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일수도 있지만, 내가 원래 생각이 다 정리도 되기 전에 글을 올리면 그 글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어-_-
게다가 히옥스 코멘트 듣고 새로 쓰기 시작한 글은 아직 많이 쓰지도 못했기도 하고..
그치만 아무 것도 안 올리는 건 서로 공유가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일단은 글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목차 형식으로 올립니다-
글을 조금 더 쓰고 나서 조만간 빨리 올릴게요-

1- 무엇을 해야 할까?
-> 나는 호주로 유학 가겠다고 내가 선택을 했다. 가족과 함께 호주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기 때문에 호주 유학생활 자체가 나에게는 대안학교와 같이 다른사람이 보통 택하지 않는 새로운 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해와야 했다. 내가 어떤 학교로 갈 것인지, 내가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호주는 한국과 달리 모두가 바로 대학을 가지 않고 일을 시작하거나 TAFE 같은 곳을 들어가기도 하기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해야 했다. 물론 guardian(보호자와 같은 존재)이 코멘트를 해주긴 했지만 부모님이 옆에서 나를 지켜봐주고 챙겨줄 수 없었던 환경이었으므로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할 때가 많았다.
-> 나는 중학생이었다. 아직 나는 세상을 모르고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해보고 싶은 일이 더 많은데 선생님이나 함께 홈스테이를 하는 언니들이나 guardian으로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한다는 질문을 많이 들었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급기야 나는 서점에서 직업을 A부터 Z까지 정리해 놓은 책을 사와 하루종일 읽고는 했다.
-> 사실 무엇을 할까 에 대해 완전히 막막하진 않았다.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으며 그것들이 이제 막 내가 생각한 쌩뚱맞은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을 가져왔던 것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겉 핥기 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들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워왔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게 안전하고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 흥미의 단계
-> 하자작업장학교에 빠져들었던 이유는 하자 밖에서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경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 곳에서는 무엇이든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학습방법은 이미 연출된 판들을 최대한 많이 들락날락 하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고 내가 매체나 장르에 상관없이 많은 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길찾기 2학기 때 노리단을 하며 [기획자]야 말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했다.
-> 계속해서 이것저것 경험을 하고 즐거웠지만, 모든게 "새롭기 때문에" 즐거웠다. 그 새로운 단계와 흥미 다음 단계로 넘어 가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매번 나는 이곳 저곳 왔다갔다하며 새로운 것을 배웠지만 그 배움들을 하나로 잇는 건 어려웠던 것 같다.

3- '보여지고 싶은 욕구'와 '해야하는 일'의 공존

->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해왔지만 그 '하고 싶다'는 욕망이 정말 내가 즐겁고, 해보고 싶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학습의 지점에서 어떻게 연결되는 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지를 정확히 설정하고 판들을 오갔던 건 아니다. 글로벌학교를 했던 이유는 내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리단이 너무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고자 조금 더 '범생이' 느낌이 나는 글로벌학교를 택한 이유도 있다. 내가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지식과 요즘 이슈화 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해 좀 더 공부하기 위해 '하고싶다' 50%와 '해야한다' 50%의 감정으로 글로벌학교를 들어갔다. 단순히 세계화를 알고 싶고 다문화를 공부하고 싶다면 내가 스스로 공부를 할 수도 있는데 수동적인 태도로 이 프로젝트를 행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타자화가 된 상태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고 난민캠프를 방문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내가 radical하게 행동할 수 없었던 이유다.
-> 글로벌 학교 : 지식을 채우고 인텔리 같이 보여지고 싶다는 욕구에 글로벌학교에 들어갔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건 투어를 하고 워크숍 진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들을 성취함으로써 남들에게 비춰지는 이미지나 나 자신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좋다는 생각으로 현장학습을 가고 투어를 했다. 하지만 그 판 안에서 나는 나 혼자만 워크숍을 진행하되 세계화에 대한 생각을 지속시키지 않았고, 투어를 진행하되 개발하진 못했다. 그렇게 계속 모든 작업을 하며 성취될 땐 즐겁지만, 평가를 할 때면 한 파트의 경험을 했고 이제 정리하자, 로 끝이나 모든 경험이 하나로 엮어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 스피카자 : 스피카자 또한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목적으로 들어갔지만 한편으로는 인텔리에 대한 동경으로 들어갔다. 매번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영어를 가르쳐야하는 두려움과 끝나지 않는 문서작업으로 인해 힘들었다. 작업장학교에 나오기 싫었다.
->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어나가는 지점을 찾지 못하고 매번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정리함으로써 끝나는 경험들로 인해 나를 힘들게 했던 고민이 하나 있었다. 나는 나의 매체가 없을 뿐더러 내가 계속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길찾기를 끝나고 주니어가 되고 인터을 하며 시니어가 된 시점에서도 매번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헷갈린다. '기획자'이기에 새로운 것을 계속 해보고 많은 다른 것들을 묶어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켜내고 싶다고 했지만, 어쩌면 나는 '기획자'라는 변명을 통해 계속해서 나를 판 속이 아닌 판 밖에서 전체를 관찰하는 사람이 되었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4. '해야하는 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여정 / 제 각각이었던 경험이 하나로 모아진다.
-> 모든 경험을 한다고 해서 그 경험을 내가 다 소화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꼭 기회가 있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잡는다고 그 기회가 황금같은 기회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거다"라고 과정과 원리를 파악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방관자가 아닌 죽돌이 되었다.
-> 노리단과 글로벌학교의 경험이 합쳐져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촌닭들과 홍콩에 가며 여행 디렉터/코디네이터가 되었던 경험. 노리단에서 공연을 해본 사람으로써, 또한 공연을 계속 봐왔던 기획자로써 공연의 형태와 공연 일정을 잡아주는, 촌닭들에게는 나르샤와 함께 디렉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며, 글로벌학교에서 여행을 기획해오던 사람으로써 일정을 조율하고 홍콩 쪽의 관계자와 우리의 일정을 맞추며 프로그램을 짜는 여행 코디네이터가 될 수 있었다. (설명 더 필요)
-> 사회적인 맥락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엮어지는 순간 : 글로벌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세계화와 영어들을 배우면서 그것들을 말로만 설명할 수 있었다. 글로비시를 가르쳐오며 (설명 더 필요) 

5. cultural animator가 되고 싶다. (설명 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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