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다시 연 학교


2010년 3월, 우리는 그 때의 수료와 졸업을 끝으로 작업장학교 시즌1을 끝내고 다음 시즌2의 작업장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를 닫았다. 

2001년 첫 개교할 때의 하자의 십대들은 학교는 그만두었지만 배움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며 자기들은 지구 전체에 퍼지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모여 춤을 추는 고래들이고 자기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며 힘껏 자기들의 존재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2010년이 되어, 요즘은 매일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의 소식을 듣게 되고 무기력해지기 쉽지만, 그래서 집 안, 컴퓨터 앞에, 핸드폰을 붙잡고만 앉아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외면하지 않고 못본 척 하지 않고 그 위기들이 우리에게 닥친 일이고 그래서 우리가 움직여야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며 숲의 불을 끄려 노력하는 크리킨디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다. 시즌1의 마지막을 보냈던 죽돌들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삶을 읽어내는 문해력, 어떤 공간과 그곳에 쌓여있던 시간을 보며 감지해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에서도 그것이 나랑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일 수도 있다는, 어떤 연결의 끈을 찾을 수 있었던 체험을 지났다. 초기에 탈학교한 십대들이 스스로 배움을 지속할 공간으로 학교를 필요로 하고, 만들어내서 출발한 작업장학교가 지금도 같은 필요로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 2001년 시작한 학교를 닫아야 하지 않겠나하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크리킨디로서 배움을 지속하고 세상을 구해보려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학교는 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렇게 시즌1을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2를 시작한 우리는, 크리킨디 이야기가 '뭐 어쨌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하니까 됐지.'하며 불을 끄지 않은 물방울만을 떨어트리다 숲을 태우지 않고 모두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비를 만들어 불타는 우리 숲을 지키자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다시 학교를 시작했다. 우리의 학교만들기 과정동안 학교의 키워드가 되는 생태, 평화 그리고 통합은 어떻게 연결되었고, 한 학기의 끄트머리에서 질문해보았을 때, 우리가 만든 학교는 다니기에, 공부하기에 어떤 학교였을까, 좋은 학교였을까? 그 학교를 만들고 다닌 사람 중 하나인 나는 어떤 학습을 만들어오고 있는걸까?


3월달 시즌1 작업장학교의 마무리가 다 되어갈 즈음에 다음 시즌의 학교만들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학교만들기팀에서 같이 해볼 것인지 제안을 받았다. 사실 그 이전에는 공연팀으로서 지내면서 (그것도 공연하는 사람들이) 우리 팀의 역할이나 팀 멤버간의 이야기, 시너지 등이 너무 미적지근하고 재미없게 구는 것이 아닌지, 같은 팀안에서도 서로 너무 모르고 그냥저냥 지내면 된다는 식으로 지내는 것은 아닌지 고민과 회의가 날마다 왔다갔다했고 지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수료를 마치면 그 다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직 처음 학교에 와서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그 많은 액션들과 기획들과 공부와 에너지들을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수료 직전에 태국 국경지대 메솟의 난민 지위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만나고, NGO들을 만나면서 처음 경험의 강도 자체가 다르다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감당이 안될 것 같았지만 서로 꿈이 있고 그래서 만났음에 아마 조금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하며 그 경험들을 정리하던 학기 막바지의 시간들을, 그 이야기들을 '그래서 조금씩 해볼 수 있는' 공부와 경험들로 잇고 싶기도 했다, 아까웠다고나 할까. 뭔가 막연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학교만들기 팀이 시작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면서 당황스러웠고, 난감했던 부분들이 있었고 그 경험들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기까지는 결코 쉬운게 아니었다.

크리킨디는 숲을 구하려 한다, 자기가 사는 숲에 불이 났는데 가만있을리가 없지만 딱히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일을 하는 의미는 없고, 고작 새 하나가 물방울을 불 위에 하나씩 떨군다고해도 그게 불씨에 닿기는 커녕 열에 녹아 그대로 공중증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크리킨디는 불을 끄는 것도 해야 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여기가 너희 숲이라고 같이 하게끔 만들기도 해야한다. 적어도 우리는 자기 엉덩이에 불이 붙으면 그 자리에서 깔고 앉아버리지 않고 알아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이 버겁고, 부담스럽고 내 일이라고, 나랑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버거울 때가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마음붙이기가 화두고 가장 어려운 도전이라며 그것을 넘어서 내 세상의 불을 끄는 일을 하자고 이야기한다. 학교만들기의 여정에서는 나는 우리가 그 숲이 어디까지인지, 혹은 어디까지일 수 있는건지 느껴보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몰랐던 세계와 다가가기 힘든 것들이 있었고, 놀라기도 하며 이것을 정말 불을 끄기 충분한만큼의 비를 상상하기 위해서 정말 나를 넘는 도전이기도 했다. 



-마음 붙이기와 넓히기


우리가 사회와 세상을 걱정하고 구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그것이 나와 상관있으며 다른 살아가는 것들이, 사람들도 우리의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같이 살아가는 것은 너무 어렵다. 5월부터 일본의 신체장애인 배우만으로 이루어진 극단 타이헨의 황웅도 일대기라는 작품의 3월 한국 서울-고성 공연 상연을 위해 한국 엑스트라를 뽑는 워크숍에 작업장학교는 쿠로코로서 그들을 돕고 있다.극단 타이헨은 신체장애인의 통제불능uncontrollable한 신체에서 나오는 예측불가unpredictable한 움직임은 비장애인의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움직임 이전의 근본적인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그렇기에 자신들의 예술은 장애인 연극이 아니라 타이헨 예술이며 같은 예술의 메인스트림에서 공평하게 평가되야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쿠로코는 혼자서 온전히 움직이기 힘든 신체 장애인인 배우들의 전체적인 생활보조와 무대 위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존재감없이' 그들의 수족이 되어 파트너로서 배우의 연기를 완성시킨다. 극단의 원칙 중 하나는 배우는 기본적으로 무대 위에서 온전히 신체를 보이기 위해 레오타드(타이즈)를 입는 것인데, 쿠로코는 무대에 오르기 전 그들의 옷을 갈아입히며 그들에게 '당신은 이제부터 배우가 되는거에요'라며 그들을 탈바꿈시키는 일종의 의식적인ritual 임무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쿠로코는 배우들의 몸을 다루는 역할을 하므로, '빠르고, 안전하며, 조용하게'가 그들이 일을 행할 때 가지는 원칙이며 배우와 쿠로코간에 신뢰관계가 있어야 한다. 첫 워크숍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어린 시절부터 훈련된 일종의 봉사와 헌신의 정신을 가지고 편견없이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대로 열심히 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서 움직이며 연기에 몰두하려는 것을 보고는 사실 잘 이해가 안되었다. 물론 그들이 신체적으로 개개인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이 어려워하는 동작이 다르고, 워크숍 후반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내었을  때는 어떤 감동이 일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던 터였다.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 두번쯤은 자원봉사라고 생각하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존재가 내 안에서 점점 비중을 늘려가면서 나보고 앞으로 그런 일을 더 해보라고 하면 첫날 하루 6시간의 막바지에도 생각했듯이 나는 분명 힘들게 그것을 여길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게 싫었다.

타이헨 예술은 무엇이 정상인가, 무엇이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를 물으며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엎어버린다. 나는 내게 일었던 그 감동의 내용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런 강한 경험을 어떻게 이해해가고, 그래서 정말 쿠로코로서 differently abled한 그들과 파트너로서 일해나갈 수 있는지 해보기로 했다. 바로 그 한 두번정도 좋은 마음으로 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힘들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같이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 어떤 경험을 통해 기존의 이해가 바뀔 여지가 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몇차례 워크숍이 있었고 10월부터 나는 쿠로코들의 리더 역할인 쿠로코 가시라로서 연습을 책임지고 극단과 연락하며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학교만들기 팀으로서 처음 우리가 참가한 프로젝트는 얘너나 기획팀의 성사중 사이프로젝트였다. 일주일에 두번씩 10회 정도로 진행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소위 '문제아', '노는 애들'이라고 여겨지며 학교에서는 겉돌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있는 아이들과 '얘,너,나'라는 프로젝트의 기획팀이 '얘들아 너희가 나쁜게 아니야'라며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학교와 사실은 학교가 싫은 것은 아닌 것 같은, 그 둘의 사이를 가까이 하고자 기획되었다. 작업장학교는 이 프로젝트에서 '몸만들기' 파트에서 춤과 노래를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분주하게 서로 욕하고 떠들고 (사실은 관심없어보이는 것은 아니었는데) 관심없는 척하고 일부러 페이스에 안 따라오려고 하는 둥 어렵게 굴었다. 첫 회 워크숍 리뷰에 나는 '상처 받았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아이들이 말을 하도 안들어서 그랬던게 아니라 학교 안 관계들과 선생님들의 강압의 언어가 괴로워서 학교를 나왔는데, 다시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그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듣고,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나중에는 싫었고, 슬펐다. 

나는 그 애들이 나이 차이는 있어도 같은 청소년이니 이름부르면서 편하게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 제도권의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내가 하자에서 쓰이는 언어를 원하며 그 공간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공교육 시스템에 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떤 다른 공간에 들어와있어보면서 다른 언어들을 접하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름에 상처입고, 좌절하고, 또 더욱이 무감해지기만 해서는 안된다. 작업자로서도, 크리킨디로서도 우리들이 각각의 다양한 현장으로 들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어보고 관찰한다는 것은 그 경험들을 판단하고, 사유해서 체화시키는 과정이 공부인 동시에 작업인 것이다. 



-우리가 비를 만들 수 있을까?

       

시즌2의 학교가 시작되고 학교만들기를 했던 7명과 전형을 통해 새로 들어온






9월이 되어서 학교만들기 팀의 걱정이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크리킨디 이야기를 말도 안된다고 코웃음치면 어떻게 하나, 그래도 한번 해보고 생각해보지 뭐! 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또 하나는 처음 한달이야 사실 적응 기간이기도 하고 맛(?)을 보는 기간이라 비교적 여유롭겠지만 한달이 지나면서 소화해야하는 일정의 갯수가 늘어갈수록 이들이 느끼고 나름대로 감내해야 할 10시부터 10시까지, 피로와 지각 안하기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버거워하지는 않을까,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기우제 祈雨祭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부족인 호피(Hopi)족의 기우제는 반드시 비를 내린다고 한다. 그들에게 영험한 효력의 레인메이커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기우제는 비가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