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 22,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를 가다.

오후 3시경, 호사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모두 함께 지하철을 탔다. 도착하자 마자 보인 것은 커다란 천막들과 건물, 그리고 잘 정돈된 산책길이었다. 건물로 들어가서 가장 처음 본 작품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작가의 <프리미티브> <나부아>이었는데, 영상과 책, 사진으로 구성된 작품이 흥미로웠다. 두 번째로 감상한 작품은 임민욱 작가의 <손의 무게>였다. 어떤 작품인지도 잘 모른 채 들어가 시작되는 영상을 보기 시작했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음악이 하루 종일 우울해야 했던 내 감정과 함께 호흡하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재생되는 화면과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14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망각한 채 그저 멍하니 작품에 집중했다. 그렇게 약간은 몽롱한 상태로 다음 작품인 <끝없음의 끝> <러브싯>을 보러 자리를 옮겼지만 두통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잘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가다 에릭 판 리스하우트 작가의 작품부스가 보이길래 무심코 들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품의 이름은 <섹스는 감상적이다> 이였다. 미리 제목을 봤었더라면 들어가지도 않았을 텐데. 후회가 된다. 이건 작품 자체의 문제가 아닌 그 작품을 받아들이는 나의 문제였다. 영상 속에 나왔던 기발한 콜라주와 정지 영상 애니메이션은 신선하고 새로웠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몇 장면과 내용들이 불편해서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상황을 피하기 보단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에 꾹 참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엔 더욱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부스를 나와버렸다. 작품을 관람하는 나의 부족함과 미성숙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취향의 차이인 걸까. 다시는 접하고 싶지 않은 갈래의 작품이었다. 그 외 본 작품은 더글러스 고든 작가의 <내 당나귀와 함께하는 고행>, 김순기 작가의 <우물을 들다>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임민욱 작가의 <손의 무게>. 열 감지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온도의 차이로 새롭게 그려진 도시의 모순과 균열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느리지만 걷기를 멈추지 않던 사람들의 걸음이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좀비의 움직임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또 영상 속에서 노래를 부르던 여자를 사람들이 손으로 들어 운반을 하는 장면을 위에서 바라봤을 때 여자가 공간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장면 장면마다 담겨진 장엄함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블랙홀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임 민 욱 (1968 - )

대전 생. 현재 서울에서 거주, 활동 중
minouklim@gmail.com

학력
1995 파리 제1대학 조형예술학과 졸업 (학사)
1994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 DNSAP 펠리치타시옹 졸업(석사
)
1985-1988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재학중 도불

기금 및 수상경력
2010
아르코 국제교류지원기금, 한국
2009
경기문화재단 작품 지원기금, 경기도
2007
7회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 서울, 한국
2006
6회 광주 비엔날레 재단상 광주은행상 수상, 광주, 한국
1995
프랑스 알베르 로슈롱 재단상, 파리, 프랑스
1996
프랑스 갤러리 협회 첫 개인전 지원기금, 파리, 프랑스

개인전
2010
꼬리와 뿔, 임민욱 개인전, 갤러리 플랜트, 서울
2009 SOS-Adoptive Dissensus,
퍼포먼스 (페스티벌 봄), 한강유람선, 서울, 한국
2008
점프 컷, 아트선재센터, 서울
2000
주관적 이웃집, 인사미술공간, 서울, 한국
1999
스크린 드럭스, 갤러리 인더루프, 서울, 한국
1997
임민욱-제너럴 지니어스 갤러리 라 페론느리, 파리, 프랑스
1997
임민욱-제너럴 지니어스 갤러리 베로니끄 스마그, 파리, 프랑스

단체전
2010
시선의 반격, L'appartement 22, 라바, 모로코
2010 ‘Touched’,
리버풀 비엔날레, FACT, 리버풀, 영국
2010 ‘Trust’,
미디어시티 서울 2010, 경희궁 분관-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2010 Art is Action=Action is Production, A project for La Tabacalera,
마드리드
2010 ‘The River Project’,
캠벨타운 아트 센터, 시드니, 호주
2010 ‘Morality’_Remembering Humanity, Witte de With,
로테르담, 네덜란드
2010 ‘Griot Girlz’, Kunstlerhaus Buchsenhausen,
인스부르크, 오스트리아
2010 ‘A Different Similarity’,
보쿰 뮤지엄, 보쿰, 독일
2010 ‘
랜덤 액세스’, 백남준 아트센터, 용인, 경기도
2010 ‘Move on Asia’, PARA/SITE ART SPACE,
홍콩
2009 ‘
시선의 반격두산아트센터, 서울,
2009 ‘Your Bright Future: 12 Contemporary Artists from Korea’,
휴스턴 미술관, 미국

2009 ‘Everyday Miracles(Extended)’
레드캣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미국
2009 ‘Your Bright Future: 12 Contemporary Artists from Korea’,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2009 ‘The Unconquered’ ?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 뮤제오 타마요 현대미술관, 멕시코시티, 멕시코
2009 ‘Everyday Miracles(Extended)’ Walter & McBean Gallery,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미국
2009 CREAM-
요코하마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요코하마, 일본
2009
박하사탕-한국현대미술 중남미순회전 귀국전, 과천국립현대미술관, 한국
2009
악동들, 지금 여기, 경기도 미술관, 한국
2009
텍스트@미디어,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09 A Different Similarity, Santral Istanbul,
이스탄불, 터키

2009
메이드 인 코리아/ 휴가_위장된 노동, Sinn Leffers, 하노버, 독일
2009 (Im)migrants With(in), Open Space_Zentrum fur Kunstprojekt,
, 오스트리아
2009 Move on Asia-
비디오 아트의 종말, 갤러리 루프, 서울, 한국
2009 Socially Disorganized’ Experimental Art Foundation,
아델라이드 영화제, 호주
2008 Invisible Cities,
토론토 국제 아트페어, 캐나다
2008
7회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길위에서, 광주
2008
전향기-김수영 추모전, 대안공간 풀, 서울
2008 Cine Forum 4 : Digital Portfolio - 6 Views,
서울대 미술관
2008
박하사탕-한국현대미술 중남미순회전,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미술관(MNBA), 아르헨티나
2008
평화를 그리는 사람들, 평화공간 개관 2주년 기금 마련전, 서울
2008 Permanent Green, Isola Art Center,
밀라노, 이태리
2008
1회 친나이 영화제, 인도
2007 APAP 2007
2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안양
2007
우발적 커뮤니티, Gallery 27 계원조형예술대학, 한국
2007 An Atlas of Event,
굴벤키안 재단, 리스본
2007 City_net Asia 2007,
아시아 현대 미술프로젝트, 서울시립미술관
2007
10회 이스탄불 비엔날레-Not Only possible But also Necessary, 이스탄불, 터키
2007 Activating Korea: Tides of Collective Action,
고벳-브루스터 아트 갤러리, 뉴플리머스, 뉴질랜드
2007
박하사탕-한국현대미술 중남미 순회전, 칠레 산티아고 현대 미술관(MAC)
2007 Tina B.
프라하 현대미술페스티벌, 체코

2007
창원 아시아미술제, 성산아트홀, 창원
2007 PILOT:3 Live archive for artists and curators,
베니스-Giudecca, 이탈리아
2007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전, 아틀리에 에르메스, 서울
2007 KIAF
특별전, “Mr.C can’t have...”코엑스, 서울
2007
서울여성영화제, 아트레온, 서울
2007
비디오인서울, 미로스페이스, 서울
2006 Somewhere In Time,
아트선재센터, 서울
2006
6회 광주비엔날레, 마지막 장-길을 찾아서, 광주
2006
사춘기 징후, 로댕갤러리, 서울
2006
공공의 순간, AFI 대안공간 네트워크, 서울
2006 Be Patient, Otherwise Cry, e-flux,
앤트워프, 벨기에
2005
나의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쿤스틀러 하우스 무종트롬, 프랑크푸르트
2005 e-flux video rental film festival ,
인사미술공간, 서울
2005 Parellel Life,
프랑크푸르트 쿤스트페라인, 독일
2005 Cosmo Cosmetic,
갤러리 스페이스 C*, 서울
2005
내일이 와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여성사 전시관, 서울 2004 전단지 프로젝트, “이것은 연애편지가 아닙니다”, 소갤러리, 문예진흥원, 서울
2004
서울 뉴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일주아트하우스, 서울
2003
서울의 8가지 템포, 도시의 경험과 상상력전, 몬테비디오 네덜란드 미디어 아트센터, 암스텔담
2000
넥타이부대의 점심식사 전, 포스코미술관, 서울
2000
슈퍼 코리아 엑스포 전, 동경 빅사이트 서관, 동경, 일본
2000
강경- art,history, images, 한림미술관, 대전
1999
사진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사진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1999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 믹서 & 쥬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서울
1999 LES FAITS,
갤러리 라 페론느리, 파리, 프랑스
1998
도시와 영상: ,,주 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7 SELEST’ART
컨템포러리 아트 비엔날레, 쎌레스타, 프랑스

협업, 아트디렉팅, 워크숍
2008
4회 다문화축제, 세계시장 바자르 천막디자인, 서울 올림픽공원
2007
청계 디자인센터 워크숍 기획 (플라잉시티 주관), 서울
2006 '
피켓' 퍼포먼스, 춘천 국제 마임축제, 아티스트 벼룩시장
2006 City Break,
리버풀비엔날레 워크숍, Static, 리버풀, 영국
2005
인사미술공간 피진 아카이브
2005 Noah- No War
퍼포먼스, 1회 시계평화축전 아트디렉팅, 임진각
2004
하자 시민문화 플랫폼 SCRAP, 서울 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
2004
롤링스페이스 컨테이너프로젝트 LOST?,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2003
피진 콜렉티브 창립

출판
2006
피켓, 비폭력 저항 메뉴올, 하자센터
2005
스크랩북, 컨테이너프로젝트, LOST?,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2004
가리봉동투어, 피진 콜렉티브, 대안관광 가이드북
2000 Rolling Stock,
광주비엔날레 출판물

<출처: 임민욱 작가 홈페이지 http://www.minouklim.com/>

 

 

네이버캐스트 <한국인> '문화적 충돌로 전복을 꿈꾸다.'- 미술가 임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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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년 페스티벌 봄 <S.O.S-Adoptive Dissensus> 프로젝트 진행작가 임민욱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광주비엔날레와 에르메스에서 수상을 하고, 국내외에서 열리는 굵직한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다보니 그녀는 미술 전문잡지 기자로서 모르면 안 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 중 하나이다. 게다가 필자가 꽤 자주 찾던 인사미술공간에서 잠깐씩 마주친 적도 많았는데, 여자치곤 훤칠한 키에 밝은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가 임민욱 작가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다. 2007, 당시 신사동에 문을 연지 얼마 안 되었던 아뜰리에에르메스(에르메스에서 운영하는 현대미술 전시 공간)을 찾았을 때였다. 작품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를 설치하던 작가 옆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청했다. 작품에 몰입한 상태여서일까, 작가는 그 동안 보아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눈빛으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작가가 했던 말 중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녀는 가정에서 혹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의전복적 지점을 이번 작품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그 말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 가끔씩 그 말을 혼자서 곱씹게 되었다.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여러 가지 일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면 임민욱 작가의 그 말이 떠올랐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일까하고 말이다. 이번에 다시 인터뷰를 할 때도 작가는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프랑스인 남편 사이에 둔 딸아이가 얼마 전 학교에서 다문화가정에게 나누어준 5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아온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임민욱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에는 한국인, 여자, 미술가라는 기본적 조건부터 외국인 남편의 아내, 딸아이의 엄마, 미술대학의 강사 등 사회적인 맥락이 함께 얽혀 있다. 작가가 아니라도 사람과 어울려 사는 이는 누구나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 상황을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상대적 가치와 규율의 아이러니한 충돌과 교란 앞에서 한 개인이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감정일 것이다.
임민욱의 작품은 그가 한국인으로서 줄곧 보고 듣고 체험한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작가는 과거 프랑스에서 체류했고, 지금도 국내외 작가들과 교류를 이어가면서 다양한 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 세대는 새마을운동 같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주인공이고 여전히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깊이 남아 있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갈등이 있다. 사실 이러한 세대적?문화적 갈등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작가는 이 점에 주목한다. 그녀는 가정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민감하고 애매한 상황,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상실감이 공존하면서 동시에 이를 뒤집기도 하는 잠재적 어휘로 작품에 담아낸다. 그래서 작품의 주요 모티프는 그러한 그녀의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의 작품 <뉴타운고스트>는 그가 살고 있는 영등포 지역에서 이뤄졌고, <테너와 고구마> 2004년 당시 그가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던 하자센터에서 촬영한 것이다. <뉴타운 고스트> 2005년 영등포로터리를 기점으로 재개발 대상 지역에서 펼쳐진 프로젝트다. 확성기를 든 한 명의 래퍼가 드러머와 함께 트럭을 타고 누비는 장면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매우 지엽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이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외 주요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상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작품에 드러나는 우리 삶의 단면이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임민욱은 그녀의 주변인을 작품 속에 종종 등장시킨다. <잘못된 질문>, <스무고개-‘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에서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는 작가의 딸이다. 특히 <4회 다문화축제>에 천막 디자인을 의뢰 받아 참여하면서 만든 <스무고개>는 다문화축제 현장을 배경으로 이주와 노동, 차별과 소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딸의 시선을 통해, 혹은질문) 나는 높은 곳에서 내려간다. 나는 낮은 곳에서 올라가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 / 보기) ①혼혈잡종튀기해당 없음같은 스무고개를 통해 집단 속의 개인, 외국인들 사이에 또 다른 이방인을 바라보게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혹은 글로벌사회의 첨예하게 드러나는 호명(
呼名)과 경계 등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야기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만 느껴지는 관계들, 내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일 수 없는 역사들이 어떻게 교차되고 있는 지 거리 두면서 바라보려고 한다. 즉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어떻게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지를 더듬으면서, 무언가의 이면, 또는 양가적 측면을 들춰내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렇게 삶의 양가적 측면에 주목해서일까, 그의 작품은 표현 방식에서도 이중 구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에 등장하는 피켓은 ‘ON’을 가리키기도 하고, 뒤집으면 ‘NO’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영상 작품을 보여줄 때도 2, 3개의 화면을 제시하여 관객들이 같은 상황이라도 다면적으로 바라볼 것을 유도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자주 드러나는 또 다른 표현 방식은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다. 고인 물위에 물감을 풀어 놓은 뒤 수면 위에 우연히 맺히는 모양을 종이에 찍어내거나, 형광색의 우레탄이 제멋대로 부풀어 굳는 식이다. 의도하지 않은 대로, 다시 말해 세상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음을 시각화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동시에 큐레이터 김선정이 지적한 바 있는운동성, 역동성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가는 여러 다른 문화 사이의 교차나 시차에 주목한다. 전시장이 아닌 주어진 상황을 이용하며 공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최근작 <S.O.S-Adoptive Dissensus>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지난 3, 임민욱은 딱 이틀 간 관객들을 여의도 한강 유람선으로 초대했다. 마침 선착장 주변은 땅이 갈아엎어진 채로 엉망이었고, 그럼에도 군데군데 나와 있는 불꽃놀이나 장미꽃 행상들, 선착장 특유의 조악한 조명 장치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웠다. 약속된 정각 밤 9, 유람선은 예정대로 출항했다. 물론 늦게 온 사람은 배를 놓쳐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열어 놓고 관객을 기다리는 미술관에 비하면 매우 불친절한 전시 방식이다.
시간을 잘 지킨 부지런한 관객은 을씨년스러웠던 선착장의 기억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결에 몸을 실었다. 유람선의 출발과 함께 선장은 환영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강 다리들을 순서대로 통과해 노들섬, 양화대교 옆 절두산 성지 및 중단된 잠두봉 선착장 등을 지나오는 동안 유람선 외부에 설치된 조명은 교각 구석구석, 강변의 아파트와 대형 빌딩, 공사 현장 등 한강 주변의 풍경을 쉴 새 없이 쏘아댔다.
또한 중간 중간에는 유람선 바깥의 특정 장소에 작가가 미리 준비해둔 비전향 장기수 출신 보안관찰 대상자, 갈 곳 없는 연인, 거울시위대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관객들은 가만히 앉아서 선장의 이야기를 듣거나, 야경과 퍼포먼스를 바라보기만 했지만 결코 정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작품의 일부가 되어, 마치 고래 뱃속에 들어간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만끽했다. 동시에 관객들은한강의 기적이나한강 르네상스보다 더욱 진기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전시장을 한강으로 옮겨오고,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일 정도로 무모하리만치,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작가 임민욱. 사실 그는 예중, 예고, 여대라는 다소모범적인 미술 교육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대학 시절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사회 분위기는 임민욱을 현실과 미술에 대한 괴리감에 빠트렸고, 그 즈음 까뮈나 사르트르 등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졸업을 포기하고 프랑스 유학길을 떠나기 이르렀다. 그 후 그녀는 파리에 약 10여년 간 체류하면서 동료 작가들과제너럴 지니어스라는 집단을 조직했다. 협업을 통해 디자인, 아카이브, 공공예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 귀국한 임민욱은 당시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급진적인 작품들을 여럿 선보였다. 그 해 개최된 <도시와 영상_..>전에서 서울 시내에 버스 정류장의 홍보판을 자신들의 이미지로 채웠고, 1999년 문예진흥원미술관에 <사회적 고기>, 200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주관적 이웃집>을 발표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3년 간 체류를 한 다음 2004제너럴 지니어스의 멤버이자 지금은 남편이 된 프레데릭 미숑과 함께피진 콜렉티브를 다시 조직하고 대학로의 아르코미술관 앞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일종의 현장 사무실을 차리고 미술관 방문객부터 노숙자까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작품 <LOST?>, 대안관광가이드북 <피진 버스 투어-가리봉동>을 발표했다.
공동 작업이나 액티비스트에 가까웠던 과거 활동에 비해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임민욱은 작년 연말에서야 단독 개인전을 처음 개최하게 되었다. <점프 컷>이라는 제목을 단 개인전에서 임민욱은 한국의 산업화 근대화 문제를 구체적으로 건드리는 메시지를 던지며 미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근자에는 과거의 팀 형태가 아닌임민욱이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것에 대해 그는임민욱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이름 석자 밖에 내걸 게 없는 단독자로서, ‘어떻게 하면 겸허하게 나를 낮출 것인가를 고민하는 임민욱은 작업 속으로 내장시켜 오히려 질식을 피하려하는 것이다면서, “공동 작업이사랑의 행정화를 가져왔다면 개인 작업은 아무 것도 없을 때 시작되는 윤리적 질문과의 싸움이다. 최근 혼자서 진행하는 작업 방식은 작가적 신화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나서지 않아도 여전히 타자로부터만 확인되는 나를 스스로 키우거나 줄이거나 하려는 형태이자 고민의 장치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필자가 앞으로 곱씹을 만한 말을 덧붙였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일 때 대응할 수 있는 미덕은 부정과 긍정이 아닌인정’, 그리고 도덕과 윤리의 차이를 인식한 상태에서 가능한침묵이라고.

호경윤, 아트인컬쳐 수석기자

<원문 출처: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korean/artist/1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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