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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에세이(미정)
나에게 ‘세계’는 커다란 무엇이고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커다란 무엇? 이라는 말이 떠올라 애매모호한 말을 했는데 그런 말을 했던 건 지금까지 나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세계’ 라는 이미지가 워낙 광범위 하게 넓고 크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세계라는 이미지에 대한 답을 한 거였다. 좀 더 생각하고 나서 세계는 내가 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기후변화시대가 현재 빠르게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나름 넉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넉넉하다고 하는 건 충분히 먹고도 남고 옷들도 넘치진 않을 정도로 넉넉하게 있고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집이 있는 참 좋은 조건들이 내게 있다. 하지만 그 것 또한 한 없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이것도 있어야 하고 저것도 있어야 하는 끝없는 욕심이 생기곤 한다. 그럴 때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들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인 최근 아이티 지진부터 북극 빙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마존은 불타 없어져 가고 한 쪽에선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그 사실들을 매일 보고 들으면서도 왜 그런지 내 몸과 마음이 쉽게 따라주질 않았다. 집에서 나는 워낙 친환경 제품사용과 친환경적 생활이 익숙해져있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건 엄마의 영향이 큰데 내가 초등학교 4~5학년쯤부터 생협이라는 곳에서 파는 유기농 식품과 친환경 제품들을 사용하게 되면서 조금씩 집에서의 생활들이 친환경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처음엔 향기 있는 일반 샴푸도 아니고 치약도 거품은 안 나고 린스대신 식초를 사용해야 한다든지 등등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 없이 짜증만 내다가 어느새 그런 환경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갔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하루 24시간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칠만한 행동을 하는 것만 해도 몇 십 개는 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익숙하게 인스턴트 플라스틱 제품들, 종이컵과 나무젓가락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집 밖에선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너무나 많이 오픈되어있었고 한 번은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쩔 수 없이 그런 제품들에다 소비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집에서만 친환경적이게 생활을 한다고 나아지는 게 뭘까 싶으면서 한 동안은 집에서 일반 샴푸를 쓴다던지 드라이기를 사용하면서 가족들에겐 말하지 않고 나 혼자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세상/세계에 반항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기후변화시대를 내가 더 부추기게 되는 모습이니 괜한 반항이었다는 걸 깨닫고 바로 그런 생활을 끊고 제자리로 돌아왔었다.
그러면서 지난 학기 하자에서 했었던 기후변화시대 living literacy와 이번 이동학습 중 홍콩 MaD 컨퍼런스에서 바꾸다 ‘change’ 라는 말을 참 많이 듣기도 하고 쓰기도 했는데 홍콩 MaD 컨퍼런스에 change maker들이 말하는 change가 내게는 어떠한 정해져 있는 틀을 깨고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말로 들렸고 통해서 나 혼자서라도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영향을 끼치기 전에 다시 한 번 나에게 정말 나 하나쯤이었는지, 나 하나로 인해서 피해를 받게 되는 그 누군가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었고 이런 생각들을 할 때 조금씩 기후변화시대가 나아지길 희망한다. 그래서 난 ‘지금’이란 말이 걸리긴 하지만 내가 지금부터 기후변화시대를 더 나아지게/ 좋아지게 바꾸기 위한 내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은 뭐가 있을까? 기후변화시대 living literacy 프로젝트 때 정했던 약속을 지속적으로 지켜가는 것 그리고 디자인 팀에서 계속 얘기를 꺼냈었지만 시작해보지 못했던 수저집 만들기. 이미 과테말라의 트라마여성분들께서 해주시고 계시지만 내가 뭔가를 꾸준히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서 아쉽게도 만들지 못했던 수저집 만들기에 대한 미련도 남아있고 늦었지만 해보고 싶다. 이동학습을 가기 전에 메솟, 멜라의 정보들을 보고 들으면서 생각했던 건 과거가 아닌 지금 그 친구들은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서로 다른 각자의 세계, 조건에서 살고 있는 내 또래 친구들과 나는 어떤 점에서 공통되는 부분이 있고 다른 게 있다면 어떤 게 다른지 알고 싶었다. 메솟 CDC 친구들 중에서도 SAT(학생회)친구들과 우리는 같이 함께 단체들도 만나고 활동하는 시간들이 더 많았다. 나는 그 시간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늘 지금과 같은 시간들이 그 아이들에게 일상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왜 그때 난 그 아이들에 일상이라고 느꼈을까? 하지만 우리가 와서 새로운 경험들을 해서 좋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미안해졌고 또 친구들의 상황이 어떤지 얼마만큼 제한되어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디카드 없이는 자기 자신이 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불법이주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고 경찰에게 붙잡혔을 때 풀려나기 위해서 많은 돈을 갖고 다녀야 한다는 것 가기 전 들었던 정보이긴 했지만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까 왠지 답답했다. 나와 똑같은 학생이지만 그 친구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했을 때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 말했던 “너희는 너무 행운아, 운이 좋은 아이들이야 부럽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티는 내진 않았지만 나는 그 때 그 말에 왠지 동감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내가 행운아인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메솟에 있는 동안엔 그 아이들에게 나는 어디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있고,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풍부한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고 환경이라는 조건 면에서 다른데 그래서 ‘행운아’라기 보단 ‘부럽다’에 동감 할 수 있었다. 그 곳에 살면서 친구들에 기분이나 상태들이 어떨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며칠 동안 그 친구들과 조건을 바꿔서 살아 보게 된다면 나가는 게 두려울 것 같고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것에 답답할 것 같다. 만약에 시내에 나갔다 오는 날에는 언제 경찰에게 붙잡히게 될지 모르니까 하루 종일 긴장감에 휩싸일 것 같다. 그래서 그 친구들에겐 그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게 우리에게 한 번씩은 질문했던 ‘꿈’이 아니었나 싶다. 미진이라는 친구가 나에게 너의 꿈은 뭐냐고 질문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내 꿈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영어실력이 좋지 않다보니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body language를 사용했지만 잘 전달된 것 같진 않았다. 내가 미진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내 꿈은 저번 시민문화워크숍 에세이에 내가 맨 마지막 부분에 ‘꿈’에 대해서 썼었는데 춤을 추면서 춤이 나의 언어가 되고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은 아직도 있다. 하지만 꿈 한 번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어쩔 땐 정말 이게 내 꿈인지 의심하게 될 때도 있다. 그리고 요즘엔 또 다른 꿈이 내게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 이 꿈을 꾸게 된 건 이동학습을 가기 전부터 슬금슬금 찾아오기 시작했고 아직 ‘꿈’에 자리 잡았다고 확신할 순 없다. 재료가 딱히 주어진 건 없고 어디서나 주어진 조건에서 재료를 구해서 내 주변에 있는 자연을 그리는 그림쟁이가 되고/하고 싶어졌다. 꼭 자연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것 하나하나 내 느낌의 그림들을 그려보고 싶다. 집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나를 보면서 답답한 도시가 아닌 탁 트인 곳으로 잠시 나를 데리고 다녀오고 싶어졌고 그러다가 예전부터 꾸준히 취미로 모아두었던 그림그릴재료들과 다이어리 재료들이 계속 쌓여가기만 하는걸 보고 내가 그림 그리는 거에 손을 한참동안 놓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어 하는 걸 보니 ‘꿈’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메솟과 멜라에서 만난 내 또래의 친구들과 희망하고 있는 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제일 기억에 남았던 꿈은 애들이 말했던 ‘지도자’였다. 대통령은 들어봤지만 지금 까지 한번도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라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그 아이들은 자기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지켜내고 싶다고 했고 그 아이들이 말한 ‘지도자’ 라는 게 그 곳에서 나는 ‘구하다’라고 해석되었다. 최근 들어서 한국에서 지도자/리더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인상부터 찌푸려진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칭 지도자로 되어있는 한 사람이 세계 아니 나라를 구하기는커녕 자기들 부류만 잘 먹고 잘 살게끔 나라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 상황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얘기들을 들어보면 대부분 은근히 그 부류들과 뒷일이 많다는 말을 보게 되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그래서 한국에서 리더, 지도자란 말을 들으면 좋은 시선도 있긴 있지만 대부분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들로만 보인다. 하지만 메솟과 멜라에서의 지도자의 느낌이 달랐던 건 내 또래 친구들이 자신의 민족을 위해서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려고 하는 게 자신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를 통틀어서 얘기를 하는 걸 보고 혼자가 아닌 모두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바꾼다는 것을 넘어서서 구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이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래에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어 세상을 구하게 될 수 있기를 빈다. 나에겐 바꾸다와 구한다는 게 크게 다른 의미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 두 개의 단어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내가 느낀 건 경험을 통해서 두 단어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우리가 지난 학기 했었던 기후변화 프로젝트 때 작은 실천부터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 기후변화시대를 바꾸기 위해 캠페인을 했었던 것과 이번 이동학습 홍콩에서 첫 시작부터 마지막 날까지 change start with you를 외쳤던 것과 지난 학기 시민문화워크숍에서 워크숍 타이틀로 세계를 구한다는 말을 썼던 것 그리고 메솟에서 방문한 NGO 단체들을 만나면서 구한다는 말을 실감했던 부분들 한국에서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단체들의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모습들을 보고 들으면서 군부독재로부터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받기를 원해서 바꾸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바꾼다는 걸 뛰어넘어서 전체적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구해내려고 한다는 걸 느꼈고 이 경험들을 통합해서 내가 생각했던 이 둘의 역할은 서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의 세계를 바꾸고 구한다는 일은 내게 있어서 인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세계를 바꾸고 구한다는 일에 대해 일찍이 인식을 한건 아니었지만 이번 이동학습에서도 그렇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프로젝트들에서도 세계를 구한다는 말이 직접적으로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나 그리고 우리들이 계속 인식하게 되었던 부분이라고 본다. 지속적으로 인식을 하다보면 의식으로 바뀌게 되고 비로소 실천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나의 세계를 내가 바꾸다 보면 타인의 세계/삶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다녀온 그 나라의 상황들을 보고서 다름과 공통점을 찾아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삶에 적용시켜서 내가 어떤 걸 해줄 수 있을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과정들이 쉽게 일어나진 않지만 내가 어떤 상황이나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러한 과정들은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곧 사회로 나가게 되는 시점에서 막연히 사회로 나가게 되었을 때 뭘 해야 할지에 두려움으로부터 구하고 바꾸기 전에 자기마음가짐이 그리고 계획이 필요할 것 같다. 솔직히 사회에 나간다고 하니까 그 다음 계획을 짜는 거에서 조급함을 느낀다. 슬슬 고민했어야 하는 부분인데 막상 이렇게 시간이 성큼 다가오니까 다음 계획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하자에 들어오기 전, 내게 하자라는 세계는 없었지만 발을 들인 다음부터는 나의 세계로 들어오게 됐고 집 다음으로 유일하게 내 몸, 마음, 생각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곳이 되었다. 나는 하자에서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나의 모습들을 제일 많이 발견했었던 것 같다. 내가 발견한 나의 모습은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처음 겪는 일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나 안에 갇혀 있던 나. 뭔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 자책하기만 했던 모습.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이제서라도 알게 된 나’였다. 특히 이러한 모습들을 발견 할 때는 글을 쓰게 될 때, 에세이나 리뷰를 쓰면서였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데 처음에 난 그런 시간들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힘들었었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으며 쓰던 글은 하자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름 썼다고 썼는데 다시 내게 ‘왜’, ‘어떤’ 질문들이 쏟아질 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생각들이 혼란스러워졌고 글을 쓸 때마다 한 순간 몇 차례씩 감정과 생각들이 섞여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이렇게 처음 겪어보는 경험에 나는 나와 경험의 사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내 생각의 끼어들어 나를 복잡하게 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내 글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렇게 스스로 ‘나’ 안에 갇혀서 나에게 오는 말들을 방어도 아닌 방어를 했었다. 내 말은 굳이 방어를 할 필요도 없는데 방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별로 마음은 편치 않았다. 분명 내게 어떤 명령을 하는 게 아니라 조언 또는 제안이었고 내 생각들을 더 끄집어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하면 할수록 복잡해진다는 핑계를 하며 또 다시 거부해버리는 나였다. 그러다가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혼자서 머리 싸매고 끙끙 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할 수밖에 없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일 때 한 번은 크게 슬럼프에 빠지면서 나의 대한 나의 신뢰, 믿음, 자존심들을 한 번에 깎아내리면서 ‘난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 라는 말까지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하자에 있는 내 마음도 흔들거리기까지 할 정도로. 글 한 번 쓰면서 정말 나를 괴롭게 했던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에서라도 그 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을 알게 된 게 다행이다 싶었다. 이 경험들은 글을 쓰는 혼란구덩이에 빠져있었던 나 자신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면서 나를 끌어내는/잡아당기는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을 하자작업장학교에서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찾은 건 아직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모습들은 또 다른 경험에서 나올지도. 하자작업장학교는 나에게 터닝 포인트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이 내가 멈춰있을 뻔 했던 길을 터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합해서 한 몇 차례 정도 되는 내 앞길의 고개들을 넘어 왔고 앞으로도 어떤 고개를 넘게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고개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가 스스로 잘 넘기를 바라고 내가 어떤 길을 걷게 되기 전에 모든 면에서 준비가 되어있는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기대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게 계속해서 눈길과 손길을 주며 또 나에게 끊임없이 ‘왜’, '어떤‘ 이라는 질문을 지속시키며 또 다른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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