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ormer>

내가 도시로 나오고자 했던 이유는 친구들과의 관계와 음악적으로 좀 더 전문적인 스킬과 지식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기타는 이것 아니면 앞으로 내 길은 없다는 극단적이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식적인 공부는 하기 싫었고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길찾기를 수료할 때 까지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길찾기를 수료하고 주니어를 들어가면서 촌닭이라는 공연 음악 팀을 지원했다. 팀을 지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오픈 사마 워크숍을 하면서 처음 접해봤던 브라질 악기에 흥미를 느꼈고 기타와는 또 다른 희열을 내게 안겨주면서 공연 팀 안에서 좀 더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여러 악기를 다뤄봤지만 기타만큼 내 맘을 끌게 했던 것은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악기를 접하면서 브라질 악기는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창 악기에 빠져 1학기들과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그런 광경을 보고 다른 죽돌이 아직 악기를 자기 맘껏 쳐보지 못해서 그렇지. 앞으로 좀 지나면 연습하라는 말이 없으면 더 이상 안할 거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약간 듣기가 거북했고 그러지도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정말 그 죽돌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적인 연습부터 시간이 없단 핑계와 여러 가지 변명을 하면서 공연이 잡혀있지 않으면 거의 하지 않게 된 것을 보면서 그때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악기들에게 느끼고 있던 나의 감정은 단순한 흥미였다는 것에 나에게 다시 질문해보게 된다.

 

주니어를 하면서 들어온 공연/음악 팀 페스테자 안에서 내가 하고자 했던 음악은 강진 때의 공연처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었고 festeza 의미처럼 사회적으로 현실적으로 힘든 이들에게 그들이 겪고 있는 힘듦을, 슬픔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슬퍼해줄 수 위로해줄 수 있고 그 슬픔을 뛰어넘어 축제의 판을 벌림으로써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공연을 하고자 했고 그런 음악을 원했다. festeza 안에 있으면서 많은 공연이 있었다. 공연을 하는 장소와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모두 달랐지만 그 공연의 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 함께 즐거워해주기 위해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공연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공연을 하고 싶다.

 

현장학습을 끝내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있을 때는 음악 쪽으로 나가고 싶다고 했고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국에 있으면서 농부가 되고 싶다고 했고 농부로서 살아갈 것이라고 그것이 나의 꿈이고 직업이라고 이야기 했던 내가 생각난다. 꿈과 직업이라고 했을 때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본다. 정말 나의 꿈은 무엇일까? 여행에서 돌아온 뒤 머릿속에 있는 그곳에서의 경험들을 글로, 생각으로 정리했지만 하면서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공동체 안에 있을 때만 해도 나는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이야기 했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말했던 나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어떤 경험을 통해 꿈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움과 압력을 받는 듯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을 꼭 이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 노력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꿈은 하늘과 같다고 하늘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꿈이라고 말씀하셨던 요리타 상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말하고 표현하는데 어떤 거리감 없이 할 수 있다는 것과 현재의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다는 것에,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 자유로움이 있듯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 표현하고 말한다는 것 그것은 혼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고 함께 배움으로써 얻어가는 것이다. 시즌 1이 끝나는 이 시점이 나에게는 1년 동안의 워밍업을 마치는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일들을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항상 고민하고 공부하며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연결해보고 풀어보기>

주니어 시작하기 전 길찾기를 수료하고 판돌과 부모님과 함께 하자에서 면담을 하게 되었다. 내가 길찾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찾은 길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를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고 그것에 있어서 판돌들은 이런 코멘트를 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은 무엇인지 그리고 상상하고 있는 너의 음악은 무엇인지 정리해봤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음악한다고 했을 때 음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관심 가지고 있는 환경 혹은 자연과 연결지점을 찾아서 따로따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라고.

공동체를 떠나면서부터 난 독립한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나의 생각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하나의 상상으로만 끌고 온 것 같다. 마음만 앞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있어서 좀 더 진지해지지 못했던 부분이 아쉽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단순한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나의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 때인 것 같다. 한 명의 시민으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내가 앞으로 살아가 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나에게 스스로 만족이란 질문을 다시 해보게 된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하자작업장 안에서 내가 정말 만족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었다기보다는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이끌어 갔던 것 같다. 저번 학기 중간 에세이에도 이렇게 쓴 것이 기억에 난다. ‘내가 있던 공동체는 우물이었다. 그래서 나왔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의 공동체를 찾고 만들어 나가야겠다.’ 몸은 밖으로 나왔지만 정신이나 생각은 그곳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자 했던 것들이고, 앞으로 살면서 그곳에서의 정신을 이어 살아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문제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내 현실에 직시하고 직면한다고 말했듯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것은 곧 하자에서의 생활을 말한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전부 모순처럼 느껴졌고 내가 말하는 것들이 그저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한 일회용 카드밖에 안된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어떤 것에 계속해서 끌려 다니고 그것에 어쩔 수 없이 만족하는 나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 이제는 내가 가지고 들어온 공동체라는 판을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공동체라는 판이 아니라 하자 작업장이라는 다른 판에 뛰어들어 공부하고 경험 해 볼 때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판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섶 시의 시인으로써 지도 밖으로 다녀온 것처럼 내가 알고 있는 판이 아닌 새로운 판으로 뛰어 들고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하고자 했던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내가 나오기 전 가지고 있던 그 열정으로 대하고 마주하면서 좀 더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문화 워크숍을 정리하면서 슬로우 라이프가 많이 떠올랐다. 그리고 신이치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원초적 행복’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나눔, 재개발, 시민 됨........ 원초적 행복이란 말은 나에게는 충격적이었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행복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을 때. 잠자기 위해 누웠을 때 하지만 ‘원초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 고민되기 시작했다. 원초적이라고 했을 때는 나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그 무엇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행복한지에 대한 생각과 지금까지 내가 느꼈던 행복으로 인해 다른 무언가가 피해를 보고 힘들어 한다는 생각이 나를 혼란 속에 빠뜨렸고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졌다. 누군가 나에게 ‘너 행복하니?’ 라고 물어봤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태국 현장 학습을 하면서 돌아다녔던 13개의 단체들 이야기는 ‘앞으로’라는 말을 하면서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마웅저선생님 자택에서 전체 마무리 리뷰를 하면서 다른 죽돌 이야기를 듣다가 ‘앞으로’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모두들 실천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계획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멜라에서 느꼈던 캠프를 둘러싸고 있던 그 산맥의 거대함, 자연조차도 캠프 안에 있는 Refugee에게는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너무나 강했다. ‘앞으로’라는 이이기를 들으면서 아무런 방법이나 방향이 보이지 않던 나는 그런 상황에 겁이 났고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무서웠다. 용기가 나지 않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모두 손에서 털어버리고 다시 공동체로 들어가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

내가 하자에 들어오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도 교우 문제였다. 학교가 싫어서 떠났지만, 친구들과의 교류까지 끊기면서 혼자서 한다는 것에 실증을 느꼈고, 무엇을 하든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도시로 나오면서 내가 하자에 들어와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충실했었나. 라는 의심이 아닌 질문을 해본다. 하자 안에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보따리를 풀어보자 라고 얘기했던 내가 생각난다. 타인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단순히 친구관계를 위해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니었고 서로의 고민 보따리를 풀어 보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를 맞대어 생각해 보고 서로에게 코멘트를 해주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 역시 힘들었던 부분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싶다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하자를 마무리 짓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 어떤 결정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 에세이를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동체를 나온 것이 나의 의지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나와서 어떤 것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처음 생각은 3월에 한 학기 수료를 하고 한 달 정도 다시 공동체로 들어가 보려 했다. 내가 하자에서 배우고 공부했던 나의 생각이나 생활들을 다시 한 번 그곳에서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다시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 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내가 하자로 오면서 내가 상상했던 것들을 느껴보고 할 만큼 했는지 그리고 그것들에 처음 내가 나오면서 가지고 있던 마음처럼 열정적으로 마주하고 대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같은 하늘 다른 곳.>

태국 이동 학습.

내가 메솟과 멜라를 오가면서 그곳 10대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꿈이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 였다. 같은 십대로써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도 궁금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어떤 부분에서는 자극적인 질문이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들었기에 항상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곳에 있는 많은 10대들이 자기 부족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리더에 대해서 좀 더 듣고 싶었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롤 모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그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메솟과 멜라를 오가면서 그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자극을 주었다. 자신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와 꿈과 직업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나를 두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들의 꿈과 직업은 현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고 그 두개의 차이는 매우 컸다. 그들이 내게 말해준 자신들의 꿈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 )이지만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 )을 직업으로 갖고 싶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은 하나의 소망일뿐이고 그것이 힘들다면 어떤 직업을 갖겠다. 라고 했던 그들의 말은 내게는 많은 충격을 주었다. 한창 농부와 음악가를 어떻게 병행해 갈지 고민하면서 이들과 같은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면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나 짓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 힘들면 포기할 수 있도록 하나의 수단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기 전에 현실과 그 안에서의 직업 그리고 크게는 돈이라는 이야기가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신의 직업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그들에게는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 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쓰러웠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들이 현실로 인해서 2번째로 밀리는 것도 그렇고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도 그랬다. 하지만 그 생각 안에서 나에게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그럼 내가 마주 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 것인가? 지금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도 모르면서 남을 안쓰러워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같다. 지금 나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자에서 했던 고민들에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공동체라는 개인의 고민으로 그것을 회피한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현실과 마주 한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만남 - 그것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것.>

 Culture exchange를 했던 날 저녁, 리뷰를 정리하면서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그냥 단순히 기억으로 남을까? 하나의 추억으로? 나는 이것이 너무 싫었다. 우리가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느끼고 배우는 부분이 클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면 그들도 그들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일상생활일 수도 있겠고 삶 자체일 수도 있다.

내가 있던 공동체는 한 달에 많으면 150명 정도의 외부인(손님들)이 오고 갔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항상 긴장해 있었고 항상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내게 남은 것은 그들이 떠나고 난 그 허전함과 허망함 뿐이었다. 나는 그 허전함과 허무함이 싫었고 그 감정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와 다른 점은 내가 ‘외부인’ 이라는 것이다.

메솟 에는 우리 뿐 아니라 이우학교부터 여러 단체들이 방문했다고 했다.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으며 끝도 아니다. 이 점에서 어떻게 보면 우리도 지금까지 방문했던 많은 단체들 중 하나이고 그 단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이 아닌 같은 방문객으로써.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내가 느꼈던 그런 허전함 허망함을 그들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했던 그 허망함과 허무함은 그들이 왔다 감에 대한 허무함도 있었지만 내게 가장 컸던 허무함은 그들이 그저 손님으로써 왔다 갔다는 것이었고, 그들의 흔적이었다.

만남은 좋은 것이다. 그 대상이 서로 알건 알지 못하는 관계건 간에 만남으로써 나에게 또 다른 친구 혹은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남은 헤어짐이 있어야 완벽해 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만남은 단순히 한번 보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교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저 손님으로서 접대하는 입장으로서의 만남은 만남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그들에게 그런 허무함과 허망함을 안겨주기 보다는 어떠한 행위나 사물로써 그들에게 좀 더 다른 것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느꼈던 그런 허무함과 허망함을 그들에게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들에게 딱히 남겨 줬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은 없다. 돌아온 처음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고 오려고 했을까? 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내가 느낀 허무함이 아닌 함께 했다는 추억으로라도 그들에게 남기고 싶었고 남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너무 공동체 안에 있던 기억이나 경험들만을 가지고 갔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까지, 중간 에세이를 쓰고 난 이 시점에서도 내가 있었던 공동체 경험과만 비교했던 것 같다. 이번 여행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이런 생각들로 정리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보냈던 그 많은 시간들 안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들 그리고 그들이 내게 가르쳐준 춤 노래들, 그들하고의 exchange를 지속한다는 것이 내가 얻어오고자 했던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에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르쳐줬고 남겨줬던 모든 것들을 그들이 기억하고 추억한다면 그것 또한 내가 원했던 그런 만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이러한 허무함이나 허망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나 이런 것에 붙잡혀 있을 수도 없고 또 그러기도 싫다.

<하자! 한다는 것>

이번 3월 달이 끝나면 시즌 1이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이 마무리를 위해 8개월이란 시간을 쉼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이 글이 마무리 되어 탈고를 하고 나면 시즌 1이 종료된다. 도시로 나오면서 하자작업장에 들어왔고 그 안에서 길다면 길겠지만 짧다면 짧다고도 말할 수 있는 1년이란 시간을 보내왔다. 하지만 마무리 하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내가 하고 있는 그리고 해왔던 공부를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아직 막막하다. 그리고 다른 판으로 넘어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내가 알몸으로 도시로 나왔을 때처럼 다시 그렇게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나왔고 들어왔다. 그리고 시즌 1이 마무리 되는 이 시점에서 내가 정리해야 되는 부분도 있다. 전체적인 하자 생활 중에서 과연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지속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족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는 그 8개월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너무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놀려고 했던 것 같다. 도시에 나오는 것은 좋았지만 도시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많은 것을 내가 만들어 간다는 것이 힘들었다. 지난학기 에세이에는 내가 어떤 것이 부족하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썼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쓰고 있다. 이번 학기가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그 판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8개월 동안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있었고 많은 일정과 고민 생각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를 반복하는 과정에 있어서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연관성’ 이었던 것 같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은 그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공동체 이야기를 내가 아닌 다른 이들과 어떻게 어떤 부분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까였다.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서는 내 것에만 빠져있다기 보다는 서로의 현실을 마주하듯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 하면서 찾아나 갈 수 있다. 한편 판돌들이 하셨던 코멘트는 내가 하고자 했던 음악과 자연을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내게 힌트를 주었던 것은 동녘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관심 있는 사회적 문제 개발, 파괴 등을 기타를 치고 노래로 표현했다. 내가 8개월 동안 끊임없이 질문하는 동안 여러 가지 사건과 그 안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따로따로 해결하려고만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고 그 안에서만 해결하려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좀 더 넓게 깊게 생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길찾기 과정과 주니어 과정은 워밍업이었던 것 같고 이제는 진정으로 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말했던 다짐과 계획들을 다시 한 번 쇄신하면서 새로운 계획들을 새우고 해 나가야 한다. 남들보다 길었고 힘들었던 워밍업을 마치고 이제는 지도 밖으로 행군할 때가 된 것 같다.

 P/S - 제목은 생각해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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