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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1 내가 직접 메솟에 가서 만난 상황들은 메솟에 가기 전 자료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던 사실과 조금 달랐다. 메솟에 가기 전, 나는 자료 검색을 통해 버마 내 군부독재정치와 인권유린, 88사태 등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정보들을 접한 것은 간접적인 검색을 통해서였지만, 그것들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 충격적인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으며, 버마의 상황에 대해 인식하려 했다. 하지만 자료 검색만으로 무언가를 인식하겠다는 것은 섣부른 생각이었고, 나는 과연 어디까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자료 검색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은 이동학습을 통해 내가 어떤 만남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의 밑바탕이 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몇몇 자료를 통해 알게 된 버마의 현실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어떤 현실에 놓여있는지를, 먼 시대의 연관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내가 어떤 현실을 인식 했는가. 내 자신이 살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버마 사람들의 삶을 봤다고 할 수 없다. 나는 버마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그들 자신의 이야기와 삶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리어 나의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반문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삶의 조건 속에 있을까. 이동학습을 가기 전, 버마 내 상황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상황들을 비교해보면서, 나에게 다름은 어떤 의미일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실제 메솟에서는 다름보다 비슷한 것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다름을 느낀 것은 어쩌면 물리적인 것으로부터였는데, 공간에 대한 다름이었다. 메솟에서 나는 공간의 차이, 상황의 차이가 어떤 삶의 조건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에서의 조건이 맥락은 달라도 비슷한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학생증이 있고 곧 주민등록증이 나온다. 반면 그들에게는 ID카드라는 것이 있다. 그것들은 어쩌면 신분증명을 해주지만 존재에 대한 증명으로는 가치가 있나 싶다. 하지만 내가 만난 친구들에게 ID카드는 존재에 대한 증명이며, 생존과도 관련 있다. 나 역시 곧 주민등록증으로 나를 증명할 날이 올 텐데, 주민등록증은 결코 내가 누구임을 설명할 수 없을 거다. 사실 그런 필요에 의해 생겼지만, 불필요한 삶의 조건으로 나의 삶, 그들의 삶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짓인 것 같다. 나는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와 만남의 내용으로 물리적인 다름을 넘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큰 맥락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만들어 가는데, 나는 어떤 나의 삶의 조건 속에서 생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사실 내 삶의 조건에 대해서는 늘 익숙하게만 생각해왔지만, 삶의 조건이라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다. 지금까지 내 삶에 있어서 ‘조건’은 대개 주어진 것들이었고, 나는 굳이 조건을 선택하거나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 조건들은 당연한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 안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한가지, 내가 선택한 조건이 있다면, 학교와 관한 것이었다, 나는 제도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 제도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비제도를 택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내가 비제도를 택했을 때는 너무 어렸던 터라 자발적인 ‘탈’을 했다고 볼 수도 없다. 내게 ‘탈’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조건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현실이 결코 내 친구 현실의 조건은 아니더라. 나는 그것을 설명해야했다. 내가 일반적인 제도를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이 아닌, 내 입장에서의 설명이었다. 하자에서, 그리고 메솟에서는 그런 ‘내 입장’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내 삶의 조건에 대한 나름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의 학교에 관한 선택은 자발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자발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한다. 이 선택을 함으로서 나는 대안학교 학생으로 불리며, 대안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입장에서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라는 말에 대한 책임감도 느낀다. 이런 생각을 하는 과정은 지금 나의 위치를 확인시킨다. 대안적인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익숙한 환경이자 선택된 중요한 조건이었다. 내가 하자를 택한 계기는 이전에 다녔던 볍씨학교를 딛고 새로운 시도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초반기에 나는 새로운 시도가 나에게는 욕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고, 그 의구심으로 인해 나에 대해, 내가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이 자신 없었다. 막연한 의구심은 학교에서 스스로 나를 배제시켰기 때문에 나는 소속감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학교 안에서 모두가 함께 모이는 자리는 나에게 불편한 자리가 되었고, 나는 코멘트에 있어서 굉장히 방어적인 태세를 취했다. 반면 내가 선택한 공간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나에게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화에 대한 방법만을 찾으려 들며, 결국 내 선택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것에 있어서 모든 것에 방법이 있지는 않더라. 일단 하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이동학습에서 PWO라는 단체를 만났던 것이 기억난다. 버마와 중국 국경지대 쪽의 소수민족인 그들은 ‘Ta'ang’민족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버마 내 군부독재정치로 인한 인권유린과 마약밀매로 인해 변하고 있는 환경, 특히 상황이 여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가정환경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사라짐’에 대해서도 말했다. 나는 지난학기 개인주제연구로 ‘사라지는 것’에 대해 공부했다. 한국에서 도시화로 인해 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고, 고유함에서 획일화되어가는 과정을 간판을 통해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뽑은 키워드는 ‘기억’이었다. Ta'ang 민족은 버마 내 군부독재정치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에 대해 말했다. 차가 중요한 산업이었던 그들의 땅에 댐이 들어서면서 순식간에 그들의 집터와 차공장, 일자리가 사라졌고, 사람들은 갈데없이 밀려났다. 맹목적으로 밀어붙이는 댐건설로 인해 2010년에는 어떤 상황에 놓일지도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사라지는 과정이 사라진 공간에서 사람들은 방황하기 마련이다. 자꾸만 맹목적으로 사라짐의 과정을 생략하는 사회에서 나는 ‘기억’이란 키워드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나의 기억은 사회적 기억의 매개물, 혹은 부가적 장치일 뿐이다. 기억 속의 개인은 늘 사회적인 존재이며, 개인과 사회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억의 주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다” 나는 내 기억을 잘 붙잡아 두고 싶다. 하자에서 우리가 말했던 사회는 너와 나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기억은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우리의 기억이 된다. 하자에서 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다시 낯설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낯설음에서 시작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왜'라는 질문으로 이어가야 했다. 하자는 나에게 그런 계기를 주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는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 내 공간과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없다. 9월부터 시작한 8개월에서 사실, 나는 흐름을 잡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초반에는 '나'를 들춰내어 내 생각들을 구체화시키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썼다. 그때는 '나'에게만 너무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주변 상황을 읽는 것이 어려웠다. 사실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멈출 수 없는데, 이제는 내가 나 혼자만으로는 구성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과 관계 맻는 법을 배운다. 하자에 들어왔을 때, 나는 '새로운 관계, 새로운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에게 새로운 것은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속해있는 공간에서 나의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내가 맻고 있는 관계과 속한 공간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더 중점을 둔다. 내가 속해있는 공간이, 나를 구성하고 있는 조건으로, 나는 세상과 관계맻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매체로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2 지난 학기 나는 ‘시민’에 대해 말했다. 시민문화워크숍을 통해 만난 7분의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그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고민했고, 낯설었던 ‘시민’이라는 단어를 내 맥락에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시민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고 내가 시민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민은 뜻과 움직임의 일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움직임이 필요함을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움직임은 퍼질수록 더 힘이 있다는 걸 알다. 언젠가 히옥스는 ‘기꺼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하자의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는 때’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제안은 나에게는 격려였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한 격려는 ‘함께 살기’위한 기반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함께 살기’라는 말은 하자에 오기 전, 볍씨에서 자주 사용했던 말인데, 볍씨에서 나는 ‘더불어 살리는 사람’이란 말을 좋아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내가 속한 세상과 나의 관계에서 나는 더불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지금 역시 내 삶으로부터 어떤 질문을 꺼내고, 그 질문들을 서로와 함께 구체화시켜가는 것. 그러면서 나와 나의 주위에 대한 사고가 싶어졌으면 한다. 하자에서 나는 이제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공간과 마주치면서,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질문들에 직면하였다. 그 질문들로 나는 자기 삶을 낯설게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와 나의 주위,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설명시키기 위한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내가 하자에서 가장 충돌했던 부분은, 나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한다는 부분이었다. 내가 하려는 말 뿐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신념을 갖기 위해 나는 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매체를 통한 학습을 하면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그림이 나의 매체로,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놓은 작업이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놓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충동과 욕구만으로도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배운 것, 본 것, 들을 것, 만난 것의 경험을 내 언어화시키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경험을 언어화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과 나누는 것을 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하자에서 내가 어느 상황에 속해있는가를 인식하며, 그 상황 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한다. 그 고민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인식에서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생각이 범주가 넓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제는 매체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에서 그 표현방식이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까. 내가 바라는 것의 키워들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내용이 충분하지 않아 더 이어서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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