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를 다니는 건 처음이지만, 제도권 교육 과정을 이탈한 건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기 전 나의 유학생활에서가 먼저였다. 물론 호주에서도 제도권 학교를 다녔지만, 어떤 학교를 다닐 것인가를 시작으로 졸업 후 호주에서 대학을 갈 것인지 일을 할 것인지, 혹은 한국으로 돌아올 것인지 등 나의 삶 전체를 생각하며 고민해야했다. 이국의 땅에서 가족 없이 홈스테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해왔다. 그리고 나는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음악을 하겠다고 길찾기 밴드를 결성하고, 길찾기 2학기 때는 노리단에 입단했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단순히 음악을 배우고, 공연하는 경험만을 키운 것이 아니었다. 이 안에서 나는 공연자 이외에 워크숍 강사, 악기 제작자, 공연 기획자 등의 다른 포지션을 경험했다. 직접 공연에 서기 전에는 촬영, 물품 관리 등 기초적인 공연을 준비하는 포지션에서 선 단원들의 공연을 보며 배웠고, 초등단원인 나마스테를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진행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나누기도 했다. 다양한 것들을 배우며 조직을 꾸려가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과 공연팀이 되기 위해 갖춰야하는 요소들을 배우며 호주에서의 경험은 진정한 자기 주도적 학습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의 자기 주도적 학습은 내가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택만을 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 범위는 학교, 그리고 결론적으로 한국에 다시 들어올 것이지만, 유학생활이 힘들어 빨리 포기하거나 쉽게 취직하기 위해 대학까지 버티다가 오는 다른 유학생들의 시간적인 차이만 있는 사례뿐이었다. 그에 비해 하자작업장학교에는 무수히 많은 자원이 있었다. 매체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자율적인 공간이 존재했었기에 프로젝트와 판이 무한한 다양성을 띄며 만들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학생 위치와 전문적 공연팀에서의 단원 위치를 동시에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두 가지 다른 문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위치에서 나는 외부에서 노리단이 공식적인 세미나에 초청될 때나 외부손님을 대상으로 하자투어를 할 때 기업적으로 창출을 내고 있는 다른 공연팀과는 달리 공동체 지향적인 노리단의 문화, 그 안에서 대안학교를 다니며 ‘학습’을 하지만 ‘일’도 하는 10대와 같은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곤 했다. 내가 나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은 판과 문화를 경험하며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체가 한정적이지 않고 많은 판들을 이동하며 자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획자’라는 역할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기획자’의 입장으로 나는 많은 판들을 이동하게 되었다.

많은 판들을 넘나들며 새로운 것을 ‘경험’을 했지만 그 ‘경험’을 ‘학습’하진 못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을 알게 된 단계가 지나고 나면 그 앎을 스스로 소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판을 넘나들 때마다 각 판에서의 경험은 소화되지 않고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정리되었다. 글로벌학교에서 아시아의 소외지역을 방문하는 현장학습을 통해 태국 버마 국경지역에서 살고 있는 난민들을 만났다. 난민들을 위한 워크숍을 기획 단계부터 진행까지 혼자의 힘으로 하고, 난민들과 NGO 단체들을 만난 건 세계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경험이 되었지만, 그저 ‘좋은 경험이었다’로 이 프로젝트는 정리되었다.

현장학습을 다녀온 후 글로벌학교는 서울을 여행하며 투어를 진행하는 여행정보센터로 바뀌었다. 현장학습을 준비했을 때와 같이 서울이란 도시를 보며 역사를 통해 보여 지는 정치적 사례들과 이주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에 관해 공부하며 어느 정도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를 알아가기도 했지만 두 개의 경험이 하나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경험’만을 하는 나는 어떠한 판이던 그 곳에 흡수되어 온 몸으로 경험을 하고 소화를 시키기 보다는, 방관자의 시선으로 좋은 경험 혹은 별로였던 경험이라고 정리를 했다.

주니어 수료 이후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때 당시 나는 글로벌학교의 인턴을 하며 스피카자란 통역 팀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죽돌들은 각자가 공연 팀, 영상 팀, 글로벌학교에 속해있던 주니어들이었다. 스피카자는 죽돌들이 능동적으로 꾸려나가던 프로젝트라기보다 시간이 될 때 함께 모여 통역을 하고 영어 공부를 하는 스터디 그룹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메인 프로젝트였지만 그만큼 의미를 두거나 시간을 할여하여 함께 프로젝트를 발전시켜나갈 작업자는 없었다. 매번 모든 판을 하나의 ‘경험’이라고 정리를 했던 내가 처음으로 내 자신이 자율적으로 학습하며 지속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동료작업자가 있는 home-ground와 같은 구역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것을 본다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니다. 그 연출된 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내가 경험한 것을 소화시킬 수 있고 그 경험들이 연결되어 내가 볼 수 있는 맥락이 커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항상 기회를 쫓는다고 모든 것이 내것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떠한 순간에 내가 배운 것들이 통합된 순간은 있었다.
-> '해야하는 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여정 / 제 각각이었던 경험이 하나로 모아지는 경험
-> 노리단과 글로벌학교의 경험이 합쳐져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촌닭들과 홍콩에 가며 여행 디렉터/코디네이터가 되었던 경험. 노리단에서 공연을 해본 사람으로써, 또한 공연을 계속 봐왔던 기획자로써 공연의 형태와 공연 일정을 잡아주는, 촌닭들에게는 나르샤와 함께 디렉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며, 글로벌학교에서 여행을 기획해오던 사람으로써 일정을 조율하고 홍콩 쪽의 관계자와 우리의 일정을 맞추며 프로그램을 짜는 여행 코디네이터가 될 수 있었다. (설명 더 필요)
-> 사회적인 맥락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엮어지는 순간 : 글로벌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세계화와 영어들을 배우면서 그것들을 말로만 설명할 수 있었다. 글로비시를 가르쳐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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