과 자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기계에 대한 투입물이 됐다. 기계에 대한 투입물로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 상품이다. 기계제에 맞는 방식으로 인간사회를 조직하면서 첫 번째 나타난 제도가 시장경제였다. 하지만 사람과 자연을 상품으로 본다는 것은 허구다. 노동, 임금, 토지, 지대 등은 모두 허구적 상품이다. 이 허구적 상품끼리 만나 이뤄지는 경제시스템이 자기조정체제다. 사람과 자연이 상품이라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어떻게 나온 것이냐. 이전까지는 인간경제가 발전하고 진보하다 보니까 저절로 나온 것이라고 얘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폴라니는 이건 미친 생각이다. 스피넘랜드 사태에 처해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문제는 사람이 짐승이고, 사회는 자연이고, 사람을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진보라는 이런 미친 생각이 단순한 광신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1832년 영국 의회에서 구 빈민법 철폐, 곡물법 철폐, 금본위제라는 '자유주의 삼위일체' 조치가 잇따라 통과됐다. 이게 과연 현실에 실현될 수 있겠냐. 사회가 반쯤 인격분열이 일어난다. 가랑이가 찢어지던 끝에 나타난 게 대공황이고, 또 이런 모순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파시즘이었다. 이제 폴라니가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명제 하나를 이해할 수 있다.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것은 없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유토피아라서 실현된 적도 없고 실현될 수도 없다. 다만 이를 억지로 실현시키려는 프로젝트만 있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자기조정시장이 아니라 그걸 실현시키려는 프로젝트이며, 이런 이중적 운동이 현실을 지배한다. 또 폭력적인 시장 논리에 대응해 사회의 자기보호가 작동한다. 이게 폴라니의 논지다. 폴라니가 사회의 자기보호를 좋은 것으로 생각한 것 아니다. 실제로 굉장히 끔찍한 것도 많다. 이를테면 19세기말 독일농민 등이 했던 아주 반민주적인 행동들도 있다. 폴라니는 문제의 근원을 기계문명 대 인간사회로 봤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첫 번째 대응이 19세기 초 시장경제체제였다. 이는 이중적 운동으로 귀결됐다. 두 번째 대응은 파시즘과 세계대전이었다. 이 결과는 재난이다. 당시 유태인 집단학살이 재난이 아니고 뭐냐.
기계, 인간, 자연의 관계를 거칠지만 좀 쉽게 설명하자면 남녀관계에 빗대 얘기할 수 있다. 처음에 서로 소닭 보듯 별로 관계가 없다가 어느 순간 불꽃이 일어 연애를 하게 되고,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좀 지나서 아이를 낳았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여기에 맞춰 보면, 처음에 구석기 시대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거의 의식적이지 않았다. 서로 소닭 보듯 했다. 신석기혁명 이후 농경을 시작하면서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굉장히 긴밀해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 개념을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됐다. 농경시대 이후부터 인간이 자연을 굉장히 목적의식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인간이 자연을 끌어안고 연애를 해야 한다. 사람과 자연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를 기계라고 보자. 기계가 자연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기계를 만든 물질이 자연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자연의 법칙은 물리화학적 법칙이다. 기계는 물리화학적 법칙이 얼마나 정밀하게 관철되느냐에 따라 효율성이 결정된다. 이런 측면에서 기계는 자연의 아들이나 딸이다. 기계에 자연의 법칙만 있냐. 사람의 욕망과 기대와 희망 등이 관철돼 있다. 훌륭한 기계는 두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돼야 한다. 애를 낳으면 부부관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전에는 부부가 밤에 술도 한잔 하고, 심야영화도 보러가고, 이런 알콩달콩한 생활이 있었다. 그러나 애가 나온 다음에는 남자와 여자가 엄마와 아빠로 바뀐다. 수시로 애 똥 기저귀 갈아줘야지, 입으로 이상한 걸 가져가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한 사람은 24시간 감시체제에 들어가야 한다. 동시에 부부가 애를 키우기 위한 돈도 벌어야 한다. 이런 작업이 1-2년에 끝나는 게 아니다. 요즘은 짧게 잡아도 20년은 걸린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지난 1만 년 동안 서로 연애를 하면서 생긴 우주관이 있다. 이게 문명이다. 거기에는 인류에 대한 성찰, 도덕, 정치 등이 포함된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영혼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기계제 이후 이게 통하는 상황인가. 지난 1만 년 간 인간과 자연 관계에서 만들어진 윤리는 기계제에서 도저히 통용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되는 게 많다. 여기서 어떤 딜레마가 있냐. 지난 1만 년 간 축적된 문명을 다 날릴 것인가. 영혼에 대한 고찰이 있는데 이걸 다 날릴 것인가. 복합사회에서의 자유 여기서 어떤 태도가 나올 수 있냐면 돌아가 버리자는 극단주의다. 지난 15-20년 동안 각종 형태의 근본주의가 굉장히 많이 나왔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 질문에 대한 얘기가 21장에서 설명하는 복합사회에서 자유라는 개념이다. 기계문명이 나타났고, 이 기계를 어떻게 잘 조직하느냐에 미래가 달렸다. 여기서 딜레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는 기계제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세 가지 태도가 가능하다. 하나는 시장경제를 계속 고집하는 것, 경제영역에 관한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인간을 크게 호모이코노미쿠스와 토론하는 인간 두 가지로 찢어 놓았다. 경제영역에서는 자신의 이익만을 근거로 판단을 내리고, 나머지 영역에서는 합리적 토론을 통해 결정을 내리는 상반된 모습이다. 기계제 상태에서 인간의 영혼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경제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두번째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모두를 부정하는 인간이다. 인간이 자유나 영혼을 전혀 가진 적 없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야 한다. 산업사회라는 전체 명령에 의해 기계의 나사바퀴처럼 움직여야 한다. 시장주의, 민주주의를 다 때려치우고 전체주의로 간다. 자유라는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 이게 파시즘이다. 세 번째는 과거의 가치를 다 끌어안은 채 기계제로 간다. 사회주의 사회의 조직원리였다. 폴라니의 주장은 자유에 대한 개념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애를 낳았다고 해서 부부관계가 다시 소닭 보듯 가야 하냐. 그건 아니다. 애를 기르면서도 다른 종류의 사랑, 성숙한 단계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이건 예전의 방식은 아니다. 애가 있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부부가 어떤 사랑을 만들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또 기계제 이전의 자유에 대한 개념을 대폭 수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문명을 조직하는 것도 순수하게 기계적인 합리성이나 효율성만 갖고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자유와 도덕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시장경제 이후에 경제 형태를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 이 얘기로 넘어가겠다. 1. 개인의 노동 동기 부여 2. 경제적 조정 3. 사회의 포합. 이 세 가지 원칙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1. 개인의 노동 동기 부여 기계제 사회의 가장 골치 아픈 일은 개인이 노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포드 자동차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보자. 지루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기계제 시대에는 인간의 노동을 동기부여 하는 게 어렵다. 예전에 농사를 지으면 중간에 노래도 하고, 새참이라고 핑계대고 막걸리도 마시고, 덜 지루하다. 하지만 기계제에서는 사람들이 다 노동하기를 싫어한다. 이걸 첫 번째로 해결하는 방식이 안 하면 굶어죽게 만드는 것이었다. 두 번째 나왔던 시도는 굶겨 죽이는 것은 아닌데 안 하면 때려 죽인다. 파시즘이나 극악한 공산주의가 그랬다. 이처럼 개개인의 물적 이익이나 명령,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이걸 뛰어 넘어야 한다. 지금까지 200년 동안 시장경제와 명령경제 밖에 없었는데, 사람이 어떤 동기로 일하느냐를 찾는 일에 새로운 경제형태를 조직하는 것의 성패가 달려 있다. 생시몽, 프리에 등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자들이 이걸 집중적으로 찾았다. 이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의 존재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진짜로 깊고 현실성이 있었다. 한 사람이 하루 종일 한 가지 일을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사람이 갖고 있는 열정이 5가지라면 하루 10시간 노동을 하면 2시간씩 돌아가면서 다른 일을 하도록 하자. 몽상에 그치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현재 기업 경영에 소중하게 쓰이고 있다. 기업 경영이 사람을 연봉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보지만 이것만으로 미세조정은 안 된다. 독거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분들이 있다. 이 일을 하는 동기가 뭐라고 생각하나.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긍지와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노동이 돈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환상이다. 사람이 일하는 것에 대해 너무 시장주의에 찌들어 보는 것이다. 물론 폴라니가 인간의 노동 동기에 많은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어느 누가 이걸 완벽하게 할 수 있겠냐. 다만 개인이 노동하는 동기에 있어 호모이코노미쿠스라는 환상에 너무 젖지 말라. 다양한 노동동기를 찾아내고 다양한 보상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요즘 많은 20대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을 준비하는데,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 좋은가. 안정적인 생활의 다른 이름은 지루한 인생이다. 이게 딜레마다. 사람은 자유와 안정성 둘 다를 원한다. 인디아나존스 같은 사람도 있고, 면서기 아저씨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자유의 다른 이름은 불안정성, 안정성은 지루함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정적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종교처럼 돼 있다. 현재 한국사회 20대 대다수의 꿈이 렌트시커다. 지금 잘 나간다는 전공학과를 보면 다 생산과 거리가 멀다. 의사, 변호사, 공무원…. 다양한 노동동기에 따르는 다양한 보상체계를 찾아내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획일화되고 사회도 안 돌아간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2. 경제적 조정 몇몇 사람은 다른 동기로 노동을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대 사회의 사회적 분업은 옛날 농촌의 품앗이 같은 게 아니다. 이런 큰 규모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여기서 날카롭게 발생하는 문제가 회계문제다. 몇만 명의 노동자, 몇백만 명의 소비자, 몇억 개의 상품이 생산되는 경제가 계산 없이 가능하겠냐. 불가능하다. 20년대 '사회주의 계산논쟁'이 있었다. 두레, 품앗이 같은 소규모 공동체가 아니라 대규모 사회적, 기계적 생산을 조직함에 있어 공산주의적 방법이 가능한가. 이 논쟁을 시작한 사람이 오토 노이라트다. 그는 시장경제를 철폐하고 완전히 중앙정부의 경제계획에 의존하는 명령 경제를 수립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투입물의 상관계수와 기술적 생산관계의 지식만 있으면 생산 뿐만 아니라 소비까지 모두 '현물'로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시즘 경제도 이것과 연관 있다. 이런 생각을 날려버린 게 하이에크의 스승인 미제스다. 그는 한계효용이론에 근거해 자유로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아니라면 합리적 회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노이라트 주장대로 국가가 순전히 경제의 기술적 측면만을 경제적 계산의 기초로 삼는다면 회계장부에서의 합리적 비용-편익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조리 가격으로 바꿔서 한꺼번에 계산해야 비효율이 발생 안 한다. 미제스는 수요와 공급곡선을 통해 양쪽이 합의를 보는 선에서 거래가 성립되고 수량과 가격이 결정되며, 이때 나오는 가격이 가장 완벽한 정보집적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소련 경제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 미제스 얘기가 상당히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폴라니는 이런 미제스의 이론를 비판했다. 폴라니는 중앙계획식으로 하면 회계가 나오기 힘들고, 산업경제를 크게 조직하려면 회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 가격이란 게 과연 완벽한 정보집적체인가 문제제기 한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냐? 전혀 아니다. 폴라니가 보기에 노이라트와 미제스 모두 경제라는 현상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작품이 아니라 마치 자연과학적 현상처럼 논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폴라니는 '사회주의적 회계'를 주장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여서 그냥 토론을 하자. 소상히 다 털어놓고 얘기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냐. 이 경우 내면조망이 가능해진다. 미제스가 생각한대로 시장에 정보가 모이면 생산자가 파악하는 생산비용과 소비자가 갖고 있는 돈, 생산하는 개인과 소비하는 개인의 정보만 시장에 정보로 들어온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집단적 요구와 고충 등 사회에 관련된 정보는 여기 오겠냐. 아무도 관심 없다. 그런데 생산자와 소비자가 각자 조합을 만들고 여기에 생활협동조합, 지방자치체, 정당 등 모든 사회적 단위가 다 참여해 토론을 하면 시장의 가격기구에서는 전혀 포착이 안 되는 별의별 정도가 다 들어오게 된다. 미제스가 제시한 가격기구가 오히려 낙후된 정보체제다. 현대산업의 생산은 생산자, 소비자 개인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더 발전된 종류의 경제적 조정기구는 가격기구 이외에 다종다양한 정보가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게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산업발달수준이 가격기구로 정보를 모아서 결정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가 왜 터졌나. 투자은행들은 어떤 기업의 가치를 자신들이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가격이 그렇게 정밀한 가격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지 않았나. 가격기구가 그렇게 신통한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또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각종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에서 판사들이 피고에게 얼마를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린다. 여기서 얼마를 내라는 계산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아니다. 판사들이 판단한 거다. 시장가격 이외에 무수히 다른 비용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4만 원의 쌀을 들여온다면 수입상이나 소비자의 비용은 낮아진다. 하지만 쌀시장이 개방되면 농민들은 대책을 요구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수입 농산물의 경우 식품안전성 문제도 있다. 이런 것들이 국가적, 사회적으로는 다 비용이다. '사회적 비용'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이 윌리엄 캅이다. 그는 50년대부터 이 개념을 만들어서 환경문제에서 빛을 발했다. 환경비용은 대표적인 사회적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회계에 있어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해야 하며, 이 비용을 물어야 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일 수 있다. 윌리엄 캅은 원래 미제스 제자였는데, 폴라니가 1920년대 쓴 논문을 보고 미제스를 버리고 '사회적 비용'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3. 사회의 포합 19세기 초 자유주의를 통해 경제가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이걸 다시 집어넣어야 한다. 앞에서 경제를 조직하는 방법으로 시장 뿐 아니라 호혜성과 재분배가 있다고 했는데, 19세기 사람들은 호혜성이나 재분배는 작은 규모에서만 가능하고 큰 규모에서는 시장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폴라니는 그렇지 않다고 봤다. 계획경제를 하는데 지역적 차원에서 하자고 주장했다. 폴라니가 동유럽 차원에서 계획경제를 하자는 이유는 경제적인 차원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갈등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평화와 민족간 갈등제거라는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주장한 것이다. 폴라니는 헝가리 출신이고,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당시 동유럽의 상황에서 몽땅 시장경제, 모든 민족이 주권국가를 가져야 된다는 쪽으로 조직이 되면 백발백중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코소보, 세르비아, 루마니아, 이슬람교 연합 등 민족간 갈등으로 살육전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경제적 불평등을 계기로 민족, 인종간 갈등이 격화되지 않도록 발칸반도 전체에 걸쳐서 중앙계획경제를 하자는 것이다. 폴라니가 티토가 만든 유고슬라비아를 높이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꿈같은 소리가 아니다. 2차 대전 후 1950년대 국제경제가 시장으로 조직됐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아니다. 당시 국제경제는 시장이 없었다. 전쟁으로 다 폐허가 돼서 물건을 만들어도 수출할 수가 없었다. 미국 밖에 수출국이 없었는데 물건을 사줄 나라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경제를 시장경제에 맡기면 미국만 잘살고 나머지 나라는 가난한 상태로 계속 가는 거였다. 그 상태로 그대로 놔두면 공산주의 혁명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그리스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났다. 그래서 미국이 취한 조치가 돈을 유럽에 퍼주는 거다. 마샬플랜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원조를 줬다. 이자도 없이 돈과 물품을 그냥 가져가게 했다. 이처럼 어느 규모 이상에서는 시장경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할 것이냐에 따라 공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50년대 국제경제를 호혜성과 재분배로 섞어 조직한 것은 공산주의를 막겠다는 지정학적 목적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네 번의 강의에서 많은 얘기를 했는데 하나만 꼭 남겼으면 좋겠다. 모든 게 다 시장으로 조직되는 게 아니다. 지난 200년간 너무 심하게 세뇌돼 실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비시장경제를 간파하지 못했을 뿐이다. 개인과 사회 모두 시장으로만 경제를 조직할 이유는 없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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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빈민을 죽게 두라"… 자유주의의 탄생
[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②] '자기조정시장' 개념의 탄생
기사입력 2009-07-17 오후 6:44:48
이번 강연에서는 자기조정시장 개념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점차 거슬러 올라가 짚어본다. 공장의 탄생과 그로 인한 빈민 급증은 세상을 바라보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체계 자체를 뿌리서부터 뒤흔들었다. 지난 16일 저녁 참여연대에서 열린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두 번째 강연을 요약, 정리한다. <편집자>
첫번째 강연 : "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형식(form)과 내용(substance)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 생기는 갖가지 일에 어떤 형식을 씌우느냐가 중요하다.
제 생각에 여러분은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 이곳이 오시지 않았다. 저도 강의료가 주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시장이라는 형식을 씌우는 순간 무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식에 의해 내용이 재편되는 일이 생긴다.
다른 예를 또 들어보자. 대한민국에 우리가 왜 모여 있는가? 재작년 참여연대에서 실시한 '대한민국을 다시 묻는다' 시리즈에서 이 질문이 나왔는데 대답들이 시원치 않았다.
87년 6월에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잠깐이나마 사람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정체성은 바로 '주식회사 코리아' 정도가 될 것 같다. 우리가 이 나라에 돈 벌려고 산다는 얘기다. 나라가 주식회사이니 대통령은 CEO가 되는 게 당연하다.
이제껏 든 예들에서 볼 수 있듯, 형식에 따라 내용이 변한다. 화폐경제의 발달로 '시장'이라는 형식이 내용을 바꿔왔다. 폴라니는 이를 영혼의 파괴라고 얘기한다.
오늘 말씀드릴 얘기는 책 6장부터 10장까지와 3장의 내용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자기조정시장 개념과 허구적 상품 개념을 먼저 말씀드리겠다. 강의를 듣다 보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로 어떻게 경제를 운용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이 드실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스핀햄랜드 제도(speenhamland system)다. 이 제도가 자기조정시장 개념을 탄생시켰다. 실업률 증가에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한 대응을 했는지, 그리고 그 황당한 대응에 대한 더 황당한 대응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너무나 황당했던 인류의 대응이 바로 오늘날 신화처럼 받들어지는 고전파 경제학과 자유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1. 자기조정 시장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 상품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배웠다. 수요-공급 곡선. 그런데 이 그래프가 왜 움직이는지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가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간다(자기조정시장)고만 들었을 분이다.
유럽인들은 16세기에 아주 중요한 경제학적 발전을 거친다. '한 상품 가격은 다른 시장의 상품 가격과 관련이 있다'라는 것이다. 이후 17세기 말 또 굉장한 발견이 나온다. '시장의 모든 가격은 알아서 결정된다'는 것. 너무 당연한 얘기로 들리지만 당시 시대상과 시장의 특성을 보면 새로운 발견이라 부를 수 있다.
중세시대 유럽의 경제 규모가 100이었다고 가정하자. 시장은 주변부에 10도 안 되는 크기로 머물렀다. 삶에 굉장히 중요한 곡물, 고기 등은 교환될 뿐이었고 비본질적인 것들, 예를 들어 예수님 십자가나 아라비아에서 온 사랑의 묘약이니 하는, 삶에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상품만 시장에서 거래됐다. 당시만 해도 상품가격은 장사꾼의 수완, 나쁘게 말하면 사기술에 의해 결정됐다. 상품 간 가격변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점차 삶에 중요한 것들도 거래되게 된다. 발트해에서 들여온 곡식이 지중해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발트해의 곡식 가격이 지중해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차액거래도 생겨났다. 이런 현상이 점차 심화된 17세기 말이 바로 정치경제학의 본격 시작 지점이다.
쉽게 밀가루와 자장면으로 생각해보자.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자장면 가격도 오른다. 따라서 시장 가격이 얼마에 결정되는지, 그리고 이 가격 이동이 얼마나 신속해질지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물론 상품마다 가격변동이 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다르다.
그렇다면 당시는 물론, 지금도 변동에 가장 큰 충격을 미치는 상품은 무엇일까. 18세기 후반이 되면 △토지 △임금 △이자(자본가격) 등 세 가지로 정리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개입되지 않고 만들어지는 물건은 없기 때문이다. 이들 요소의 가격결정 공간을 각각 △토지시장 △노동시장 △화폐시장이라고 한다. 이들을 생산하는 집단은 △지주(토지) △노동자(임금) △자본가(자본)로 나뉜다.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이처럼 과감한 분류를 하면서 '모든 인간은 이들 삼대 요소 중 하나'라는 논리가 퍼진다.
이제 자기조정시장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앞서 본 3대 요소 시장에서 각각 소득이 발생한다. 지주는 지대를, 노동자는 임금을, 자본가는 이윤을 가져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3대 요소시장과 더불어 사회를 지탱하는 3대 계급이 형성된다. 이들 요소들이 경제 변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소득범주라는 믿음이 아담 스미스의 책에 이론화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 칼 마르크스 등도 이 영향력에 무관하지 않다. 자기조정시장 개념의 탄생이다. 시장 참가자들이 '스스로' 가격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자기조정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데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3요소 이외의 누군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동네 불량배가 나타나서 자장면 가게 아주머니의 가격 결정 과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당한 개입에 따라 자기조정규제 매커니즘이 침해당하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2. 허구적 상품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들 3대 요소시장은 3자의 개입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들을 두고 '허구적 상품'이라고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토지는 자연에 귀속돼 있다. 원래 판매되기 위해 존재했던 요소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래 임금을 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화폐 역시 그렇다. 신용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증서일 뿐이었지, 상품은 아니다. 폴라니는 화폐의 이런 본질적 특성을 두고 '화폐는 사회과학에 묻혀 있었다'라고 했다.
따라서 자연과 사람, 상인 간 신용관계의 다른 이름을 몽땅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3대 요소)을 가격결정 변수로 이해하고 소득 발생의 원천으로 이해하는 것은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 상품이 아닌데 상품인 척 한다는 얘기다. 폴라니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한다.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3대 요소가 다 상품이라고 배워왔고, 이를 더욱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다시 각각의 예를 들어보자.
전라도 남원에서 생산되는 쌀이 15만 원, 캘리포니아 쌀은 3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남원의 농토는 유지될 이유가 없다. 남원땅은 수익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기조정시장을 믿는 정부는 '남원은 부동산일 뿐이다. 가치가 떨어지면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한 곡물법이 리처드 코브던의 주도로 1846년 폐지된다. 당시 코브던이 반발하던 지주들에게 한 말이 이렇다. "농촌이라고 별 것 있나. 수익성을 좇는 비즈니스일 뿐이야."
최근 벌어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물 상품화도 같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논리는 이렇다. 나라마다 쓸 수 있는 탄소배출량을 배정한 후, 배출 권리인 쿠폰을 발행한다. 그리고 이 쿠폰, 곧 탄소배출권을 매매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면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에 의해 쿠폰 가격은 점차 비싸지고,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이 되면 나라들은 탄소배출을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나라들은 녹색산업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쉽게 말해 쿠폰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면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다. 실제 유럽인들의 대응은 어떤가? 탄소배출량을 줄이지는 않고 쿠폰만 잔뜩 사놓았다.
노동시장도 살펴보자. 5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에서 어느날 갑자기 출근하지 말라는 문자가 온다. 이게 말이 되나? 된다. 우리의 몸은 상품에 불과하니까. 주류 경제학 교과서대로 설명하자면 '노동의 탄력성'이라고 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논리다. 밀턴 프리드먼(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시카고학파의 거두)은 "모든 사람이 보트를 타고 평생 배를 젓는 곳"이라고까지 했다.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따라서 최대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숙명인 평생 항해(노동유연성)를 방해하는 자들이니까.
조금 고약하긴 한데, 만일 앞으로 특정 대학에서 "우리 학교는 교수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테뉴어(영년 교수제)를 없애겠다"는 정책을 내놨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위대한 시장의 자기조정'을 찬양하던 경제학 교수들은 틀림없이 노조 만들고 "사랑도 명예도…"하며 노래 부를 것이다. 그들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다. 사람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화폐 시장도 보자. 우리는 돈이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입증할 살아있는 예를 이미 보았다. 미국이 지난해 경제위기로 휘청하자 자기조정시장 논리로는 미국의 은행 절반이 파산해야 맞았다. 그런데 그렇게 했나? 미국 정부가 한 일은 은행들보고 자산가치를 자율적으로 평가하라, 곧 분식회계하라고 한 것이다. 은행이 파산하면 안 되니까. 미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화폐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고.
자, 이처럼 본질적으로 상품화될 수 없는 것들까지도 모두 상품화하려는 노력이 사회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이를 막으려는 반발, 곧 사회의 자기보호가 생겨나게 된다. 시장이 혹독할수록 반발도 강해진다. 결국 어떤 사회도 존재하기 어렵게 된다. 이를 '시장경제의 유토피아성'이라고 한다. 시장경제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폴라니는 따라서 한 발은 자기조정시장에, 한 발은 사회의 자기 보호에 두면 사회가 버텨낼 수 없으니 자기조정시장을 버리자고 했다.
폴라니의 설명을 그대로 읽어보자.
"우리가 주장하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자기조정시장은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잠시도 존재할 수 없으며, 실행될 경우 인간과 자연은 파괴당하고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사회는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조치든, 사회 일상을 망가뜨리면서 사회는 또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결국 사회는 자신을 기초로 삼는 사회조직마저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3. 노동법의 기원
이제 두 번째 얘기를 할 차례다. '이 어처구니없는 자기조정시장 개념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가 얘기의 내용이다.
흔히들 아담 스미스가 이 이론을 정립했다고 이해하는데 틀렸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먼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스핀햄랜드 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스핀햄랜드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클로저 운동부터 살펴봐야 한다. 책에서는 7, 8, 9장에 설명된다.
16세기 영국에서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토지를 수익을 낳는 자산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땅이 상품화되는 첫 단계로 이행하면서 발생했다.
원래 영국은 지주가 가진 땅의 비는 곳인 공동경작지 '오픈 필드(open field)'에 아무나 와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16세기 들면서 네덜란드에서 모직물 산업이 성행하기 시작하자 지주들이 돈냄새를 맡았다. 오픈 필드를 내버려둘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그곳에 양을 키우면 거대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자기 토지에 울타리를 쳐버린다. 이게 인클로저다.
인클로저가 너무 심해지다보니 영국의 농촌이 쑥대밭이 돼 버렸다. 농민들이 갈 곳이 없어지고 떼거지가 됐다. 떼거지가 더 모이면 떼강도로 변한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마을은 초토화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영국 왕까지 나서서 지주들을 말리기에 이른다. 이게 법령화되고 점차 체계화되면서 오늘날 영국 노동법이 된다.
영국 노동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구빈법과 정주법, 그리고 직인법이다.
첫째 규약은 이것이다. 부랑하지 말라. 부랑자를 적발하면 귀를 잘랐다. 다시 적발하면 죽였다. 이게 구빈법(빈민 구제법)이다. 살벌한 것 같지만 내용이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부랑을 금지하는 대신, 어떻게든 직업을 찾아서 일하라고 강제했다. 그리고 일을 못 하는 병자나 노약자는 나라에서 먹여줬다. 이를 위한 시설이 구빈소이다.
그렇다면 부랑은 어떻게 막느냐, 이것이 바로 정주법이다. 영국의 지방행정 기초단위는 페리시(perish)라 불리는 교회의 교구 단위다. 우리로 치면 면 정도 된다. 이 교구를 벗어나 살 수 없도록 강제한 게 정주법이다. 교구를 잠시 살펴보면, 크게 목사와 시골 지주(squire)가 교구의 중심인물이다. 이들은 지역 행정과 치안을 돌봄은 물론, 부랑자들에게 일할 곳을 찾아주는 역할도 했다.
마지막으로 직인법은 살 곳이 정해지고 노동 의무를 받은 사람들에게 노동 연한과 규율 등을 정한 것이다. 매년 중앙정부에서 나와 임금사정도 했다.
결국 영국 노동법의 목적을 요약하면 △떼거지를 막고 △모든 영국인에게 노동을 강제하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지방에서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4. 공장의 탄생과 스핀햄랜드 제도
그런데 18세기 말이 되자 무시무시한 일이 생겼다. 공장도시가 탄생했다. 영국의 전통적인 지역 구분은 크게 교구(주거지, 농업지)와 타운(상업중심지)이었다. 공장도시는 이들 구분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당시 영국의 대외 교역량은 추세적으로는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나 진폭이 컸다. 교역량이 늘어날 때는 농촌 인구가 공장도시로 다 빨려들어갔고 공장에 일감이 떨어지면 실업자가 급증했다. 이들은 인근 교구로 흘러들어와 구빈소를 가득 메웠다. 공장도시의 등장으로 인구 이동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시골지주들은 그 부작용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이 공장으로 흡수되면 그만큼 지주의 권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때 이들이 내놓은 대책이 바로 스핀햄랜드 제도이다. 스핀햄은 지명이다.
제도는 간단하다. 앞으로 지주들이 노동자에게 무조건 빵 1갤런 값에 맞먹는 돈을 매주 지급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많으면 더 많이 줬다. 막말로 '지주가 무조건 먹여살려줄테니 도시로 가지 말라'는 얘기다. 다른 교구 역시 이 제도를 본받아 순식간에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전대미문의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크게 세 가지 문제가 곧바로 불거졌다.
첫째로 더 많은 소득 하위계층이 점차 빈곤의 늪에 빠지게 됐다. 사람들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지주들의 재산과 지역민의 세금으로 충당했다. 국가법령이 아니니 정부에서는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구호를 받는 자(pauper)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세금부담은 더 커졌다. 점차 생활이 악화되니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결국 구호대상자가 됐다.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한없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동규율 문제도 심각하게 흔들렸다. 이제 구빈소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다 먹여 살려주니 사람들은 굳이 일을 열심히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 때문에 노동규율이 땅에 떨어졌다. 노동생산성이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 제도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인간 자체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책 8장을 읽으면 상세히 묘사돼 있다. '현세에 아가리를 벌린 지옥의 철학이 나왔다' '이곳은 실로 을씨년스러운 비참의 구렁텅이였고, 이곳으로 이동한 농민은 … 점잖은 삶을 누리던 사람들도 일단 이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면 순식간에 진창 속의 짐승으로 변했다'고 책은 말한다. 예비군들을 생각하면 되겠다. 폴라니는 포퍼들을 노예 상선에 갇혀 숨을 헐떡이는 흑인에 비유한다.
5. 자유주의, 자기조정시장을 움직이는 법칙
우리가 살펴봤듯이, 스핀햄랜드 제도로 인해 빈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빈민 증가 원인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들은 '인구 자체가 늘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이거나 살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살리기(스핀햄랜드)가 실패했으니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다 굶겨 죽이자는 방법밖에 없었다.
일단 당시 '다 죽게 내버려두자'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1795년 조셉 타운센드라는 목사가 재미있는 글을 배포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서양을 오가던 영국 상인들이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 고기를 얻기 위해 염소를 풀어놓았다. 이를 질투한 스페인 사람들은 염소들을 다 잡아먹으라고 개를 풀어놓는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염소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섬 내의 개와 염소 사이에 일정한 개체 균형이 맞춰졌다.
타운센드는 이 내용에서 문명사적 전환을 이끌어냈다.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바로 신께서 일하는 방식이라는 얘기. 떼거지들을 죽게 내버려두면 인류가 알아서 균형을 찾아간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맬서스와 리카르도와 같은 이들은 바로 이처럼 비관적인 시각으로 자기조정시장을 움직이는 기초 법칙을 찾아냈다. 맬서스가 말한 임금 결정원리를 정리해보자.
만일 적정 임금수요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이 주어지면 노동자들은 그만큼 영양상태가 더 좋아진다. 그런데 인간은 태생적으로 성욕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태아가 더 많이 생긴다. 이로 인해 노동공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임금은 떨어진다. 그러면 반대로 노동자들의 영양 상태가 나빠져 노동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 노동자들은 줄어든다. 이 과정을 통해 적정 임금수준이 결정된다.
인간이 모여사는 사회는 자연 상태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무조건 내버려두기만 하면 바로 희망의 계기가 싹튼다. 자기조정시장이 자율적으로 모든 균형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복음이 생겨난다. 바로 자본축적이다. 어찌됐든 자본은 계속 축적된다. 인간은 항상 균형 수준을 맞추지만 생산물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을 죽게 내버려두는 게 사회 전체의 증대를 이끌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한없는 진보의 힘이고, 언젠가는 도달할 풍요의 낙원으로 가는 유일한 희망이다. 따라서 자기조정시장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어떤 누구도, 싸구려 동정심으로 빈민 구제에 나서서는 안 된다. 자기조정시장이 작동해 부가 늘어날 기회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의 적이다.
맬서스나 리카르도가 냉혈한이라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들을 포함한 당대의 경제학자들은 이 자기조정시장 법칙이 바로 뉴턴의 만유인력과 같은 과학이라고 믿었다. 절대진리로 취급했다.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죽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폴라니는 이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광신이 돼 버렸다고 지적한다. 비참한 지옥에서 헤매는 인류가 구원받을 유일한 길은 전 지구를 자기조정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광신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제학의 절대진리처럼 여기는 자유주의의 태동이다.
/이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