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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고래가 춤을 춘다면...... 내가 고래라면.. 하자가 바다고..... 나는 선척적으로 의심 많고 의문도 많다. 사주에 보면 그렇댄다. 때문에 항상 그 의문들을 풀고 싶어서 떠돌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들을 찾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내 의문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알면 알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그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보였다. (나에겐 항상 의심과 의문이 함께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나는 이런 현실 속에 살고 있다'라며 현실 속의 사실들에 대해서 나를 각성했다. 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행복해지겠노라고 뜨겁게 살겠노라고. 방관자가 아닌 실천하는 참여자로서 현실을 살아겠다는 경직된 다짐. 흔한 다짐. 나는 나 홀로 하자라는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이 들었다. 내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항상 어떤 불편한 사실로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워야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았고, 집회에 나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전경들과 마주보고 내가 다치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목소리를 계속 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했다. 사실 생각해보니 나는 살짝 방관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그것을 내일로 내 주제로 작업으로 끌고가지 않았고,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 바다에서 그 사실들에 '분노한다', '나는 집회를 자주간다.' 가끔가다 토론을 하는 것 외엔 그 이상의 아무런 액션과 그 액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집회가 끝나고"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냅시다!."라고 서로 격려하며 집으로 향할 때에 나는 그것에 대해서 작업장 학교에 와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어쩜 이것은 지금 이명박이 서민들 위한다고 시장통에서 떡복이를 먹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바닷속에서 자류롭게 헤엄치는 법을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깡으로 어거지를 피웠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작업장'학교 라는 '작업장'이라는 말은 별 의미를 갖지 않았다. 내 주위에서 너무 흔하게 '작업으로 표출한다', '우리는 작업자다'라는 말이 들려와 정작 그것에 무신경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객관화 할 수도 있으며, 분노 이상의 것에 대해서 상상 할 수가 있다. 또한 나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져가며 방학을 보낸 결과이다. 지금 나는 한 단계 상승한 더 단단한 고래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하자라는 바다의 선생 고래들이 짜준 판 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지 못했던 이 답답한 고래는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논다'는 괴리감에 자책하여 스스로를 가두지 않을 것이다, 현실을 보며 이 바닷 속 친구들과 고민하고 이 고민들을 뭍으로 쏘아 올리는 그냥 '논다'가 아닌 생산적 작업을 '즐기며' 그 쏘아 올릴 고민과 작업들을 준비하는 이 공간에 있는 것이 의미있는 고래로 나아가고 있다. 사실 고래는 인간을 향해서만 노래를 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우리 고래들은 뭍에서 살아가고 있는 또 우리와 비슷한 또 다른 고래, 아니면 또 다른 보노보와 같은 무수히 많은 바깥세상의 무언가에게 노래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안되면 되게하라', '벽은 부숴라'보단 '같은 고민을 갖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부터'라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고 노래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공간이 나에게 의미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리라. 여기서 우리는 마음만 통하면 어떠한 노래든 부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뜩, 우리는 '고래'가 아니라가 아닌 '고민'들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도 다양하고 특별하여 어느 특정한 것으로 묶는 다는 것은 정말 머리만 아픈 일인 것 같다. 또한 이것이 이 공간의 특성인거 같고. 1. 함께 한다는 것 2. 조언 (답답한 나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건내줄 때 (나를 알게되는 순간) 3. 방학 (바다 바깥에서 바다와 나를 봤을 때 얻는 것이 있으니) 4. 판돌들이 사주는 밥 (그냥 좋음) 5. 공감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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