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입력시간 : 2009-09-05 오후 7:26:46
“물고기야…” 저거 누구 아이디어일까?
교보생명빌딩 ‘광화문 글판’을 만드는 이들 
구호·계몽 성격에서 외환위기 거치며 감성적 문구로 바뀌어
문인 포함한 선정위원회가 한 해 네 차례 선정
“가슴 와닿는 글귀에 사고 날 뻔” 경험담도
월간중앙8월1일 서울의 ‘광화문광장’이 개방되면서 주목도가 더욱 높아진 명물이 하나 있다. 지하층에 대형서점 교보문고가 있는 교보생명빌딩의 ‘광화문 글판’이다. 건물 전면에 붙어 있는 가로 20m, 세로 8m의 거대한 간판으로, 봄·여름·가을·겨울 1년에 네 차례 간판 문구가 새로 바뀐다. 18년 전인 1991년,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가 아이디어를 내 시작한 광화문 글판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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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글판은 봄·여름·가을·겨울 한 해 네 번 새로운 문구를 선보인다. 사진은 현재 걸려 있는 광화문 글판.

이 글을 쓰는 8월 현재 ‘광화문 글판’에 적혀 있는 글귀는 “물고기야 뛰어 올라라/최초의 감동을 나는 붙잡겠다”. 조정권 시인의 시 <약리도(躍鯉圖)>에서 따온 글이다. 

9월부터는 새로운 글귀가 글판을 장식한다. 가을 분위기에 걸맞은 문구가 선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7곳에 있는 간판 문구와 디자인을 한 번 바꾸는 데 1억5,000만 원 가량이 든다고 한다.

‘광화문 글판’은 서울 광화문 외에도 여섯 곳에 더 붙어 있다. 서울에는 강남 교보타워에 하나 더 있고, 인천·광주·대전·제주·천안의 교보생명 건물에도 게시돼 있다. 강남 교보타워의 글판은 가로 16m, 세로 8m짜리이고, 지방 사옥에 붙은 간판은 가로 11m, 세로 4.4m다. 

대한민국의 상징거리라고 할 세종로 한복판에 있고 크기도 가장 큰 광화문 글판이 이들 중 대표선수 격인 셈이다. 필자는 ‘광화문 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이다. 선정위원회는 2000년 12월 광화문 글판 게시 10주년을 맞아 글판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됐다. 

문안 소재를 발굴하고 후보작을 심의·선정하는 일을 하며, 임기는 보통 2년이다. 교보생명 인사와 외부 인사가 절반 가량씩 참여하고 있다. 글을 전문으로 다루는 문인·문학평론가들은 역대 선정위원회에 빠짐없이 포함됐다. 고 이청준 작가, 유종호(평론가)·최동호(평론가) 교수, 정호승 시인, 공선옥 작가, 그리고 수필가·교수로 활약하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뜬 장영희 씨 등이 그들이다. 

현재 5기째인 문안선정위원회 위원은 교보생명·대산문화재단 측 인사 외에 시인 C씨, 소설가 E씨, 광고대행사 L부사장, 필자 등 4명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선정위원들이 문구 선정의 전권을 행사한다고 볼 수는 없다. 

선정위원은 자신들이 기억을 더듬고 자료를 뒤져 각자 제출한 문구와 교보생명 홈페이지(kyobo.co.kr)를 활용한 시민 공모를 통해 추천된 문구를 종합 심의해 최종후보작(보통 2편)을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투표와 토론이 이루어진다. 후보작은 다시 교보생명 임직원과 전국 브랜드 통신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인기도 순위가 매겨진다. 

여기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글귀가 최종 게시작으로 낙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보생명 측은 최종작으로 선정돼 3개월간 글판을 장식한 문구에 대해서도 모니터요원과 일반 시민의 반응을 피드백받아 다음 문구 선정작업에 참조한다. 그렇다면 어떤 문안이 광화문 글판에 걸리는 것일까? 

지나가던 시민이나 버스·택시 승객이 한 눈에 읽어낼 수 있으려면 글자 크기가 커야 하고 글자 수가 너무 많지 않아야 한다(글판에 너무 눈길을 집중하다 교통사고를 일으킬 뻔했다는 경험담도 있다). 선정위원회에서는 글자 수를 길어야 30자 이내로 제한하기로 원칙을 정했지만, 실제로는 가독성을 감안해 20자 안팎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산뜻하고 정감어린 글귀와 디자인으로 도심 거리에 활력을 제공’하고, ‘교훈적 메시지를 시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휴식과 생활의 자양이 되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자’는 원칙도 선정위원이 공감하는 추천 원칙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 시 구절이 최종작으로 선정되는 경향이 많다. 

그밖에 국내외 산문·수필·명언명구·한시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텍스트에서 뽑힌 글이 후보작에 오른다. 영화 대사, 예를 들면 <아메리칸 뷰티>에 나오는 “오늘은 당신에게 남은 생을 시작하는 첫날이군요(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같은 의미 있는 대사가 후보로 추천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 방문 해외 문인에게도 호평

교보생명 측은 광화문 글판에 넣기로 결정된 작품의 저작권이 살아있는 경우에는 당연히 저작권료를 치른다. 국내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해외의 경우 원작자나 유족·단체 등 저작권자를 찾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지금까지 글판을 가장 많이 장식한 작가는 고은 시인으로, 4편의 작품이 글판 문구로 선정됐다. 

그 뒤를 이어 김용택 시인의 작품이 3회, 도종환·정호승·정현종 시인이 2편씩의 작품을 글판에 올렸다. 작가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 난해하고 기호 같은 시보다 서정적이면서 일반인이 친숙하게 접근할 있는 시를 쓰는 분이 아무래도 글판의 주인공으로 뽑히는 듯하다.

간판에 적어 넣을 글자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시라 하더라도 전문을 다 담기는 어렵다. 따라서 특정 구절을 뽑아내 문장을 새로 구성하거나 표현의 일부를 살짝 변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원작자의 양해를 얻고 하는 일이다. 지난 6~8월에 게시된 조정권 시인의 <약리도>는 당초 필자가 시집에서 골라 추천한 것이었는데, 뜻밖에 선정위원 다수의 호평을 받은 데다 설문조사에서도 선호도가 높아 게시작으로 결정됐다(개인적으로 대단한 영광이다). <약리도> 전문을 소개한다.

“물고기야 뛰어 올라라
최초의 감동을
나는 붙잡겠다
물고기야 힘껏 뛰어 올라라
풀 바닥 위에다가
나는 너를 메다치겠다

폭포 줄기 끌어내려
네 눈알을 매우 치겠다 매우 치겠다”

시의 전문 중에서 앞부분 세 행을 골라 광화문 글판 후보 문구로 추천했다. 감상 후 누구나 느끼겠지만, 시 전문이 풍기는 느낌은 글판에 인용된 문구(1연)가 주는 느낌보다 훨씬 강하다. “눈알을 매우 치겠다”는 구절은 ‘잔인할’ 정도다. 이처럼 시의 일부 구절을 따올 경우 원래 시의 전체 느낌이 가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광화문 글판도 ‘제3의 창작’쯤은 될지 모르겠다. 글판 선정위원들은 좋은 글을 뽑는 것 못지않게 ‘불필요한 오해’를 부르지 않는 데도 적지 않은 신경을 쓴다. 

대한민국 서울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광화문 네거리에 내걸리는 글판의 성격상 정치·사회적으로 이해가 엇갈리는 내용이 문구로 선정될 경우 쓸데없는 논란을 부를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선정위원들 간에는 되도록 많은 이에게 희망과 용기·위안을 주어야 할 광화문 글판이 싸움거리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난 봄(3~5월)에 게시된 글귀를 보자.

“얼굴 좀 펴게나
올빼미여,
이건 봄비 아닌가”

이 문구는 일본 에도시대의 하이쿠 시인 고바야시 잇사의 작품이다. 하이쿠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알려진 일본 고유의 시 형식이고, 고바야시는 평생을 방랑하며 보낸 천재 시인이다. ‘벼룩을 눌러 죽이며/입으로는 말하네/나무아미타불’도 고바야시의 잘 알려진 작품이다. 

‘얼굴 좀 펴게나…’는 봄철에 어울리는 내용인 데다 은근한 유머까지 깃들여 읽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그런데 이 문구를 선정하기에 앞서 심사위원들 간에 가벼운 논란이 빚어졌다. 일제에 대한 항거의 상징인 삼일절(3월1일)에 처음 게시되는 글귀인데 하필 일본 시인의 작품이라면 혹시 반발이 일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재미있다. 여유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우리 국민이 문학작품에까지 반일감정을 개입시킬 정도로 마음이 좁지는 않았던 것이다. 새 글판을 눈여겨본 일본 <산케이신문>의 서울특파원 구로다 가쓰히로는 3월21일자 <산케이신문>에 광화문 글판과 새 시구를 소개하는 칼럼을 썼다.

칼럼에서 그는 “지금까지 국내외 유명 시인의 시가 등장했지만 일본인의 작품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라며 “일본의 정치·경제계와 기업가에도 이런 유머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광화문 글판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특히 문인에게는 경이로울 정도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문인대회나 세미나를 찾은 문인은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감탄사를 쏟아낸다. “어떻게 수도 한복판의 저런 큰 간판을 상업광고도 아니고 시인의 시 구절로 채울 수 있느냐? 이런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부러움 섞인 칭찬이다. 우리나라의 격(格)을 높이는 데 광화문 글판이 한몫 단단히 하는 것이다.

광화문 글판이 처음부터 지금 같은 위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글판이 생긴 것은 18년 전인 1991년, 아이디어 제공자는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였다. 신씨는 교보생명을 경영하면서도 교보문고를 만들었고,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대산문화재단도 세운 사람이다. 그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초기에 등장한 문구는 다소 딱딱한 편인 데다 구호 냄새가 너무 짙게 풍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1991년 1월) “아직도 늦지 않다. 다시 뛰어 경제성장”(1993년 1월) “훌륭한 결과는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1994년 1월) 같은 초기작들은 거의 표어 수준이었다. 

기업체가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마련한 간판이니 홍보에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1996년에는 ‘세계보험전당 월계관상 수상’이라는 ‘적극적인’ 홍보문구가 글판을 장식했다. 1997년에도 ‘오늘의 교보생명 내일의 경제부흥’이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이런 광화문 글판이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집단적 위기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던 그 시절, 신용호 창립자는 결단을 내렸다. 기업 홍보 목적을 아예 포기하고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그에 따라 1998년 2월 광화문 글판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글귀가 내걸렸다. 글판의 진화, 글판의 중흥기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광화문 글판이 일반 국민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2001년 글판 탄생 10주년 때는 간판과 문구에 대해 ‘광화문 글판’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부여됐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1998년 2월에 내걸린 이 문구는 고은 시인의 시 <낯선 곳>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옥같은 문구가 새로 내걸려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2000년 봄)

“그대를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였다
이웃을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고 말았다
가만히 푸른 하늘이 내려다본다”
(2001년 여름)

“시골에선 별똥이 보이고
도시에선 시간이 보인다
벗이여, 우리도 쉬었다 가자”
(2003년 여름)

“떠난 사람들 모두 돌아와
다 함께 눈을 맞자
눈 맞으며 사랑하자”
(2004년 겨울)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2006년 봄)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2007년 가을)

재미있는 것은 광화문 글판이 오랫동안 ‘불법옥외광고물’ 시비에 휘말려 있었다는 점이다. 광화문의 교보생명빌딩은 종로구청 관할이다. 초기에는 새로운 글판을 만들 때마다 간판 귀퉁이에 ‘교보생명’이라는 글자를 적어 넣었다. 서울시내 건물의 옥외광고물은 구청 조례에 의해 엄격하게 규제받는다. 크기·내용에 관해 세세하게 정해진 규정을 어기면 경고에 이어 고발까지 당할 수 있다.

‘불법옥외광고물’ 시비에도 휘말려

교보생명도 글판 때문에 몇 차례 경고를 받았다. 그런데 순수한 시구 위주로 글판 내용이 확 바뀌고 ‘교보생명’이라는 기업체 이름까지 아예 쓰지 않게 되자 종로구청 입장에서는 단속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광고물 같기는 한데 딱히 상품을 선전하고 팔아보자거나 기업을 홍보하는 내용이 아니어서 문제 삼기가 모호해진 것이었다. 

게다가 내용이 공익적이고 시민들의 호평과 칭찬이 쏟아지니 구청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동안 고심하던 종로구청은 2007년쯤부터 광화문 글판의 공익성을 감안해 굳이 단속하지 않기로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하긴 글판을 단속한다고 나선다면 오히려 그런 경직된 자세 자체가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까?

광화문 글판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글판에 들어가는 글 자체뿐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도 변화를 겪었다. 이른바 캘리그래피(calligraphy, 서법·서예)로 시구를 더욱 아름답게 표현하게 된 것이다. 경우에 따라 전문 화가에게 의뢰해 글판 전체를 시와 그림으로 꾸미기도 한다. 

2005년부터 2년간 광화문 글판 문구를 손글씨로 제작했던 캘리그래피회사 ‘필묵’의 대표 김종건 씨는 “글씨 때문에 내용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는 사람이 많았다”며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광화문 글판은 기업 오너의 안목과 의지, 관할 관청의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일반 시민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탄생하고 성장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명물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사회환원 사례에서도 일종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계절마다 내걸리는 한국어의 정수. 한국인 누구나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글 노재현 중앙일보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jaik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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