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폭풍

세상만사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북경에서의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 폭풍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설명에 이르면 그 믿음은 더 신빙성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통할 가능성이 얼마만큼 현실성으로 이어질까라는 질문에 이르면 만사형통이란 말은 제한적이라는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세상만사 서로 다 통하도록 열려 있지만 실제로 통하는 경우는 한정적이라는 말이다.

자연, 환경, 생태의 위험을 말하는 이들은 대중매체가 널리 그 사실을 알려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주체, 환경을 염려하는 주체, 생태의 복원을 염원하는 주체를 만들 가장 강력한 무기로 대중매체를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방송사의 임원이 바뀌거나 철에 따른 편성이 벌어질 때 지속적으로 그 기대를 알리고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 간혹 기대에 맞춘 프로그램이 편성될 때면 그에 환호하고 아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환호하고 아낀다는 말은 그 만큼 그런 프로그램들이 희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대중매체는 참으로 자연, 환경, 생태의 문제에 인색하다.

대중매체와 자연, 환경, 생태의 문제가 만사형통의 범주에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관계맺기라는 현실성에 들어서면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듯하다. 왜 그럴까? 왜 만사형통의 가능성이 가능성으로만 그치고, 자연, 환경, 생태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그토록 염원하는 이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제대로 고민해서 명료한 답을 갖지 않는 한 대중매체에 대한 짝사랑은 반복되고, 미련은 깊어진다. 형통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미끄러지는 그 관계에 대한 성찰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키는 것은 보수요, 변하는 것은 진보라는 말을 자주한다. 자연, 환경, 생태 문제를 걱정하는 쪽은 지키자고 말하는 쪽이지만 그 속내는 변화하자는 쪽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지금 바뀌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을 지닌 변화파들이다. 제대로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대중 주체들의 인식과 살림살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파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 문제를 고민하는 쪽은 변화, 진보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이 쏟는 담론들은 모든 것들과 형통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특히 변하기를 원치 않는 쪽으로부터는 손사래를 받기 일쑤다.

수신되지 않는 러브 레터

러브 레터를 받는 쪽인 대중매체는 어떤가? 불행히도 그들은 러브 레터를 반길 준비를 하고 있지 않는 쪽이다. 그들은 관습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는 제도다. 매일 판에 박힌 지면과 방송시간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채워야 한다. 마감시간을 지켜야 하고 편성된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선배들이 해왔던 작업공정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그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뉴스가 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구분하는 잣대도 과거에 줄을 대고 있다. 매일 새로운 것(news)을 만드는 조직이지만 불행히도 관습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변하기를 원하는 쪽과의 궁합을 맞추기엔 한계가 있다.

러브 레터를 반기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수용자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수용자들을 계몽적 내용을 싫어할 뿐 아니라 바뀌지 않으려는 존재라고 규정하길 즐겨한다. 인기를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론적 한계 탓에 그 믿음에 입각해 수용자의 뒤를 따르려 한다. 이른바 대중 추수주의적 태도를 갖는다. 엄청난 숫자의 수용자가 변화를 원한다면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나서서 새로운 내용을 내놓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를 취한다. 수용자를 변화시키자며 러브레터를 보낸 쪽과는 또 한번 궁합이 맞지 않는 순간이 생기는 셈이다.

이상의 이유는 사실상 적은 문제일 수 있다. 관습을 바꾸자는 내부의 움직임이 있고, 수용자를 새롭게 바라보자는 운동이 있으면 느리지만 조금씩 바뀔 가능성도 있다. 러브 레터를 신나게 받을 기대를 애초부터 접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문제들보다 더 시급하고 큰 벽이 남아 있어 그를 해결하지 않은 한 작은 문제들도 계속 장애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큰 문제 우선 작은 문제 나중이라는 순차적 해결방식을 말하자 함은 아니다. 작은 문제들이 큰 문제와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따로 또 같이 변화시키는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함을 말한다.

대중매체가 변화에 저항하는 가장 큰 부분은 그것이 주요 사회적 제도와 맺는 관계라 말할 수 있다. 정치계, 경제계와의 관계를 지금처럼 지속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한 러브 레터는 수신자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주지하다시피 정치계와 경제계는 자연, 환경, 생태와 관련해 적대적 위치에 놓여 있다. 그들은 입으로는 초록 경제, 생태 정치를 외치지만 구두선일 경우가 많다. 대중매체는 그들이 변하도록 추동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지만 지금까지의 관계 맺기 관행을 쫓아 그를 소홀히 한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대중매체가 독립하지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순간을 꿈꾸지도 않기 때문이다.

만사형통의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중매체의 경제적, 정치적 독립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연, 환경, 생태를 도모하기 위한 사회로의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선 그들의 독립은 필수적인 일이다. 대중매체의 독립성 문제가 자연, 환경, 생태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만사형통의 원리는 맞지만, 그에 대해 눈을 감거나 상상하지 않으면 형통의 현실성은 실현되지 않는다. 나비의 날개 짓이 폭풍과 한데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중전략

대중매체에 보댄 러브 레터가 제대로 수신되지 않은 답답함에 직접 자연, 환경, 생태를 담아 대중과 대화하려는 노력을 펼치는 모습도 대한다. 그 같은 적극적인 태도는 바람직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모습과 함께 대중매체가 변할 수 있도록 옆구리를 찌르는 일도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중매체의 바깥에서 대중과 대화하기 위해 매체적 내용을 만드는 일에 보태어 대중매체가 독립성을 유지하며 자연, 환경, 생태에 관심을 갖도록 추동하는 일이 따로 또 같이 행하는 지혜도 펴야 한다.

자연, 환경, 생태를 도모하는 세상을 꿈꾸는 운동은 당연히 자연운동이고, 환경운동이며 생태운동이다. 그러나 대중매체를 엮어 함께 생각해보면 그것은 문화운동일 수밖에 없다. 모든 낯익은 것들을 낯익지 않게 만드는 문화 전환 운동에 다름 아니다. 대중 주체를 생태주체로 만들고, 대중적 인기 컨텐츠를 생태적 컨텐츠로 만들기 위해 러브 레터를 지속적으로 보냄과 동시에 대중매체의 관습에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독립성을 돕는 일도 같이 행해야 한다.

자연, 환경, 생태는 사회의 민주화와 동 떨어진 의제가 아니다. 암울한 정치 상황에서 자연, 환경, 생태 운동이 억압을 받아온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사회 내 민주화가 뒷걸음 친다는 우려가 전에 비해 많아졌다. 그런 상황일수록 자연, 환경, 생태를 도모하는 일도 어려워진다. 바뀌어 함을 강조하는 진보가 변화를 거부하며 과거로 돌아가려는 보수에 일침을 놓고 그를 바꾸어 내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대중매체를 바꾸어내는 일은 힘든 문화 민주화 운동이기도 하지만 자연, 환경, 생태를 도모하는 자연운동, 환경운동, 생태운동이기도 하다. 달라 보이는 운동을 같이 행해낼 때 만사형통을 몸소 실천하고 경험하는 기쁨을 얻게 되지 않을까. (이 글은 녹색연합에서 발행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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