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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31 이미지탐구생활 [kino Eye / montage]
여는말 우리-선언서의 이문 우리는 누더기 옷을 파는 것에 더 능통한 폐품업자들 무리인 '영화업자'(cinematographer)에 대항하여 우리 자신을 '영화인'(kinoki)이라 부른다. ...중략 우리는 연애소설을 바탕으로 한 옛날 영화들, 연극적인 영화 등에 나병에 걸렸다고 단언하다. -이런 영화들을 멀리하라! -이런 영화들을 보지 말라! -이런 영화들은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전염주의 우리는 현재의 영화예술을 부정해야만 영화예술의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극영화'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영화예술이 살 수 있다. 우리는 극영화의 즉각적인 죽음을 요구한다.
소련 영화의 예술성과 변증법 1925-1929 사회주의 건설, 혁명의 대중화를 위한 매체로서의 '영화' 미래주의, 기계찬미 예술가가 아닌 '영화 노동자'
소련은 192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운드 도입 이전의 결정적인, 그리고 누군가가 가장 탁월하다고 말한, 무성영화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정부로부터 완전히 지원을 받는 러시아 영화는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러시아 인민에게 혁명의 결과와 대의를 교육/고취시키려고 의도하는 사회적 목적을 지녔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데올로기적인 토대는 칼 마르크스, 레닌에 의해 제공되었으며 감독들의 관심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인 것들이었다. 널리 퍼진 심미적인 양식은 미래주의로, 현대적 기계의 운동과 힘에 영향을 받는 힘차고 역동적인 당시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려고 시도하였다.(타틀린) 영화에 있어서는 표현주의보다 영상의 리얼리즘이 실제적인 외부 세계를 그리기 위해 요구되는 시각적 형식이었다.
그때까지 보잘것없는 러시아 영화제작에 대해서 레닌은 정말로 탁월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모든 예술 중에서, 영화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의 말은 폐위된 니콜라이 2세가 했던 다음의 말과 너무도 강한 대조를 이룬다. "나는 영화가 공허하고, 쓸모없고, 심지어는 유해한 오락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비정상적인 사람만이 여흥거리를 예술의 수준에 놓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넌센스이며 어떤 중요성도 그런 쓰레기에 부여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마지막 황제는 궁전 지하실에 있는 비밀 영사실에서 여러 번 저녁을 보낸 열렬한 영화팬이었다.
1919년 경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소련 영화의 두 갈래 중 한 사람 지가 베르토프
Kino-eye 제창 "평범한 눈으로 보면 당신은 거짓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눈(cinematic eye, 특수한 영화적 수단의 도움으로, 이 경우에는 고속촬영)으로 보면 당신은 진실을 봅니다. 만일 좀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면(그리고 종종 우리의 관심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그 기회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키노-아이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죠.
: 뉴스릴과 기록영화여야 한다는 레닌의 충고를 뒤따랐음. 1919년 키노-아이를 창설하고 설명서 발표. '부지불식간에 포착되는 실체'가 베르토프의 신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반드시 스냅용 소형 카메라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각객되거나 연출되지 않는 다는 것. 카메라 앞의 삶은 자유롭게 움직여졌다. 영화감독이 유일하게 신경을 쏟아 감독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며, 편집하는 동안 하나의 쇼트를 다른 쇼트와 관련시켜 놓는 일이다. 1922년 키노-프라우다를(영화의 진실, 진실영화) 제작하기 시작, 시네마 베리떼와 같은 뜻. 본질적으로 영화감독이 카메라나 마이크에 의한 효과를 위하여 어떠한 방해를 받거나 피사체에 변화를 가하지 않고 사실상 어떤 것이라도 촬영하고 녹음할 수 있게 해 주는 가벼운 동시녹음 장비였다.
나는 키노-아이다. 나는 기계의 눈이다. 기계인 나는 당신에게 나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나 자신을 인간의 부동성에서 해방시킨다. 나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물에 가까이 갔다가 다시 멀어진다. 나는 그 사물들 밑을 기어 다니고 그 위로 기어 올라간다. 나는 질주하는 말의 재갈과 함께 움직인다. 나는 군중 속으로 전속력으로 뛰어 들어가고, 달리는 병사들을 추월한다...중략... 1초에 16-17새의 프레임의 법칙에서 자유로워져,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어디서 촬영을 했건 상없이 나는 이 세상에 있는 어느곳이라도 함께 연결한다. / 영화인 혁명 1929년 호소문 중에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 / 1929 / 68분 / 지가 베르토프
"그 영화의 분명한 목적은 카메라가 기록하는 능력의 정밀함과 폭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베르토프와 그의 동생이자 촬영기사인 미하일 카우프만은 영화의 임무를 단순한 어휘를 보여주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촬영기사는 당대 소비에트의 삶에 영웅적인 참여자가 된 것이다. 베르토프는 시퀀스를 크게 유형화시키면서 가장 유려한 몽타주 양식으로 촬영기사와 그의 촬영방식을 다뤘다. 그 구조는 관객, 노동의 나날, 결혼, 탄생, 죽음, 오락이라는 '주제'들의 연속인 '키노 아이'의 구조와 비슷한 것으로서, 각 주고는 급속도로 절정으로 휘몰아친다. '키노 아이'에서 카메라의 관찰은 경종을 울리는 놀라운 것이었지만 결코 기이하지는 않다. 사물과 행위들은 '포착'되지만 포착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 사물 자체를 면밀하게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 / 레이다, 키노, 1931
몽따쥬 : 이론과 실제 몽따쥬montage라는 말은 불어에서 자온 것으로 'monter'는 단순히 '증가하다'나'조립하다'를 뜻한다. 그러나 편집을 통한 이 조립하고 증가하는 일은 소련영화감독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창조적 행위가 되었다. 비록 그들은 그리피스에게서 영화를 배웠고, 생필름의 부족으로 쇼트를 가장 경제적으로 이용하여야 했지만, 그들의 실제 실험들, 발표된 이론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소련 무성영화의 위대한 작품들은 그들을 필름 제작자들과 비평가들을 그후 줄곧 가르치는 데 도움을 주어 온 일정한 수준의 성과로 이끌었다. 몽따쥬의 중요성을 인식 / 쿨레쇼프(푸도프킨의 스승)
베르토프 몽타주는 필름 조각(쇼트)들을 영화-오브제로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록된 쇼트들을 가지고 영화적인 무엇인가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몽타주는 '씬(연극적 의미에서)이나 자막(문학적 의미에서)을 위해 조각들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키노-아이 작품은 주제가 선택된 순간부터 영화가 완성된 형태로 상영횔 때까지 몽타주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영화제작의 전 과정 동안 편집된다는 것이다.
푸토프킨 달리 말하면, 영화창작은 1) 쇼트들 안에 무엇이 있는가, 2) 쇼트들이 어떤 순서로 나타나는가, 3) 얼마나 오랫동안 각 쇼트가 스크린 위에 지속되는가이다.
에이젠슈타인 필름 조각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동안 그들은 수년 동안 그들을 놀라게 했던 장난감의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하였다. 이 특성은 어떤 종류라도 두 개의 필름 조각이 함께 놓여지면, 불가피하게 그 병치로부터 야기되는 새로운 개념, 새로운 질로 결합한다는 사실에 있다.
참고로) 에이젠슈타인의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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