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 찾기 2학기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지금 하자작업장학교의 디자인팀에 있다. 길찾기 과정을 끝내고 주니어 과정을 지원하면서 디자인팀을 선택(?그때 나에겐 선택이었다.)한 것은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연 팀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영상은 예전에 관심이 있어서 도시 속 캠프 같은 것을 통해 해보기도 했지만 그 관심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디자인은 예전부터 패션디자인에 관심이 높았고 실제로 옷을 만들기도 했었기 때문에 별로 의심의 여지없이 디자인 팀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작업장학교에서 하는 디자인이 옷을 만들거나 포토샵 넘버원이 되는 기술을 배우지 않는 곳이라는 것은 길찾기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지원을 하면서 당시 디자인 팀 담임판돌이셨던 세이랜에게 디자인 팀에 관하여 몇가지를 질문했었다.(기억으로는 디자인팀에서는 주로 어떤 것을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디자인 팀 내의 관계 같은 정말 이상꼴리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나에겐 ‘관계’라는 것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으므로.) 세이랜은 사람들이(물론, 나도 포함) 디자인하면 떠올리는 매우 고정된 이미지를 얘기 해주시면서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을 목표로 하는 곳, 하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매우 구체적인 일도 한다.’라는 언뜻 모호하고 어려운 얘기를 해주셨다. 그렇지만 그 말은 지금은 알 듯 모를 듯하기도 하면서 지금 내가 공부하고 고민하는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1학기 때는 갈팡질팡했었다. 어떤 사람의 말로는 그 시기가 바로 ‘길찾기 2학기’라고 하더라. 적절하군.
인문학 프로젝트는 크게 ‘愛錢別親’과 ‘기후변화시대 : LIVING LITERACY’가 있었는데 그때는 스무 살을 앞둔 사람으로서 돈에 대한 고민, 어렸을 때부터 친환경 식품을 먹고 실천을 위주로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기후변화시대라는 큰 맥락 안에서 그 실천들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디자인 팀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한 것은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이다. 말 그대로 내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에게서 디자인으로 재발견을 해보는 것이다. 그 주제로 나는 ‘눈’이라는 것을 선택했었다. 원래도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눈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나아가 눈빛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주제이다. 사람들하고 꾸준히 교류를 하는 것 역시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눈을 그려달라고 하고 수집을 해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 나의 문제는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나 디자인 팀의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이 ‘나의 디자인’이 되지는 못했다. 방식 또한 일방적이어서 작업을 하면서도, 하고 나서도 혼란을 겪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이 길찾기 2학기를 디자인팀 안에 있으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혼란이 있었는데, 그때 1,2학기들에게 주어진 프로젝트가 바로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이었다. 그때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혼란 안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하는 것 따로, 혼란스럽고 고민하는 것 따로가 되다보니 확실히 이게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기엔, 내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중요시하고 그 안에서 상대방의 눈을 보게 된 것,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눈을 그려달라고 해서 수집하는 일에서 중요하다고 깨달은 것은 그저 내 스크랩북을 만들기 위한 일방적인 방식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디자인 팀들과 리뷰를 했었는데 그런 코멘트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눈 수집을 끊을 생각은 없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꾸준히 해보자는 것이다. 그때 그 순간에는 정리가 안 되고, 혼란 스럽고 내 방식들에 대한 회의가 있어도 그걸 계속 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그것을 어떻게 내 표현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해보면서 고민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에세이로 마지막 날까지 부랴부랴 완성하며 나는 길찾기 2학기를 수료했다.

 본격적인 1학기, 주니어 2학기를 지원하면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 1학기를 돌아보면서 내가 한 게 뭔가 싶기도 하고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 동생인 구나가 1학기를 지원하면서 그동안 걔는 내 1학기를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으로 지원을 했을까. 나랑은 다른 사람이기는 하지만. 스무 살을 앞두고 앞으로 뭘 할지, 먹고살 걱정과 맞물려 지원 마감일을 몇 시간 지나서 원서를 냈다. ‘이번에는 탱자탱자 놀지는 말자,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생각해보니 그건 참 막연한 각오다. 그 각오는 ‘그래서 뭘 할 건데?’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학습 계약서를 쓰면서, 개인연구주제를 정하면서 나는 ‘삶 디자인’이라는 주제를 물었다.

삶 디자인. 이것만큼 막연하고 모호한 주제가 어디 있나. 그리고 그에 대한 중간 결론으로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외부적인 것으로 인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끌고 당기고 하는데, 그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라는 매우 장황한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시민문화 워크숍인 ‘기후 변화 시대 : LIVING LITERACY’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을 하면서 생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질문과 동일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그러기위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것과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동안 해왔던 작업과 프로젝트, 만남들 그리고 수료하기 전 하고자하는 것이 그런 부분이다. 그리고 인식을 어떻게 지속하고자하는 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먼저 우리는 정선에 다녀왔다. 1학기 때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을 통해 혼란스러웠더라도 ‘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눈을 그렸다면, 정선에 가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눈으로 시선을 갖기를 시도 했다. 그리고 정선에세이, 사진작업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까지. 그것은 아직 나의 관점이라든가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선의 상황을 보려고 애씀과 동시에 그 상황이 내가 하고 있는 것들과 어떻게 닿아있을지를 고민한 것이다.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타는 3분 동안 그 동선에서 묘한 괴리를 느꼈다. 지역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만들었다던 모노레일, 강원 랜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사람들은 뭐일까? 하는 질문을 했었다.
모노레일도 디자인의 산물이다. 편리를 위해서 디자인 된 모노레일이 제공하는 3분간의 시간, 거리, 이동은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충격이란 자신의 삶의 흐름을 지켜내고 이어나가는 힘이라던 삶 디자인이 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느껴진 것이었다. 결론을 내리면서 모든 사람들은 외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각자 자신의 삶을 디자인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 타의로 의해서 ‘사이’, ‘중간’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삶을 디자인 한다는 것이 과연 내가 정의 내린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어떤 환경에서든 그 고민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던 정선여행이 끝난 후 우리는 ‘시민문화 워크숍 : 세계를 구한 시인들’ 정리 에세이와 개인연구주제에 열을 올렸다.시민문화 워크숍에서는 7명의 시인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살아오신 얘기, 그분들이 하시는 일을 통해 살아가시는 얘기들을 들었다.
이때, 디자인팀은 이 워크숍의 포스터와 워크숍 디자인을 부탁받았는데, 한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그날 있을 시인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것은 나에게, 디자인팀에게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후에 디자인팀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될 때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을 통해서 디자인을 ‘통해’무언가 말한다는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디자인 작업이 나오기 까지는 다양한 과정들이 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야 하는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 하는 부분은 뭔지,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 이 과정에 담긴 이야기가 바로 나와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것을 어떻게 잘 지속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 자신이 이 시대의 ‘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기도 했다. 이 논의를 충분히 한 뒤에야 구체적인 작업을 실행할 수 있다. 후에 우리가 하는 작업은 매우 구체적인 것으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디자인 팀의 시점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이 있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에 조금 더 확신이 서기도 했다. 내가 하는 고민들이 그냥 떠도는 고민이 아니라 내 세계를 넓혀가면서 나에 대한 힘을 기르게 해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 세계,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뜬 것 같다.

반 학기가 지나고 우리는 태국 메솟 국경지대에 있는 버마 난민 캠프에 갔다. 그곳의 사람들은 버마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있고 말 그대로 ‘난민’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가기 전, ‘가서 서로의 다름만 확인하고 오지는 말자’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서 윙윙거렸다.
메솟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ACTIVITY를 하면서 ‘메솟에 왜 왔냐, 여기서 뭘 하고 싶은 거냐’라는 질문을 들으면서 약간의 혼란과 내가 메솟까지 온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고 저녁에 리뷰를 하면서 그것이 시민문화 워크숍, 개인연구주제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 봤던 책, 정보들이 내 세계를 넓혀주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어릴 적, 정말 ‘나’가 가장 중요했을 때의 나의 세계엔 나와 ‘너’뿐이었다. 나와 가족, 친구 그리고 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그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집, 친구를 통해서, 학교 안에는 또 그것들을 통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는(이상한 표현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청소년카드라는 것을 만들어야했고 컴퓨터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드나들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과목들이 있었지만(아름다운 말과 글, 민주시민 등) 밖에 나가 뛰노는 것에서 이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과정을 겪은 친구들 역시 고민하게 되는 것이 조금씩 변하고 확장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이런 변화들이 사건으로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내 이야기로 만들어 가기 때문에 나도, 내 친구들도 변화를 내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업장학교에 와서 디자인을 하고 있고 나는 어느덧 주민등록증이 생기고 드디어 사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접 돈을 버는 일을 해보기도 했다.
나와 내 주변에 생긴 많은 일들과 변화를 겪으면서 그것들은 계속 밖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내가 사람들을 더 만나고, 얘기를 나누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고, 직접 다른 공간에 가보기도 하고, 디자인 작업을 통해 무얼,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면서 내 주변 세계는 점점 넓어졌다. 그런 이유로 내가 메솟에 와 있는 것이 전혀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메솟에서 친구들은 종종 ‘너희에겐 기회가 있다. 그러니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기회가 없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 말은 마치 내가 넓혀왔다고 믿었던 주변 세계에 대한 의미를 또다시 자꾸만 되묻게 되는 것 같아서 나는 또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디자인팀 ACTIVITY를 같이 했던 친구들 중에 퍼투와 루루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가족이 모두 멜라 캠프 안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자기 민족을 위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민족들이 너무나 가난하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또 버마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돌아가고 싶지만 그곳은 우리들에게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처음엔 그 상황을 우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아무리 내가 메솟에 간 이유를 생각을 해도 마지막 날까지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다르다’고 말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 있는 건가 싶었다.
확실히, 지금 나의 상황, 조건과 그들의 상황과 조건이 다른 것은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난민’이라는 입장, ID카드가 있어야만 그나마 제한된 이동을 할 수 있는 현실, SPDC(버마군사정부), 태국정부 때문에 정치관련 얘기나 하고 싶은 말조차 마음껏 표현하기 힘든 현실, 민족의 지도자, 선생님, 과학자가 되고 싶으나 실제로 그것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어떤 계획과 실행은 이루지지 않는 구조. 눈에 보이는 환경의 다름이다. -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자, 만나고자 메솟에 갔던 것은 다름의 확인이 아닌 넓어진 내 세계 안에 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안 것이다. 그리고 그 인식한 상황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 디자인’의 내가 ‘삶’에 더 집중하게 되어서 생각하게 되고 내 삶의 범위라는 것이 어디까지를 얘기하는 것인지,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된 것 같고 내가 생각하는 삶 디자인을 앞으로 풀어가는 방법인 것 같다.
(‘삶’이란 말을 조금 더 좁혀보면 ‘일상’이 된다. 그리고 그 일상들이 모이고 모여 삶을 이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일상을 얘기 할 때 어디까지를 이야기할지인 것이다. 그건 내가 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내가 함께 살고 있다고 했을 때,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봤을 때, 내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나의 일상을 넘어 앞으로 일상의 이야기로 가져올 것인가이다. )

 

 

<다양성>

2. 디자인, 앞으로

 

본격적으로 개인주제연구에 들어가면서 나는 노먼 포터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디자이너로서 가져야할 역할, 책임, 디자인을 읽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는 디자인이라는 매체를 가진 사람이다. 그 매체는 바뀔 수도 있으며 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메솟에서 디자인팀으로서 ‘디자인팀 ACTIVITY’를 진행했었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내 시선을 갖는 시도를 하고 이야기를 작업해보는 것들을 했다면, 이번엔 작업을 통한 만남을 했다. 실제 메솟에서 ‘삶’에 대해서 집중해서 생각하려는 것들이 있었다면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각자 가지전 생각했던 질문들을 가지고 버마 친구들과 디자인팀ACTIVITY를 준비했다.
그렇게 2회의 ACTIVITY를 진행하면서 친구들 말도 많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준비한 ACTIVITY를 통한 만남 자체를 디자인으로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 그 만남은 우리가 준비해간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작업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마웅저 선생님께서 메솟에 하자 센터같은 청소년을 위한 센터를 만드신다면서 직업 프로그램으로 미용기술과 차 수리 같은 엔지니어기술을 배우게 하고 싶다고 하셨다. 이곳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렇게 ‘실질적인 기술’인 것이다. 그 기술을 터득해서 메솟이나 버마에 취직을 해서 당장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끔. 사실, 맥락은 다를 수 있지만 요즘 나는 그 ‘실질적인 기술’에 대한 필요를 느낀다. 아니 뭐, 필요라기보다 나도 뭔가 하나쯤 잘 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있어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살기’가 되면 참 좋으련만…. 왜냐하면 내가하는 ‘삶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때에, 그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중 무엇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그 매체가 디자인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디자인’이라는 의미는 내가 생각하거나 생각하고 싶은 ‘삶 디자인’과는 다른 의미인 것처럼 그들에겐 디자인이 절실하거나 필요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메솟 리뷰를 하면서 ‘문화 작업자’ ‘매개자’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가 시민문화 워크숍을 하면서 작업했던 과정이 그러했고 메솟에 가서 ‘우리는 디자인작업을 하지만 그 전에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지, 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했듯이 나는 그 역할을 내가 가진 매체를 통해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디자인’이라는 매체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디자인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래서 이제까지 고민했던 삶 디자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정의내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외부에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내 삶을 이어나가고 지켜나가는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있다. 다시 정정. 모든 사람은 아니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란, 자신의 일상을 만들고 그걸 또 지속,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지속하는 것까지로 그전에는 생각을 했었지만 최근 들어 ‘나의 정의’또한 있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녀오고 나서 생각하면서 내 안에서도 내가 하는 디자인의 구체화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 하고자 하는 바를 통해 다시 정리를 해 본다면, 삶 디자인이란 일상을 이어나가는 힘. 일상은 표현된다. 그리고 표현되기 때문에 나도 내 일상에 대해서 지속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 - 정선 - 시민문화 워크숍 - 메솟(ACTIVITY).

저 흐름 속에서 나도 나름대로 힘을 연결시키려 애썼던 것 같다. ‘눈’이라는 주제로 시작해 뭘 보기에 앞서 내 눈과 너의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눈빛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에 집중. 그러다 점점 눈을 뜨는 시도를 하면서 내 주변의 것들을 보려고 했던 것, 그리고 내가 경험하고 본 것들은 뭔지 정리 작업을 하고, 이제는 디자인이라는 매체를 통해 내 일상,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사실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것 같다. 앞에서 ‘정하면 된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나는 내가 보게 되고 듣게 되는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내 눈으로 제대로 보고 싶다. 그리고 방관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내가 넓히려 했던 내 세계 안에는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한 일을 내 친구에게 일어났다고 생각을 바꾸면, 그건 내 일이 되고 나는 때때로 그것에 대해 말이 없기도 하고 말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인식하게 될 문제들은 다양하겠고 그것들이 모두 각자 존재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그것들을 따로 인식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 문제가 있게끔 한 구조를 인식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인식한 것으로 하여금 디자인이라는 매체로 표현할 줄 알았으면 좋겠고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 수 있는 일상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