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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내가 생각했던 건 '슬로카페'의 이야기.
패스트푸드같이 인스턴트 식품은 많지만 식품앞에 슬로우란 말이 굉장히 색달랐다. 속도에 관한 생각을 해봤는데 주어진 일을 천천히 하라고 했을 때 빨리해버리고 싶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또 반대로 빨리 하라고 하면 그냥 빠르게 하게 된다. 듣고 문득 생각든 것은 '내가 너무 빠른 것에 집착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슬로우라는 말을 되새기며 일을 할 것이다.
2010.10.15 22:41:18
신체표현 워크숍
2010.10.15 22:45:53
일에 대한 다짐해보는 것은 좋은데, 슬로스 클럽이나 카페슬로가 이야기하는 슬로는 어떤 삶에 대해 슬로우라는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하는. (그건 마사키 선생님이 전쟁, 자연파괴 등의 문제가 국가적 이기주의에도 원인이 있다고 말씀하시듯.)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슬로'를 이야기하는 데에는 지금 뭔가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라는... 그런 이유가 있는데 그게 뭐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는게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부해야곘다 싶은 건데, 지금 문명이 어떻게 달려와서, 그래서 뭐였고 어떤 전환기를 맞았다는 걸까
2010.10.15 22:52:39
지속가능한 창의성=문제해결의 창의성? 나를 위한 놀이, 지역을 위한 창의라는 말에서 알아 볼 수 있는 지속가능 함을 위한 창의성라나, 그러는 와중에 마사키선생님의 평화포럼을 들었다. 창의성의 원래 목적이라고 하면, 그 목적은 우리가 창조할 수 있는 것인가? 원래 자연은 평화롭고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상태가 아니었느냐고 말씀하셨다. 지속가능한것 자체가 평화로운것이다. 즉 본성자체(-자연과인간은 하나)는 지속가능하고 평화롭지 않나요? 라고 질문하셨다. 지속가능한 창의성에서 창의성이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계속 뭘 만들어 내니까 지탱할 수 없는 정도가 되는거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맥락에서의 창의성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창의성에서 창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발견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다른 문장들을 수집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보겠다.
2010.10.15 22:53:50
Q1) 10월3일부터 10월11일까지 정말 좋았던,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괜찮았던 경험이나 포인트는? A1) 커피워크숍 통역-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말을 전달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은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한국어-일본어-영어 통역의 교통 속에서 순간 순간 적절한 단어나 숙어들이 떠오르지 않아 막 지어낸 부분도 많아서 듣는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또 언어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다 내가 전해야 하는 내용을 잊어버려서 전하지 못한 것들도 허다했다. 가벼운 내용도 어렵게 꼬아서 생각하는 버릇 때문일까, 들은 내용을 즉시 다른 언어로 뱉어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쉬운 영어로 정확하게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영어공부 열심히 하자. (+) 통역을 한다는 건 단순히 언어를 변환하는 것이 아니라 cultural한 요소들까지 전하는 역할임 알게 되었다. 어느 분야이든 양쪽에 걸쳐져 있는, 연결(bridge)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임해야겠다. 내가 서있는 경계에 대한 자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듯. 율면 농활체험-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풀벌레들과 지렁이를 보았는데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것들을 도시에서 보았을 때 기겁을 했나 잠시 생각해 보았다. 콘크리트 바닥을 기어가는 지렁이는 징그럽고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흙을 헤집고 다니는 지렁이를 보니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보듯 자연스러워 아무런 저항감도 들지 않았다. 내가 숙소에서 배회하는 벌레들을 죽일 때 동녘이가 지구입장에서는 인간이 벌레라고, 벌레한테 너무 심하게 대하지 말라고 농담으로 얘기한 것이 떠올랐다. 근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인간들이 자본주의의 오만과 독선으로 뒤집거나 파헤쳐 놓고 그런 것들을 ‘청결하다’, 또는 ‘깨끗하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들이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다 해결 될 일 일까? 사람들이 자연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어 또 다시 도시로 되돌아 가는 현상이 반복되지 않을까? ‘세계를 구하는 시인’으로서 나는 이 세계의 무엇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걸까? 서로를 죽이고 찔러 얻는 석유를 미친 듯 태워서 겨우 돌아가는 이 세상은 이제 끝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인류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석기에서 신석기, 그리고 청동기/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의 건설을 꿈꾸는 게 더 낫지 않을까?
2010.10.15 23:11:29
우리는 어떤 서핑보드를 가지고 있나. 파도는 어느 곳에서 어떤 모양으로 내게 달려들까.
나만의 서핑보드는 어떤 매체가 될까.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것은 무한한 가능성인가. 왜 지속가능해야하나? 인간의 삶은 어차피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 아닌가. 우리는 창의로워서 뭐가 좋을까. 인재로 추앙받아서 뭐가 좋을까. 창의성이 왜 주목 받고 있나. 작가에게 창의성은 어떤걸까 등의 고민을 하게 되었다. 생각지 못한것들을 깊지 않더라도 생각하게되고 머릿 속, 마음 안에서 질문할 것들이 생겼다.
2010.10.15 23:11:30
일본헌법9조.
일본이 과거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9조를 제시한 미국이 이를 다시 번볻한다는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또 잘 지내오다가 갑자기 군대가 갖고 싶다는 일본도 약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마사키 선생님의 WAKJ9은 상당히 의미있는 활동으로 보여진다. 특히 100일간 서울-부산-서울을 한국-일본 청년들과 함꼐 걸었다는 이야긴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에 여명을 비춰준듯 했다.한가지 의견이 있다면 마사키선생님께선 일본이 군대를 가지면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할거라 그러셨는데,그건 약간 비약같다고 생각한다.물론 지금까지 별탈없이 지내오다 돌연 군대를 장만한다는건 일단 돈낭비고, 또 필요없는 군대를 굳이 만들어 동아시아, 경우에 따라서는 전세계에 위기감을 조성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
2010.10.15 23:14:52
창의서밋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것은 '지속가능을 위한 창의성'이라는 문장 그 자체였다. 하자에 오면서 들었던 의문을 정확히 정의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 의문은 너무나 막연해서 말로 설명하기조차 쉽지 않았는데 그것은 대안교육연대에서는 교육이라는 모습을 하고 다가왔고 어떤 회의에서는 미래라는 이름을 달고 나를 혼란스럽게 했었다. 그러나 저 문장을 대한 순간 모든 것은 '지속가능성'의 유무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안학교의 좋은 교육은 학교를 나서는 순간부터 이어지지 못했고 미래는 다음이 없었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교육이었고 그 교육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창의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창의적인 교육, 지속가능한 배움이란 무엇일까?
2010.10.15 23:15:27
지난 학기부터 나는 '움직임‘에 집중해왔는데 그 때는 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과 몸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신체표현워크숍은 머리에서 명령을 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기 몸이 가지고 있는 ‘기氣’에 집중해서 그때그때 달라지는 몸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처음 신체표현워크숍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중증장애인 배우들의 움직임과 입장을 체험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워크숍을 마치고 나니 내 몸이 힘들어했고, 그렇다면 배우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배우들을 더 존중하고 그들의 움직임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10.15 23:17:07
율면 땅콩농사
처음 율면에 도착했을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저 일이라고 생각하고 땅콩농사를 시작하였으나 가을땡볕에 주체없이 흐르는 땀과 땀이랑 같이 증발한 체력덕분에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짜증이 살짝 나려고 했다 이러쿵 저러쿵 땅콩을 다 캐고 난 후에 힘든 몸을 이끌고 슈퍼를 찾아가 아무생각없이 과자를 사먹었는데 하필 사먹은게 '오징어 땅콩'이였다 "아!" 하고 사과맞은 뉴턴처럼 지구의 중력을 깨닳은건 아니지만 나도 무언가를 느꼈다 아까 전까지 그렇게 힘들게 땅콩을 캐고나서 초등학교때 미리 깨닳았어야할 '작은땅콩 하나도 농부의 힘든 작업을 거쳐 나온다' 라는것을 알고 다시는 아무생각없이 쉽게 먹지 않으리라 다짐한지 하루도 안지났는데 아무 생각없이 먹고있는 나를 발견한것이다 그때부터 아 이렇게 쉽게 먹어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누구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게 농사지어서 파는것을 나는 손쉽게 동네 슈퍼에서 이렇게 간단히 먹는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내 만족을 채우려고 500원짜리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잠시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먹지 못할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졌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농부는 생산자고 소비자인 나는 사먹어도 되는것이 당연한데 겨우 몇시간 농사한 주제에 나는 농부의 편이되어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라고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면 나도 농부의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적은 많으나 항상 그 감사함을 느끼는것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이렇게 매번 먹으면서 농부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먹어야 하는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돈 내고 먹으니 내맘대로 생각하여 아무생각없이 먹어도 되는것인지 아직도 확실한 판단이 서질 않는다
2010.10.15 23:26:50
글쎄 지금까지 나는 나와 다름에 있어서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쿠로코워크숍, 엑스트라워크숍을 참여 하던 중 그분들의 어려움을 보았는데 그 때 나는 ‘평범한 것과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나?, 거부감이 있었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남과 다름에 열려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열려있는 사람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열려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열려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지? 아직 확실 하지는 않지만 모든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열려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에 답? 이라는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진실 되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됐고, 새로운 질문을 꾸준히 연구해본다면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 조금 더 가까워 지지 않을까?
2010.10.15 23:27:17
문명의 전환기, 지속가능한 창의성과 회귀.
개막식, 심포지엄, 세미나, 포럼, 워크숍들을 지나오면서 나에게 걸린 문장은 우리가 문명의 전환기를 맞았다는 것이었다. 얄팍한 지식이나마 조금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지난 세기동안 급속한 산업발전에 따라 자원 전쟁까지 치른 우리는 정말 빠른 속도로 달려왔고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그것조차 모두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급기야는 조금 앞을 내다보니 이 끝없을 것 같았던 게임도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이 보이게 되었다. 이번 창의서밋의 중요한 주제는 '지속가능한 창의성'인데, 그 의미는 이제는 우리가 다른 사고를 통해서 그 지속불가능한 상태에서 지속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밋 안에서 우리가 다시 지역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커뮤니티와 자연, 돌봄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심지어 '부족tribe'를 만들자 하며 원시체험, 인간의 근본적 가치가 무엇인지 재고해보게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그 방안 중 하나는 '회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오스필로츠가 진단한 구식의 사고와 구식의 방법으로는 급변하는 세계 안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이 급변을 외면하지 않고, 내버려두지 않고 그 안에서 변화하며 살아가기를 도모해보는 것이 지금 필요로 ㅏ는 '창의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10.15 23:30:30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일까. 얼마나 사람들은 프로 의식을 느끼며 일을 해나가고 있는 걸까. 이번 창의 서밋에서 활동했던 희망코디네이터를 비롯해 통역원, 발표자, 10퍼센트 등 창의서밋을 준비하면서 혹은 창의서밋을 진행하면 여러 사람들을 보며 난 대단히 프로의식을 느끼는 프로라고 생각되어왔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온전히 최선의 노력들을 해나갔다고 보여줬기때문에.
우리가 했던 쿠로코역할들 가운데서 우리는 얼마나 프로의식을 느끼며 일들을 해나갔을까. 크리킨디의 이야기처럼 "할수있는 일들을 하는 것 뿐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할수있는것들을 해나갔을까. 사실 프로의식을 느끼는것과 우리는 우리가 할수있는들을 한다는것은 같은 맥락이라고 볼수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보다 좀더 프로의식을 느끼며 최소한의 할수있는일들은 해나가고 싶은거다. (아직 이런 말을 하기에는, 많이 부끄럽지만.) 이번 창의서밋을 진행되는 가운데서.
그러나 히옥스는 창의서밋에서 보여주 우리가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숫자만큼 우리는 우리들이 해야할일들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가 본 많은 사람들의 활동적이었던 모습들, 프로의식이나 할수있는 일들을 온전히 한다는것에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일까.
2010.10.15 23:46:23
쿠로코는 헬퍼도, 자원봉사자도 아닌 '쿠로코' 그 자체였다. 타이헨워크숍을 할 때 우리는 그런 쿠로코로서 배우들과의 신뢰 관계, 돌봄의 관계를 만들어가야했다. 존중과 돌봄, 안전은 쿠로코역할을 수행할 때 염두해두어야 하는 키워드였다. 타이헨예술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기존규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는 것이었고 쿠로코들은 배우들의 신체표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배우들이 더 잘 연기할 수 있도록 융통성있게 움직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쿠로코들은 전반적인 무대에서 배우들의 보조역할을 함으로서 몸의 움직임과 동시에 생각을 놓치면 안된다. 쿠로코 역할을 할 때 염두해두어야 할 키워드 돌봄과 신뢰는 어쩌면 우리가 관계를 맺는 일을 할 때 가져야 하는 공통적인 키워드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와 쿠로코의 관계에서 나는 '우리가 어떻게 화합해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들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선 종다양성.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할 것이며, 화합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2010.10.16 01:01:01
이번 율면투어을 통해서 우리가 이야기 하는 자급자족이 정말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철학자이자 농부이신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과 세미나 3에서 이야기를 진행하셨던 연두농장의 대표 변현단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서로가 생각하는 자급자족, 농사가 다를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번 정읍에서 이삿짐을 옮기면서 10년동안 유기농 농사를 짓고 계신 이모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면서 농촌 공동체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격었던 공동체의 문제점과 같이 비슷한 이유로 그 공동체를 나오게 되었다. 좀 더 철학적이고 생태적이 삶을 살려고 하면 현적인 삶의 문제에 치이게 되고 그렇다고 밭을 넓히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농사일과 여러일에 치이게 되고. 너가 농부의 삶을 산다고 했을때 이 두가지를 병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농부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잘 고민해 보거라.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 두가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내가 어떤 농부가 되려고 하는지. 농사를 짓는것에 의미를 두는 농부가 될 것인지. 좀더 유기적이 마을 공동체 도시와 농촌이 서로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농부가 될 것인지. 딱히 이분법적으로 나누려고 한 것은 아니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런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자급자족.생태적인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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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 그 의미는 무언가를 하려 마음 먹었을 때 일의 첫 걸음을 떼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마음속의 의지만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이헨 워크숍에서 했던 쿠로코의 역할을 예로 들자면 무대 위로 옮겨드리는 것부터 전반적인생활의 보좌 역할까지 몸을 쓰는 일이라면 대부분 쿠로코가 도와준다. 하지만 쿠로코에게 필요한 것들은 그것뿐만이 아니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력, 정신적/체력적 상태유지, 전반적인 분위기 조성을 주도한다. 때문에 쿠로코는 단순한 헬퍼의 역할이 아닌것을 모두 잘 알 것이며 그야말로 숙련된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으면 난제를 겪기 쉽다. 그래서 학교 시작에 앞서 '능력 있는 크리킨디'도 그 이유일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할 수 있는 일'의 리스트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흐르고 일이 진행될 수록 그 과정은 순탄치가 못 하다. 또한 '할 수 있는 일'이 우리 내부에서 자치적으로 행해지는 무언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 어떤 일이라면(예를 들어 다른 단체나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요구한다. 촬영, 공연, 쪽방촌온도재기와 같은 우리들이 주로 하는 매체와는 거리가 있는 종류의 일들) 그 일에 뒤따르는 책임감과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리스트를 지속가능하게 이끌어가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연습과 행동과 마음가짐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