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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나의 목소리를 지키며 현실과 마주보기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 살기"라는 하자작업장학교의 모토를 보고 입학했다. 그때의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 살기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하게 된다면,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만들어내는 걸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준다면, 그걸로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먹고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길찾기 과정에서 나는 내가 담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왜" 라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마주하며 "매체를 통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너는 왜 보는 것을 좋아해?'라는 질문을 마주하면 할 말이 없다. 그건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표현한 것이 혼자만의 것을 벗어나 '작업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람들과 나누려 한다면, 내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있어야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하자 안에서 주니어 과정을 이어나가면서 배우고자 했었던 것은, 어떻게 시각적인 자극을 줄 수 있을까를 골몰하는 "아트 스킬"이 아니라, 그 전에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었다. 하자의 길찾기 과정을 수료하고 주니어 과정을 위한 학습계약서를 쓸 때, 나는 "내가 이끌리는 것들을 일단 끄집어내 보고 싶다."고 적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이야기가 있는 사람인지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자에서 1년 반을 보내며 나는 내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찾기도 했고, 그 이야기들을 넓혀 가기도 했다. 이 이야기들 앞으로도 잘 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하자에서의 시간을 통해 하게 되었던 인식과 생각이 내 안에서 어떤 이야기로 재구성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시선을 주어 짚어보기로 했다. 만남을 통해 마주하다. - 메솟 현장학습 메솟은 SPDC(버마 군사정권)가 자리 잡고 있는 버마에서 넘어온 사람들(난민)이 모여 있는 버마와 태국의 국경지역이다. 나는 그곳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NGO단체와 버마에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그 전까지 매체를 통해 알게 된 버마의 상황과, 실제로 메솟에 갔을 때 알게 된 사실이 달랐던 이유는 그 안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문제 상황'이 아니라 내 친구들의 현실이었다. 그 만남을 통해 그 '상황'은 나와 동떨어진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접촉한 일이 되었고, 내가 그곳 친구들과 어떤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내가 시선을 계속해서 주고 싶은 일이 되었다. 그들은 국경지역이라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틈에서 양쪽 어디에도 소속이 되어 있지 못하는, 난민이라는 삶의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분명히 내 앞에 존재하고 있는 내 친구들이, 그러나 현실의 위치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존재가 인정되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그들의 현실을 마주하며 그들의 입장과 위치를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막막한 감정에 빠졌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틈 사이의 사람들이 갖게 되는 삶의 조건들은 대부분 군부독재 하에, 사회의 흐름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제약들이었다. 그들의 삶의 조건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개인이 무력해지는 권력과 현실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밤만 되면 나는 가슴이 울컥거려 너무 힘들었다. 메솟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나를 둘러싼 조건과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다. 서로를 둘러싼 상황들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삶의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동하는 것, 모이는 것,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나의 현실에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행동들은 이곳에서는 자칫하면 삶 자체에 위협을 주는 행동이었다. 메솟에서 나는 내 삶의 조건이 lucky하다는 말을 들었다. 자유라는 것이 상대적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나 역시도 언제나 자유를 느끼지 않으며, 내 삶의 조건 속에서 내가 느끼는 불안감과, 답답함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내 삶의 조건들과, 그 안에서 내가 했던 고민들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때의 나는 흔히 말하는 조기교육과, 영재양성 시스템 속에서 자랐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문제를 계속해서 푸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나는 내가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했다. 괴로웠던 어릴 적의 나와, 그 구조에서 '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모님의 생각에, 나는 9살에 대안을 이야기하는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내가 8년의 시간을 보낸 <볍씨학교>는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모토 아래 되도록 자급자족 하는걸 지향했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생명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란 뭘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폭력이라고 느끼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서로 차별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함께 지켜나가자는 약속을 만들었다. 내가 일상을 보낸 볍씨학교는 그러한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큰 어려움 없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자 한 대안 공간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둘러싼 부수적인 것들로 나의 가치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했던 사회적인 흐름들로부터 '탈'해서, 대안적인 공간에서 만들어갔던 내 삶에서의 조건들은 현실 어디에서나 통용되기가 쉽지 않았다. 대안적인 조건들이란 현 시대에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이며, 다수가 아닌 소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꼈던 괴리감은 가정이 시장경제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현실의 흐름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 살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약속들을 지키며 어떻게 먹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였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를 먹고 자란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주어진 삶의 조건에서 머물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스스로가 내 삶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그들은 사회의 흐름이 만드는 삶의 제약들 속에서 그들의 삶의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싶어 했다. 나 역시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꿔나가며 내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는 내가 그 안에서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이유는 나 역시도 내 삶의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는 것이 가능했던 환경은 사회의 흐름에 문제의식을 느낀 나의 부모세대들이 만든 공간이었다. 내가 불안함을 느꼈던 이유는 그것이 계속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바운더리를 벗어나 사회를 마주보았을 때는, 대안적인 공간 안에서 가능했던 약속들을 내 삶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그것을 가능한 공간 안에서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그것이 가능한 삶의 모습을 사회 안에서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메솟이라는 낯선 장소와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너의 자기소개를 듣고, 나의 소개를 계속해서 하는 과정에서 내가 하려 했었던 것은, 만남을 통해 상대적인 다름을 확인하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흐름과 조건들을 만나며 내가 보고, 마주한 상황들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배움을 통해, 마주하는 순간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 나의 삶에서 그 인식들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렇게 마주한 우리가 나눌 수 있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였다. 현실에서 살아간다는 걸 마주보려면 '어떻게'를 맞이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를 상상하는 그 과정에서는 답답함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러나 답답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그저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에게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사람 역시 그들이었다. 잡지를 만들고, 교육을 하고, 주변의 의식을 바꾸는 운동들을 꾸준히 하고 있는 그들을 그들의 위치로써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난민이었지만, 그들의 존재로써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구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존재적 시민으로 존중하고, 마주하고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하자 사람들은 하자를 '일시적 자율 공간'이라 부르며 대안을 이야기하게 된 사회의 흐름과 맥락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하자에 들어와 처음에 나는 자율 공간 앞에 왜 '일시적'이라는 말이 붙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환경 속에서 나는 커다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흐름을 마주하며, 나는 그것이 대안 공간 밖에서는 어디에서나 통용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아갔다. 하자는 나에게 이 시대의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반대로 나의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묻기도 했다. '일시적 자율 공간'이라는 이름을 이해하기 까지는 그러한 질문들 틈에서 찬찬히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율공간 안에서의 경험이 유토피아적인 별세상의 경험으로만 존재하지 않게 하려면 그것을 사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1. 무엇을 읽어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 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 하자에서 나는 죽돌들과 "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기후변화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 것 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동체를 딛고 나와, 산을 넘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고, 더 이상 나의 일상에서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할 일도 없는. 도시에서 살고, 십대이며,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나의 조건에서 '폭력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실천하는 방식이 간디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을 때 나의 조건에서 지킬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내가 첫째로 했던 생각은 소비하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나는 현명한 소비를 하겠다고 결심하며 되도록이면 폭력을 만드는 일에는 가담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혼자서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시도했다. 그러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한 선택 역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소비하고 있는 물건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환경을 위한 제품들은 내가 사기에는 턱없이 비쌌다. 스스로 돈을 벌고 있지 않은 내가 그런 가격을 주고 사기에는 옆에 있는 평범한 물건이 훨씬 메리트 있었다. 거대 기업의 광고 선전에 훅 가는 때도 많이 있었다. 고기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혼자 집에 칩거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내 몫으로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나오는 상황은 아주 잦았고 그럴 때 다른 사람에게 고기를 주거나, 남길 수 밖에 없는 내 꼴을 보면서 차라리 건강이나 몸매 관리를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편이 더 타당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폭력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 라고 하며 평화적인 소비를 통해 '가담'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폭력이 벌어지는 상황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소비자의 입장을 가진다는 것은 주어진 조건에서 자신의 뜻과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지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바라보며 '읽어내려는' 시도들을 해보았다. "living" 이라는 단어에 얽힌 조건과 상황들은 생각보다 넓고 복잡했다. 개개인의 일상 뒤에 있는 큰 흐름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그렇다고 나를 뺀 나머지의 이야기 역시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 시대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힘들었다. 2. 변화를 도모한다는 것 : 시민문화 워크숍 이어서 우리는 시민문화 워크숍,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과 함께하는 연찬이자 수업을 가졌다. 이 워크숍에서 만난 시인들은 현실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지 이야기해주며,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고 계셨다. 삶의 조건들 사이에서 나의 신념과 맞는 것들을 '선택'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나의 신념에 맞는 내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가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어떻게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어떻게 넓혀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상상으로 생각을 넓혀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시인들은 각자의 입장과 위치에서 운동, 시, 예술, 의료, 음악과 같은 도구를 통해 "함께 잘 살기"를 이야기 하는 분들이셨다. 그러나 시인들을 만나며 했던, 가졌던 마음은 세계를 구하고 있는 각각의 시인에 대한 '영웅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시인들과의 만남은 내가 나의 판단에 의해 움직이고자 했을 때, 사회의 커다란 흐름이 만들어내는 삶의 조건들 안에서 선택을 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나의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나는 그 흐름을 어떻게 마주할지에 대한 고민에 '가능하다'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3.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선을 준다는 것 : 정선 / 개인연구 주제 각기 다른 시를 품은 일곱 명의 시인들을 만난 후 나 역시 섶(柴)시를 품어보는 시인이 되어 정선에 갔다. 대체연료들이 등장하며 석탄의 수요가 줄어들며 마을이 쇠퇴하고, 생계수단이었던 탄광이 없어졌을 때 또 다른 필요에 의해 카지노가 빠르게 들어선 마을에서, 나는 미처 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흔적들을 보게 되었다. 광부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택. 그들이 신었던 장화가 가득한 방을 보면서, 나는 마을의 이야기들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근대의 분업화된 노동의 구조에서 광부들은 탄좌에서 꼭 필요한 '구성원'이었다. 사람보다 그가 가진 역할이 앞서 나오는 순간 구성원이라는 이름은, 마치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톱니가 하나 빠지면 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톱니를 찾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동인구가 많고 관광을 지금의 가장 큰 사업으로 가져가는 정선에서 예술가들이 10년의 계획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정착'하는 것과 그들의 시선으로 마을을 다시 보는 것은, 대체해버린 톱니바퀴들과 틈에 대한 재조명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을이 변화한 역사에 대해 보고, 들으며 나는 누군가 접어놓았을 종이별과, 집안의 가훈들과 같은 사람의 흔적들이 주인 없이 놓아져 있는 것을 마주했을 때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방치된 채 잊혀져가는 물건들을 담는 데에 집중했었던 것은 그러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선이라는 마을에서 본 변화의 흐름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필요와 수요에 의해서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놓치게 되는 역할 뒤에 있는 사람과 장소의 함몰된 기억은, 과거와 현재에 틈을 만드는 것 같았고, 실제로 그 틈 사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에게 흔적이란,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과거의 순간을 기억하고자 했을 때 그 틈을 이어줄 수 있는 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흐름으로 인한 변화와 개발로 인해 개개인이 무언가를 기억하고 떠나보낼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기억할 만한 '거리'들이 존중되지 않는 것들을 나는 폭력적이라고 느꼈고, 그러한 변화의 순간들에 살아남아있는 실마리 같은 흔적들은 반갑고 소중한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정선에서 내가 섶(柴)시를 품고 내가 보게 되는 상황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흐름들 속에서 무엇에 시선을 줄 것이냐에 대해 내 힘으로 결정하고. 시선을 준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서 흔적을 담는 다는 것이 내가 보는 순간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담기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느낀 이야기들이 담기길 바랐다. 나는 그러한 흔적들을 매체를 통해 의식적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적들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집에서 조각조각 분리하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들이 담길지 고민했고, 후에 그 이미지들을 가져와 하자에서 나누며 나의 이야기를 '작업물' 을 통해 전달하는 것을 해보았다. 정선에 다녀온 후 시작한 "이끌림을 넘어 이야기하기"라는 제목을 가진 연구주제는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작업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상해본 경험이었다. 연구주제 후 나는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과거의 포착된 '순간'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있어 이야기와 기억을 전달하게 하는 연속성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매체가 가지고 있는 힘과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매체가 가지는 힘이란 내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시선을 주었을 때, 내 판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선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흔적들을 기록하는 것은 카메라를 통해 꾸준히 해오고 있는 일이다. 가족들에게 왜 자꾸 물건 사진을 그렇게 찍고 있냐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때 나는 물건들을 보면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했을지 그려지기 때문에 좋다고 답했다. 나는 앞으로도 그것을 계속 하고 싶다. 나는 기록하고, 다른 방식으로 조명할 수 있게 하는 매체의 역할에 대해 다시 바라보며 그 매체를 쥐고 있는 나의 역할에 대해서 조금씩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4 .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으냐"고 멜라 캠프 툰툰이 내게 물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내가 지키고 싶은 약속들이 있다고 했다. 나는 사람이 존재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충분히 함께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음식이 있는 곳에서는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안된다고 믿는다. 누구나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집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한 믿음은 현 사회에서 일상의 무심함 속에 녹아있는 권력, 힘의 논리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했다. 현실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지키고자 하는 약속들을 도시에서 살아가고, 십대라는 나의 조건 속에서 나와 뜻이 맞는 상황과 조건들을 '선택'하며 지켜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내가 놓치고 왔었던 것은 개인의 삶의 조건을 만드는 사회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너'와'나'라는 개인의 영역으로만 마주했다는 것이다.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의 맥락을 읽어내지 못한 채 그것을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으로 만들었을 때, 나는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나는 하자에서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좀 더 넓게 읽어내는 시선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멜라 캠프에서 희옥스는 나에게 만남 자체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만남은 너와 내가 마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너를 둘러싼 세계, 나를 둘러싼 세계가 맞부딪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너' 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사회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제 자율공간이 '일시적'이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일시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자율이 통용되는 공간이 그저 일시적인 공간이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절망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율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을 뜻했다. 내가 하는 인식이 현실에서의 도피가 되지 않으려면, 쫄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하자에서, 시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배운 것은 인식한 상황에 대한 변화를 도모할 줄 아는 상상력을 갖는 배짱이다. 인식을 하게 하는 마음과, 판단하는 머리, 행동으로 옮기는 몸을 함께 하고 싶다. 나는 대안공간 안에서 만들어간 약속들을 지키고 싶다. 이 약속들이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결과로써 만들어진 것임을 믿는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 나의 현실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대안 공간 안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다. 세상을 구하는 시인들과 버마의 NGO들을 보면서 나의 현실을 만들어가는 것은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HREIB선생님이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시선을 주는 것부터 시작인 것 같다. 나의 시선이 불빛이라던 조원규 시인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내가 앞으로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디에 시선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구현하고 싶은 상상은 시선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잡고 있는 카메라라는 매체가 좋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리고 그 매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는다. 시각언어는 다른 언어들에 비해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좋다. 나는 내가 매체를 도구로써 사용해서 나의 시선을 주었던 것에 다른 이들의 시선 역시 갈 수 있도록 하는, 서로의 시선을 도모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각적인 자극을 주기위한 스킬이 아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언어로 잘 풀어내기 위한 스킬이다. 내가 표현해내는 것들이 소통을 배재하고 표현만 남는 순간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신중한 판단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섣불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여전히 나에게 더 많은 만남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가야할 길이 멀다. 나는 자율공간 안에서 기른 낯선 시선을 소중히 여기며, 실천과 상상을 도모하는 배짱역시 잊지 않고 그 길을 걸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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