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제목: (너머, 만나다)를 중심으로 생각 중. 내일까지 정할 것임.
크기: B5
컨셉: 만남의 내용. 각자 무엇을 만나고 만남의 내용은 다르다.
대상: 메솟에 간 대안학교, 한국에서 황동하는 단체, 메솟에서 만난 사람들,
목차:
지도(우리가 만든 지도: 물질적인 지도가 아닌)
편집 팀의 말=들어가는 말 (버마의 상황(
키워드: 만남, 우리의 여행 (단지가 작성 후 일요일 같이 보기)

만난 NGO들의 정보(한글 2006에서 버마로 교정하는 방법)사진 :퓨니
노래들(컨트리로드, 뭉게구름, 포지오오) :산
단체사진, 사인 :구나
패션쇼 :두란

두란-만남1, 나를 이야기 하다.
명함은 우ㄱ리 ACTIVITY의 가장 첫 번째로 했던 워크숍으로 두명씩 짝을 지어 교환을 하거나 서로의 명함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자서전 역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가기 전, 2007년에 글로벌학교에서 메솟에 가서 그곳 친구들과 함께 자서전을 쓴 것을 보았는데, 거기엔 자신들의 민족을 지칭하는 말로 'MY COMMUNITY', 'WE' 라는 단어를 쓰며 민족을 위한 리더, 선생님, 과학자 등이 되고 싶다는 말이 많았다. 그걸 본 우리는 ‘I’로 시작하는 말을 듣고 싶다고 생각해서 명함과 자서전, 릴레이 글쓰기 등을 준비해갔다.
진행하면서 ‘나’를 스스로 소개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난민’이라는 입장인 그들이 가지고 있는 ID카드, 내가 올해로 20살이 되면서 갖게 된 주민등록증처럼 타의에 의해서 존재를 입증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의 존재를 설명하고 남들에게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함으로서 상대방은 나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명함과 자서전을 내가 갖는 것. 나도 똑같이 명함과 자서전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명함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명함이라고 하면 소위 잘나가는 어른들이나 가지고 있는 것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10대인(아직은 만19세임) 내 명함을 갖는 것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ACTIVITY를 통해 내 명함을 만들고 그것으로 나를 소개했고 친구들과 교환을 했다. 또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친구의 명함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을 만들어줌으로서 국가가 개인을 관리 한다. 10대에는 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제한되어있던 것이 20살이 된 지금은 풀렸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자서전, 에세이도 쓰고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명함과 자서전은 그렇게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나의 고민은 메솟에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의 의미였다. (그 질문은 꼭 특정지역에서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그런 질문이 든 것은 메솟 친구들이 미래에 지도자, 과학자, 선생님 등 자서전을 통해 미래의 얘기를 들으면서 부터다. 과연 디자인이 필요한 것일까? 하는. 그럼 우리가 준비해갔던 것들도 모두 아무것도 아닌 건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ACTIVITY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냥 말로만 할 수도 있고 노래를 통해서, 영상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디자인’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들에게 말 걸기를 했고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명함과 자서전은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환경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메솟친구들 사이의 매개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퓨니-제목미정
"전 이곳의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무엇을 하면 이곳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버마의 상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세요."

난 굉장히 거대한 것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버마의 상황을 알리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버마의 상황을 본 것이 아닌 직접 버마에 가서 그들과 음식을 먹고 그들의 상황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약 10일을 지냈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다. 즉 그들의 상황을 난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듣고 보고 한 그들의 상황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경험을 하고 나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를 잊지 마."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메솟 그리고 멜라캠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의 존재를 기억해주길 굉장히 많이 바라고 있었다.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하루에 몇 번씩이나 자신들의 이름을 묻고 꼭 기억해달라고 하였다. 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도 내가 만난 내 또래의 아이들도 내가 그들을 기억하길 바랬고 그들의 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랬다.
나는 왜 그들의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의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줘."라는 말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들을 위해 알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13개의 단체를 방문했다. 어떤 단체를 방문하든 그들의 사무실에 들어간 순간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벽을 도배하고 있었던 사진들이었다. 또한 난 어느 단체를 가도 그들이 만든 잡지 혹은 브로셔를 받았다. 난 잡지와 브로셔에서 그들의 상황이 사진과 함께 적나라하게 적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어느 단체를 가도 굉장한 환영을 받았다. 먹을거리가 있기도 했고 우리를 웃으며 맞아주기도 하였고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들었었다. 그들이 우리를 굉장히 반갑게 맞아주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Palaung Women's Organization
탕(팔라웅 민족의 언어), 그들은 버마의 소수민족이다. 그들의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우리가 받은 것은 브로셔와 그들의 전통 차, 그것으로 만든 샐러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 차를 설명하며 "버마정부는 계속 소수민족들을 배척해나가고 있어요. 저희의 고유한 이름은 탕이지만 버마에서는 팔라웅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버렸어요."라며 함께 설명을 해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PWO의 이야기를 듣기 전 1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들의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가장 눈에 띄었던 벽을 바라보았다. 벽엔 TSYO의 국기와 시 그리고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누군가 사진을 가리키며 사진의 설명을 부탁하자 그들은 "버마 소수민족들의 전통의상이에요. 너무 이쁘죠."라고 대답을 하였다. 약 10개의 사진이었고 사진 속엔 남자와 여자가 그들의 전통의상을 입고 서있었다. 우리가 "우와~!"라며 반응을 하자 "직접 보여줄 수도 있어요. 이 옷들은 모두 매력적이에요."라며 다시 대답을 하였다.
10분의 휴식이 끝나고 PWO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현재 탕 민족 안에서는 가장 큰 문제가 마약이라고 하였다. "마약이 우리의 마을을 지배하고 있어요."라며 그들은 말했다. 그러며 덧붙였던 말은 "마약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들이에요."였다. 스님을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마약을 할 정도로 대부분의 남자들이 마약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정치, 교육 어떠한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직 마약을 하는 것에만 바쁘다고 하였다. 특히 마약을 하는 남성들에 의해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피해가 크다고 하였다. 가정폭력으로 생활비를 얻고 그것으로 마약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이 너무 잦고 그러하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의식 없이 강간과 성폭력 또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였다. "버마에서는 어떤 조치도 없어요? 마약은 국제적으로 불법이잖아요." 라고 하였을 때 "경찰들도 마약을 하기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요. 그리고 버마정부에서도 마약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열기는 하지만 모두 언론플레이에요."라는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버마에서는 소수민족을 배척하기 때문에 우리 탕민족끼리 단합을 해서 배척을 당하지 않게 노력을 해야 되는데 이러한 것에 관심 없이 마약만 해서 마음이 아파요. 저희는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때까지 이 운동을 계속해서 할 거에요."라고 하였다. 버마정부에서 소수민족을 배척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당연히 모든 민족은 단합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 중 마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그들은 계속해서 마약을 하고 있는 것일까?
88년 경제문제가 심각해지고 그들의 전통 차 '라페'로는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게 되었고 라페보다 훨씬 더 저렴한 마약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마약을 하지 않으면 마약재배도 멈추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가 "이곳의 환경은 매우 열약해요. 교육도 부족하고 약품도 굉장히 모자라요. 그래서 몸이 아프면 약을 복용하는 것이 아닌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라며 말했다. 정말 충격이었다. 어떠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버마정부에서도 수사를 하지 않고 있었고 그렇다면 UN에 말하면 어떠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라며 질문에 그들은 "저희도 마약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여 UN에 보냈지만 큰 영향이 있지는 않아요. 버마정부는 말을 듣지 않아요. 환경이 열약한 부분도 있고."라며 대답을 하였다. UN에서도 어떤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국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도움을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였다.

AAPP
차가 멈추고 내려서 두리번거리며 일행을 따라갔다. 조금한 컨테이너가 있었고 그곳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모든 벽이 사진으로 덮어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모형물들이 있었다. 순간 서대문 형무소가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갔었던 것은 3년 전이지만 그곳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모형물도 사운드도 사진도 모두 파격적이었고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무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진들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실제로 고문을 당한 사람의 모습이 담겨져 있던 사진도 있었다. 가운데에 있었던 모형도구들은 고문을 할 때 쓰이던 도구들이었다. 그들은 직접 고문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었다. 믿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곳의 사진들을 보고 자리를 옮겨 그들의 사무실로 갔다. 그분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1988년에 민주화운동이 시작되고 시민들과 같이 시위를 했어요. 우리는 폭력을 하나도 쓰지 않고 평화롭게 했는데 버마의 경찰들이 무작위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죠. 그래도 저희는 꿋꿋이 시위를 했는데 경찰은 모든 대학교를 휴교시키기까지 했어요. 대학교는 수도에 있었기 때문에 소수민족들은 계속 수도에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수도에 갈 이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방에 가서도 계속해서 시위를 하자고 약속을 했어요. 그러고 지방에서 운동을 하던 중 어떤 기자와 8888항쟁 인터뷰를 했고 그 내용이 라디오로 방송이 되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8888항쟁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만 저는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였어요. 1993년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1996년에 다시 체포가 되었고 7년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2001년에 풀려났어요." 조금한 컨테이너에 붙어있던 사진과 모형물들이 내 상상력을 자극하며 그들의 끔찍한 감옥살이가 눈 앞에 훤히 보였다. 버마에서는 감옥 안에서의 운동을 막기 위해 그들을 병이 있는 사람들의 방으로 옮겼다고 한다. "감옥살이가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이 가요. 그런데 말을 들으니 일반 범죄자와 정치범을 다르게 대후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많이 다를 것 없었지만 그래도 다르긴 달랐죠. 감옥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인 폭력도 있었지만 정신적 폭력이었어요." 감옥 안에서 많은 모욕을 당하는 등의 정신적 폭력은 그들을 엄청난 고통에 빠트렸다고 했다.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정치범들이 있다고 하면서 "민주화의 시작은 정치범들이 풀려나는 것이에요."라는 말을 하였다.

Barma Women's Unite
평소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던 나는 많은 기대를 않고 그들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들의 사무실 또한 사진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중간에는 기다란 책상이 있었고 상 위에 있던 꽃은 그곳을 한층 밝게 해주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홍차와 빵을 배불러서 남길 만큼이나 나누어 주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준 홍차는 매우 달콤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가기 전의 나는 그들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여성문제에 관해 말하는 것과 그들이 말하는 여성문제는 무엇인가 다를 것 같았다. 또한 듣기로는 그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모른다고 하였다. 역시나 다르긴 달랐다. 내가 한국에서 원하는 '남녀평등'은 같았지만 그들은 정치적이었다. 여성들이 정치참여를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들의 지식 발전과 어떠한 단체에서 여성들의 권위를 원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여성들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였다.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과 여성들의 인권이 존중되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버마가 민주주의가 되어야 해요. 버마가 민주주의가 되기 위한 운동에 여성들이 운동에 참여를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그들은 이것들을 위하여 여러 프로그램과 운동을 하고 있었다. 여성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위한 정치교육 그리고 그들이 원한다면 인턴쉽도 하고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문제를 알리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서 활동가들과 포럼을 진행하기도 하고 한 달에 두 번씩 여성잡지를 발행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그들에게 가서 "저도 여성문제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한국에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페미니즘 공부모임을 함께 하고 있어요. 오늘 이야기 너무 즐거웠어요. 계속해서 연락을 하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자 그들은 잡지를 보여주었다. "이 잡지 중 하나를 ㅌ소장하고 싶은데 주실 수 있으세요?" 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들은 흔쾌히 괜찮다고 하며 "다른 건 버마어인데 이건 영어로 작성되어 있어요."라며 잡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함께 이야기를 하고 서로 질문을 주고받고 할 때 그들은 우리를 보며 굉장히 흐뭇해 하셨는데 특히 우리가 질문을 하거나 경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그러하셨다. 내가 느낀 그들의 분위기는 굉장히 목표나 의지, 그것을 향한 운동 강했지만 따뜻했다. 그들의 사무실 분위기는 그들의 활동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가정과 여성의 매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무서워서 폭력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직접 그러한 여성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Human Rights Education In Barma
"버마 안에서 아동군인, 인신매매 문제가 굉장히 심해요. 그들은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지 않는 것이에요." 여자의 경우 성매매로 남자의 경우 군인 그리고 남, 녀를 가리지 않고 인신매매로 잡혀간다고 한다. 군인으로 잡혀갔을 경우 군인의 총받이 역할로 가는 아이들이 크다고 하였다. "그 아이들의 연령대는 얼마나 되나요?" 설마 얼마나 어리겠어. 라며 물은 내게 그들은 "생후 5개월 아이부터 잡혀가요."라며 대답해주었다. 순간 우리는 모두 술렁이기 시작했다. 생후 5개월이면 아직 돌도 안 된 아이였다. 그 어린 아이들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빼앗아갈 수 있을까?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사람으로서 존중을 받지 못하고 그저 상품이 되어 팔려나간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여기서만 끝 것이 아니었다. "아동군인으로 끌려간 아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들은 군인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곳을 탈출해요." "그러면 그들의 상황은 좋아지나요?" "아니요. 일반 시민들은 군인을 싫어하기 때문에 군인에서 탈출한 아이들을 싫어해요." 군인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하면 그들의 생활은 좀 더 좋아질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특히 군인의 세계에서 어릴 때부터 적응을 하고 지내온 아이들은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들은 마약, 담배, 술, 폭력 등에 노출되어 있었고 적응되어 있었다. 그래서 탈출을 하고 난 후에도 마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탈출을 한 아동군인들은 이러한 이유로 여전히 외톨이에요."라고 그들은 말하였다. 산-I can't go on, but I'll go on
"I can't go on, but I'll go on."

너희는 행운아들이야.
-자유롭지 못한 상황.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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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행운아들이야. 너희는 이곳으로 이렇게 올 수가 있잖아.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내 고향은 버마의 카렌 지역이야. 그곳은 SPDC와의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어. 나는 그것을 피해 이곳 난민캠프로 피난을 와있는 거야."

"너는 좋은 거야. 너는 너희 부모님이 네가 배우는 거나 생활하는데 있어서 지원해주잖아.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있고, 나에 대한 지원은 내가 받아야만 해. 나는 나를 지원해줄 단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나에 대해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이야기해야 돼."

"나는 ID카드가 없어. 때문에 자유롭게 어딘가를 가기에는 위험하고 불가능해. 그래서 혹시라도 외출 할 때에는 일정한 돈을 가지고 다녀. 그렇게 경찰에게 잡혔을 때에 비리를 해서 풀려날 수가 있거든."

"나는 맑스를 공부하고 싶어. 그렇지만 이곳에서 맑스를 공부 할 수 있는 책을 구할 수가 없어. 만약에 네가 영문버전의 책이 있다면 나에게 보내주라"

나는 럭키한 걸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 삶의 조건들을 행운이라고 설명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부모님 얼굴을 못본지 꽤 됐어. 가족들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을 못들은지 꽤 되었어."

"태국어를 배운다는 건 내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하나를 얻는 거야. 태국어를 잘 하면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거든. 영어 역시 중요해 그래야 내 생각을 사람들이랑 나눌 수 있고, 내 상황에 대해서 알릴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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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정말 나쁜 놈이야. 버마에는 미국과 한국의 군인들이 들어와 우리 민족을 학살했던 역사가 있어.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만들어내고 있어. 지금도 한국과 미국은 엄청 친한 걸로 알고 있는데?(나를 발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훑는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에 가서 미용사가 될 거야. 그래서 버마가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진 돌아오지 않고 싶어"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대통령이지만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엔지니어를 직업으로 갖고 싶어."

"고향인 버마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해, 그렇지만 나는 언젠가 선생님이 되어 그곳으로 돌아가 우리 민족을 교육하는데 돕고 싶어."

"난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될꺼야. 그래서 SPDC와 맞서고 민주화를 이루고 싶어."

"난 군인이 될 거야! 그래서 SPDC(버마군사정부)와 싸워 부수고 우리 민족을 구할 꺼야! 난 평화를 원해."

"(학교 달력을 보여주며 학생들을 얼굴을 짚어가며 ) 얘랑 얘는 재정착을 했어. 나 역시도 할 수 있는 건 재정착이라고 생각해.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고, 재정착을 한 곳에서 카렌에 힘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기르고 싶어. 재정착을 해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그래서 카렌을 위해 카렌 땅을 지키고 싶어." 

이제 곧 난민 캠프의 재정착 제도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에겐 더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어갈 기회가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 또래의 꿈. 그들이 꿈을 꾸게 만든 경험과 현실은 상상 이상이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유롭게 꿈을 꾸고 만들어 갈 조건이 되지 못해 자신은 좌절한다며 나에게 는 '럭키'라고 하는..

국경 -
버마의 독재상황
내 옆에 친구에겐 아픔이 남아 있는 강 너머
갈 수도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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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국경역할을 하는 강이고 다리에요."

"원래 이 국경지역은 버마도 태국의 소유도 아니라서 범죄자나 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에요. 저렇게 대나무로 만든 움막집에서 말이에요. 근데 며칠 전에 SPDC(버마군사정부)가 불을 질러서 그 집들을 다 태워버려서 지금은 볼 수가 없는거에요. 아마 몇 주 뒤면 다시 생겨나겠죠."

"버마를 갈 수 있는 3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이 다리를 건너 ID카드와 돈을 내고 가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돈만 내고 보트나 튜브를 이용해 강을 건너는 거예요. 둘 다 없다면 그냥 헤엄치면 되요. 그렇지만 그렇게 건너간 뒤에 버마에서의 일은 장담 못해요."

"외국인이 무조건 버마로 들어갈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버마로 들어가더라도 외부 인이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단 하루뿐이에요. 무조건 24시간 안에 이 다리로 돌아와야 해요. 수도나, 도시까지 로는 보통 3~4시간은 가야해요."

"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때 기억은 지금 다시 상기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들이야. 난 너무 가난했고, 배고팠고,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 그래서 내가 이곳 (LMTC)로 온 거야.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의 과정은 너무 힘들었어." 

“어느 날 우리 마을에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불을 지르고 주둔했어요. 지금 돌아간다면 저는 죽을 지도 몰라요.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국경지대에서 일하고 싶어요.”

태국과 버마의 경계 역할을 하는 국경다리에 간 적이 있다. 오후 5시에 강물 위로 떨어지는 햇볕은 강을 아름다워 보이게 했다. 그렇지만 그 강물을 마냥 아름답게 감상 할 수가 없었다. 내 옆에서 그 좁은 강물을 벽처럼 느끼며, 고향으로 건너가지 못하는 내 친구의 경험과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강에는 내가 머물렀던 몇 십분 동안에도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보트와 튜브를 타고 여권 없이 넘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태국과 버마의 국경이라는 것을 잊은 듯 아이들은 천둥벌거숭이마냥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강은 누구에겐 떠올리기 슬픈 벽이기도 놀이터이기도 돈만 있다면 건너기 쉬운 다중의 통로였다. 심란했다. 내 옆에서 눈물 짖던 친구의 기억에 강 너머의 모습. 그것은 나와 같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공유하고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것이었다.

독재상황
SPDC와 마약, 댐.
그것으로 인한 소수민족들의 고충#

“먼저 우리의 상황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팔라웅 민족의 지역은 SPDC의 댐 건설로 인해 밀려나 집터와 일터를 잃어 생계를 위협받고 있어요. 댐에서 생산된 전기로 인해 그 지역 주민들은 도움이 될 줄 알았지만, 실질적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조건이 많은 가구는 몇 없어요. 그래서 생산된 전기는 대부분 중국으로 팔려가고 있어요. 이게 실질적인 댐 건설의 목직이라고 볼 수 있어요. "

"마약 농사로 인해 차가 주 산업이었던 타앙 민족은 정부의 찻값 제한으로 인해 주 산업을 양귀비 제배로 바꿔가고 있어요. 비공식적으로 SPDC도 마약농사를 비공식적으로 돕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게 많은 소수민족의 땅이 양귀비 밭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개인들의 가정과 그들의 문화가 마약으로 인해 잃어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마약으로 마을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마약이 총보다 무서워요. 정상적인 생각과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니까요. 그로 인해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이 있어요. 마약을 생활처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심지어 마약을 하지 않는 남자는 스님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선거
" SPDC는 선거철이 되면 마약에 대한 규제를 풀고 은근히 장려해요. 정말 야비한 방법이죠."

"그들만의 잔치야"
"곧 있으면 국민선거가 있기든 해.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잔치야. 모두의(소수민족?) 의견이 수렴되지 않는 한 선거는 아무 의미도 희망도 없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을 꺼야."

또 다른 화두였던 소수민족이라는 것.
버마에 비민주적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할 때에 독재정권을 넘어서 또 다른 생각해야 할 '소수민족'이라는 버마의 상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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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은 SPDC에 대항하기에는 소수민족들의 힘이 너무 약하고, 그렇기 때문에 연대해야한다고 생각해. 근데 SPDC가 물러간다면 나는 카렌의 땅을 지키고 싶어. 각각의 소수민족들에게는 각각의 땅이 있어. 나는 카렌의 땅을 되찾고, 카렌이 안전해지길 원해. 다른 소수민족들은 각자 알아서 할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 이후에도 연대해야한다고 생각해. SPDC가 물러간다고 해서 문제는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아. 분명이 어떤 일들은 계속해서 벌어질 테고 그럴 때는 우리가 잘 연대해두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겠지. 소수민족끼리 좋은 관계를 만드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 

비민주적 상황에서 난민의 신분인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우린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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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도 각기 단체들도 계속해서 SPDC의 군사독제를 반대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SPDC가 변하는 건 없어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버마의 문제에 대해 알고 요구를 해도 SPDC는 변하지 않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요."

"이건 카렌 전통 무늬의 가방이야. 이걸 너에게 줄게. 넌 서울에서 이걸 매고 다니면서 우리 민족을 알려줘"

"내가 어디로 갈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실한 답은 못하겠어. 아마 내 주소는 계속해서 바뀔지도 모르고, 내가 어디에 있을지 넌 찾기 힘들 거야."

"우리를 기억해줘. 우리를 꼭 잊지 말아줘.",
"무엇을?"
"모든 것을. 너희가 이곳에 머물며 보았던 이 장소와 우리들을 말이야"
'그들'이 아닌 '각자'가 정말로 무엇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인지, 내가 한국에 돌아가 무엇을 알려주길 바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버마의 비민주적인 상황을 한국에 알려주길 바라는 것 같다.

메솟에 머물며 난민이라는 내 경험 이상의 상황을 갖고 있는 이들과 마주하며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아프고 분노하는 것에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것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로서 그 상황을 그려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솔직하게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팠으면 한다. 아프지 않더라도 내가 마주하고 온 '사실'(불안한 위치에서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동시대 지구인으로서 편하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르포작가 김순천 씨가 철거민과 같은 한국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사회적 고통'이라 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태평양을 넘어 메솟에서 본 것이 그들의 고통만 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난 그들의 꿈의 시작점은 어디였는지, 그래서 무엇을 꿈꾸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를 듣고 보았다.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고향과 나라를 잃어 되찾을 꿈을 꾸는 내 친구가 된 또래의 10대들을 웃으며 마주 할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내가 그들과 마주하며 마음이 아팠던 이유 또한 그들의 고통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구나-제목미정
[세부적인 글]
1-2 페이지 : 제목 / 순서 / 인트로 / 기록에 관하여 /
3-4 페이지 : 사진(기호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 PWO / 서울, 도시화 /5 페이지 : 기록에 관하여.

[페이지1]
순서
1. PWO / 도시화
2. 왜 기록하는가.
(다시 정함)

인트로 :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다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땅의 사람들 3 (고정희)
- 팔레스티나의 영가

하늘문이 열렸는데 다 어디 갔는가
동구밖 허공을 찌르는 호곡소리
하늘문 열었는데 다 어디 갔는가
기고만장한 엄동설한 속에서
뽕나무 숲을 후리던 바람이여
어머니와 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형제들의 알몸을 매질하던 채찍이여
거미줄만 무성한 폐옥의 마당에서
서쪽을 향하여 때 아닌 올리브꽃이 시들고
우리들의 지적인 밥사발을 마주하여
늙은이가 젊은이의 시체를 매장하는
이 거대한 해골 골짜기에
하늘문 열었는데 다 어디 갔는가

[페이지2]
기록에 관하여

사진

[페이지3]
팔라웅 유스 센터 : Ta'ang
Ta'ang (TSYO)민족이라는 버마와 중국의 국경지대의 소수민족이 있다. 그들은 버마 내에서 팔라웅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이름은 Ta'ang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가 있고 집터와 일터, 삶의 이야기가 있는 자신들 땅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재 고향도 땅도 마약농사지역으로 유혹적인 양귀비들이 번져가고 있다. 향긋했던 차밭이 양귀비 밭으로 변하면서 그들이 겪은 변화는 양귀비꽃과 찻잎의 차이만이 아니다. 차가 중요한 산업이었던 땅에는 댐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들은 자신의 땅에서 피난민이 되었다. 2010년 두 번째 댐건설이 되면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채로, 그리고 언제 어디로 떠나야할지 모르는 일시적 공간에서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군부독재정치 아래 탄압 받고 있는 Ta'ang민족은 소수민족이라는 위치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받으며 문화와 언어, 전통들을 빼앗기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라지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사라져가는 고유한 언어를 기억하려고 한다. 현재 팔라웅 유스 센터에서는 청소년에게 타앙민족 언어를 교육하고 있으며 마약밀매로 영향 받는 개개인과 문화를 기록해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총 4개의 지부가 태국, 일본에서 팔라웅 상황에 대한 운동을 하고 있다.

[페이지4]

Ta'ang민족에게서 사라지는 것은 그들 자신의 것이요 더불어 버마사회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을 기억해냄으로써 버마의 민주화를 말한다.

사라짐의 내용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담지 않는다. 장소의 맥락에 따라 사라짐의 내용과 주제가 달라진다. 버마와 중국 국경지대의 Ta;ang민족들은 자신의 맥락에서 사라짐을 말하고 있고 나는 나의 맥락에서 사라짐에 대해 말한다. 비록 다른 입을 통해 말하는 사라짐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진 우리는 왜 함께 사라짐을 마주하고 있을까?

이곳 서울에서는 가끔 오로지 하늘만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점점 높아지는 건물들 밑에서 시야에 하늘만 담으려니 높은 옥상 모서리들이 삐죽 보이더라.
도시화가 진행 중인 서울의 사각형 높은 건물들을 보면 가끔 레고도시가 연상되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 더 높아지고 더 넓어질 것인지 알 수 없는 재개발이 때로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고유했던 것들은 획일화되고 오래된 것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의 사라짐은 대상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듯싶다. 사라짐의 과정을 볼 수 있는 계기는 포크레인이 있는 공사현장을 보면서이고 그밖에 사라짐의 과정을 목격하기란 어렵다. 사라짐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는 적다. 재개발이 단순히 도시의 선진화를 위한 맹목적인 변화라면 그것이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 잠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버마의 군부독재정치와 한국의 도시화를 견주어보기란 어렵다. 하지만 버마와 한국 모두 어떤 부분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과 그에 답하는 군부의 폭력, 그리고 재개발로 인해 자신들의 땅을 잃어도 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소위 높은 위치에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변화 아래 사라짐은 순식간이다. 과정이 없는 사라짐에서 나는 ‘기억’의 작용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즉 기억을 해야 함을 느낀다.

자신의 땅과 문화, 언어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사라짐의 실체는 무엇일까. 타앙민족에게 사라짐이란 때론 생계위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PWO활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사라짐이 자꾸 생겨나는 상황에서 내가 지켜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간과 사물뿐만이 아닌 기억과 사람이다. 개인의 기억은 사회 속 기억의 매개물이다.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나기에 나는 사라짐이 많은 시점에서 나와 연결된 관계에서의 기억을 하고 싶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난 과거는 기억의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짐의 과정이 없는 미완된 기억을 어떻게 채우고 지켜갈까 고민한다. 우리는 기억을 함으로써 미완성된, 또는 열려있는 과거를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페이지5]
기록에 대하여. (무엇을, 왜 기록하려고 하는가)
지금까지 현재 총 4개의 그룹(TSYO)이 일본, 태국지부에서 팔라웅 상황에 대한 운동을 한다.
TSYO에서는 자신들의 현 상황을 기록해 알리는 잡지를 만든다. 그밖에 메솟에서 만난 많은 NGO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며 기록하고 있었다. AAPP는 버마군부독재정치로 인해 피해 받는 시민과 정치범들을 지원하는 단체이며 그들 역시 정치범의 상황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기록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알리는 홍보이며 또다시 폭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운동이다. 태국의 땅인 메솟에서 일시적 이주를 하는 그들은 언제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난민의 위치에 있지만 그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상황을 기록하고 잋혀지고 사라져가는 언어와 문화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에게서 그들이 기록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는 그들 자신의 일이요 더불어 버마 사회의 일이다.

도로시-Once upon a time
*가제-만남에서 오고가는 이야기소리.

#1 - intro
메솟 CDC 친구들 중 쌍둥이자매 미진과 영진은 한국의 연예계,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했다. 그리고 서툴지만 한국말도 잘했다. 나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두 자매와 나 사이에 소소한 얘기들이 시작하게 되었다. 드라마 얘기 도중 드라마의 원작인 책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가 한국의 책을 본적이 있는지, 책 장르 중에서도 그림이 있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동화책을 접해본 적이 있는지, 버마의 동화책은 읽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져서 질문을 했지만 없다고 했다. 동화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던 나는 자매의 짧은 대답에 이야기가 끊겨 살짝 당황했었지만 뒤이어 동화책을 읽어보진 못했어도 동화의 소재가 되는 옛날이야기가 떠올라서 나는 알고 있는 버마의 옛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어보았고 미진과 영진은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 버마의 옛이야기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동화책은 아니었지만 그 자매의 옛이야기는 검색으로도 나오지 않는 흔치않은 이야기였고, 이동학습을 하고 있는 그 시간에만 들을 수 있던 이야기였고 오직 그 자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미진과 영진이 내게 들려준 소중한 옛 이야기에 내가 그린 삽화를 넣은 버마 전래동화를 소개한다.

#2,3 동화(버마어, 한국어, 영어)

-형식
3개 국어 버마어, 영어, 한국어로 작업을 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서 동화책을 그려볼 예정. 그리고 잡지에는 그린 동화책 3버전을 스캔 떠서 이미지를 띄어 놓는다.
#1 동화 소개/ 동화표지
#2/3 동화(버마어, 한국어, 영어)
#4-1 마무리(후기 같은 것)

마무리글

내 생에 처음으로 장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과 또 다른 언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 한국이 아닌 타국으로 나간다는 것에 대해 마냥 두려움을 갖고 있던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어서 아직도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그래서 동화 작업을 하는 동안 이동학습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분량
3장 반 정도

미얀마의 전래동화 중 하나.
옛날 옛적 미얀마의 어느 마을에 아름다운 처녀 쥐가 살았어요. 그동안 쥐들은 많은 결혼편지와 청혼을 했지요. 그렇지만 아빠 쥐는 총각 쥐들이 청혼 해온 것을 모두 거절했지요. 그러자 아빠 쥐가 엄마 쥐에게 말을 했어요. 여보, 우리 이 총각 쥐들보다 더 센 신랑감을 찾아봅시다. 엄마 쥐가 말하였습니다. 네!! 엄마 쥐랑 아빠 쥐는 해님을 찾아 갔어요. 해님 당신이 힘이 세니 내 딸과 결혼을 해주십시오. 저보다 힘이 센 분이 있어요. 그분은 바로 구름님이에요. 구름님이 저를 가리면 저는 꼼짝 못해요 "라고 해님이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구름님에게 갔어요. 구름님 제 딸과 결혼해주세요. 저보다 더 센 사람이 있어요. 그분은 바로 바람님이에요. 그래서 바람님에게 말하였습니다. 제 딸과 결혼을 해주세요. 그렇지만 저 보다 더 센 사람이 있어요. 그분은 밧줄님 이예요. 그리고선 밧줄님에게 갔죠. 밧줄님 제 딸이랑 결혼해주세요. 저보다 더 센 사람 있어요. 도대체 누구냐고요!! 바로 저를 뜯는 한 총각 쥐에요. 그 총각이랑 처녀 쥐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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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직 글이 미완성이고 계속해서 작성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