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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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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2006년 8월, 나는 하자센터에 “세 개의 옛 이야기 꼼꼼하게 읽기” 프로젝트를 참가하러 왔었다. 방학 중 우연히 신문을 읽던 중 하자센터와 관련된 기사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른 결과이다. 3층 311호에서 진행 되었던 수업은 이제껏 들어왔던 문학수업과 다르게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프로젝트 마지막 날에 단지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 당시에 단지가 소개했던 허난설헌의 생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홍낭자의 활력프로젝트로 이어 질 뻔 했던 수업은 다니던 학교가 개학을 함으로서 참여하지 못했다. 현장 학습 신청서를 내고라도 다녀오겠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께서는 아직 너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 너무 이르다. 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2008년 1월, 또 다시 나는 하자센터를 찾았다. “커리어 위크- KBS편”을 참여하기 위해서 였다. 1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여의도 KBS와 하자센터를 오가면서 멘토와 판돌들과 함께 학교라는 틀 안에서 알 수 없었고, 교과서와 적성 검사 표에서만 보았던 직업보다 훨씬 많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리가 있었던 캐치스코프의 영상프로젝트를 통해 실제로 내가 영상을 만들어 보는 역할이 되어 보기도 했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해보면 알 수 있다는 것 이었는데, 해보지 않았으면 판단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 당시엔 할 수 있다 보다 용기가 되고 힘을 주는 말이었다.
캠프 기간동안 우리의 일정을 촬영 해준 원이 만든 영화도 보았다. 총 3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그 중 창문 너머의 별의 끝 부분 원이 고정희 생가 마루에 걸터앉아 허난설헌과 나혜석의 이야기를 하며 말을 했었다. 자기가 태어난 집을 뛰쳐나간 순간부터 이 여자들의 진짜 인생이 펼쳐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라고. 나는 그 때 그 말을 잊을 수 없었다. - 그렇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계속 마음 속에는 진짜 인생에 대해 말하는 하자라는 곳이 마음 한켠에 계속해서 자리하고 있었다. 놀토에는 북카페를 들려 DVD를 보고, 일일 직업체험을 했고 한 발은 하자에 걸친 채 고등학교 1학년을 보냈다. 나의 고등학교생활이 나빴냐면 꼭 그렇지도 않다. 성적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학교 일 특히 대외 활동에 열성이고 반장, 방송부원, 학생회원 감투란 감투는 모두 뒤집어썼다. “이 학생은 타의 모범이 되어......” 라고 시작하는 상을 받는 그냥 평범하지만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학생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건만 나는 내 인생에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어진 인생에 충실할 뿐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일은 남들에 의해서 판단되고 스스로에게서부터 유보시켜왔던 것이다. - 2009년 3월 2일자로, 나는 공항고등학교를 자퇴 했다. 동시에 하자작업장학교 길 찾기가 되었다.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을 나온 순간부터 나는 진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 왔던 감투를 다 벗고 살겠다고 했다. - 본격적인 죽돌 생활을 시작하며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첫 번째로 한 것은 자전적 글쓰기와 인문학이다. 나를 되돌아보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에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해왔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쉽지는 않았지만 자서전을 쓰며 내가 어떤 결로 구성되어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 영등포 프로젝트를 하며,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을 다른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재미난 이야기도, 몰랐던 사실도 알아갔다. 기후변화시대의 리빙리터러시 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기후변화라는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는 개발이라는 것이 비단 아마존과 북극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것 뿐 아니라 내가 살던 동네를 재개발정책으로 잃게 되었다는 것을 누구에게 호소 할 수 있었을까. 지금 또는 앞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이 세상 곳곳에는 벌어지고 있는 문제가 더 이상 남 일이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얽혀 있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듯이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있었다.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현재 상황을 다시 이야기 해보는 과정을 통해,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작업장학교에 있는 동안은 죽돌 들 스스로 차별화나 특수화가 아니라 서로의 몸과 마음이 함께 협력하는 방법을 탐구하도록 한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마주하는 첫 번째 과정이었다. - 캠페인. 성보 씨와 함께한 시나리오 워크숍과 프레드랑 했던 워크숍의 기억도 되살리며, 반야의 제안으로 영상 팀은 팀 트레이닝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코펜하겐 정상회담을 목표로 한 캠페인 영상은 Tck Tck Tck , wake up 이라는 구호를 빌려와 우리는 정선에서 그리고 낙동강에서 몸으로 TCK TCK TCK 이라는 글자를 만들고, 우리가 만들었던 선언문을 들고 사람들에게 참여를 제안하는 활동을 했었다. (계속)
-part 2. figure out. 길을 떠나, 답을 구하러 (정선에 이어 시공간을 이동한다.)
하나를 둘러싼 여러 가지 하나들.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국경이 허물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비행기와 인터넷을 통해 보다 쉽고 다양하게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거나 시시각각 새로운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버마의 독재, 폭력, 강간, 인권유린의 무자비함. 눈으로 보아도 실감 할 수 없고 육성으로 들어도 이해 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접 몸을 담갔던 경험은 애석하게도 2010년이라는 시간이 현재의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홍콩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굉장히 설렜던 기억이 난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여행에 대해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표현했다. "뜨고 뜨는 그 순간 내가 발붙이고 있던 땅은 작고 오밀조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을 비행한다니 땅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그 곳 땅에 내리면 아마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아마도 나는 언어, 문화를 넘어 지구촌이라는 끈끈함을 통해 소통하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야기에서 물론 많은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을 하였다. 확실히 우리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었고 저마다의 문제로 굉장히 복합적인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변화를 도모하려는 Youth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도 있었다. 홍콩에서 3일의 컨퍼런스 기간은 나에게 figure out, against the wall, change start with you의 다양한 구호와 함께 Youth empowering을 격려하며 막을 내렸다.
메솟에 있던 9일의 시간 동안 우리는 하루 많을 때에는 4개, 총 15개의 단체 또는 학교를 방문했다. 크게 교육, 인권, 정치, 의료지원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은 지역간의 갈등과 버마 안과 밖에 있는 청소년의 교육환경, 핍박받고 있는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 등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지금 버마에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어떤 단체는 독재정부에게 강하게 저항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청소년의 교육을 신경 쓰거나, 그 둘 사이에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아주며, 각자의 경험과 사실들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며 버마의 올바른 정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메솟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불법이주민, 공식적으로 국적 없는 난민의 상태이다. 자신들이 몸담았던 사회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경험을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버마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탈주를 감행한 사람들이 다시 버마 안에 있는 공동체와 사회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 작업장학교에서 나는 사회 안에 속해 있는 구성원으로써 나의 시민 됨을 이야기했었다. 내가 속해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전에 인식하고 있던 범위가 나와 너, 내가 선택한 하자작업장학교, 기후변화 시대라는 큰 틀의 사회 속에서 시민 됨을 생각했다면, 이곳에서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넓고 복잡했다.
급진적이고 열성적인 NGO의 어른들과는 사뭇 다르게 호기심 많고 발랄한 아이들에게 SPDC가 주는 위협의 그늘은 없는 듯해 보였다. CDC친구들과 국경다리를 갔을 때, 한 친구가 나에게 “어서 빨리, 버마에 가고 싶어. 나는 태국에서 태어났고 버마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이 먼저 태국으로 넘어왔고 그리고 자신은 메솟에서 태어나 줄 곧 메솟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친구는 불법 이주 2세대인 셈이다. 듣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해 공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조국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느껴져 숙연해지기까지 했었다. 이같이 지금 현재 메솟과 멜라 캠프 안에는 해진이와 같은 2세대들이 많아졌다. 마웅저 선생님이 만드신다던 직업교육학교의 입학 조건 중 하나는 제 3 국으로 재정착을 하지 않고 메솟이나 버마 안에서 활동을 지속할 학생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하자작업장이라는 공간은 탈학교를 선택 하게 된 문제적 상황에 대안이자 배움의 공간이다. 그리고 나도 여기서 했던 배움과 경험들과 공간, 사람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메솟과 난민촌이라는 공간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공간이 아니라면, 그 곳 사람들 모두가 동의한 가치와 원칙에 반기를 들 때, 그 사람에게 1세대가 느낀 문제적 상황에 대한 가치와 원칙을 강요 할 수 있을까?
지금 같은 작업장학교에 다니는 죽돌도 여러 가지 원칙과 생각들로 앞일을 계획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의 탈한 경험으로 그들의 삶을 함부로 평가 할 순 없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함부로 얘기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계속)
part 3. change start with you. (다시 떠날 여정을 하는 나.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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