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체 게바라 평전을 들은 듣한 강연이었어요.
그렇지만 쿠바 의료라든가 자신의 이야기는 좀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쉽고(아버지의 영향이 큰 듯)
쿠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강의 정도?였어요.
--------------------------------------------------

2012.11.30(금) 나의 아버지 체 게바라

<체 게바라와 쿠바 의료>-쿠바 윌리엄 솔레르 병원 소아과의 알레이다 게바라 마치
상호의 이해를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미대륙에 도착했을 때 이미 미주대륙에는 수천년간의 역사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대륙 발견 전에는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께서 향후 중남미 대륙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역사를 알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예를들어서 멕시코의 피라미드, 페루의 마추피추. 이 두 개는 대륙이 발견되기 이전의 문명이 얼마나 발전되고 있었는가를 잘 나타내주는 것들입니다. 지금 현재 내혈관 관련 의료도 수천년전 잉카 문명에서 발견된 의료기술입니다. 5천년전 잉카인들도 뇌 수술을 해서 뇌를 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사망하지 않고 시술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대에 굉장히 유용한 지식들을 복구하고 있습니다.

쿠바에서는 바또스 라는 원주민들이 하던 놀이가 있습니다. 그 바또스라고 불렸던 놀이는 현재의 '야구'와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야구가 쿠바에서 활성화되기 전까지 미국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거의 50년동안 미국의 식민정치 아래에서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쿠바에서 야구가 활성화되고 있었던 것들이 미국인들만의 영향이 아니라 원래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쿠바는 여러 문화가 섞여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첫째는 스페인(정복자)들의 문화입니다. 둘째는 아프리카 문화입니다. 그들은 식민지시대의 주체입니다. 그 농장에서 일하는 스페인 사람이 10명이라면 아프리카인은 200명쯤 됩니다. 그리고 종교적측면에서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 카톨릭 종교(스페인 정복자들의 문화)가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종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었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종교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스페인 이외에도 아시아의 종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다수 중국인들이 미국의 철도사업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미-주 대륙으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철도사업이 완료된 후에 미국으로 넘어갔던 많은 중국인들이 중남미 대륙으로 재이주 합니다.

쿠바사람은 아시아인들의 지혜를 알며 아프리카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저희는 굉장히 용맹한 국민이며 전사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연대성을 아는 국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역사의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의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전쟁을 400년동안 겪으면서 살고, 50년간의 지배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쿠바인들이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쿠바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하나 들도록 하겠습니다.

•쿠바에서 가장 비옥한 땅에 20만헥타르가 미국의 소유였습니다. 쿠바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유제품은 미국의 소유였습니다. 전기 모두 미국의 소유였구요. 쿠바에서는 주 쿠바, 대사관의 호의없이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쿠바의 영아 사망율은 60/1000이었으며 문맹률은 33%였습니다. 예방가능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쿠바인들의 투쟁에 1959년 독립을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혁명은 '민중혁명'입니다. 국민들이 거리에 나서고 전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순간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죠. 이 인물이 후에 전 인류에 추앙되는 인물이 됩니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젊은이가 만난 쿠바인들과 함께 동맹을 이루게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쿠바인들을 이끌고 있는 집단을 이끄는 보스 중에 굉장히 군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제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피델 카스트로와 가깝게 지내왔습니다. 저에게는 마치 삼촌같은, 친척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어느날 저의 아빠와 논쟁이 있었다면 얘기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멕시코에 있을 때 이들이 곧 잡혀갈 것을 알고 있을 때 자신들의 모든 동지들에게 자신이 어떠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것을 알립니다. 그럴 때 '그때 너희 아버지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 생생하게 나는 '공산주의자!'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투옥되어있는 사람들과 함께 스탈린을 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델을 포함해서 당시 잡혔던 사람들은 모두 풀려났지만 저희 아버지만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나중에 저희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당시 피델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이해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라고 물어봤더니 아무런 일도 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피델은 체 게바라라는 인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저희 아버지는 피델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둘의 우정은 돈독해졌습니다.

투쟁을 같이하고, 진정한 혁명을 하는 지도자로서 길을 같이 하게 됩니다. 당시 그 두분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책은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피델 카스트로가 굉장한 군사전략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극명한 예가 '산따끌라라'라는 지역을 정복했던 때입니다. 산따끌라라는 쿠바의 중심에 있는 지역입니다. 산따끌라라 내부에 있는 전력은 3천명인데 밖에서 포위하고 있는 전력은 300명밖에 안 되었습니다. 이 계기를 통해 피델이 굉장한 군사전략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중심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시기입니다. 경제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계속 우리가 이어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 바로 체 게바라입니다. 쿠바국민은 체 게바라를 굉장히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체 게바라는 일어나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굉장한 비평가였습니다. 그러나 매우 건설적인 비평가였습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비평과 비난을 했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쿠바 젊은이들과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눴으며 체 게바라는 '젊은이들과의 대화는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젊은이들과 얘기를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 쿠바의 청소년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체 게바라입니다. 그러한 인격, 성격을 혁명에서 베껴서 배우려고 합니다. 굉장히 진실되고, 용맹했으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우려점에 대한 표명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모든 인간을 존중하며 이해못하는 문화여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을 존중했습니다. 타인을 존중을 할 줄 알아야만 협력, 동맹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우리 인간 한 명 한 명의 가치는 없다. 국민이 힘을 합칠 때만이 어떤 특정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연대성'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은 항상 전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각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프로세스안에서 인간주의에 굉장히 높은 평가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쿠바, 중남미, 여타 다른 곳에서 기리는 체 게바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저희 어머니께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저에게도 저는 그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 책은 중요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콩보로 가셨을 때는 4살 반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아버지와 같이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머니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통해 알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활동했던 분들을 통해서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쿠바의 국민을 통해서 저희 아버지를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제가 첫 딸을 났을 때 제왕절개로 났는데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수술실에 들어가는 복장으로 서 있는 두 분이 계셨습니다. 그 두분은 저희 아버지와 함께 활동했던 활동가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무엇을 하시는건가요?"라고 여쭤보니 "너희 아버지가 이 곳에 와줄 수 없으니 우리가 대신 온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을 통해서 아버지님과 그 친구들이 얼마만큼 우정을 돈독히 쌓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산업 장관직을 역임하고 있을 때 산업 차관직을 맡으셨던 분이 저희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어느 날 자원봉사활동을 나셨는데요. 쿠바에서 저희 아버지께서 자원봉사의 창시자이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항상 "사회의식을 형성해야한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의식 형성에서 자원봉사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노동은 댓가를 바라지만 자원봉사는 봉사를 하는 대신 어떤 성취감과 만족감을 댓가로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는 쿠바에 있는 동안 매주 일요일은 자원봉사를 하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비롯해서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굉장히 많고 들을 때 마다 굉장히 흡족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어떠한 인간성을 가지셨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전세계 알려져있는 심각한 표정만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체게바라를 진정 알고 싶다면 제가 쓴 체게바라에 대한 책을 꼭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님께서 쓴 책도 보신다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아버지께서 가지고 있었던 자질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였습니다. "진정한 혁명가라면 사랑을 할 수 있는, 굉장히 로맨틱한 사람이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더 위대한 것을 위해서 일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시를 번역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 시를 보면 민중에 대한 사랑이 여실히 드러나있습니다. 그의 시를 읽어보신다면 용기와 절제와 착한 마음을 통해서만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콩고의 투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피델이 체 게바라에게 쿠바로 돌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는 쿠바의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작별를 고했기때문에 쿠바로의 귀환을 비밀스럽게 준비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볼리비아로 돌아왔을 때가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꿈을 대신 이뤄줄 수는 없습니다. 원하는 만큼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아버지의 모습, 진정한 혁명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A)
Q. 체 게바라가 즐겨듣던 음악이 궁금합니다.
A. 불행히도 체 게바라는 음치셨습니다. 탱고는 추실 수 있었는데요. 그것이 유일하게 출 수 있는 춤이었습니다. 그라나도라는 친구와 연관된 굉장히 재밌는 얘기가 있는데요. 탱고를 추는데 탱고가 무슨 음악인지 구별을 못했습니다. 탱고 음악이 나오면 그라나도라는 친구가 "지금 춤을 추면 돼!"라고 하실 때만 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굉장히 음치셨고 박치셨습니다.

Q.체 게바라 열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체 게베라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요. 티셔츠 등 여러가지 물품을 통해 체게 대중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지요?
A. 실제로 술병에서도 저희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도이 있는데요. 가능한 온 힘을 다해서 막으려고 합니다. 어떤 안과에서는 아버지의 얼굴을 홍보용으로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사진을 통해서 사진만 알리고 그 내용을 망각시키는 일이 일련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바나에 체 게바라 연구소를 세워 그런 행위를 저지하고 법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 많이 벌어지곤 하는데요. 저희가 이탈리에 방문했을 때 몇몇 청소년이 저희 아버지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와서는 사인을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그 젊은이들은 파시즘을 추구하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체 게바라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 알고있는 듯 하다".

한 편으로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포르투갈에서 있었던 일인데 14살의 소년이 저희 아버지의 사진이 새겨진 깃발을 가지고 거리시위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왜 체 게바라의 깃발을 들고있니?"라고 물으니 소년은 "체 게바라가 그랬던 것 처럼 나 역시 승리를 이룰 때 까지 이어나갈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아버지의 사진이 사용되는 것에서 득과 실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비춰지고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체 게바라 연구소를 통해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청소년이 투쟁을 위해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제를 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Q.소아과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A.소아과 중에도 알러지 전문입니다.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아버지의 영향이 큽니다. 쿠바에서 의료서비스는 대국민 서비스(무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쿠바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봉사직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항상 "의사가 모시는 주인은 딱 한명, 국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쿠바에서는 국민을 주인으로 삼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사랑이 가득한 마을에서 자랐는데, 이제는 그 사랑을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이 소득 2만불의 지수를 넘어가고 있는데 행복의 지수를 돈으로 측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쿠바는 개인 소득이 높지 않고 겉으로 봤을 때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의 지표는 높지 않지만, 어떻게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저희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저희가 아열대 지역에서 사는데 모기들이 많습니다. 하루 종일 전기가 공급이 안 되는 날도 많습니다. 저희가 그런 상황에서 배운 것은 적게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공유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로 얼마전에 여러 지역에 사이클론이 강타하여 굉장히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일손이 남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복구작업에 참여하여 빠른 시일내에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바나시에 거주하는 노동자이지만 복구작업을 도우러가도 임금은 보장이 됩니다. 그리고 전 국민이 합해서 가지고 있는 것(생활용품, 옷 등)을 나누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증여했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이러한 활동을 촉진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자선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얘기하는 것은 '연대성'입니다. 연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필요한 것을 나누는 것을 연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이 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모든 인류를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의 시간을 통해서 자연을 존중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중남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과 많은 것을 하고 있고, 여전히 배우고 실습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쿠바의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진실되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구소련이 붕괴되었을 당시 우리의 사령관 중에 소련의 붕괴를 직접 국민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소련은 우리에게 큰 시장이었습니다. 그 시장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쿠바에 부족한 것들은 많지만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적지만 나눌 줄 아는 '연대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지금 들리는 언론 소식에 의하면 쿠바는 변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공동체, 연대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셨는데 쿠바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저희는 사회그대로를 유지해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체제가 쿠바 국민들에게 유익한 체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점을 보완하고 완벽한 사회주의 체제를 이어나갈 것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지난 해 6월 제 6차 공산당대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나라의 경제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303개의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쿠바에서 개혁이 시작됬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내부에서 "이제 완성의 과정이 시작됬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노동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농업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지하고 있습니다. 수입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산을 늘려야합니다. 그리고 경제를 지방문권화 해야하며 국가를 기업처럼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있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추구하는 방향성은 완벽한 사회주의를 만들어가는 길이며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길입니다.

라울이 2007년 국회의장직을 맡았다고 했는데 정권을 이어받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만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쿠바에서는 이러한 개인에 대한 숭배에 대한 관습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지도자들이 있는 것은 과거 시간에서 증명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직위가 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델카스트로의 자리를 라울 카스트로가 이어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오해입니다.

쿠바에 관련된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왜곡된 것이 많습니다. 쿠바에서는 매년 5년마다 대통령선거를 합니다. 2년 반마다 지방 선거가 이뤄집니다. 그리고 정당은 없습니다. 정당이 후보를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정합니다. 예를들어 대학생들도 역시 지방의 지도자, 도시의 지도자를 선출할 때 어떤 사람을 후보로 낼 것인지 의무적으로 의견을 내야 합니다. 혁명에 관련한 역사적 인물을 제외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국민들에게 인지된 사람들이고 후보가 되기 전에 투표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없는 것입니다. 쿠바의회에는 의석이 609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여러 자치 지방단체가 있는데 산티아고델꾸아지방에서만 피델 카스트로나 라울 카스트로로 후보로 임명할 수 있고 그 이외의 지방에서는 그들을 후보로 임명할 수 없습니다. 지난 선거에는 산티아고델꾸아 지방에서 99%를 받았습니다. 그 지방에 국민들이 라울에 대해 존중하고 있고 라울은 자신의 능력과 국민의 관심을 통해서 그 자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지방회의가 끝나고 전국 회의가 이뤄지고 의장과 부의장이 선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후보는 모든 국민들에 의해서 선출되고 임명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선거시스템과는 달리 좀 특별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국민 선거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대국민들에게 '어떠한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게 투표를 했는데 95%가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뤄낸 혁명의 성과는 어떠한 외부 세력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 게바라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후보중에도 야심찬 후보들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젊은지도자는 고등교육 장관을 지냈고 국회에서 의원으로 활동하고있는 디아스 깐넬이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쿠바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러한 질문들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사회주의를 완성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저희가 가야할 길입니다!

<쿠바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국제교류>-쿠바국제우호협회 알리시아 부대표
•시간상의 문제로 강연을 하지 못했습니다.
---------
Please consider the planet before printing this post

hiiocks (hiiock kim)
e. hiiocks@gmail.com
w. http://productionschool.org, http://filltong.net
t. 070-4268-9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