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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다시 연 학교 2010년 3월, 우리는 그 때의 수료와 졸업을 끝으로 작업장학교 시즌1을 끝내고 다음 시즌2의 작업장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를 닫았다. 2001년 첫 개교할 때의 하자의 십대들은 학교는 그만두었지만 배움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며 자기들은 지구 전체에 퍼지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모여 춤을 추는 고래들이고 자기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며 힘껏 자기들의 존재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2010년이 되어, 요즘은 매일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의 소식을 듣게 되고 무기력해지기 쉽지만, 그래서 집 안, 컴퓨터 앞에, 핸드폰을 붙잡고만 앉아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외면하지 않고 못본 척 하지 않고 그 위기들이 우리에게 닥친 일이고 그래서 우리가 움직여야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며 숲의 불을 끄려 노력하는 크리킨디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다. 시즌1의 마지막을 보냈던 죽돌들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삶을 읽어내는 문해력, 어떤 공간과 그곳에 쌓여있던 시간을 보며 감지해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에서도 그것이 나랑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일 수도 있다는, 어떤 연결의 끈을 찾을 수 있었던 체험을 지났다. 초기에 탈학교한 십대들이 스스로 배움을 지속할 공간으로 학교를 필요로 하고, 만들어내서 출발한 작업장학교가 지금도 같은 필요로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 2001년 시작한 학교를 닫아야 하지 않겠나하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크리킨디로서 배움을 지속하고 세상을 구해보려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학교는 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렇게 시즌1을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2를 시작한 우리는, 크리킨디 이야기가 '뭐 어쨌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하니까 됐지.'하며 불을 끄지 않은 물방울만을 떨어트리다 숲을 태우지 않고 모두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비를 만들어 불타는 우리 숲을 지키자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다시 학교를 시작했다. 우리의 학교만들기 과정동안 학교의 키워드가 되는 생태, 평화 그리고 통합은 어떻게 연결되었고, 한 학기의 끄트머리에서 질문해보았을 때, 우리가 만든 학교는 다니기에, 공부하기에 어떤 학교였을까, 좋은 학교였을까? 그 학교를 만들고 다닌 사람 중 하나인 나는 어떤 학습을 만들어오고 있는걸까? 3월달 시즌1 작업장학교의 마무리가 다 되어갈 즈음에 다음 시즌의 학교만들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학교만들기팀에서 같이 해볼 것인지 제안을 받았다. 사실 그 이전에는 공연팀으로서 지내면서 (그것도 공연하는 사람들이) 우리 팀의 역할이나 팀 멤버간의 이야기, 시너지 등이 너무 미적지근하고 재미없게 구는 것이 아닌지, 같은 팀안에서도 서로 너무 모르고 그냥저냥 지내면 된다는 식으로 지내는 것은 아닌지 고민과 회의가 날마다 왔다갔다했고 지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수료를 마치면 그 다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직 처음 학교에 와서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그 많은 액션들과 기획들과 공부와 에너지들을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수료 직전에 태국 국경지대 메솟의 난민 지위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만나고, NGO들을 만나면서 처음 경험의 강도 자체가 다르다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감당이 안될 것 같았지만 서로 꿈이 있고 그래서 만났음에 아마 조금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하며 그 경험들을 정리하던 학기 막바지의 시간들을, 그 이야기들을 '그래서 조금씩 해볼 수 있는' 공부와 경험들로 잇고 싶기도 했다, 아까웠다고나 할까. 뭔가 막연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학교만들기 팀이 시작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면서 당황스러웠고, 난감했던 부분들이 있었고 그 경험들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기까지는 결코 쉬운게 아니었다. 크리킨디는 숲을 구하려 한다, 자기가 사는 숲에 불이 났는데 가만있을리가 없지만 딱히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일을 하는 의미는 없고, 고작 새 하나가 물방울을 불 위에 하나씩 떨군다고해도 그게 불씨에 닿기는 커녕 열에 녹아 그대로 공중증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크리킨디는 불을 끄는 것도 해야 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여기가 너희 숲이라고 같이 하게끔 만들기도 해야한다. 적어도 우리는 자기 엉덩이에 불이 붙으면 그 자리에서 깔고 앉아버리지 않고 알아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이 버겁고, 부담스럽고 내 일이라고, 나랑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버거울 때가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마음붙이기가 화두고 가장 어려운 도전이라며 그것을 넘어서 내 세상의 불을 끄는 일을 하자고 이야기한다. 학교만들기의 여정에서는 나는 우리가 그 숲이 어디까지인지, 혹은 어디까지일 수 있는건지 느껴보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몰랐던 세계와 다가가기 힘든 것들이 있었고, 놀라기도 하며 이것을 정말 불을 끄기 충분한만큼의 비를 상상하기 위해서 정말 나를 넘는 도전이기도 했다. -마음 붙이기와 넓히기 우리가 사회와 세상을 걱정하고 구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그것이 나와 상관있으며 다른 살아가는 것들이, 사람들도 우리의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같이 살아가는 것은 너무 어렵다. 5월부터 일본의 신체장애인 배우만으로 이루어진 극단 타이헨의 황웅도 일대기라는 작품의 3월 한국 서울-고성 공연 상연을 위해 한국 엑스트라를 뽑는 워크숍에 작업장학교는 쿠로코로서 그들을 돕고 있다.극단 타이헨은 신체장애인의 통제불능uncontrollable한 신체에서 나오는 예측불가unpredictable한 움직임은 비장애인의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움직임 이전의 근본적인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그렇기에 자신들의 예술은 장애인 연극이 아니라 타이헨 예술이며 같은 예술의 메인스트림에서 공평하게 평가되야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쿠로코는 혼자서 온전히 움직이기 힘든 신체 장애인인 배우들의 전체적인 생활보조와 무대 위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존재감없이' 그들의 수족이 되어 파트너로서 배우의 연기를 완성시킨다. 극단의 원칙 중 하나는 배우는 기본적으로 무대 위에서 온전히 신체를 보이기 위해 레오타드(타이즈)를 입는 것인데, 쿠로코는 무대에 오르기 전 그들의 옷을 갈아입히며 그들에게 '당신은 이제부터 배우가 되는거에요'라며 그들을 탈바꿈시키는 일종의 의식적인ritual 임무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쿠로코는 배우들의 몸을 다루는 역할을 하므로, '빠르고, 안전하며, 조용하게'가 그들이 일을 행할 때 가지는 원칙이며 배우와 쿠로코간에 신뢰관계가 있어야 한다. 첫 워크숍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어린 시절부터 훈련된 일종의 봉사와 헌신의 정신을 가지고 편견없이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대로 열심히 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서 움직이며 연기에 몰두하려는 것을 보고는 사실 잘 이해가 안되었다. 물론 그들이 신체적으로 개개인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이 어려워하는 동작이 다르고, 워크숍 후반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내었을 때는 어떤 감동이 일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던 터였다.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 두번쯤은 자원봉사라고 생각하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존재가 내 안에서 점점 비중을 늘려가면서 나보고 앞으로 그런 일을 더 해보라고 하면 첫날 하루 6시간의 막바지에도 생각했듯이 나는 분명 힘들게 그것을 여길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게 싫었다. 타이헨 예술은 무엇이 정상인가, 무엇이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를 물으며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엎어버린다. 나는 내게 일었던 그 감동의 내용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런 강한 경험을 어떻게 이해해가고, 그래서 정말 쿠로코로서 differently abled한 그들과 파트너로서 일해나갈 수 있는지 해보기로 했다. 바로 그 한 두번정도 좋은 마음으로 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힘들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같이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 어떤 경험을 통해 기존의 이해가 바뀔 여지가 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몇차례 워크숍이 있었고 10월부터 나는 쿠로코들의 리더 역할인 쿠로코 가시라로서 연습을 책임지고 극단과 연락하며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학교만들기 팀으로서 처음 우리가 참가한 프로젝트는 얘너나 기획팀의 성사중 사이프로젝트였다. 일주일에 두번씩 10회 정도로 진행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소위 '문제아', '노는 애들'이라고 여겨지며 학교에서는 겉돌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있는 아이들과 '얘,너,나'라는 프로젝트의 기획팀이 '얘들아 너희가 나쁜게 아니야'라며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학교와 사실은 학교가 싫은 것은 아닌 것 같은, 그 둘의 사이를 가까이 하고자 기획되었다. 작업장학교는 이 프로젝트에서 '몸만들기' 파트에서 춤과 노래를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분주하게 서로 욕하고 떠들고 (사실은 관심없어보이는 것은 아니었는데) 관심없는 척하고 일부러 페이스에 안 따라오려고 하는 둥 어렵게 굴었다. 첫 회 워크숍 리뷰에 나는 '상처 받았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아이들이 말을 하도 안들어서 그랬던게 아니라 학교 안 관계들과 선생님들의 강압의 언어가 괴로워서 학교를 나왔는데, 다시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그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듣고,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나중에는 싫었고, 슬펐다. 나는 그 애들이 나이 차이는 있어도 같은 청소년이니 이름부르면서 편하게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 제도권의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내가 하자에서 쓰이는 언어를 원하며 그 공간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공교육 시스템에 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떤 다른 공간에 들어와있어보면서 다른 언어들을 접하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름에 상처입고, 좌절하고, 또 더욱이 무감해지기만 해서는 안된다. 작업자로서도, 크리킨디로서도 우리들이 각각의 다양한 현장으로 들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어보고 관찰한다는 것은 그 경험들을 판단하고, 사유해서 체화시키는 과정이 공부인 동시에 작업인 것이다. -우리가 비를 만들 수 있을까?
시즌2의 학교가 시작되고 학교만들기를 했던 7명과 전형을 통해 새로 들어온 9월이 되어서 학교만들기 팀의 걱정이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크리킨디 이야기를 말도 안된다고 코웃음치면 어떻게 하나, 그래도 한번 해보고 생각해보지 뭐! 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또 하나는 처음 한달이야 사실 적응 기간이기도 하고 맛(?)을 보는 기간이라 비교적 여유롭겠지만 한달이 지나면서 소화해야하는 일정의 갯수가 늘어갈수록 이들이 느끼고 나름대로 감내해야 할 10시부터 10시까지, 피로와 지각 안하기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버거워하지는 않을까,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기우제 祈雨祭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부족인 호피(Hopi)족의 기우제는 반드시 비를 내린다고 한다. 그들에게 영험한 효력의 레인메이커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기우제는 비가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2010.12.20 08:46:10
비 이야기는 아직 숙성되지 않은 모양?
너무 빨리 덧대다보면 잘 이어붙이기가 어려워지는데. 일단 생각나는 것, 소박하게 적어두는 것이 elaboration하는 것보다 더 중요.
2010.12.20 23:09:24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을까
다시 연 학교 2010년 3월, 우리는 그 때의 수료와 졸업을 끝으로 작업장학교 시즌1을 끝내고 다음 시즌2의 작업장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를 닫았다. 2001년 첫 개교할 때의 하자의 십대들은 학교는 그만두었지만 배움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며 자기들은 지구 전체에 퍼지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모여 춤을 추는 고래들이고 자기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며 힘껏 자기들의 존재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2010년이 되어, 요즘은 매일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의 소식을 듣게 되고 무기력해지기 쉽지만, 그래서 집 안, 컴퓨터 앞에, 핸드폰을 붙잡고만 앉아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외면하지 않고 못본 척 하지 않고 그 위기들이 우리에게 닥친 일이고 그래서 우리가 움직여야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며 숲의 불을 끄려 노력하는 크리킨디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다. 시즌1의 마지막을 보냈던 죽돌들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삶을 읽어내는 문해력, 어떤 공간과 그곳에 쌓여있던 시간을 보며 감지해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에서도 그것이 나랑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일 수도 있다는, 어떤 연결의 끈을 찾을 수 있었던 체험을 지났다. 초기에 탈학교한 십대들이 스스로 배움을 지속할 공간으로 학교를 필요로 하고, 만들어내서 출발한 작업장학교가 지금도 같은 필요로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 2001년 시작한 학교를 닫아야 하지 않겠나하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크리킨디로서 배움을 지속하고 세상을 구해보려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학교는 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렇게 시즌1을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2를 시작한 우리는, 크리킨디 이야기가 '뭐 어쨌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하니까 됐지.'하며 불을 끄지 않은 물방울만을 떨어트리다 숲을 태우지 않고 모두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비를 만들어 불타는 우리 숲을 지키자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다시 학교를 시작했다. 우리의 학교만들기 과정동안 학교의 키워드가 되는 생태, 평화 그리고 통합은 어떻게 연결되었고, 한 학기의 끄트머리에서 질문해보았을 때, 우리가 만든 학교는 다니기에, 공부하기에 어떤 학교였을까, 좋은 학교였을까? 그 학교를 만들고 다닌 사람 중 하나인 나는 어떤 학습을 만들어오고 있는걸까? 3월달 시즌1 작업장학교의 마무리가 다 되어갈 즈음에 다음 시즌의 학교만들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학교만들기팀에서 같이 해볼 것인지 제안을 받았다. 사실 그 이전에는 공연팀으로서 지내면서 (그것도 공연하는 사람들이) 우리 팀의 역할이나 팀 멤버간의 이야기, 시너지 등이 너무 미적지근하고 재미없게 구는 것이 아닌지, 같은 팀안에서도 서로 너무 모르고 그냥저냥 지내면 된다는 식으로 지내는 것은 아닌지 고민과 회의가 날마다 왔다갔다했고 지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수료를 마치면 그 다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직 처음 학교에 와서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그 많은 액션들과 기획들과 공부와 에너지들을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수료 직전에 태국 국경지대 메솟의 난민 지위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만나고, NGO들을 만나면서 처음 경험의 강도 자체가 다르다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감당이 안될 것 같았지만 서로 꿈이 있고 그래서 만났음에 아마 조금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하며 그 경험들을 정리하던 학기 막바지의 시간들을, 그 이야기들을 '그래서 조금씩 해볼 수 있는' 공부와 경험들로 잇고 싶기도 했다, 아까웠다고나 할까. 뭔가 막연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학교만들기 팀이 시작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면서 당황스러웠고, 난감했던 부분들이 있었고 그 경험들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기까지는 결코 쉬운게 아니었다. 크리킨디는 숲을 구하려 한다, 자기가 사는 숲에 불이 났는데 가만있을리가 없지만 딱히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일을 하는 의미는 없고, 고작 새 하나가 물방울을 불 위에 하나씩 떨군다고해도 그게 불씨에 닿기는 커녕 열에 녹아 그대로 공중증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크리킨디는 불을 끄는 것도 해야 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여기가 너희 숲이라고 같이 하게끔 만들기도 해야한다. 적어도 우리는 자기 엉덩이에 불이 붙으면 그 자리에서 깔고 앉아버리지 않고 알아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이 버겁고, 부담스럽고 내 일이라고, 나랑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버거울 때가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마음붙이기가 화두고 가장 어려운 도전이라며 그것을 넘어서 내 세상의 불을 끄는 일을 하자고 이야기한다. 학교만들기의 여정에서는 나는 우리가 그 숲이 어디까지인지, 혹은 어디까지일 수 있는건지 느껴보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몰랐던 세계와 다가가기 힘든 것들이 있었고, 놀라기도 하며 이것을 정말 불을 끄기 충분한만큼의 비를 상상하기 위해서 정말 나를 넘는 도전이기도 했다. 마음 붙이기와 넓히기 우리가 사회와 세상을 걱정하고 구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그것이 나와 상관있으며 다른 살아가는 것들이, 사람들도 우리의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같이 살아가는 것은 너무 어렵다. 5월부터 일본의 신체장애인 배우만으로 이루어진 극단 타이헨의 황웅도 일대기라는 작품의 3월 한국 서울-고성 공연 상연을 위해 한국 엑스트라를 뽑는 워크숍에 작업장학교는 쿠로코로서 그들을 돕고 있다.극단 타이헨은 신체장애인의 통제불능uncontrollable한 신체에서 나오는 예측불가unpredictable한 움직임은 비장애인의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움직임 이전의 근본적인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그렇기에 자신들의 예술은 장애인 연극이 아니라 타이헨 예술이며 같은 예술의 메인스트림에서 공평하게 평가되야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쿠로코는 혼자서 온전히 움직이기 힘든 신체 장애인인 배우들의 전체적인 생활보조와 무대 위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존재감없이' 그들의 수족이 되어 파트너로서 배우의 연기를 완성시킨다. 극단의 원칙 중 하나는 배우는 기본적으로 무대 위에서 온전히 신체를 보이기 위해 레오타드(타이즈)를 입는 것인데, 쿠로코는 무대에 오르기 전 그들의 옷을 갈아입히며 그들에게 '당신은 이제부터 배우가 되는거에요'라며 그들을 탈바꿈시키는 일종의 의식적인ritual 임무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쿠로코는 배우들의 몸을 다루는 역할을 하므로, '빠르고, 안전하며, 조용하게'가 그들이 일을 행할 때 가지는 원칙이며 배우와 쿠로코간에 신뢰관계가 있어야 한다. 첫 워크숍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어린 시절부터 훈련된 일종의 봉사와 헌신의 정신을 가지고 편견없이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대로 열심히 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서 움직이며 연기에 몰두하려는 것을 보고는 사실 잘 이해가 안되었다. 물론 그들이 신체적으로 개개인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이 어려워하는 동작이 다르고, 워크숍 후반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내었을 때는 어떤 감동이 일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던 터였다.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 두번쯤은 자원봉사라고 생각하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존재가 내 안에서 점점 비중을 늘려가면서 나보고 앞으로 그런 일을 더 해보라고 하면 첫날 하루 6시간의 막바지에도 생각했듯이 나는 분명 힘들게 그것을 여길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게 싫었다. 타이헨 예술은 무엇이 정상인가, 무엇이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를 물으며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엎어버린다. 나는 내게 일었던 그 감동의 내용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런 강한 경험을 어떻게 이해해가고, 그래서 정말 쿠로코로서 differently abled한 그들과 파트너로서 일해나갈 수 있는지 해보기로 했다. 바로 그 한 두번정도 좋은 마음으로 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힘들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같이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 어떤 경험을 통해 기존의 이해가 바뀔 여지가 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몇차례 워크숍이 있었고 10월부터 나는 쿠로코들의 리더 역할인 쿠로코 가시라로서 연습을 책임지고 극단과 연락하며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학교만들기 팀으로서 처음 우리가 참가한 프로젝트는 얘너나 기획팀의 성사중 사이프로젝트였다. 일주일에 두번씩 10회 정도로 진행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소위 '문제아', '노는 애들'이라고 여겨지며 학교에서는 겉돌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있는 아이들과 '얘,너,나'라는 프로젝트의 기획팀이 '얘들아 너희가 나쁜게 아니야'라며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학교와 사실은 학교가 싫은 것은 아닌 것 같은, 그 둘의 사이를 가까이 하고자 기획되었다. 작업장학교는 이 프로젝트에서 '몸만들기' 파트에서 춤과 노래를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분주하게 서로 욕하고 떠들고 (사실은 관심없어보이는 것은 아니었는데) 관심없는 척하고 일부러 페이스에 안 따라오려고 하는 둥 어렵게 굴었다. 첫 회 워크숍 리뷰에 나는 '상처 받았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아이들이 말을 하도 안들어서 그랬던게 아니라 학교 안 관계들과 선생님들의 강압의 언어가 괴로워서 학교를 나왔는데, 다시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그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듣고,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나중에는 싫었고, 슬펐다. 나는 그 애들이 나이 차이는 있어도 같은 청소년이니 이름부르면서 편하게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 제도권의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내가 하자에서 쓰이는 언어를 원하며 그 공간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공교육 시스템에 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떤 다른 공간에 들어와있어보면서 다른 언어들을 접하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름에 상처입고, 좌절하고, 또 더욱이 무감해지기만 해서는 안된다. 작업자로서도, 크리킨디로서도 우리들이 각각의 다양한 현장으로 들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어보고 관찰한다는 것은 그 경험들을 판단하고, 사유해서 체화시키는 과정이 공부인 동시에 작업인 것이다. 작업장학교 그 두번째의 첫번째 - 작업장학교 시즌2의 이번 첫 학기동안 생태와 평화 그리고 통합의 키워드를 가지고 학습을 진행시켜갔다. 스스로들을 크리킨디라고 칭하고 우리가 사는 숲의 불을 끈다고 말하는 우리는 참 막막할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구하려 하는 숲이, 그러니까 우리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한, 그래서 끊이지도 않는 위기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기후변화는 가속화되고 종교 분쟁, 자원 개발, 소수민족 문제로 전쟁위 위협은 계속되고 심지어는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난민, 빈민촌, 사회 양극화, 종다양성, 제3세계 착취, 소수자, 교육, 실업 등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우리 앞에는 몸에 힘빠질 정도로 끝없이 많아보이기만 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태를 이야기하고 평화를 주장하며 같이 살아야 한다고 통합을 고민한다. 2010 창의서밋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창의성'이었다. 그처럼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영위 정도가 아니라 생존의 영역까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면서 어떻게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지 궁리하고, 중요한 것은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이 살아간다는 것, 더 나아가 공생하는 것에 대해까지도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학기들어서는 평화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화 수업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엥? 평화는 너무 당연한 거 아냐? 수업해서 또 따로 뭐 배울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평화'라는 단어 자체에 별로 의심이 없었고 당연히 추구해야 할,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좋은 의미인 보편적 가치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어깨동무의 이마까라상과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화는 자신 안의 안정과 풍요로 설명된다면, 우리는 때때로 자국의 물질적 풍요와 이윤 추구를 위해서 제 3세계의 다른 나라 노동자를 부당하게 착취할 때도 있고, 이기적으로 굴며 타인과 같이 살아가는 것을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들도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조진석 선생님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했을 때는, 오직 가해자라고만 생각했던 일본군도 사실은 개개인의 병사들은 원치 않은 전쟁의 피해자였고 전쟁으로 모두가 슬프고, 상처를 가지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기만하고, 증오하기에도 복잡한 각기 다른 사정들이 얽혀있는 것 같았고 내 머릿 속에서도 어쩔 줄을 몰랐었다. 올 해 여름 쪽방촌에서 온도재기 프로젝트 도중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우리 모두는 노인분들에게 잘 해드리고 친절하게 대해드리려고 노력하는데, 항상 술에 취해서 골목에 있는 아저씨가 여기서 뭐하는 것이고, 왜 노인들만 해주고 우리는 안해주냐, 젋은 것들은 죽어도 되냐하시며 만날 때마다 그렇게 우리에게 화내고 소리지르시니까 우리는 날이 갈 수록 점점 마음이 불편해져갔다. 특히 무브를 만날 때 자꾸 그러셨는지라 어느 날 무브는 오늘도 또 그러면 정말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 했나본데, 그 아저씨는 막상 마주치자 마자 무기력하게 나같은 놈은 그냥 쓰레기니까 가서 노인들이나 잘 돌봐드리라며 이야기하시는게 아닌가. 그 순간 허탈해지면서 그 아저씨에게 미안함 마음도 들고, 화도 나고, 씁쓸한 마음들이 들었다. 나는 쪽방촌 프로젝트 때 굉장히 체력적으로 힘들어했었다. 날씨가 무덥기도 하고, 쪽방촌에 가면 그런 다소 위험한 일들이 있을 수도 있고 매일 아침과 오후에 계속 종로까지 차타고 왔다갔다 하는 것, 아침에 가기에는 우리 집이 너무 멀어서 대안교육센터의 은진이 부암동에 있는 자기 집 골방을 빌려주셨는데 이주일씩 집 아닌 공간에서 지내면서 학교의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려니 난 너무 지쳤고 밥맛도 없어져서 이주일 후 프로젝트가 끝나고나서는 체중도 약 5kg가량 빠져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피로를 무릅쓰고라도 쪽방촌 온도재기에 몰입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가 정말 크리킨디라면, 그래서 숲과 숲의 있는 모두를 생각하고 같이 살아가야겠다고, 인류애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대하고, 일을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모두를 생각하고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우리 마음 속에는 매일 나타나는 그 아저씨에 대한 두려움도, 미움도 나타났고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해내면 좋을지 모르겠고 대체 공감empathy과 동정pity가 어떻게 구분되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제 할머니가 되어버린 위안부 할머니들은 긴긴 세월 지금까지도 일본군의 과거 행적과 자신들의 한 때의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렸던 행각들을 사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역사 속의 사건이지만, 그 당사자들이 현재도 살아가고 있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할머니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정대협이라든지, 여러 그룹들은 이게 우리 사회 안에서 '그들의 일이었고, 그들의 목소리를 낸다'를 넘어서 모두의 일로 관심가지고 참여해주었으면 한다고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식의 보상도 됐고 정말 진정성있는 사죄를 해야 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사죄가 뭘까, 할머니들은 그렇게나 일본이 증오스러울텐데 앞에 나서서 사죄를 받아내는 걸로 족한건가? 사죄를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정대협 20주년 포럼에 참여했을 때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질문들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날 행사의 시작에서는 다나카 노부유키라는 사람이 과거 일본군 병사였던 아버지의 전쟁 일기를 한국에 기증하며 사실을 알고 그것을 딛고 한국과 일본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가 서밋 때 만났던 walk9의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은 과거 일제 시대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일들에 대해 사죄하며 젊은 이들과 걸으며 헌법 9조를 일본이 다시 채택하고 먼저 전쟁을 버리자며 눈물흘리며 걷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죄하는 것은 우리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며 너희와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있어, 라고 이야기한다기보다는 그런 일과 감정과 역사의 골을 넘어서, 그래도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며 같이 살아가야 하고, 같이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정말 모두를 돌봐야 해?' 이것이 정말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던 것 같다. 마사키 선생님은 어머니인 지구, 자연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전쟁'이라며 우리가 걸으며 함께하고, 산에 나무를 심으며 내 안의 평화와 그것을 넘어 인류가 화합해서 마지막에는 자연과 화해하며 자연의 품으로 회귀, 그라운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두달 전에 선생님의 저서인 '나비문명'이 한국에 출간되었는데 그 책의 시작에는 애벌레 마나와 나무의 동화가 실려있다. 애벌레 마나는 어머니 나무의 품안에서 나뭇잎을 먹으며 무럭무럭 잘 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이 나무에는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애벌레들이 많고 그들이 점점 커가면서 먹는 양도 늘어날테니 어머니 나무가 말라서 죽어버릴 것 같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무가 '괜찮아, 그런 사랑의 마음을 깨달은 걸로도 충분하단다'라고 대답하고 얼마있지 않아서 애벌레들은 누에고치를 만들어 그 안으로 들어갔는데 시간이 흐르자 그 고치를 열고 나비가 나와 그들은 더 이상 나뭇잎을 먹지 않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꿀을 먹고, 꽃과 나무를 피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깨닫고 지금있는 누에고치의 문명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공생을 이야기하는 문명으로 진화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마사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인간의 평화가 곧 생태의 평화로 이어져야 한다며 정말 넓고 많은 것들을 품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우리가 모두를 돌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눈과 생각은 각자가 발붙히고 있는 땅에 누구와 같이 사는지, 그래서 우리의 문제가 언젠가부터 보이게 된다면 점차 그 비평화적인 상황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보는 것이다.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개념적으로 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넓고 깊게 생각해보려고 애쓰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생태, 평화 그리고 통합, 어느 키워드에서든 우리가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중심에서 바깥으로의 확장이 화두이다. 그래서 세계를 보는 넓은 시점이었다가도 다시 그 세계에 발붙이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 보아야 하고, 나로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같이 하자고 자꾸 이야기하기도 해야한다. 또한 그렇기에 학교는 당연히 닫혀있지 않고 우리 바깥의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들도 우리 학교를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훌륭한 팀이 되어서 대작전을 벌이고도 싶고 다른 사람들도 기쁘게 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에는 그게 우리 작업이다. 언젠가는 크리킨디가 되게 하는 것. 이것에서 나는 첫째로는 자신 발등에 불이 붙었다는 것은 알지만 실은 그것은 내 주위에서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고, 정신을 차리고보니 주변도 불타고 있었고 보이게 될 수록 타고 있는 곳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발등의 불도, 그리고 끄는 김에 주변에 것도 꺼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서 모두의 감수성이 자신 바깥으로도 나갈 수 있어야 하고 인식 속에서 그 위기들을 내 세상의 문제라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을 찾아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물방울들을 모아서 비가 내리게 해서 불을 끄는 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찾아오는 피곤이나 무력감을 무릅쓰고서라도 타개해내고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 학교 안으로 들어와 전력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장 느린 통일이 좋은 통일이라는 이마까라 상의 말처럼, 시간이 걸리고 천천히 만들어지면서 동의하고 합의해나가며 단단히 만드는 의미와 성취를 이루면서 조금씩은 움직이고 있다. 당장은 물방울이 빗방울이 안될 수도 있고, 비로 내려지더라도 사람들이 내가 한 줄 모르고, 몰라줘도 그 비를 보면서 기뻐할 수 있는, 마치 쿠로코처럼 뒤에서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조용히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의연함이 있다면 이것이 의미있는 일이고 그래서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일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부족인 호피(Hopi)족의 기우제는 반드시 비를 내린다고 한다. 그들에게 영험한 효력의 레인메이커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강우확률 100%의 비결은 비가 내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 긍정의 믿음이 척박한 땅 위에서의 생존의 조건이라며 말이다.
- 시즌2의 학교가 시작되고 학교만들기를 했던 7명과 전형을 통해 새로 들어온 7명, 그리고 금산간디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학생 1명이 시즌2의 작업장학교를 열었다. 전형으로 들어온 7명 중에서도 한명은 당시 아직 금산간디 중학과정에 재학하다가 작업장학교에 들어와 중학과정은 그 과정을 리포트로 쓰는 것으로 졸업과정을 마칠 예정이었고 10월달부터는 홍콩 창의력 학교에서부터 반년동안 교환학생으로 와있을 호사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년 1월부터는 영서라는 친구가 3개월동안 같이 하게 될 예정이다. 작업장학교의 문을 다시 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누구나 올 수 있는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누군가의 '크리킨디의 학교'라고 표현처럼 우리는 누구나 크리킨디가 될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스스로 꼭 적을 옮기지 않더라도 그 배움을 경험하고 싶다면 와보게끔 하고 싶었고, 교환학생 등의 여러가지 새로운 방식들에 대해서도 시도해본다. 그게 개인들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을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에게 하나 걱정이었던 것은 '신입생들이 크리킨디 이야기를 어이없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하면 어쩌나'였다. 누구나 오고 누구나 다닐 수 있는 학교이고 싶지만 밤 10시에 끝나서 집이 멀다면 1시간 넘게 걸려 집에 도착하거나, 일정이 많다고 느껴서 피곤해하거나, 왜 하고 싶은 일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할거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나 책 읽을 시간은 없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고 다른 사람 신경쓰는데 버겁고 내가 없는 것 같다는 이유로 그만둘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길찾기는 없지만 한달 간의 시간을 두고 같이 해보면서 계속 같이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었다. 그 기간동안 달맞이 축제를 같이 기획해내고 매체 수업, 평화 세미나도 같이 했었다. 그리고나서 한달이 지났을 때는 모두가 계속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후 몇주가 지나도 지각문제는 별로 나아지지 않고, 나왔다가 안나왔다가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집중하기에 힘들어하고 뭔가 해볼 여유가 다들 없었다. 겨우 일정만 소화해냈고 그 이상의 하고 싶은 일들이 잘 나오지 않고 학교 전체가 가동해서 움직인다는 느낌도 없었다. 항상 지쳐있었다. '크리킨디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 특히 신입생들은 한달의 적응기로 몸을 만든다는게 쉽지는 않았을 도전이었을 것이다. 논스톱 죽돌들의 페이스가 있고 새로 도전하는 죽돌들의 페이스가 다른데, 어떻게 주도적으로 나름대로 '선배'의 역할을 해내며 공익활동, 공부와 왜 하는지 영문도 모를 프로젝트들을 '일단 해보고 나서 생각한다'의 모토로 경험을 체화하는지도 잘 보여주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겨우 소화는 해내는데 뭔가 다른 일로 연결되는, 자기의 하고 싶은 일이 프로젝트에서 잘 발견되지 않고 끝나면 쉬어야 하는 일만 자꾸 생겼던 것 같다. 역시 길찾기 과정같은 것이 필요했었는지, 아니면 새로 들어온 죽돌들이 길찾기 과정도 없이 적응기도 한달이 지나서 계속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에는 뭔가 스스로 더 해보려고 했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전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음악이나 글쓰기 등이 학교로 들어오지 않고 학교 밖에서 자꾸 둘의 다른 시간을 재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논스톱 죽돌들의 시범과 분발도 중요한 역할이었을 것 같은데, 학교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학기의 끝을 생각해보면서 설계해나가지 못했고 프로젝트나 리뷰에서의 어떤 태도에서 자꾸만 어떤 말들만 해주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각 팀이 연습도 해보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많고 적고의 문제를 떠나서 공연팀의 경우 그 시간에 악기를 연주하고 점차 같이 연주할만큼 따라올 수 있게 되는 연습의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이 필요했고 팀의 이름이나 음악의 철학은 무엇인지, 새로운 학교 팀에서는 우리가 적어도 어떤 역할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을 이야기할 시간을 내지 못한게 아쉽다. 한달의 적응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공연은 주로 오피, 무브, 쇼, 동녘 이 4명으로만 하는 일이 많아졌고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다. 우리 학교가 한 팀으로서 좀 더 많은 일들을, 좀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과 해야하는 일만 늘어나서 '옆'그레이드하지 말고 할 때는 의기투합해서 해내고, 그것이 즐거워서 자꾸만 하게 되고 할 때마다 좀 더 잘하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우리의 공부가 나날이 쌓여가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정말 하고 싶어지는 일도 찾으면 좋겠고 학교에 있기 때문에 더 키워갈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자기 삶의 형태에 대해서도 실험해보고 고민해보면서 학교랑 같이 커가고 언젠가는 자신의 길을 또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려면 정말 하나씩 무언가를 마칠 때마다 평가도 꼼꼼히 해봐야 하고, 공부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내용을 어떻게 더 아름답고 능숙하게 보여주는 형식과 감각, 언어가 우리의 매체이고 그 수업에서 단순히 테크니컬한 지식을 쌓아가는데서 그치지 말고 배웠으면 어떻게 익힐건지도 자꾸만 해보면서 정진해야한다. 왜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하지 않나. 마무리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내 화두는 축제와 의식ritual이었다. 학교만들기 팀은 5월에 성년식을 기획하고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이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일지, 성장과 성숙을 축하하며 마을의 이웃들과 어른들이 그것을 축복해주며 스스로가 자신의 성장을 의미있게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나누었다. 그 때 나는 '사회에서 실속 있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 등이 자연스럽게 시간에 의해서 사라진다고 이야기하지만 여기저기서 대수롭지 않게, 선물을 주고받는 식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뭘 꼭 사고, 줘야하고 이런 식의 시장논리로 일상들이 점철된다는 것이 진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성년의 날을 떠올리면 향수나 장미를 주는 날이면 간지럽게 왜하나 싶었다. 그런데 오늘 성년식을 하고 의식으로서 일상을 회복한다는 것, 그것을 사람의 몸과 정신에 새겨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식들이 사람 한명 한명의 성장으로써 개인의 역사에 쌓여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람 하나하나의 역사가 굉장히 중요해져야 하는 때다 싶었다. 저번에 좋아하는 뮤지션의 최근 앨범인 orbital period, 궤도주기의 뜻이 ‘태어난 날짜와 요일이 일정한 주기인 28년에 한 번 씩 돌아온다.’ 라는 것이었는데 그걸 보고 사람이 하나의 행성인 것 같았다. 사람이 하나의 별 같구나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거의 모든 것이 돈으로, 물건으로 의미가 설명되지 않는 것이 없고 유례와 기원도 없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는 허례허식들이 감동과 의미도 없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서 의미있게 지혜와 삶을 나누고 그렇게 삶을 진정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감동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벌이는 축제와 의식이 더욱 많은 사람을, 더욱 많은 다른 존재들을 배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학교만들기팀의 시작 무렵에는 '우리가 한팀이 된다면 ~'하며 우리가 같이 공연도 하고, 벽화를 그리고 무언가의 아트디렉팅을 하거나 영화도 찍어봤으면 한다. 각자의 개성과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의기투합해서 좋은 일들을 뚝딱하고 해내면서 한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가볼 수 있는 팀으로 해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년부터는 이번 학기에 지지부진했던 '마을의 음악가'에 대해서도 풀어보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간 공부해왔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생태나 다양성, 또 일상의례가 가지는 의미들을 축제, 의식의 모임으로 만들어내고 싶고 일상에 노래가 함께하게 되는 여러가지(사실 뭐가 어떻게 될진 아직 막연하지만...) 것들이 있었으면 한다. 작년부터 학교 안에서 해오던 poetry afternoon라는, 시나 문학을 나누거나 서로 음악이나 가벼운 작업을 보이는 시간을 올해에는 poetry hours, poetry gathering이라고 부르면서 한달에 한번 +라이프스타일: 율면, poetry hours, 공동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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