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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자작업장학교 시즌2 학교만들기팀을 해보겠냐는 권유를 받았을 때, "내가???"라며 이마에 몇개의 큰 물음표들을 그렸다. 탄광마을 정선과 버마난민들이 살아가는 메솟을 다녀오고, 수료가 다가올 무렵 소개받은 크리킨디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시즌2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상상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꿈을 꾸며 헤엄칠 것인지가 쉽게 눈 앞에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공간의 시선을 잃지 않겠다던 지난 수료에세이 마지막 구절을 '하자'라는 공간에서 또 다시 이뤄내는 것이 과연 나에게 적합할까… 

당장에 검정고시를 볼 것도, 돈을 버는 게 목적도 아니지만 일상을 챙길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을 마련하는 동력이 필요했던 여러 고민들의 결말은 결국 "나만 좋은 일은 나중에 해도 되겠다"였다. 

내 이야기가 오로지 내 마음에만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바깥 세계에도 감동을 주도록 하기, 생각과 행동과 말과 세계가 모두 함께 섞이도록 만들기, 힐끗 보기를 버리고 세계를 응시하고 읽어내기. 이제 내가 발들여 놓은 이곳 하자작업장학교는 오로지 내 재능과 욕구로 홀로 잘 설 수 있다는 격려보다도 옆에 누가 있는지를 알고, 그 다른 개개인들이 모여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궁리하고 만들어보자고 손을 내민다. 

   3월 수료식 이후 본격적으로 시즌2학교만들기가 시작되었다. 학교만들기팀은 스스로들이 잘 쓰일 수 있는 사람으로, 팀으로서 움직이기 위해 아주 소소한 것부터 근본적인 것까지 서로에게 질문을 다시 해보아야 했다.

"만약 시즌2가 우리끼리만 좋은 일들로 보람을 느끼는 학교라면.. 굳이 필요할까?"

"그럼, 어디에서 뭘 할건데?" 

아무리 불을 끌 물방울을 입에 물고 있어도 어느 숲에 불이 났는지 알고 있지 않으면 불을 끌 수가 없다. 심지어 나에 대한 관심은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남에 대한 관심은 때론 애써 배워야 하기 때문에 늘 주변에 대한 섬세한 안테나를 키고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시즌2학교만들기팀은 시즌1의 경험에 의존할 수만은 없었다. 

누군가의 입으로 전해만 들었던 하자 시즌1 초기의 이야기는 (하자초기무렵, 나는 본격적인 십대가 되었다) 마치 '어느 다른 공간의 사람들 이야기'처럼 생소하게 다가왔다. 하자 초기의 죽돌들은  마치 '서태지'와 같았고 그들 '스스로'하자로 찾아온 십대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비판적이었거, 자기재능에 몰입하며 자기주도적학습을 하내는 사람들이었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기'라는 화두로 삶을 '스스로' 설계하기 위한 자기 나침판을 갖기 위해 바쁘게 학습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너무 행복해서, 그런 행복을 나누지 못하는 하자바깥의 다른 아이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하자가 만들어진 첫 해부터의 추석에, 다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던 작업장학교의 한 졸업생이 '달맞이축제'의 '소원종이'라는 의례를 만들었다고 한다. 

2010년 9월에도 어김없이 시즌2의 첫번째 달맞이축제를 준비했던 우리들에게 이 의례는 '하자바깥의 다른 아이들'에 대한 염려보다,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라는 크리킨디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야할까? 매년 했기 때문에 또 하는 행사가 아닌,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치르게되는 문화적 의례를, 그렇지만 오히려 그날만 되면 더 쓸쓸해지는 외국인 노동자, 이주민, 새터민, 부엌에서 나오지 못하는 여자들… 모두 함께 나와 달보며 소원도 빌고, 함께 놀자는 의미에서 우리는 달맞이축제를 이어받았다. 2010 달맞이축제에 작업장학교는 특별히 돈의동 쪽방촌 독거노인들을 초대하였다. 학교만들기팀은 지난 8월에,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들어가 '온도재기'프로젝트를 참여하였는데, 기후변화문제가 심각한 최근 쪽방촌의 여름은 보통보다 2-3도씩 높다는 통계가 나오게되었다. 한여름에 온도가 조금만 높아도, 공간이 조금 더 비좁아도 사람들은 더위를 쉽게 느낀다는 것을 알면서 찾아간 쪽방촌은, 좀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생기게 했다. 늘 (함부로) 동정심을 느끼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 쪽방촌의 상황은 '안타깝다'라는 표현이 아닌 다른 표현을 찾기 급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학교만들기팀에서 "동정과 공감"이라는 주제가 화두가 되었다. 그 두개의 사이에서 혼돈하지 말자고. 폼포코너구리대작전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정말 "대작전"을 벌이는 너구리들처럼, 불이 난 숲에서 한방울 씩의 물을 나르며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라는 크리킨디처럼, 시즌2의 죽돌들에게는  "공감"으로 인한 움직임을 만들 동기가 필요했다. 우리들 세계의 문제를 기꺼이 자기 한쪽 어깨를 내어 짊어질 수 있다는. 또는 누군가에게 "그래도 힘내, 같이 잘 지내자!"라고 손을 내밀 수 있는.

-각기 다른 세계의 문제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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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우물 안에서 벗어나보겠다는 다짐으로 찾아온 하자에서 나는 처음으로 "낯설음"이라는 주제를 턱하니 짊어지게 되었다. 8년 동안의 긴 시간 동안 '볍씨'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왔다.  2009년 하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길찾기가 되었을 때, 갑작스럽게도 볍씨생활에 대한 기억을 다시 드러내야 했다. 사실 그무렵 사람과 문화에 대한 차이를 몸소 느끼며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볍씨에서는 이랬는데, 하자는 매우 차가운 곳이군" 

그나마 대안학교라는 익숙한 이름을 가진 공간에서 마딱들인 이 "낯설음"은 지난 8년 동안의 삶에 대해 '난 우물 안 개구리였나?'라는 의구심이 들게끔 만들었다. 


-하자에서 우리는 낯선 것들을 공부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우물은 어떤 곳이었나

-'시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우리는 어떻게 세계를 구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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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삶에 철저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작위적 사고가 아닌 철저하게 의도적인 사고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 작업장학교에서 디자이너가 실질적으로 하는 일들은 굉장히 구체적이지만 전반적인 일상의 디자인을 배운다는 것이 내가 '디자인공부'를 지금까지 이어온 이유였다.

그만큼 하자에서 '디자이너'는 행사를 위한 포스터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넓은 영역의 일을 담당한다. 아마 학교만들기초였나, 시즌2에 디자인팀은 나밖에 남지 않을거라는, 즉 디자인매체를 내가 담당해야 한다는 말에 무척 긴장해 다리가 떨렸던 때가 기억난다. 아직까지 "제가 디자인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당당함이라던가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할만한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가끔 "저는 디자인공부를하고 있는 학생입니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좌절감을 맛본다.  

(   )

달갱과 하는 디자인워크숍에서 우리가 디자인을 하기 위해 밞아야 하는 프로세스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일상에서 무신경했던 것들을 '이것을 디자인해보자'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는 '앗, 저게 왜 저곳에 놓여있더라?'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다시 한번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때로 행사가 있을 때, 공부를 할 때 등의 일상 전반에서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자" 그게 잘 되지 않았을 때 "데코레이션과 디자인을 헷갈려서는 안 된다"는 코멘트가 온다. 가끔 작업장학교에 편입여부를 물으러 오는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음악이나 영상, 디자인을 집중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테크닉적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는 말을 전하면서도, 어느새 실질적인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테크닉적인 부분 때문에 골몰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된다.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수정하는 과정을 거듭거듭하면서 고작 내가 보고 있었던 것은 일정한 크기의 컴퓨터 화면이었던 것.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자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무언가를 '일상화'하고 '일상의 일'로 만드는 것이 정말 쉽게 해내기 어렵다는 고민이 따라온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정의하거나 상세하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내 주변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있고 그것을 잘 안다고, 잘 보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잘 보지 못한다. 어느 것 하나 '눈여겨'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다르게 볼 수가 있다. 나는 무수히 많이 보고 느끼는 방법들의 경험을 통해서, 하자에서 하고 있는 공부들의 흐름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장치가 무엇인지를 궁리하고 시도해보아야 한다. 하라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책에서 그는 "수없이 많은 보고 느끼는 방법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 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라는 문장을 소개한다. 


-하자에서 나는 디자인팀은 어떤 역할을?

-내 능력과 전체를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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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 연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