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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배움에도 분갈이가 필요하다. 우리 집에는 내 나이와 같은 행운목이 있다. 행운목은 점점 커져 화분이 비좁아질 정도로 커졌다. 초록색 잎이 누렇게 시들어 가고 비틀어져갔다. 조금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더니 며칠은 몸살 앓듯이 시들시들하다가 금세 활기를 찾았다. 실상사작은학교에서 하자작업장학교, 대안학교에서 다시 대안학교로 나의 배움을 찾으러 갔다. 일반학교로 진학할 생각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혼자서는 무엇을 할지 몰랐고, 일반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싫었다. 2008년 3월의 미투데이에 "나는 오늘 멍석방에서 쓰레기가 되었다. / 쓰레기를 줍고 멍석방에서 나왔다"라고 썼다. 그날 나는 내가 여태껏 배워왔던 것들이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모두 쓸모없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하는 활동들이 다 어렵게 느껴져 내 수준이 낮나 싶었고 예전과 다른 생활 리듬을 만드느라 하루하루가 긴장상태였다. 모든 것이 초기화 되었고 나는 새로운 터에서 잘 자리 잡고 싶었다. 식물이 분갈이를 하며 겪는 몸살처럼 나도 그런 것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1. City life 3월 길찾기 쇼하자가 끝난 후,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행사 후, 식사시간에 일회용품을 사용하였고 그것들이 쓰레기통을 비집고 나오려 하고 있었다.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생태적 삶을 지향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 광경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여기는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이 오니까 접시 쓰기는 번거롭겠고,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아니니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온통 복잡해졌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하는데 울렁증이 있는 나는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내가 느낀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할지 힘겨워 이도저도 못 한 채 답답해했다. 나는 주니어가 되면서 페이퍼 타올과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실천은 스스로 마음이 나야 하는 거라 생각했고 괜히 이런 이야기 하면 다른 사람 간섭하는 것 같아 하기 싫었다. 혼자서라도 실천하니 자연을 파괴한다는 죄책감도 떨칠 수 있었고, 적어도 나는 잘못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동안 나는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도 도시가 내 삶의 공간은 아니라고 느꼈다. 어디를 가나 조용한 데가 없었고 높은 건물은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도 싫증났다. 도시에서의 삶은 나를 짜증나게 했고 도대체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save my city 프로젝를 하면서 도시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save my city는 동, 서, 남, 북 4개의 팀으로 나뉘어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었다. 그 당시 나는 글로벌학교에 있으면서 버마의 이주노동자 부타씨를 만났고, 이들과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하며 한국의 이주노동자 상황을 알리고 있는 믹스라이스, 그리고 도시의 높은 빌딩들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묻는 도시건축가 유니를 만났다. 이주노동자의 상황, 재개발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생각하면서 이런 일들이 만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인데 모든 상황들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도시의 현실들을 눈으로 접하고, 도시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 안에 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리산의 생활이 좋았고, 자연친화적 삶을 살길 원했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보기 싫다고 등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도시에서 자연친화적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살수는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2. 기후변화 시대와 나 2학기가 되고 나는 유리, 세이랜과 함께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 하게 되었다. 평소 환경이슈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하고 있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처음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하며 기대했던 것은 하자작업장학교 안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이면지를 재활용 하는 등의 작은 실천들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자작업장학교 전체가 모여 영상을 보거나 텍스트를 읽으며 토론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는 oil peak에 관한 다큐멘터리, 생태도시로 불리는 브라질의 꾸리찌바, 한때 풍요를 누렸지만 인광석의 고갈로 위기를 겪고 있는 나우루 공화국 이야기, 인도와 멕시코 등의 거대 슬럼에서의 삶을 영상 또는 텍스트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의 이상적인 삶의 공간과 조건은 무엇이고 도시에서 10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우리는 예년과 다른 꽃씨파티를 준비하였다. 원래 꽃씨파티는 매년 4월 꽃씨를 심고 봄을 맞이하는 파티였으나 이번의 상황은 달랐다. 하자센터의 운동장에 유스호스텔이 생기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나무, 새집 그 외에 온갖 풀들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상황에서의 꽃씨파티였다. 우리는 3층 베란다에 정원을 만들어 운동장에 있던 식물들 중 일부를 옮겨 심었고, 그 외의 커다란 나무들에게는 그리움으로 상징되는 노란색리본을 달아주며 이별의 블레싱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리본을 묶어주면서 미안한 마음도 함께 묶었다. 파티를 하는 동안 도시에서 일어나는 재개발로 자신의 삶터에서 사람들이 내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다. 나는 재개발을 할 때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심사숙고하여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거기에 사람은 없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도 그렇다. 몇 천 년이 걸려서 만들어졌을지 모를 생태계를 사람들은 순식간에 개발과 함께 파괴해버린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를 다시 복원하려 할 때에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필요하며, 때론 복원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또한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이야기하며 환경정책으로 '녹색'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나 4대강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는 정작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 뿐이다. 온라인을 활용한 비디오컨퍼런스를 통해 홍콩창의력학교와 유스토크를 준비하며 기후변화시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행동으로 옮기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지와 함께 죄책감이 아닌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 후에 작업장학교는 홍콩창의력학교와 함께 창의서밋이 진행되는 기간 중에 'save my city, save my earth', 'Feel responsible, not guilty.'등의 문구를 골판지에 적어 청계천에 나가 침묵행진, Greening, 그리고 자그마한 거리 공연을 하였다. 혼자서 행동하는 법만 알았던 나는, 이런 활동들을 통해 기후변화시대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있어 나 혼자 고민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머그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작업장학교 안에 생기고 프린트 할 때도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작업장학교에서 이야기 하던 것이 조금은 한 몫 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사람들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프로젝트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게 단순한 실천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행동하게 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이름 중 literacy(읽고 쓰고 이해하는) 한다는 게 중요했다는 사실을 조금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변화시대'를 읽어 보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프로젝트를 하며 내가 왜 환경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 문제가 왜 나에게 중요한지,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조건 친환경적 삶을 사는지에 대해 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 받으며 다시 한 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자라온 환경이 내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내가 어떠한 삶을 원하고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프로젝트의 진행자로서 진행하는 방식이나 준비태도의 부족함에 대한 자책에 빠져 그 동안 해왔던 내용들을 제대로 정리해내지 못 했다. 그때의 나는 하자작업장학교를 떠나고만 싶었고 모든 문제를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후변화 이슈와 관련한 작업장학교의 활발한 움직임에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나에게 유리는 "사실 나는 너와 더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라고 말해주었고 나는 이 말에 힘을 입어 용기를 내기로 했다. 3. 작업의 기술 생각은 심플하게, 행동은 가볍게. 주니어 3학기, 글로벌학교와 시민문화 팀에 속해있던 나는 팀이 없어지면서 다른 팀을 고민해야 했다. 당시 나는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를 하면서 알게 된 기후변화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의 변화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10대인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여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랬을 때 매체는 내 이야기에 전달력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힘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만난 작업자들과 내 주변에서 작업하고 있는 죽돌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도 내가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영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라고 조금은 의심 하면서도 영상팀에 들어오게 되었다. 많은 매체 중 왜 하필 영상에 끌렸냐고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곳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들을 통해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을 시각 및 청각으로 접하면서 강한충격들을 받곤 했기 때문에 영상이란 매체에 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학습 계약을 하며 기동력을 갖추겠다는 목표로, 생각은 심플하게, 행동은 가볍게 하자고 생각하며 학기를 시작했다. 학기 초에 한 STUDIO 프로젝트 안에서 성보씨와는 시나리오를, 프레드와는 포스터를 제작하며 나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해 보았다. 그리고 작업물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코멘트를 받으면서 내가 의도한 것 중 어떤 부분이 읽히고 어떤 부분은 읽히지 않는지 경험했다. 말이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작업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었다. 나는 기술도 없고, 작업을 시작할 때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몰라 주저했었다. 다른 사람도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유달리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쉽게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다른 때와 같이 처음 해보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지만 이번 워크숍에서 달랐던 것은 일단 시작하고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모호했던 머릿속의 구상이 또렷해지면서 작업물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완벽한 계획 없이 잘 움직이지 않았던 나에게 성보씨와 프레드의 워크숍은 일단 움직이면서 나의 생각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생각은 심플하게, 행동은 가볍게', 그리고 '작업은 정교하게, '이야기는 분명하게' 그리고 이 기운을 몰아 영상팀에 tck tck tck 캠페인을 제안했다. "tck tck tck"은 2009년에 있었던 코펜하겐 회의가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 될 것이고 이 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캠페인이다. 처음에 내가 구상했던 것은 꿀밤을 맞으며 괴로워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었다. 꿀밤 맞고 정신 차리라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나의 생각을 영상팀 안에서 이야기 하였더니 재미있다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왔고, 영상팀의 공동작업으로 진행하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우리의 계획을 전체 모임에서 발표했을 때 tck tck tck은 이미 있는 캠페인이기 때문에 그 캠페인에 담겨진 메시지를 의식하며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히옥스의 코멘트에 재미로 시작했지만 작업을 잘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그 시기 작업장학교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사북읍에서 하는 예술마을 감+동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곳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요 없는 공간이 된 탄광과 거대한 돈이 움직이는 카지노가 40년의 세월을 가운데 두고 대립하는 양 보인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곳에서 예술가들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고장 난 것들을 다시 생기 있고, 쓸 수 있게 만드는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그 장소에서 나는 시간의 무게에 짓눌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시간은 점점 흐르고 결정의 순간은 오고 있다"는 tck tck tck 영상을 찍는다는 것에 심한 괴리감과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나는 tck tck tck 영상에 이곳에서 경험한 것들과 이야기들도 담고 싶었고, 코펜하겐회의에서 국가 간의 올바른 결정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메시지도 담고 싶었다. 처음에 기후변화 문제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 사고방식들이 자연을 배제하고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어야 기후변화 문제 또한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광부의 삶의 모습과 기후변화 문제가 연결지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연결되지 않았다.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앞섰지만 잘 만들어진 영상이 나오진 않았다. 잘 만들어지지 않은 까닭은 이야기 하고 싶었던 메시지 "wake up", "act now"가 잘 드러나지 않은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어디서 상영될지 불분명했던 것 또한 영상에 여지없이 드러났다. '생각은 심플하게, 행동은 가볍게' 에 '작업은 정교하게, '이야기는 분명하게'도 더해졌다. 움직이면 모든 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내용과 방향 없이 움직인다면 도중에 헤매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4. 움직임 속에서 시민문화워크숍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의 市인 하승창 선생님께서는 한 사람의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려 마음이 동했었다. 물론 변화하는 과정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는 것 또한 들으면서 말이다. 내게 시민운동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격렬함이다. 시위를 하고, 무장병력들이 때리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TV나 인터넷으로 전해지는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리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시위는 무서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승창 선생님께서는 상황에 따라서는 싸우기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겁쟁이로만 남아야 하는 것일까? 싸운다면 무력이 아닌 어떤 다른 방법으로 싸울 수 있을까? 이번 현장학습에서 간 태국 메솟은 군부독재 중인 버마의 소수민족들이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온 난민들이 대부분이다. 작업장학교는 그 곳에 있는 청소년과 다양한 NGO단체들을 만났다. 각각의 활동 분야로는 IT, 청소년 교육, 여성, 의료, 정치범, 소년병 등이 있다. 그 곳에 머무르면서 군부가 얼마나 잔인하게 소수민족들을 짓밟으려 하는지에 대해 들었다. 1살 때부터 군사훈련을 시키고,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언어, 문화의 말살 정책은 마치 일제 점령기의 한국과 같았다. NGO단체들은 버마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밖으로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열약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활동한 결과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PWO(Palaung Women Organization)에서는 단체 활동 후 여성들의 정치 참여, 인식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AAPP(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in Burma)에서는 사람들이 단체에 관심을 가져 주었고, 그것만으로도 군부는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열약한 조건과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민주화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메솟에서 여러 운동가들을 만나면서, 나 또한 움직임 안에서 자라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HREIB(Human Rights Education Institute in Burma)의 활동가는 청소년은 미래의 지도자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였다. 나는 엄마의 마음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예전에 엄마는 어린이에게 좋은 책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민단체 '동화 읽는 어른모임'에서 활동하셨다. 그때 엄마는 "네가 살 세상은 좀 더 좋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봉사활동도 하고 공부도 한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가 건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좋은 것을 끊임없이 주려 하셨고, 나는 그 마음을 받으며 자라왔다. 귀찮아하면서도 대부분 캠프도 가고 워크숍에도 참여했던 나는 재미있게 놀면서 생태에 대해서,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어른들의 메시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고,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안학교도 교육운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메솟을 다녀온 후다. 메솟에서 작업장학교 소개, 내 소개를 하면서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업장학교는 IMF로 가정과 학교에 위기가 오면서, 학교를 나오게 되고 그럼에도 배움을 지속하고 싶은 10대들과 이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어른들이 만든 학교다. 대안학교는 제도권학교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한다. 정해진 길(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좋은 대학교-좋은 회사 취직)이 있다고 가르치는 제도권학교와는 달리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알려줬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였다. 대안학교가 완벽한 대책은 아니나 자신의 길을 찾고 싶다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최선을 다해 찾고, 실험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운동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해서 무엇이 바뀔 것이냐는 생각보다는 꾸준히 고민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메솟의 NGO, 그리고 하승창 선생님이 이야기 하였고 시민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운동과 대안학교의 공통점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변화한다는 것이 불안정함으로만 느껴져 불안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에서 희망이 보인다. 5.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로 하자의 일곱 가지 약속 중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할 거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마음이 이끌려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경우 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선택하고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나에게 작업장학교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작업장학교의 죽돌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했고 또 요구했다. 작업장학교에서의 시간은 내가 살면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질문을 던지며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시도했던 시간들이었다. 작업장학교에서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 환경문제와 관련해 이야기 하게 되었지만 나의 감정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자연에 대한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수준으로 중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 할 때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내가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야기 하다 보니 캠페인에서 볼 법한 이야기가 아닌 내가 실제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왜 중요한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책임과 의무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고 싶은 것'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알게 된다고 모든 게 중요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알게 된 것이 내 삶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 중요해지는 것이다. 고민이 고민에서 끝나지 않길 바라며 공부하고 싶다. 꿈꾼다, 상상한다는 내가 잘 쓰지 않는 단어들 중 하나인데 작업장학교에서의 시간을 정리하며 현실에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진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앞으로 내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가지고 참여와 실천을 하며 살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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