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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한 외침과 속삭임 <이야기해주세요> 음반 및 콘서트에
많은 참여와 관심을 보여주세요.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함께 하는 음악앨범 <이야기해주세요>가 발매 되었습니다.
한희정, 정민아, 오지은, 소히, 이상은, 지현, 무키무키만만수, 시와, 투명, 황보령 (황보령=SMACKSOFT), 송은지(소규모아카시아밴드), 남상아(3호선버터플라이), 강허달림, 트램폴린, 휘루 등 홍익대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 혹은 밴드의 멤버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경력의 여성 음악인 15인이 힘을 모아 만든 이 음반에는 이제 60명 밖에 우리 곁에 남아있지 않으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리고 폭력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 그리고 일상의 차원에서부터 우리가 풀어야 할 불편한 숙제들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주제를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공유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습니다.
14장의 음반을 발표한 이상은부터 신예 무키무키만만수까지 다양한 경력의 음악가들이 레게, 삼바, 일렉트로니카, 포크, 팝 등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들을 통해 공통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는 바로 잡혀지지 않는 역사,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한 많은 삶을 살아온 할머니들부터, 그에 못지않은 동시대의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이 시대의 여성을 근심하고 위로하고 그리고 함께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음반에 담긴 노래를 듣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침묵을 해왔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생각해보는 과정이 자연스레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잘 알 수 있는 얘기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문제들. 그것을 노래 속에 담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을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음반과 음원 판매로 생긴 수익금은 모두 할머니들을 위한 일에 쓰일 예정입니다. 콘서트 안내
사회자_ 권해효(배우)출연진_ 음반 <이야기해주세요> 참여 뮤지션 _송은지, 지현, 정민아, 투명, 강허달림, 황보령, 소히, 오지은, 시와, 김은희(서울 발레시어터 단장), 최은영(샌드 아티스트)공연 프로그램_
전시회 안내
1. 언론이 기억하는 역사 사진 2. 유명 사진 작가전 사진작가 구본창, 허현주, 이상엽, 권우성, 최형락, 안해룡 등 3.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동 사진전, ‘평화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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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consider the planet before printing this post hiiocks (hiiock kim) e. hiiocks@gmail.com w. http://productionschool.org, http://filltong.net t. 070-4268-9221
2012.09.13 20:32:05
다미 전시회는 사진으로 할머님들의 표정하나하나 다큐멘터리를 캡쳐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사진옆에 그분들이 하신말이 적혀있는 글을 보았는데 사투리로 생생하게 적혀져 있어서 인지 육성으로 듣는듣한 느낌이 들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그리고 콘서트에서 여성 뮤지션들이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의 가사를 들어보니 뭔가 그 느낌을 더 생생하게 받았던거 같다. 그리고 대중들이 이러한 노래나 극 등을 통해 이 문제들을 관심을 꾸준히 갖고 같이 풀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2.09.13 20:32:56
미난 저는요 전시를 볼때는 제3자로써 어떻게 이 문제를 봐야하는지 몰라서 얼른보고 얼른 나왔어요. 왜냐하면 어쩌면 부끄러울수 있는 그런일에 아무것도 잘 모르는, 그리고 남성인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하고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 모르겠어서... 어쩌면 어떻게 생각해야하고 말해야하는지 알고있지만, 그렇게할 자신이 없다고 해야하나... 무언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마음가짐, 행동 가치관 이런 것들이 한층 더 성숙해지면 좀 더 잘 이야기할수 있을 것 같아요. 공연은 좋았어요.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그런데 나왔던 여성 아티스트들이 다 비슷한것 같았어요.(느낌이) ...끝
2012.09.13 20:33:50
미로 우선 영화는 저번 리뷰에서 말했다시피 위안부 할머니분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해주었고 전시회에선 내가 사진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사진 한장한장, 할머니들의 표정에 많은것들이 깃들어있는것 같았다. 마치 사진 한장으로 모든것을 알수있는것만 같았다. 콘서트는 전시회에있던것들을 음성이나 영상으로 들려준것이여서 그렇게 특별한것은 없었지만 그렇게 많은 가수분들이 위안부 할머님들을 위해 모여서 공연을 한다는게 정말 고마웠고 감동이였다. 항상 독도나 지진등 큰 문제가 일어났을때만 일본쪽에 관심을 가지던 내가 쪽팔렸다. 이제부터라도 위안부 할머님들을 위해서 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야겠다.
2012.09.13 20:41:09
마 한희정의 라이브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가사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너와 나의 무관심을 노래해줘'하는 가사가 내 양심을 찔렀다. 그녀들에게 무관심했던 나를 지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투명의 '버려라'라는 명령어가 반복되었던 노래. 들으면서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의미를 알고나니 모든것을 버려야했고 빼앗겨야만 했던 그녀들의 아픔이 무척 잘 드러난 노래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지현의..제목을 모르지만 지현의 노래! 지난 일요일에 들으면서 앨범을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대에서 들으니 세배는 멋있어서 현금이 없었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 밖의 무대들도 무척 멋있었는데(황보령의 무대b) 뮤지션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런 노래들을 쓴건지가 궁금하다. 무척 좋은 시간이었고,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테니 이런 활동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2012.09.13 20:41:58
스텔라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 남는것은 할머니께서 하신말들과 사진들 그리고 모금함에 모금한것도 기억에 남은거 같아요. 저는 할머니들의 인터뷰 말들과 사진을 보면서 화가 났어요. 자기들도 사람이면서 그럴수있는지..콘서트때는 좀 피곤해서 졸면서 봐서.. 그래도 콘서트때 젤 기억에 남는거라면 할머니들의 인터뷰를 스크린에 비춰서 보던게 젤 기억에 남는거 같아요. 역시..보면서 위에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봤죠.. 정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함께 하는'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것같아요. 담에 또 기회가 있다면 가서 또 보고싶네요.
2012.09.13 20:44:36
핑두 "이야기해주세요"라는 이름의 앨범이 만들어졌다고 했을땐 왜 그런이름을 붙였을까 생각했다. 위안부가 되어야했던 여성들에게 관심을기울여서 그것이 아픈상처일지라도 물어보고 들어서 우리가 기억하여 다시는 그런일이 없게해야한다는 의미였을까. 사회자는 이제는 우리가 소녀의 목소리를 전해야한다고했다. 널리 알리자고했다.. 일본의 공식적인사과를 받기위해 이십년동안 수요집회를 열어왔던 할머니들,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눈물만흘렸다던 내또래 소녀들. 마지막 인사때 마이크를잡은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여자보컬이 말했다 "속이 타버리는 아픈일이 있었지만 말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이들처럼 말하라"고. 다시 태어나서 큰 말이 되고싶다던 영상속의 할머니의 말이 생생하다. 암컷말도 싫고 수컷말도 싫지만 큰 말이 되고싶다고 말하셨다..
2012.09.13 20:45:21
신상 오늘은 뭔가 크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다 같이 고통을 나눠가지자 보다는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도와드리고 싶은데보다는 도와드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고 사회자 님이 공연장에 사람이 꽉 차지 않았군요라는 말을 했을 때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보통의 십대들이라면 이곳에 왔었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접하기에는 무겁고 안타깝기만 한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아직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다.
2012.09.13 20:46:50
별(1학기) 전시회를 보기전, 전시회 라고 하길래 그림일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사진들이었다. 전시회의 사진들 속에는 주름이 깊게 파인 할머니 들의 모습들이 대부분 이었다. 울부짖는 할머니, 꼭 잡으신 두손, 웃고 계시는 모습, 등등. 대부분은 농성장 사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이 할머니들을 매주 수요일, 이십년간. 이토록 뜨겁게 울부짖게 만든것이 과연 무엇일까. 수요집회에 가보지는 못했다. 언젠가 가고싶긴 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마 지금 이 사진들을 보았을때 가슴 한구석이 시큰한것이리라.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는 침묵의 외침 (맞나?) 이었는데, 할머니들 께서 집적 말씀 하신것들을 생생하게 담아왔을 뿐더러 그 내용도 충격적이어서 더 인상 깊었던것 같다. 또, 중간에 조그맣게 끼어있던 강정사진과 할머니가 들고계시던 여성 폭력 반대 라는 문구가 과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게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다시한번 던져준것 같다. 공연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와서 즐겁게 보았는데, 그것 때문인지 연예인 본다는 느낌으로 본 터라 내용에 집중은 잘 안된것 같다. 그쯤 몸도 많이 피곤해서 정말 아무생각 없이 보게된것같기도. 그래도 기억에 남는것을 몇가지 말해보자면 첫곡에서, 우리의 무관심을 노래해 달라는 이야기와, 권해효씨가 말했던 이 이야기 해 주세요 라는 말은 아마 여기 있는 우리들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라는것. 영화는 보지 못해서 안타깝다.
2012.09.13 20:48:00
풀 (1) 전시회에서 살아있는 역사라는 말을 발견하니, 위안부 할머니들 사진에 6.25 전후 세대이시고 박정희를 지지하시는 우리 할머니가 겹쳐보이고, 거기에 지하철에서 봤던 장난치는 해병대들이 생각나면서 다들 욕심(전쟁)의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오순도순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필 그 상황 그 자리에서 만났단 게 모두에게 불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위안부 가해자들을 두둔하려는 건 아니지만요. (2) 세대를 이어가야 하는 문제라는 데에 공감을 했는데요. 위안부 사건은 단순히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세상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내 친구나 딸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하는 일. 그리고 위안부 문제와 함께 월남전에서 국군들이 저질렀던 잘못들에 대해서도 이슈화되고 사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인간극장에 나오는 동남아 신부를 보면서 신부를 사오는 행위는 매춘 등과 어떻게 다를까? 한국도 역시 부끄러운 짓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도 떠오르고요.)
2012.09.13 20:49:21
고다 (아마) 네 장의 흑백사진과 그 밑 할머니의 이야기, 그사진들을 모아놓은 하나의 큰 액자가 가장기억에 남았습니다. 담배불을 붙히는 사진,눈가를 닦는 사진,모은 두 손이 클로즈업 된 사진 등 에서의 할머니의 표정, 몸짓이 있는그대로 전해졌어요. 그 밑의 글. 할머니의 이야기는 말하는방식 그대로 써져있어 더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더 잘 들어왔습니다. 사진과 글 모두 있는그대로의 것들이라 기억에 제일 많이남는듯합니다. 그리고 나눔의 집 일상사진 앞에 소개글같은 글이 인상깊었는데 너무길어서 쓰진못하고요, 그 글을보면서 고개를끄덕였는데 더 생각을많이하고 이 일을 어떻게바라봐야할지 나는 지금 어떤지 그런그런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서로다른뮤지션들이 공통된하나의 주제로 음악을만들고 공연을한다는게 참 좋은일이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있는것들인데 그것들을 이야기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2012.09.13 20:50:09
라온 전시회는 눈으로만 본것이여서 그아픔을 이해하는마음은 조금 떨어진것같았지만 콘서트에서는 여성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고 많은것을 느낄수있었다 같은여자로써 수치심을 느끼기도했고 나도 어른이되어 좋은 무언가에 뜻을모아 도움이되는 사람이 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들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장면은 할머니께서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큰말로 태어나고싶다셨는데 얼마나 자유를 원하는지 알수있었고 말중에 암컷이아닌 수컷으로 태어나고싶다고도 하셨는데 그 기억만을 인생에서 정말 도려내고싶은 마음에 말씀하신게 아닌가싶다 이건 절대잊어서는안될 중요한일이였고 우리나라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이런일은 없었을텐데라고도 생각해보았다
2012.09.13 20:51:29
초코 처음 위안부라는단어에 거리감이 많이 들었다. 그리 먼 세월도,어쩌면 우리 가족중에 우리 할머니께 일어날수도 있을일임에도 나는그리 크게 보지않았다. 지난학기에 위안부에관한 영상을 봤을땐 한번보고 한번느끼고 한번울고 그뒤로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학기에서 두번째로 영상을볼땐 달랏다. 저번에 보면서 놓쳤던 부분, 그때와 다른느낌, 그리고 생각, 확연히 지난학기와는 다른느낌을 받고있엇다. 콘서트를 보기전 전시회의 사진들을 보다가 한사진앞에서 한참 서있었던거같다. 흑백의 할머니께서 사진으로도 느껴질만큼 서럽게 울고있는사진, 그리고 그때그시절 할머니들께 일어났던 은폐된 사실, 이건 잔인한 영화나 소설이아닌 정말사실. 할머니들께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빼먹지않고 읽었다. 한두분도아니고 셀수없이 많은분들.. 세계 여러곳을 끌려다니며 위안부생활을 몇년동안하셨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분들도 계시고, 정말 힘겹게 조국으로 돌아오신분들께 조금의 배려도 혜택도없는 비겁한진실.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민족으로서 치밀어오는 분노를 참을수가없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또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사람으로서 느껴야할 행복 인격..세상속 그들에겐 없는것일까? 전시회를보고 콘서트를 보앗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가장기억에 남는다. 중간에 이런말이 나왔엇다. "전쟁은 일어나면안되, 이세상에 더이상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할머니의 진실함이느껴졌엇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순화된것뿐이지 너무잔인했다. 같은사람으로서 사람이 사람에게 차마할수없는일들을 전쟁이라는 단어에 묻혀가려고했다. 이젠 그 진실들을 찾아야한다.그리고 그들을 도아야한다.
2012.09.13 20:53:28
벗아 전시회를 보면서 한쪽에서는 외로움을 느끼고 한쪽에서는 알게 모르게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옛날 소녀일때의 사진과 비오는날 창문너머를 바라보는 할머니와 어떤 업체의 후원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자매결연을 맺던 사진과 나와 또래의 여중고생학생들이 함께 수요집회에 참가하고 소녀상 옆에 연두색 신발이 놓아져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각각 반대되는 느낌이 컸다. 어린나이에 끌려가 돌아와보니 부모님은 돌아가 계시고 힘들때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준 친구들이 이제 하나둘씩 눈감아 간다는 글을 읽고서 가족과 친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내가 그분들이라면 고통의 연속이였을 듯하다. 그런데도 어떤 김하선 할머니께서는 사람들을 무척 좋아하시는 할머니 셨다고 했는데 나라면 절대로 그러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런일이 있었음에도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셨다는 할머니들이 이제는 말씀하시고 꾸준한 목소리로 일본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바라시는데 아직까지도 그러지 않고있는 일본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공연에 영상에서 무관심과 자기 얘기하기에 바쁜 사람들? 이였나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보고 뜨끔하게한 부분이였다. 전시회를 보면서 새로 크게 알게 된 부분들도 있었고 뉴스에서 봐도 그냥 일시적인 관심으로 밖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무관심이라면 무관심이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한 공연의 노래가사에 그대의 자유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위안부 할머니들 께서 받으셨던 폭력과 억압에 관하여 부른것 같았는데 오히려 내가 갑자기 어디 멀리로 여행을 가고싶게 하는 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2.09.13 20:53:58
서키 사실 잘 모르겠다.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건지... 어제 봤던 영화에선 밝은 모습,그리고 오늘은 뭔가 숙연한 모습 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콘서트에서는 정민아라는 뮤지션의 작고 작게라는 노래가 머리에 계속 남았다. 어떤 할머니가 다음 생에는 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가사에 '푸른 물결 하염 없는 바다의 작은 물고기로'라고 되어 있는데, 말과 작은 물고기가 같은 의미를 두는 것이라서 그냥 작게,작은 채로...소박하게 그대로 살면 안될까...?로 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그 조용한 꿈은 사라졌다... 그 소녀들은 끌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그리고 강제로 당하는 순간엔 무슨 생각을 했을까.
2012.09.14 09:14:05
위안부라는 분들은 전쟁의 큰 피해자다. 나는 총칼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 이야기들 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식의 공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이 자꾸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대부분 여성 아티스트들이 모여 진행했던 콘서트와 음반작업. 그 분들이 나서주었던 일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됬다. 그 사람들은 그 이들의 묻혀가는 목소리를 대신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래'또는'음악'이라는 매체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상대방(듣는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들을 분위기나 연출에 실어 잘 전할 수 있는 것이라 느낀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또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 장르는 어떤 기운들을 그 공간에서 쉽게 나눌 수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물론 전시회도 많은 정보들을 주었지만, 콘서트로 접해서 더 잘 전달되는것 같다. 또 각각 아티스트들 마다 전하고자 하는 느낌이 조금씩 다르기도 했고, 음악 스타일도 다르다는 점이 있었다. 사실,전시장 안에서의. 나의 할머니나 어머니 , 어쩌면 나의 이야기 인것일지도 모른다. 라는 문구도 내가 이런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런 고민의 생각에서 어떠한 도움을 주었던 문구는 아니었다. 참여 뮤지션들에게 '여성'이기 때문에 갖게되는, 같은 성별이라서 더 느끼게 되고 공감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여성들인 것일까? 포괄적으로 보면 전쟁의 아픔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중 여성이라는 단어가 끼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안에 들어가는 구체적인 공감의 느낌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소히의 노래중 공공이동수단 안에서의 성희롱에 대해 수치감을 느끼고 또 그런것들을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했던 내용의 노래는, 좀 더 쉽게 그런 연결고리에 접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유라 해도 너무나도 작은 비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도 있는 분제이기 때문에.같은 여성이라 느낄 수 있던 비슷한 그 느낌이라함은 이런 느낌이겠구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는 항상, 안된 이야기다. 우리는 역사를 바로 알아야 겠다. 라는 생각을 대부분 했었다. 그녀들의 상처를 이해하는 카테고리는 나에게 '역사'였다. 이번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보게 된 것 같다. 사실은 이해가 조금 어려워서 빗겨가고 있었던 '여성'이라는 단어에 조금씩 이해가 가는것 같다.
2012.09.14 09:54:02
푸른 누가 여성을 성노예로 전쟁에 내몰았는가? 왜 여성이었을까? 그리고 지금도 왜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성적인피해와 위협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까?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그짓을 당하던 때와 조금 다를 뿐이었다 " 고 말씀하신 할머니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이유는 해방 후에도 남겨진 전쟁의 상처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돌봐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선명히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여성이 처한 위치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하층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기도 하였다. (차라리) 그 소녀들에게 칼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성노예의 역활을 강요한 것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또한 그 인식이 무엇인지 조금 알고,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평소에 "위안부" 라는 단어를 들으면 성적인 것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것에 대한 왠지모를 꺼림칙함과 옛날의 이야기라는 것을 전제로 그 때의 일본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었다. 요즘에 조금씩 읽고 있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과 그러면서 조금씩 생각해보게된 것들로 인해 영화,전시회,콘서트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더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런 폭력적인 사건 자체도 물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며 (위안부사건 뿐만이 아니라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싸워야 했던 그런 경험들또한), 여성이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할머니들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분명히 있고, 여자의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일본"을 향한 표적적 분노를 넘어 그것보다 더 큰 것(? 무엇인지는 모르겠다..)에 침묵하지 말고 이야기 해야할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전쟁이 왜 일어나면 안되는지, 그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떠한 피해들이 어떠한 잠재적조건으로 인해 나오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을거라 예상되고 조금씩 그런 점들이 궁금해진다. 전체적인 내용면으로는 위안부 생활이 그들의 인생에 끼친 영향과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었는데 "모두가 죽어야 끝날 일이다" 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핵문제,밀양,강정마을 등의 상황들도 함께 떠올랐었다. 모두가 죽지 않고 끝날 수 있기 위해서는 뭔가 새롭거나, 더 큰 행동들이 필요하겠지..? (특히, 영화를 보면서는)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 분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평화를 만들겠다는 다짐"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의 경험을 나누고, 기억하며 우리세대가 다시 평화라는 단어를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은 세대간의 소통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르신들의 이야기나 그 분들 세대를 존중해보거나 이해해본 경험이 없는데, 그래서 세대간의 소통이라는 말을 별로 믿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발견은 그래서 나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평화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많이 생각하거나 쓰는 단어가 아니었지만, 지금부터 평화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갈때에는 전쟁과 여성, 다양성이라는 키워드와 그를 따라오는 다양한 생각들을 포함시키며 평화라는 단어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관계없을 법한 이야기지만, 요즈음 평소에 우리가 남여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생활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게되고 도대체 어떤 부분이 다른 걸까?하는 질문을 요즘 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부터 성에대한 이야기는 쉬쉬하고 꺼려지게되는 느낌,생각을 받는데 그건 왜 그렇게 된걸까?하는 질문도 든다!.
2012.09.14 10:00:44
나나 일본 강점기 시대 때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때 사회시간에 배워서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는 일본이 한국에게 했던 만행 중 하나로 인식했다면, 어제 사진전(30분이라는 시간은 사진을 보기엔 짧았다)과 공연을 보고 나서는 전쟁의 잔혹함과, 여성 문제로 새롭게 인식이 되었다. 해남으로 고정희 청소년 문학 기행을 갔을 때 들었던 '남자가 모이면 전쟁이 되고, 여자가 모이면 평화가 온다'는 이 문장이 떠올랐다. 예전에 일본군들이 한 만행을 알게되고 나서, 뉴스에서 일본 위안부 관련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랬구나하면서 회피하려고 했다.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다간 사람이 너무 무서워지고, 미쳐버릴것만 같았으니까. 그런 내게 할머니들은 이와 같은 비극이 또 일어나지 말아야한다고 말씀하셨다.그것이 내가 평화를 추구해야할 이유가 되었다. 일본정권은 한국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힘든 군인들을 위안하기 위해서 성노동을 자처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반성하기는 커녕 흑역사로 치부하고 돈으로 입막음하려고 하고. 그래서 '위안부'라는 단어가 이 행사에서 할머니들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거짓말에 속아서 성노동 이상의 만행을 당하고 죽어갔는데 '위안부'라니 할머니가 당했던 고통들과 일본군의 만행을 생각하면 '성노예'로 지칭해야만 한다. 전쟁 속에서 이성을 잃어버린 일본군들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공포에 떨며 죽음보다 끔찍했던 시간을 보내고 나서 한국에 어찌해서 돌아오고 나서 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화냥년" 소리를 듣거나 타국에서 외롭게 살아간 할머니들의 사연을 읽고 나서 할머니들의 당부가 무겁게 느껴졌다. 공연을 할 때 mc를 본 권해효씨가 공연을 보러온 적은 관객수를 이야기하면서일본 독도 문제에는 관심이 많은데 할머니들의 문제에는 관심이 적다면서 안타까워했다. 8년 전에 어떤 연예인이 위안부 할머니 이슈를 시키겠다는 명목하에 위안부 누드를 찍었다가 큰 논란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하고 할머니한테 사과를 했다. 한국의 여러 사건들에 묻혀서 그렇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거나 반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니까. 예전부터 이어지다가 한국정부의 본격적인 참여 등(왜 정권 말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레임덕인가?)으로 인해 일본간의 독도영유권 논쟁이 사회 이슈인데, 극에 달한 반일 감정더 그렇고 최근 서경덕 교수와 함께 가수 김장훈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유럽에 홍보하는 대형 광고를 11월 달에 게시할 예정이라는데, 이 때 이슈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한 때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이슈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꼭 인식을 하고, 단순한 일본에 대한 보복과 복수가 아닌(물론 사실을 인정하고 댓가는 치뤄야한다. 일본 정부하고 극우파들이 정신차리지 못해서 그렇지, 많은 일본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하고, 사죄를 했으니까.)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 시대때의 군부를 비롯,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이 뭍혀서(수요집회가 20년이 넘어 최장기간 시위 기간 기네스기록이 올랐다는게 화난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길 바라지만, 우리는 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해줘야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정말 왜곡들로만 가득차있으니 일본인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배울리가 있나... 일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다.
2012.09.14 10:02:04
나나(2) 덧글
아 리뷰 중간에 돈으로 입막음하려 했다는 부분은 박정희 유신 정권 때 일본과 맺은 조약에서 일본 국채의 1/3을 제공하고 일제강점기 시대때 만행이 없었던 것을 친걸 말해요. 오늘 장일순 선생님 기사를 읽으면서 유신정권에 대한 이야길 들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처입힌 급속 성장이 무슨 의미가 드는지 생각이 드네요. 소수들만 그 혜택을 오롯이 누리는데. 누구를 위한 개발이였는지 궁금하다. 표면상으로는 국민들을 위한거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이 때 개발로 대기업들이 많은 혜택을 누린걸 생각해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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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라온
내 마음은 지지않았다는 송신도 할머니께서 일본정부에 10여년동안 재판과정을 그려낸 다큐이다
할머니는 나보다 한살어린 16살이란 나이에 위안부에 가게됬다
부모님이 결정한 결혼이 싫어 식을 올린당일날 도망쳐
전장에가면 결혼을 안하고 혼자 살수있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가 된것이였다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본에 생존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처음으로 일본정부에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했지만
긴시간동안 해왔던 소송은 3번의 재판에서 패소됬었다
마지막에서 내마음만은 지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한 할머니가 대단하게 느껴져 아직까지도 귓가에 맴돈다
할머니는 정말 강하셨다 화통하시기도하고 보통의 할머니들과 다르게 거칠은 말투는 나뿐만아니라 모두를 놀라게했다
정말 이런 성격을 지녀서이신지 10년이란 긴세월을 버텨오신게 아닌가싶다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들이 할머니에게 가장 큰힘이되어드렸다
할머니도 물론 대단하지만 이분들도 정말 대단하신것 같다
자신의 일도아닌데 적극적으로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활동하는 모습을보고 정말정말 감동받았다
할머니와 울고웃고 여러사건들과 마주치며 포기하고싶은 적도 많았을것같은데
끝까지 할머니의 옆을 지켜준 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싶다
할머니의 굳센마음과 이들의 끈기가 헛되지않게 일본정부는 속죄하고 사죄하는마음으로 보상해줘야된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항상 말하던 바보같은 전쟁 두번다시하지마라 라고 정부에 외치던말은
일본을넘어 온세상에 평화를 뜻할지도..너무 아름다운 할머니였다
고다
할머니들의 이야기,이야기를들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내 나이때에 일어난 일인데 감히 상상하는것만으로도 무서워서 그런 생각을하는게 두렵습니다.
남의 시선이나 조그마한 터치에도 쉽게 기분이 불쾌해지고 성적 수치심이 드는데,
그 분들은 지금의 저 때에 그런 평생 씻을 수 없고 지워낼 수 일들을 겪은건데
얼마나 아팠을까,괴로웠을까 차갑고 무서웠을까 헤아리려고해도 그들이겪은것들에 손톱만큼도 저는 모를거에요.
아마 전 평생 알지못할거에요. 내 몸으로 느껴지는거랑 생각하는거는 엄청난 차이라고생각합니다.
가장 꽃피우고 예쁘고 아름답고 빛나야 할 나이에,시기에 사랑받아 마땅해야 할 때에 그런 일이.
같은 여자로서 같은나라의 사람으로 너무 화가나고 속이상합니다.
당연시해야하는것들이 막혀버리고 안되는것들을 보며 답답하고 먹먹했습니다.
그 아픈일들을 우리는 많이생각하고 이야기하고 화두에올리며 끝없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사람들이 이 문제에대해 내가무엇을할수있을까, 생각하고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것들을 했으면 합니다.
초등학교때 수요시위에 참여한것이 떠오릅니다.
나비모양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비를 맞으며 노래에맞춰 춤을췄었어요.
그 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던것같고 그래서 열심히했었던 기억이납니다.
(뭔가 조금이나마 도움이됐을거란 생각을했던것같아요)
그리고 그 다음의 나는 무엇을했나.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지금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는 머릿속에 한번 더 굵은 펜으로 진하게 생각을쓰게되었어요.
당연한거지만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미로
항상 글이나 신문, 인터넷 뉴스로만봤던 주젠데 영상으로 보니 뭔가 새로웠다...
난 여태까지 일본인들은 다 한국인을 무시하고 개념이 없다는 되도않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었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분들을 진심으로 도우려는 것을 보고 '아... 일본인들도 우리와 다를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때 전쟁터로 끌려가서 그런일들을 당하신 분들께 웬지 모를 죄송함과 존경심? 같은것이 생겼다...
그리고 일본의 법원의 판결때문에 너무 화가 났다. 이러한 일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든
일본인을 포함한 그 어떤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 물어봐도 일본이 잘못한것이라고 할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판결을 내렸다니... 이해할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송할머니께서 그 오랜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말을 기억하신다는 점이였다.
그 점이 너무 감동스러웠다. 오랜시간을 일본에서 보내면서도 한국을 잊지 않으신것 아닌가.
정말 위안부 할머니들이 존경스러웠다. 송할머니 말씀처럼 이런 일은 절대로 다시 일어나면 안된다...
이런일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이 9.11 테러가 있었던 날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가슴에 크게 와닿았다.
마
처음부분을 보면서 송신도 할머님이 전혀 피해자로 보이지 않을 만큼 당당해 보였는데,
보면 볼수록 그녀가 어린아이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과 희생당한 청춘에 대한 분노와 슬픔
그 모든 것에 대한 상처가 오랜기간 곪고 곪아 그대로 썩어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당당하고 기 세 보였던 것은 그에 대한 방어기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고 신뢰 받고 신뢰를 주며 상처를 치유받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어려서인지 용서에 대한 것을 마음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인정과 사과뿐이라는 말에 조금 알 것같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보는 내내 위안부라는 호칭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얼마전에 위안부에서 성노예로 호칭을 정정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 반응이 매우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그녀들을 위안부라고 부르는 것이 그녀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성노예라는 호칭이 좋다는건 아니지만,.. 이 문제는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할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송신도 할머님께서 일본에 가지고 있는 감정은 증오나 원망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 용서라는 것과 함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들을 접하면서 느는것은 일본에 대한 반감이라서요.
일본 정부가 진심을 담아 정식으로 과거에 대한 사과의 말을 전하는 날이 반드시 왔으면 합니다.
미르
생각보다 위안부 여성들의 상황이 않좋앗었구나정도의 생각과
많이 부당한 처분을 받고 잇는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측은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송할머니의 노력과 자신의 치부 도 밝힐수잇는 용기를 갖고싶다는 느낌을 받앗습니다
서키
송신도 할머니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내용과는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렸다.
그렇지만 그 밝음 속에서도 이면은 있었다.
할머니도 하기 싫은 얘기가 있었다. 말을 돌려버리고,딴짓을 하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질문을 받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모른 척 하지만 머릿 속에서는 이미 대답이 나왔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불안해 했다.불안감.아닌 척 하지만 여전히 불안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숨기고 있다. 또 다시 배신을 당할까 두려워 했다.
이상했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더 이해를 할까. 마음이 아릿했다.
만약 내가 할머니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조금 더 생각을 해야겠다. 그런데 왜 내 마음엔 더 와닿지 못했을까...?
하록
젊은시절 위안부로 끌려갔던 송신도 할머니는 당당했다.
호통을 치며, 노래를 부르며 진솔한 이야기를 외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시도 큰 에너지를 가진 송할머니가 대단했다.
어느곳에서나 당당한 할머니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좋았다. 아무리 져도 녹슬지 않는다.
재판에는 져도 마음만은 지지않는다 라고 말씀하신 송할머니.
할머니에게 인간에 대한 불신을 남긴 추악한 인간들이 너무 싫었다.
그 불신을 서서히 깨뜨려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할수 있었고, 할머니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위안부 문제는 이 시대가 알아야할 문제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평화의 문제다.
송할머니의 용기에 감사하단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