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학기 하자작업장학교

학기중 한 번은 개인과제로 수행해야 하는 페차쿠차.
동녘(박동녘)의 페차쿠차는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스스로 삽화를 그려서 이야기로 들려준다.
이 페차쿠차는 7월에 진행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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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1. 제 페차쿠차는 원래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인 '작은 것들의 신'을 읽고서 작업장학교의 크리킨디, 나비, 쿠로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나의 이야기로서 재구성하는 것이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대신 작은 것들의 신을 드로잉과 함께 이야기하고 이 이야기가 제게 주는 의미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2. 이 이야기는 인도의 케랄라의 아예매넴이라는 마을의 한 가족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곳에는 신의 땅이라 불리는 부르주아지들의 호텔도 있고, 카스트 계급 제도가 있고 종교가 있으며 누가 누구를 얼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사랑의 법칙이 있고 모두가 태어난대로 살아갑니다.

  3. 라헬과 에스타는 말을 거꾸로 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꿈을 같이꾸는 이란성 쌍둥이입니다.
    그들의 어머니인 아무는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부도덕한 여자로서 가족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기도 합니다.

  4. 라헬과 에스타는 몸이 마비되어 일할 수 없는 형과 파라반 아버지를 가진 벨루타라는 나이 많은 청년과 친하게 지냅니다. 벨루타도 아버지가 그렇듯이 날 때부터 파라반이며 아무리 손재주가 좋고 일을 잘해도 공장장은 꿈도 못꾸는 블가촉천민이었습니다.

  5. 불가촉천민 파라반은 가촉민들이 다니는 길을 걸어서도 안됐고, 상체를 가릴 수도 없었고, 말을 할 때도 더러운 입김이 가촉민들에게 향하지 않도록 입을 손으로 가려야만 했습니다. 걸을 때도 그들의 발자국을 가촉민들이 밟을까봐 비질을 하며 뒷걸음으로 걸어야 했습니다.

  6. 그런데 쌍둥이의 엄마 아무는 벨루타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정해진 사랑의 법칙을 아무는 어기기로 합니다. 하지만 둘의 밀회는 발각되고 거짓증언과 묵인하에 벨루타는 강간, 유괴범으로 구속되고 경찰의 무자비한 구타로 죽게 됩니다.

  7. 벨루타의 구속의 충격으로 방안에 틀어박힌 아무는 신경질적으로 쌍둥이에게 심한 말을 하고, 충격받은 두 쌍둥이는 보트를 타고 강 너머의 빈 집으로 떠나다가 얼핏 벨루타가 구타당하던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쌍둥이는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설득당해 벨루타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선택을 합니다.

  8. 벨루타의 죽음 이후 아무와 쌍둥이는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아무는 집을 나가 4년간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나이인 서른하나에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친아버지에게 보내진 에스타는 공허하게 말을 잃어버리고 라헬은 외국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이혼 후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밑바닥 생활을합니다.

  9. 시간이 흐르고, 둘은 아예매넴으로 돌아와 만나고 마치 그때의 선택으로부터 당연한 벌을 받는 것 같았던 그들의 삶,여러가지 절망이 우위를 점하려 다투고 특히 개인적 절망이라면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삶과 상처를 어루만져줍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10. 아룬다티 로이는 이 이야기가 장소나 관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들과 땅과 공간에 관한 것이며 어떤 특정한 사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카스트제도나 문화, 사회적 특수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세계에서, 우리를 강제하는 어떤 법칙들에 대해서 자신을 발현할 수 있는지 묻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 아이들이 할 수 있던 것은 엄마를 선택하는 것 밖에 없었고, 이들이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겨우 내일이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아무가 사랑의 법칙을 넘어서 벨루타를 선택한 것의 의미는 삶을 살아가며 그저 부여받고, 이름 붙여진 것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인식의 표현, 선택을 가질 거라는 용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12. 끝 
    작은 것들의 신이 있다고 하는 것, 그래서 세계에 또다른 자기 일, 자기 자리를 찾고 비참한 세계를 긍정하면서도 다른 작은 것들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자기 숲, 세계를 위해서 꾸준히 물방울을 나르자고 이야기하는 크리킨디가 될 수도 있고, 어떠한 세계 안에서 자신의 '일'이 곧 전체의 중요한 하나가 되어서 나머지 것들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쿠로코가 될 수도 있겠고, 세계의 고통, 슬픔에 공감하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같이 한 단계 넘어가면서 다시 거듭나자고 이야기하는 나비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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