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STUDIOS글 수 1,063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의식주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돈이 있어야 삶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뷰티풀 그린에 나온 것처럼 육체 단련과 맑은 물과 먹을거리,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감수성, 그리고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간단한 체제들만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의미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곳에 있다면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오염되어 있는 것들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 노트북도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만들어 진 것이고 그런 발전들은 지금까지 어떤 것을 잃어가며 발전하게 된 것이니까. 하지만 하나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왜 우리들은 지금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을 무시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것이다. 어쩌면 이게 그들이 본 우리가 미개인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나는 근거 없이 터무니없게 생각하는 것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본래 자연을 감지 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의 규칙적인 것들을 절기로 만들었고,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은 자연이 흘러가는 방향을 읽고 따라가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계가 없어도 해를 통해 시간을 알 수 있었고 바람을 통해 다음날 비가 오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다 옛날이야기 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 자연을 감지했던 능력이 다시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일어나는 기후변화의 문제들은 잃어버린 자연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다시 일깨워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poetry afternoon 시간에 하자작업장학교 죽돌들과 노을을 보러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예쁜 것들이 눈에 보이고 같이 보고 싶고 나누고 싶은 감정 같은 것 같기도...(...조금 오버같다) 하자작업장학교 일정 상 끝나고 나면 이미 해가 저버리기 때문에 안타깝기도 하고 내가 예쁘다고 느끼는 것을 공유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노을을 보는 것은시를 읽고 아름다운 기타소리를 듣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 같다. ![]()
2009.09.29 06:05:07
흐흐
마루에 있다보면 해가 빨리 지는 요즘엔 빛이 서서히 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더라구. 마루에서 뭘 볼라고 할때 빛의 방해공작 때문에 304로 피해 들어갈 때도 있지만- 나는 그 해가 지면서 유리를 통해서 빤짝빤짝 거리는게 그렇게 이뻐보이던데. 가끔 그 빛이 누군가의 얼굴에 닿을 땐 그 사람 참 이뻐보이고.
2009.09.29 10:25:50
노을이라니, 아주 낭만적인 데가 있구나, 반야는. 그런데 자연과 인공적인 것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생태"에 관한 관심과 안타까움으로 문명을 너무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재단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 인간도 하나의 동물, 짐승으로서 자연과 조우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 그러나 인간 스스로 단순한 짐승으로 살아가지 않기로 한 순간 그래서 자연에 "반응"하거나 "적응"하는 것으로만 살아가지 않기로 한 순간 지금의 고통과 또 더불어 인간적 삶의 기쁨이란 것이 시작하기도 한 것이 아니겠니. <짐승으로서의 삶>이란 때때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낭만적인 단어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자연과, 또 삶을 돌아보는 마음과 능력은 인간적인 삶의 지향이 나은 불행과는 별개의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실은 더 많더라.
2009.09.29 20:26:30
304호에 있는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에 이런 구절이 있다.
(p.13~) 그러나 한 번 자연과 결별하면 인간은 자연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한다. 일단 낙원 - 자연과의 원래의 합일상태 - 으로부터 쫓겨나면, 인간이 다시 돌아가려고 노력해도, 불타는 칼을 가진 케루빔 천사(아홉 천사 중 둘째로서 지식을 맡은 천사)가 길을 가로 막는다. 인간은 철저하게 상실한 전인간적 조화를 찾아내면서 오직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개인으로서든, 인류로서든 결정되어 있는, 본능처럼 결정되어 있는 상황으로부터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 쫓겨난다.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고 미래에 대해서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부여되었다. 인간은 "자신을 아는 생명"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동포를,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미래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분리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자기 자신의 인식, 자신의 생명이 덧없이 짧으며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고 원하지 않아도 죽게 되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보다 먼저, 또는 그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의 인식, 자신의 고독과 자신의 분리와 자연 및 사회의 힘 앞에서의 자신의 무력함의 인식 - 이러한 모든 인식은 인간의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은 이 감옥으로부터 풀려나서 밖으로 나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들과, 또한 외부세계와 결합하지 않는 한 미쳐버릴 것이다. 분리의 경험은 불안을 일으킨다. 분리는 정녕 모든 불안의 원천이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인간적 힘을 사용할 능력을 상실한 채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무력하다는 것, 세계 - 사물과 사람들 - 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나의 반응능력 이상으로 세계가 나를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리는 격렬한 불안의 원천이다...(중략)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이러한 분리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이다. 이 목적의 실현에 "절대적으로" 실패할 때 광기가 생긴다. 우리는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물러남으로써 분리감이 사라질 때에 완전한 고립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인간이 분리되어 있던 외부세계도 사라져 버린다. 인간 - 모든 시대, 모든 문화의 - 은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 |
|||||||||||||||||||
시골에서 학교 끝나고 집으로 자전거 타고 갈 때면 노을이 빛나고 있어서 그걸보면서 참 좋아라했었는데,
여기와서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갈 때면 언제나 깜깜한 밤에 자동차 라이트들을 피해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 안에서 내릴 때를 기다리며 스톱벨의 바알간 빛을 보는 게 전부가 되어버렸어
길찾기 예비학교 때는 4시에 끝나서 집에 갈 때 노을이 보였는데,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고 처음 떨어진 도시에서 그저 외로움에 몸서리 쳤던 기억이 나는군.
노을 보러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