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消 (사라질 소)  诵(외울, 기억할 소)

消 诵 

[페이지1]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다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땅의 사람들 3 (고정희)

팔레스티나의 영가

하늘문이 열렸는데 다 어디 갔는가

동구밖 허공을 찌르는 호곡소리

하늘문 열었는데 다 어디 갔는가

기고만장한 엄동설한 속에서

뽕나무 숲을 후리던 바람이여

어머니와 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형제들의 알몸을 매질하던 채찍이여

거미줄만 무성한 폐옥의 마당에서

서쪽을 향하여 때 아닌 올리브꽃이 시들고

우리들의 지적인 밥사발을 마주하여

늙은이가 젊은이의 시체를 매장하는

이 거대한 해골 골짜기에

하늘문 열었는데 다 어디 갔는가


[페이지2]

1

내 소소한 일상들은 내가 살아온 여러 환경 안에서 이뤄졌다. 그렇기에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한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는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보아왔다. 그 주변은 늘 새롭게 단장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고유한 것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내 일상은 그렇게 변해가는 낯선 풍경 속에서 일상화되어갔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무심코 지나쳤던 변해버린 주변을 낯설게 본적이 있다. 하루아침 사이 새로워져버린 풍경은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달랐다. 마치 여러 시간 속에서 쌓인 기억이 그 공간들 속에서 상실되어버린 것처럼 나는 약간의 먹먹함을 느꼈다. 하지만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내 주변의 변화로 인해 그곳에 묻어있던 나의 기억도 조금씩 잊어지는 듯했다.

2

메솟, 그곳에는 자기 문화와 언어를, 그리고 일상화 이름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타국의 땅인 메솟에서 버마 민족들은 하자작업장학교와의 만남에서 민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춤을 보여주었으며 함께 부를 수 있는 그들의 노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난민캠프에서는 자신들의 전통의상을 입는 날을 정해 지키고 있었다. 내가 본 모습으로는 버마민주화와 관련한 메솟의 많은 NGO들이 군부독재정권으로 인해 잃어가고 있는 자신들의 땅과 문화, 언어를 지키려는 움직임을 만들고 있었다.

Ta'ang (TSYO)이라는 버마와 중국의 국경지대의 소수민족이다. 그들은 버마 내에서 팔라웅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이름은 Ta'ang이다. 

Ta'ang민족이 살아왔던 버마의 지역은 차(라페)농사가 주산업인 곳이었다. 그들에게 ‘차’는 돈을 버는 일이었으며 차를 마시는 것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향긋했던 차밭이 유혹적인 양귀비 밭으로 변하면서 그들은 땅과 문화, 일상을 잃어가고 있다. 버마에서는 군부독재정권도 비공식적으로 마약 농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차재배를 하던 사람들도 마약에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며 일과 집을 잃은 사람들은 더더욱 손쉽게 마약에 손을 대게 된다. 현재 버마의 계획 중인 댐건설 역시 여러 민족들의 삶터를 빼앗기는 마찬가지다. 버마의 군부독재정권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라짐으로 인해 여러 민족들, 특히 소수민족들은 쭉 지켜오던 그들만의 언어와 일상의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소수민족의 탄압이 극심한 상황에서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고유한 것’에서 더 나아가 곧 자신들의 삶이다.

Ta'ang민족은 팔라웅이라는 이름이 아닌 ‘타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부르며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지켜가고 있다. 군부독재정권 아래 더 탄압받는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어떤 저항의 의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현재 팔라웅유스센터에서는 군부독재정권으로 인해 잃어가는 Ta'ang언어를 교육하고 있으며 청소년지원과 민주화운동지원을 하고 있다. 그들은 군부독재정권의 인권탄압과 마약밀매를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들의 ‘전통’이나 ‘문화’가 아닌, ‘인권탄압’이라는 것을 인식하게끔 교육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운동은 자기 삶을 지켜내는 것이다. 민족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우리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군부독재정권의 인권탄압으로 빼앗기는 일터와 집터에서의 삶이 일상화되고, 민족의 고유한 삶이 사라져갈 때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3

나는 변하면 변한대로 쉽게 일상에 적응해왔다. 내 습관도 일상도 외부의 변화에 따라 또 변하기 마련이었다. 내 주변에서 변한 것들은 이제 옛 모습을 그리 많이 담고 있지 않다. 내 삶의 근거지였던 곳에는 고유한 것들이 많이 획일화되었다. 금방 변화에 익숙해지는 나는 일상에서 잊어진 내 기억이 무엇인지 돌아봤다. 장소의 사라짐으로 인해 잊어지는 기억은 순식간이더라. 고유한 것이 획일화되고 사라져가는 것들이 일상화된다고 느끼면서 나는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그로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 주변에서 찾아본다. 현재 버마에서 일어나는 일과 내 일은 상황을 견주어볼 수 없을 정도로 강도의 차이가 크지만 메솟에서 나는 일상의 변화로 잃어가는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만났다. 

Ta'ang민족과 더불어 메솟에서 만난 단체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있으며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문화와 언어를 차단하고 있는 SPDC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라짐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빼앗기는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버마의 소수민족이며 고유한 언어가 있고 집터와 일터, 삶의 이야기가 있는 자신들 땅의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