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허무주의>, 비극을 통해 웃음을 자아낸 블랙 코메디?
화요일 하자작업장학교 전체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극을 보러 산울림 극장으로 대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책도 찾아서 읽어보고 이것저것 이 희극에 대한 글을 찾아봤다. 사실 희극을 많이 읽지도 보지도 않았지만, 다른 공연이나 연극에 비해 좋아하는 편이다. 디오니소스 축제 때 풍자적인 노래를 부르며 평소에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을 비꼬고 흉내를 내는 과정에서 시작된 것이 희극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있다. 처음 읽은 희극은 중학교 때 읽은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였다. 책을 먼저 읽은 다음 너무나도 재밌어서 연극을 찾다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봤다. <십이야>를 보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이유는 캐릭터들의 상황이 꼬이면서 너무 바보스럽거나 캐릭터 중 한 명이 다른 캐릭터를 바보 취급을 하거나 혹은 그 사람을 꾀에 빠트리는 과정에서 바보스럽기 때문에 웃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허나 <고도를 기다리며> 책을 읽을 땐 <십이야>에서 웃었던 것처럼 유쾌하게 웃을 수는 없었다. 블랙 코메디처럼, 뭔가 어두운 분위기에서 어이가 없고, 정확히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를 때 허탈한 웃음이 났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유쾌한 허무주의>라고 말한다. 허무주의(Nihilism - 글로비시 단어에도 포함되어있다ㅋㅋ)는 기존의 가치 치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 권위를 부인하며 無에서 보려고 하는 사상. 근대 시민 사회의 가치치계가 붕괴하고 그 후 장래의 가치에 대해 전망할 수 없는 역사의 위기적 전환기에 있어서 소시민층의 세계관의 반영으로서 성립되었다. 이러한 증거를 이 희극에서 찾자면, 1막에서 2막까지 나무 한그루만 서 있는 시골길에서 오직 5명의 인물만이 무대 위에 등장하며,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쓸데없는 싸움을 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혼잣말을 하거나, 요구를 하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잠에 들거나, 욕을 하며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 인생에 아무 의미가 없는,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지만 언제 올지 장담할 수 없는 그를 기다리는 시간만이 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에스트라공 : 아냐, 아냐. 여기서 멀리 가버리자. / 블라디미르 : 그럴 순 없다. / 에스트라공 : 왜? / 블라디미르 : 내일 다시 와야 할 테니까. / 에스트라공 뭣하러 또 와? /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리러. (p 156)
이들은 이렇게 이유도 모르며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린다. 에스트라공이 왜?라고 하면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려야한다고 한다. 이 대답에 에스트라공은 아 맞다 라고 대답을 하며 납득한다. 어느 순간 이들의 일상은 반복이 되고 나도 이 반복되는 패턴에 익숙해지며 어느 순간 웃고 있다.
에스트라공 :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 / 블라디미르 : 다들 하는 소리지. / 에스트라공 : 우리 헤어지는 게 어떨까?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 블라디미르 :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야. / 에스트라공 : 만일 온다면? / 블라디미르 : 그럼 살게 되는 거지. (p 158)
고도가 뭐 길래 이들의 목숨도 이렇게나 무의미한 것인가?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난 뒤 이 희극을 쓴 작가 사뮈엘 베케트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다. 정보를 찾는 족족이 이 작가는 ‘폐쇄적’이었다는 말이 언급된다.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도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고, 인터뷰도 거절했다는 점에서 이미 그가 베일에 싸여진 인물이란 건 밝혀졌을 터였다. 재미있던 사실은 그는 아일랜드인인데 영어와 프랑스어로만 희극을 쓰며 번역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유는 그가 언급하길, “모국어보다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스타일 없이 쓰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는 과연 무슨 이야기인 것일까. 이 희곡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이 계속해서 대사들을 반복하고,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며, 실제로 상대방이 방금 전에 했던 말이나 바로 어제 일어난 일들을 기억 못하는 장면을 보며 ‘노망인건가’, ‘기억상실증인가’, ‘얘네 미친 건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의 이해력을 돕기 위해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그들을 규정시키고, 정체성을 그려보곤 했다. 그러나 사뮈엘 베케트가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얘기한 정보를 찾고 나서는 내 자신이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인간은 자신이 보이는 것만 존재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봐왔던 범위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규정하고 틀에 가뒀던 것 같다. 마치 고래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인간들처럼, 나도 같은 행동을 했던 게 아닐까? 노망이라던가, 기억상실증이라던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건 나를 기준으로, 내가 정상이라는 전제를 이미 두고 나와 다른 사람을 규정짓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아닌>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데!라는 생각이 들 무렵, 이 작품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뮈엘 바케트가 직접 경험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써졌던 희곡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중립국 국민이라는 안전한 신분을 이용해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도왔다. 허나 그의 단체는 나치에 발각되어 당시 독일의 비점령 지역이었던 프랑스 남단 보클루즈에 숨어 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전쟁의 끝을 예측할 수 없던 그는 피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가길 기다렸고, 이것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던 대화 양식이었다. 세계로부터 단절된 사람들, 언제 자유로워질지 모르며 대화주제가 동이 나도 정신을 잃지 않게끔 무엇이라도 얘기하려는 간절함.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뭍어나오는 감정들은 이러한 것들이다. 이것이 진정한 허무주의이며,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 전쟁을 묘사하는 블라디미르의 대사
“디디, 우린 늘 이렇게 뭔가를 찾아내는 거야.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 - 어떻게든 위안을 찾아보려는 에스트라공의 대사
에스트라공 : 하지만 난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 블라디미르 : 아냐, 너도 잘 아는 사람들이야 / 에스트라공 : 난 모른다니까. / 블라디미르 :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야. 넌 뭐든지 다 잊어버리는구나. (사이) 하긴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 / 에스트라공 : 그 사람들도 우릴 몰라보잖아?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이라고. / 블라디미르 : 그건 말이 안돼. 나도 몰라보는 척했으니까. 더구나 우릴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오늘 밤은 못 오겠다는 얘기겠지? (...) 하지만 내일은 온다는 거고? (...) 내일은 틀림없겠지?
고도를 간절히 기다리는 블라디미르는 고도가 오늘도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소년의 말에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하지만 간절하게 물어본다. ‘내일은 틀림없겠지?’ 도대체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고도는 무엇일까? 전쟁의 끝? 평화?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냐고 묻자 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누구인가? 1957년 등장인물 중에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샌틴 교도소에서 공연되었을 때 1,400여 명에 달하는 죄수들은 예상을 뒤엎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고도가 '바깥 세상이다!' 혹은 '빵이다!' 혹은 '자유다!' 라고 외쳤다. 한편 1960년대 폴란드에서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은 고도가 러시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프랑스 통치 하의 알제리에서 공연되었을 당시 땅이 없는 농부들은 그들에게 약속되었으나 아예 실시되지 않은 토지 개혁에 관한 연극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했으며 “여기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결국 <고도>의 의미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무엇일까?
이 희극을 읽는 내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인생의 따분함을 표현 것 같기도 했고, 근현대에서의 소통 단절된 상황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생각 없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들과, 특히 포조가 럭키를 다루는 거친 행동들은 ‘학대’라고 느껴져 간혹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목을 매달자”라던가 사람을 말처럼 다루는 듯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보여주며, 결국 나의 지금 인생을 헛되이 살지 말란 건가 싶기도 했다. 희극을 읽어서 느꼈던 분위기는 다소 충격적이었으며, 읽는 내내 실제로 눈앞에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했다. 그들은, 그리고 나는 어떤 고도를 기다리고 있으며 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점점 궁금해지고, 직접 보고 싶다.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출처_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민음사), 네이버 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