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나는 어떠한 무리로 되어있으면 모두 공동체인 줄 알았다.
최초로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 것은 집(가족), 학교를 통해서이다. 내가 경험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있었고 일방적인 관계였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로서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들에 불과했다. 나는 아이였고 당연히 어른(엄마, 아빠)의 말을 들어야 하며 그것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경우 난 나쁜 아이였고 어른인 엄마, 아빠에게 미움 받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는 말들은 나와 함께 나눈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어떠한 설명 없이 "~해라" 이였고 나는 왜 그러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어찌하였든 그 말에 따라야 했다. 하지만 난 납득하지 못했고 또한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복종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계속해서 숨기려 들었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솔직한 관계를 맺지 못하였던 것 같다. 난 이러한 일방적이고 깔끔하지 않은 관계가 너무 싫었다.
학교라는 공동체 또한 일방적인 관계였다. 학교에서는 지향하는 점이 있었고 학교 운영체제는 학교의 지향점을 향해 진행되었다. 학교에서 지향점을 향해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과정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생태'가 모토였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은 "꾸밈없는 삶"이었다. 왜 생태적으로 사는 것이 꾸밈없는 삶과 연결이 되는지 항상 이해를 하지 못했다. 또한 각자가 생각하는 '생태'는 분명 다를 것인데 학교는 그저 학교가 생각하는 생태로만 진행되어 갔다. 그러니 나는 공동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튕겨져 나왔다.
내가 집과 학교라는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고 '공동체' 혹은 '우리'라는 단어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괜한 무리의식에 잡혀 있고 공동체에서 지향하는 점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척될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라는 단어에는 서로 돕고 사는 관계를 생각하였지만 결국에는 일방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며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거부감을 느꼈다. 또한 내가 공동체에 들어가는 순간 내 개인이 사라지고 공동체 의식에만 잡혀 사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난 의식적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어떠한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다 메솟과 멜라캠프를 접하고 나서 나는 다시 공동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들은 '우리'와 '공동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였다.
그들은 왜 그렇게 '공동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였을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했고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였다. 그들은 이러한 위치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고 위험에 처해있었다. 또한 그곳은 독재에 의해 소수민족들이 계속해서 배척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의 민족의 문화, 전통의상, 춤, 음식 등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싶어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신의 민족을 말할 때 '우리' 혹은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또한 그들은 계속해서 소수민족이 배척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은 '리더'가 되어서 자신의 민족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어 하였고 자신의 민족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혹은 '공동체'에 대하여 자주 말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상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질문이 들었다. 그들이 갖추고 있는 형태가 과연 공동체일까?
옛날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나의 언어로 다시 정의해본다면, 공동체란 공통된 생각이나, 상황들을 계기로 어느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사람들이 그저 하나의 무리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 그 지향점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함께 맞추어 나가고 그것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의 지향점을 두고 그것을 위한 과정을 함께 맞추어 나가고 있었을까?
물론 그들은 하나의 뚜렷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원하는 점이나, 요구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었다. 모두 같은 대답이었다. 독재가 그만 끝나고 민주주의가 되기를 원하고 난민이나, 불법체류자의 위치를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하였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과정을 함께 걷고 맞추어 가고 있었을까?
멜라캠프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캠프는 하나의 공동체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들의 원해서 만난 모임이 아닌 난민,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모임이었지만 모두 자유를 원하고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을 위해 다 함께 힘을 합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상상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였고 나의 고정관념일 뿐이었다.
멜라캠프는 어떠한 공동체보다는 그냥 하나의 마을에 불과하였고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향하는 것을 향해 함께 도와가는 것이 아닌 재정착을 위한 잠시 동안 있을 곳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을까? 왜 그들은 내 예상과는 달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뭐라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과 함께 나눴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측을 해보면 너무나 급박한 상황 때문이지도 않을까? 지향점은 같지만 그것을 위해 함께 어떠한 엑션을 취하기에는 너무 위험했고 그것을 하기 위해선 굉장한 각오가 필요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막막했었던 것들도 있지 않았을까?
이들의 공동체를 보고 난 다시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고 공동체가 무엇인지 내가 왜 공동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와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를 비교하게 되었고 이전에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가 아닌 대안적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며 대안적 공동체는 절대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하나의 개인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이때 다양한 개인들의 공통점은 지향하는 점이 같으며 이 지향하는 점을 풀어가는 과정을 함께 해나가겠다는 동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개인을 존중해주고 개인마다 지향하는 점을 다양하게 풀어나가지만 결국 원초적인 것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또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존재의 부딪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럴 때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함께 지향점을 향해 맞추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공동체를 비난하고 계속해서 거부만을 하게 된다면 어떠한 것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향하는 점은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관심조차 없었을 뿐더러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닌 그저 불평을 늘어놓기만 했었다.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나는 그냥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아서 나 혼자 즐겁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떠한 문제에도 쿨하게 대응하였고 그저 그 문제들 때문에 즐겁게 살고 싶은 나의 계획에 착오가 생가는 것 같았다. 어떠한 문제에 섬세하게 살펴보며 어떠한 것이 문제인지 인식하는 것이 아닌 겉으로 보았을 때 왠지 나쁜 것만 같았고 그것이 나에게 피해로 오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저 정부만 욕했었다. 어떻게 보면 피해의식이었는지 모른다. 정부는 너무 강했고 나는 어떠한 힘도 내지 못하는 약자라고 생각하며 정부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면 그저 짜증만 냈었다. 하자에 들어오고 나서 피해의식에 갇혀 어떠한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며 그저 불평만 늘어놓는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 이제 불평만 늘어놓는 것을 그만 멈추고 싶었다. 겉으로만 꿀 발린 소리였고 그러했기 때문에 어떤 누구에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가장 가깝고 일부터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상황에 처해있는 '십대'와 '여성'이었고, 지금까지 그저 차별을 당한다는 이유만으로 불평하는 것을 그만하고 공부를 하고 같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을 하였다.
사실 하자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오고, 싫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공동체와는 다른 구조의 새로운 공동체였다. 단순한 같은 반의 학급친구가 아니었고 언제나 선생님은 말을 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도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선생님'이라는 단어 조차 어색했던 공간이었다.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난 하자에서 '시민'에 대해 생각하고 사회에 주파수를 세우게 되었다. 나뿐 만이 아니라 죽돌들도 각자의 '시민'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다른 것은 개인이 그것을 자신의 맥락으로 어떻게 풀어내고 작업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을 겪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쿨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떤 문제에도 쿨하고 시크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이 쓰이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인지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감수성이 생겼다. 또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무조건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겠다는 각오도 하게 되었으며,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막연한 의망감과 동시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자가 되겠다는 용기 또한 생겼다.
이것들은 내가 생각하는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현실을 인정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어떠한 참여를 하는.
하자에 있는 동안 나는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지금까지 나의 잘못들을 인정하는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잘 살기'위한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사실 이런 경험들을 쉽게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한 부분, 한 부분 씩 계속 들춰보곤 그것을 하나씩 인정하기까지는 항상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고 인정을 하고 나서도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등의 생각으로 그냥 주저앉고 싶은 마음도 컸다. 또한 너무 크고 믿기 힘든 여러 글로벌 이슈를 접할 때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아는 게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가끔은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고 사회에 대한 희망 또한 없는 것 같아 그저 막막해 도망치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망치고 주저앉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나 꿈에 미안하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동료작업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치거나 귀를 막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난 내가 원하는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공동체가 아닌 다른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들을 나의 언어와 맥락 안에서 살펴보고 사회의 문제들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또한 언젠가는 대안적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사회의 문제들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을 위해서 나는 그저 바라고 불평하는 것이 아닌 가끔은 막막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회의 문제들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런 나의 변화는 하나의 첫 출발이다.
사이트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