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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 나의 생활 나는 아직도 같은 생각들과 예전 생활습관들 속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이전 내가 다녔던 대안학교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있는 것일까? ’. 지나온 초, 중 대안학교에서 영향을 받은 나의 생각들과 행동들, 그 것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굳어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던 거라면 어떤 일에도 형식에 얽매여 생각하지 않게 해준 것과 학교가 일찍 끝나서 많은 여가 시간과 긴 방학, 그 방학에도 숙제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컴퓨터게임밖에 없었다. 당시 내 또래들도 마찬가지로 게임밖에 하지 않아서 나는 그 많은 시간들을 컴퓨터를 하는데 시간을 다 쏟았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중독되어 갔다. 하자에 가겠다고 생각하며 기다리던 2010년 9월까지, 내 생활습관은 예전부터 해오던 방학 생활패턴과 같았다. 그저 오전에 영어학원을 갔다가 pc방을 가거나 집에 들어와 컴퓨터만 바라보며 하루의 반절을 보내며 폐쇄적인 생활로 지내왔다. 누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또한 대화할 상대가 없었다. 인터넷 속의 세계에서만 휘젓고 다녔다. 매일 ‘오늘은 무엇을 해보자’, ‘오늘 컴퓨터는 하지 말아보자, 아니 적어도 조금만 하자’ 라는 다짐을 하고 무너뜨리기 반복하며 생활했다. 아직도 난 왜 다짐한 것이 쉽게 무너지는지 잘 모르겠다. 그전까지 무엇을 하더라도 나에게 누군가 먼저 권유를 해야만 움직였고, 먼저 움직이려고 생각만 할 뿐,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자에만 가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 믿고 기다렸다. 하자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기다리기도 했지만 이 생활이 하자를 다니게 되면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자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침10시부터 저녁10시까지라는 아빠의 말에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갔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런 단순 무식한 생각을 했었다. 작업장학교에 입학하기 전, 작업장학교의 이미지는 거기선 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들을 경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할 일을 먼저 계획하여 스스로 공부하게 만들어 책임감 있게 해주는 느낌을 주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이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보냈다. 2. 하자에서 9월부터 지금까지. 처음 하자에 와서 고민했던 건 하자친구들과의 관계였다. 같이 이야기를 할 때나 쉴 때 서로에게 존댓말이 오가며 긴 침묵을 유지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히려 걱정거리가 안 될 정도로 금세 친해졌다. 여기까지는 아직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수업을 들으면서나 리뷰나 모임을 가졌을 때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정리해서 말로 하는 것이 힘들었다. 때문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 하여 오해를 산 적도 있다. 이것을 받아주는 친구들도 시즌을 시작하던 초기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쉽게 먼저 나서서 정리하여 말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 문제는 아직 해결이 안되었다. 하자에서는 말을 할 때 좀 더 구체적인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왜냐하면 마냥 좋다고나 싫다고 하는 것은 전혀 그 말을 한 당사자에 의도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란다. 어떤 점이 왜 좋은지 왜 나쁜지를 말해야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고, 같이 이야기를 진행할 수가 있다. 이 문제점에 대해서 나는 왜 필요한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 하는 이유는 그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왜 좋은지와 나쁜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고 설명해달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 문제점이 꼭 필요하다 느끼지 못 했던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문제점을 머리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었다. 그럼 사람들은 그전까지 ‘내가 좋다 싫다고만 말하면 내 생각과 의도를 읽을 수 있었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물어보지 않은 이유는 그 문제점을 필요하다 느끼지 못 하여 그랬던 것일 거다. 처음에 내가 이야기를 하고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엄청 당황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니 설명할 것이 없었다.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고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친구들은 내게 코멘트를 해주지 못했다. 지금은 그래도 이런 일들과 생각들을 통해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먼저 생각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노력을 하고 있다. -글로비시 수업을 듣기 전, 솔직히 말해서 남들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창피했다. 학교 만들기 팀은 이미 글로비시 수업을 많이 들어서 잘 한다고 생각했고, 나와 같이 들어온 친구들은 일반학교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서 나만 영어를 못 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다. 글로비시에서 주로 많이 했던 것은 free writing와 그에 맞는 keyword들이다. free writng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써야 할까, 어떻게 문장을 구성해야하고 어떤 단어를 써야 이문장에 더 자연스럽게 되지?‘ 라는 것 때문에 어려웠고 그 반대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어떠한 수준에 맞춰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각 개인이 쓸 수 있는 기량에 맞게 쓰며 배워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수준차이가 나더라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오히려 더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모르는 단어를 사용하여 문장을 만들어 볼려는 여러 시도를 하게 되어서 더욱 많이 배운 것 같다. - 영상을 조금이나마 이전에 배우고 와서 걱정을 제일 하지 않고 편히 들을 수 있었던 영상수업 이었다. 물론 영상촬영에 있어서나 편집하는 기술적인 것을 가르쳐 준다고 기대하며 들었던 것은 아니다. 이 수업의 이름은 ‘영상언어의 이해’니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영상을 보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영상 전문언어, 사용한 기술 설명 등을 배웠다. 하지만 이 수업의 마지막에 self-portrait 이라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 시사회를 하는 것이다. 아직 만드는 중이지만 정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영상에 담는다는 게 정말 힘들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만든 나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을 보고 ’쟤는 어떤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 정도로 만드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내 앞에 보이는 저 영상에 같은 장면을 나는 어떤 식에 장면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을 고민할 때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하며 내가 재구성하고 싶은 것으로 해도 이미 그것은 잘 짜여진 시나리오 덕분에 많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제대로 짜여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해나갈 것인지 고민하느냐는 너무 막연했다. 내게 아쉬웠던 것은 수업내용을 생각만 하고 있지, 그 내용을 활용하거나 행동으로 한 적이 없어서 이런 일에 약한 모습을 보였던 점이다. 나는 좀 더 내가 배웠던 내용들, 영상수업 뿐만 아니라 디자인, 사운드 수업 등 모든 수업들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잘 활용하고 싶다. - 이마까라상과 이야기를 나누던 평화워크숍 첫날로 시작하여 정신대 할머니 이야기를 해주신 조진석 선생님, 헌법9조를 지키려 walk9을 이끄셨던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과의 평화워크숍,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NGO로 활동 중인 브루노와의 평화워크숍을 했었다. 평화워크숍을 시작과 동시에 우리에게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나는 입이 선뜻 열리지 않았다. 그 질문이 우리에게 정의를 내려 대답을 주란 질문이 아니였다. 평화를 생각하는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자 했던 것이지만 나뿐만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의 정의를 내리려고 그 큰 틀에서만 바라보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즉, 우리는 앉아서만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크숍을 해주었던 선생님 분들은 우리에게 평화를 위한 직접 경험하고 실천한 사례들을 알려주셨다. ‘평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아라‘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워크숍을 하시려는 게 아니였다. 우리에게 너는 모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묻고 있으셨다. 세계 각지에 있는 약자나 소수자에게 ’나는 그 소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가?’ 그리고 동시에 혼자가 아닌‘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를 고민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행동을 하게 만드는 질문들을 가지게 해주었다. 이때 나는 왜라는 질문 속에 왜라는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히옥스가 내가 생각하는 것에 핵심을 짚어 주셨다. ’그 질문들 속에 어떤 질문을 동기로 언제 행동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질문을 가지고 행동할 것인지 찾고 있다. - 평화워크숍만큼이나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장애인 신체표현 타이헨 워크숍. 지난 12월 초에 율리아가 학교체험을 올 영서와 영서네 어머님에게 타이헨 극단과 쿠로코의 역할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때 율리아는 쿠로코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물론 그때 나에게 그 역할을 설명하라고 했어도 못했을 것이다. 장애인 배우들에게 보조해주는 쿠로코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배우들을 대기시키고 ‘Go‘ 사인을 주고, 동선을 가르쳐 주고, 안전하고 빠르게 배우들을 들어 옮겨드리고, 배우들의 건강관리를 챙기는 역할을 설명했을 것이다. 그렇게 쿠로코의 역할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준다면 ‘자원봉사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쿠로코가 가지고 있어야 할 3가지 보조하는 마음가짐이 있다. 배우들을 이해하는 것,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 소통을 하며 돌봄을 주는 것. 하지만 난 아직도 이 3가지 마음가짐을 말해주어도 처음 듣는 이에게는 ’자원봉사자‘라는 이미지가 약간씩은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워크숍을 들으면서 ’나는 쿠로코의 역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못하면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이 워크숍을 하기 전에 장애인을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해본 적이 있었다. 쿠로코와 자원봉사자에 역할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요번 12월에 했던 합숙 단체연습 통해서 알게 되었다. 쿠로코는 배우의 역할을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동녘이의 말처럼 ‘있으면서 없는 존재’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쿠로코 ‘컨디션은 곧 배우들의 컨디션‘ 이라는 생각도 이번 단체연습 때 느꼈다. 김만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쿠로코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배우들에게 보이지 말아야 배우들도 더 편하게, 연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역할을 맡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설명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쿠로코의 역할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배우들과의 소통이다. 말하실 때 힘드신 분도 많아서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들어도 이해하지 못 했을 때가 너무 많았다. 배우들에게 같은 말을 내가 이해할 때까지 하시게 했다. 배우들은 내게 안부를 물으실 때 힘들었겠지만 나는 빨리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했고 힘들었다. 내가 배우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던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배우들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연극에 있어서도 더 발전 될 수가 없다. 체력적으로 가끔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지금 쿠로코에 있어서 배우들과 더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작업장학교를 포함해 그동안 다녀보았던 대안학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일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하자에서는 많은 이벤트들과 워크숍을 기획을 하고 참여를 했다. 처음 달맞이 축제를 매일 같이 이야기 나누어 기획하고 행사까지 마치고 나서 ‘이 행사는 매년 해왔으니까 이렇게 하는 구나‘ 싶었다. 바로 다음 입학식을 따로 시작을 못해 미루어 두었던 시작파티와 창의서밋, 평화워크숍 등 여러 행사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매번 행사들을 기획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지고 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 조금 겁이 났다. ‘매번 이벤트들을 할 때마다 의자 놓는 위치나, 포스터 붙이는 장소라던가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까지 의논하며 기획하는 거야?’라는 생각에 겁이 조금 났기도 했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침10시부터 저녁10시까지 라는 아빠의 말이 이해가 갔다.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고 내게 낯설게 느껴졌던 일이라 더 힘이 들었다. 이 이벤트들과 워크숍들이 나에게 어떤 도움과 배움을 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한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을 못해서 이 일들을 하는데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고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3. 학교와 집, 이전부터 내가 다니고 싶었던 비보이학원이 빚어낸 갈등. 등교시간 오전 10시, 처음엔 ‘등교시간이 늦어서 좋다‘라며 출석이 좋았었다. 하지만 조금씩 적응한다고 생각한 다음부터 랄까, 아니 학교가 조금씩 늦게 끝나기 시작할 때부터 지각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는 1~2주는 일찍 끝나는 날이 많아서 일찍 들어가 잠도 자고 여가시간이 많았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날 때마다 주어진 일, 할 일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시간활용을 잘 못했다. 졸려서 그냥 바로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TV를 늦게까지 본 다든가 해서 숙제를 다 못 하고 가져왔을 때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안 해왔을 때도 많았다. 잠 자는 시간도 조금씩 늦춰졌고 숙제의 필요성을 생각하며 밤을 새서 숙제를 해온 적도 있다(딱 한 번). 그전부터 미리 준비하는 것을 잘 못했다. 다음에 할 일에 쓰일 물건을 미리 정리나 준비해놓지 않고 숙제를 가볍게 보고 다음날에 해도 괜찮다 라며 미루었다. 당일 날 필요한 물건을 허겁지겁 찾거나 숙제를 벼락치기 하거나 잊어버리는 적이 잦아졌다. 그래서 매번 토요일에 한 주 리뷰할 때와 아침모임 오늘의 문장을 할 때 ’시간활용 잘 하자’, ‘준비성을 갖자’. 딱 두 가지 말만 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두 가지를 지킬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히옥스와 십대의 의지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나의 의지가 약하다는 표현을 썼었는데 이걸 듣고 히옥스는 십대가 의지가 강하다는 말도 이상하다고 하셨다. 그 말에 나도 동의했다. 십대가 의지가 약하다는 표현은 많이 쓰지만 강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보지 못했다. 나의 게으른 생활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시간활용과 준비성이 약하다. 미리 준비해야하는 필요성을 잘 몰랐고 내가 하자에서 하는 일에 대해 진지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친구들의 말에 나의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모습이 더욱 들어났다. 내가 집중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했던 수업들을 이해를 했는지에 대해 다시 의문을 가져야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면 내가 이해되지도 않은 생각들을 억지로 정리해서 말을 하는게 어려웠던 것이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나는 할 일이 없어서 다른 조용한 곳에 가서 그냥 노래를 들으며 혼자 시간을 때웠었다. 그러다 어느날, 홍조가 나에게 쉬는 시간 때 무엇을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홍조는 나에게 어서 할 일을 찾아 하라고 했다. 그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다시 이 학교에 무엇을 하기 위해 왔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만은 나에 대해 잘 안다 싶은 것은 ‘이전부터 해오던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한번 선택한 일들은 계속한다는 것. 학교에 지내면서 3가지 매체 중에서도 그전부터 해오던 영상을 택했다. 디자인이나 브라질음악에 대해 흥미를 느꼈지만 잘 해낼 수 있는지에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비보이를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서 매주 금요일마다 학원을 가며 다른 일정에 피해를 주는 일들도 잦았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매일 미안해 하면서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학원을 갔다 오면 12시가 되지만 난 그것에 만족했다. 어느새 부턴가 친구들은 내가 쇼하자때 비보이를 했었다고 어필해서 비보이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보이를 잘하지 않는다. 못하니까 더 배우고 싶었고 내가 처음으로 아빠에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던 것이다. 학원을 매주 가니까 학교 일정에 피해를 주기 시작한 다음부터 아빠와 이야기를 했었다. 아빠는 내게 ’학교와 비보이학원이 어느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느냐?‘라는 말에 나는 망설였고, 주변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학교가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쭉 학교에 다니면서 비보이를 연습하고 집중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물론 학교일정에도 피해를 주니까 학교를 쉬어야 겠다는 것과 그만 둘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학교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단지 집중하고 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고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 되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입장이었다. 주변 몇 명의 사람들은 부모님 말에 동의를 했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야기하던 때를 생각해 보니까 비보이를 하라고 부추겨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하자에 다니고 나서부터 다른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많이 변했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변했는지 잘 말해주지도 않았고 물어봐도 그냥 느낌이 많이 변했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학교에 잘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아 보여 더 다니는 것이 좋아 보인다는 말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학교에 다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서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하겠다. 그전부터 해오던 일들만 찾아 헤매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시작파티때 했던 내말, 다른 다양한 매체를 경험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고 했던 내 말은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해오던 일들만 습관적으로 찾게 된다면 ’내가 왜 하자에 왔는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지금까지 작업장학교에 다니면서 학교 안에서 ‘내가 이것만은 잘 지키고 잘 적응 해왔구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학교의 일정에 꽁무니 쫒아 흘러가는 느낌이였다. 지금 나에게 작업장학교를 적응했냐고 물어 본다면 나는 ‘네’라고 대답하기가 힘들다. 나는 이 학교 안에서 내가 할 일을 찾아 몰입하는 그 순간이 적응했다고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학교 다니면서 나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해줄 수 있었다. 특히 나의 부족한 점. 평소 생활을 할 때나 일을 할 때 한 가지씩 늘어난다. ‘왜 나는 계속 내게 주어진 일을 뒤로 미루고 있지?’,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뭐였지?’, ‘이 일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했었나?’, ‘모든 일에 나의 참여도와 적극성은?’. ‘왜 나는 이 학교에 오기 전까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유를 찾지 않고 했을까?‘, ‘왜 말을 할 때 구체적이게 하지 못하지?’, ’나는 이 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끝이 없다. 이런 내용의 질문을 가지고 학교 오기 전에 준비를 했었더라면 나는 이 학교에서 적응을 하는데 있어서 좀 더 수월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앞으로 생활하는데 있어서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이 학교에 진정으로 오고자 했던 목적이 무엇이 었는지?’를 기억하며 지내진 못했다. 아직도 헷갈린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지?’, ‘그전 생활로 안 돌아가는 것이 내 목표가 되어 버렸나?’. 이 학교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고 온 것도 큰 바람이었다. 이것이 나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이전부터 해오고 있던 일들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틀에서 빠져나오고 싶기도 했지만 해오던 것을 계속하고도 싶었다. 나는 이 학교에 와서 많은 매체를 경험하진 못했다. 다른 친구들 에게는 많았을지는 몰라도 내 관심사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다. 난 내가 이전부터 좋아하고 하고 싶은 여러 일들 중에서 하나를 직업으로 삼으라고 하면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내가 앞으로 지내며 생각해야할 문제이다. 4.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짐이 될까,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조바심에 눈치만 살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에도 진지한 모습이나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에 깊이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하다는 것은 첫 번째로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미팅시간엔 미팅시간을, 쉴 때는 다음시간에 준비를 하는 것. 지금 무엇을 하는 시간인지를 좀 더 인식하고 집중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을 하고 말할 것. 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떤 일로 통해 하게 되었는지를 말해야 다른 사람이 듣기에 이해와 설득을 시킬 수 있고 나의 생각도 잘 전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하는 것이다. 나를 돌아보게 해준 시간들로 내 부족한 점을 알았지만 그 부족한 것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하지 않아 부족해 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과 최선을 다 한다면 내 흔들리는 마음도 붙잡히고 내가 해야 할 일도 생길 것이고 크리킨디만큼도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나에게 반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말부터 내가 하자에 오겠다고 다짐하고 나서부터 난 내가 선택했던 것을 끝까지 하는 것과 내가 선택한 일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몰라도 이 학교를 적응을 하고 나면 ’이 학교가 적응할 만한 가치가 보이지 않을까’라고 믿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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