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봄 학기 열린작업장 학습계약서 밤비.hwp  

이미지 탐구생활 시즌 2

두 번째 시간

밤비


“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영화의 도착까지 ”


사진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초상을 찍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 사진이 등장하기 전, 자신의 얼굴을 형상화하여 남기는 것은 고위계층과 부자만의 것이었다. 아마 한껏 멋지게 차려입고, 소위 ‘귀티 나는’ 장소에서 돈을 들여, 이름 있는 화가를 고용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하나의 사치였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19세기 초, 사진의 등장으로 셔터만 눌러 긴 ‘찰-칵’ 소리를 듣고 나면 붓이나 펜, 캔버스가 없어도 형상을 남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진기술이 조금씩 발전해가며 평민도 자신의 얼굴을 남기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다.

이 욕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사진을 하나의 기록으로만 가정하면, 기념일에 사진을 찍어 그 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소시민의 작은 재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소소한 추억을 기록하는 의미가 현대 사회에서는 조금 변질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미니홈피에 가면 셀카라고 하여, ‘내가 나를 찍는’ 사진이 매우 많다. 다른 사람이 찍어줄 때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연출을 한다. “조금만 더 위에서 찍어”, “얼굴 작아보이게 찍어”가 그 예다. 얼마 전부터 떠오른 신조어 ‘된장녀’는 사치스러운 여인들의 문화를 한껏 부각시키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스테이크를 하나 시켜놓고, 먹기보다 사진을 찍는 것이 더 급하다. ‘짜게 식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으며 눈은 크게 뜨고, 손가락은 되도록 길고 얇게 보이려고 하는 욕심 가득한 사진이 ‘된장녀’의 대표적인 문화이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기념을 위한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진기가 널리 보급되고, 기술이 더 발전되면서 사진을 찍는 의미가 와전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나 다 자신을 보다 돋보이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서 ‘현대의 문화시민들은 모두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라고 얘기한다. 삶의 질을 사치로만 연결시키게 되는 사회가, 나는 슬프다.


회화주의 -> 자연주의 -> 연속사진 -> 소마트로프, 페나키스터스코프, 프락시노스코프, 키네스코프, 시네마토그래프

: 사진기가 발명되고, 노출 시간이 짧아지며 회화주의 사진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회화의 구도를 모방한 사진이다. 주말영상학교 이론 시간에 찰리 채플린의 단편을 몇 편 보았는데, 그의 영화 역시 연극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어떤 기술이 발전하면 먼저 있던 것을 모방하게 되는 것 같다.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미술가들은 붓을 던지고 사진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초상’만 찍다가, 나중에는 일상을 찍었고, 그 후에는 그 일상에 의미를 부여했다. 왜 자신의 생각을 사진에 담고자 했을까?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담당 선생님께선 인간이 모든 동물 중 가장 뇌가 주름지고 크기 때문에, 두뇌 회전이 빨라 도구를 통해 기술의 발전을 거듭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인간은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건만 봐도 욕구가 생기는데, 사진 같이 간단하게 스케치를 할 수 있는 기계를 가만히 두겠는가. 나는 잘 그린 그림보다 못 그렸지만 의미 있는 그림이 소중하다. 당시 예술가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를 찍고 ‘내 생각’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려는 하나의 방법이다.

: 아무리 사람들이 자신을 포장하더라도, 그것 또한 ‘나’를 알리려고 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또, 언어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도 생각을 계속해서 말하려고 하는 욕구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청소년의 문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계속 이야기 거리를 던지고 싶다. 사진이나 영상은 하나의 수단이지만, 그 수단이 없으면 나도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이 시대에 수단 없이 화두를 갖는 것은, 마치 경제대공황 속 길 한복판에서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라고 외치는 꼴과 같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사람들이 그저 기록만 하는 기계적인 차원에서 사진을 쓴 게 아니라 자신을 꾸준히 알리려고 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시민문화’에 속하면서 내 이야기를 갖지 못하는 것만큼 슬픈 게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다른 죽돌들도 확실한 화두가 생겼으면 좋겠다. 비단 포럼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나는 이래’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발적인 포럼’을 주최할 수 있는 열린작업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큰 포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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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