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출할 일행 구합니다. 남녀 불문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일명 '가출 카페'가 성행하고 있다. 이곳에는 집단 가출을 부추기는 정보가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널려 있다. 카페 게시판에는 '가출 일기' '가출방법 전수' '가출할 때 준비할 것' 등의 글이 속속 올라온다. 돈이 떨어진 가출 청소년들은 카페의 채팅방을 통해 '조건 만남'이라는 성매매를 자청하기도 한다. 가출 카페에 접속해 그 실태를 알아봤다.
인터넷에 가출 방조죄 적용해야 하나?
청소년들 인터넷 가출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
“일행 구합니다. 남녀 불문입니다.”
한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가출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 카페에는 가출 희망자를 찾는 글에서 집을 나오면 어디서 어떻게 지낼 수 있는지 등 가출 정보가 올라와 있다.
이 카페 채팅방에 접속해 카페 운영자와 대화를 나눠봤다. 운영자는 경북 경주에 사는 A군(14)이었다. A군은 지난해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가출, 경기도 수원까지 갔다. 잠 잘 곳이 마땅치 않아 한 고시원에 몰래 들어갔지만 주인에게 발각돼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A군은 “가출을 하려면 일행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가출 카페를 개설했다. 이혼 가정에 있는 A군은 “부모든 학교든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 다시 가출할 계획”이라며 “가출은 그냥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나가 돈 버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청소년들의 가출을 조장하는 사이트와 카페가 성행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이 잇달아 동반자살을 한 데 이어 인터넷에는 가출을 부추기는 각종 유해 정보가 무방비 상태로 널려 있다. 특히 A군과 같이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이러한 유해 정보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한 포털 사이트에는 A군이 관리하는 가출 카페를 비롯해 회원 100명이 넘는 가출 카페 3개가 개설돼 있었다. 회원이 가장 많은 가출 카페에는 약 720여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지난달 26일 개설된 한 가출 카페에는 10일도 안돼 126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가출 카페에서 아이들은 쉽게 정보를 공유한다. ‘가출 일기’를 작성해 글을 올리거나 ‘가출 방법 전수’, ‘가출할 때 준비할 것’ 등의 글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또 A군처럼 동반 가출할 일행을 찾기 위해 이메일 주소나 연락처를 남기는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남3, 여1 함께 있는데 성비(性比) 때문에 여자만 구해요”, “여자인데 잘 데가 없어요. 제발 방 구하신 분만 부탁해요”처럼 가출 청소년들이 혼숙도 서슴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출 카페는 청소년들의 방문이 빈번하다 보니 이들을 가출시켜 유흥업소에 소개하거나 성관계를 맺으려는 어른들도 눈에 띄었다. 한 남성은 “서울 사시는 여성분, 집 한 달 정도 빕니다. 가출하신 분 오세요.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라며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남겼다.
유흥업소 아르바이트로 일할 청소년을 구하는 글도 많았다. 한 남성은 “일산에서 룸 삐끼 하실 분. 숙식제공, 나이 무, 성별 무“라며 연락처를 올려놓았다. 여기에 “오토바이 키 없이 시동 걸 줄 아는 사람” 같이 절도 방법을 묻는 글도 있었다. 가출카페 운영자 A군은 “요즘 일행을 구하다 보면 차털(빈 차를 털어 물건을 훔치는 것) 같이 도둑질을 하자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가출 청소년 중 일부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갖는, 이른바 ‘조건 만남’에 나서기도 한다. 청소년기의 일시적인 방황이 평생 후회할 일로 이어지는 것이다.
‘조건 만남’이 이뤄진다는 한 인터넷채팅 사이트를 들어가봤다. 평일 오전인데도 1500여 개의 대화방이 개설되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대화방은 대부분 여성회원과의 대화나 만남을 원하는 남성들이 개설한 것이었다.
오 전 11시쯤 “오늘 만나실 분”이라는 제목으로 대화방을 개설해봤다. 2시간쯤 지나자 20여통의 쪽지가 날아왔다. 채팅을 신청한 사람도 있었다. 서울 암사동에 사는 20살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C양이 이런 일이 능숙한 듯 대화를 이끌어 갔다. 다만 “오늘 학교는 안 갔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C양은 1시간에 20만원을 받고 조건만남을 5차례 정도 해봤다고 했다. 상대에게 받은 돈은 휴대폰 요금이나 쇼핑에 쓴다고 했다.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전화를 사용해 전화가 걸려왔다. C양은 자신이 아는 지역에 있는 M모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전화를 하면서 나이를 되묻자 C양은 그제서야 18살이라고 털어놨다. “경찰 단속에 걸린 적이 없느냐”고 질문을 더 하자 C양은 곧바로 전화기를 꺼버렸다.
가출 청소년 보호기관인 서울시립이동쉼터 김기남 팀장은 “가출한 여자 아이들 대부분이 이런 조건 만남이나 원조 교제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고 심각한 실태를 설명했다. 김 팀장은 “아이들이 가출을 해도 돈을 벌기 쉽지 않기 때문에 성 매매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는 가출 이전부터 성 매매를 통해 쉽게 돈을 벌어 왔기 때문에 가출 이후에도 이 일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인터넷 가출 카페나 정보검색 등을 통해 만난 청소년들은 변두리 모텔이나 지방 등을 전전한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거리낌없이 혼숙을 택하기도 한다. 이들은 단체로 돈을 걷어 생활한다. 돈이 모자라면 단체로 성 매매에 가담하기도 한다.
남자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가출에 동행할 여자 아이를 꾀어 성 매매를 시키는 사건도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최근 경기도 수원에서 이모(18)군이 가출 여중생을 폭행한 뒤 원조교제를 시킨 사건이나 성남에서 이모(18)군이 동거하던 가출 청소년 유모(16)양을 살해 암매장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인터넷에 가출 정보가 무방비로 널려 있는데도 단속의 손길은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포털들은 신고가 들어와야 관련 카페를 폐쇄하거나 일시 운영정지를 시킬 뿐이고, 자체적인 정화활동은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포털들은 “가출 정보가 하루에도 수백건씩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일일이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변명한다.
그러면서도 포털은 청소년 쉼터 안내에는 광고료를 받고 있어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출관련 유해정보를 버젓이 유통시키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건전 정보를 알리려면 돈을 내야한다는 것이 포털측의 운영방침이다.
서울시립이동쉼터의 김기남 팀장은 “포털에 강력한 규제를 요청하는 등 강제력을 갖기는 힘들다”며 “사이버 쉼터 등을 개설해 가출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데 도움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