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를 넘어 상호적 신호관계 만들기(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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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ro
어렸을 때부터 주변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좋았다. 어쩌면 주변을 잘 인식하기 못하기 때문에 나는 관찰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잘 못 본다.' 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던 나는 의식적으로 주변을 보려했고, 순간순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은 어느새 버릇이 되어 있었다. 

내가 주변을 인식하고자 했을 때 가장 편했던 방법은 눈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감각 기관을 사용하는 것보다 시각기관을 매개로 주변과 소통했을 때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판단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관찰한 것을 기록하는 방식도 자연스레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나는 순간의 상황과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기억하고자, 혹은 다시 불러일으키고자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었다. 그것은 개인의 기록물에 충실한 것이었으나 이상하게 나는 그걸 자꾸 사람들이랑 나누고 싶어 했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가 들어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좀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너도 이런 거 본적 있는지, 혹은 지금 처음 봤다면 어떤지, 이런 생각 하는지, 왜 하는지, 내가 표현해놓은 것들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던 중 매체학습을 한다던 하자를 알게 되었고, 지원했다. 나에겐 과연 매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도구와도 같았던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과 갈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자에서 받았던 질문들은 표현하는 것 이전에 왜 표현하고자 하는지, 무엇으로 인해 움직이는 것인지, 그래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길 찾기 때의 주말작업장에서도, 드로잉프로젝트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받았던,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질문들은 "왜?" 였다. '니가 이것저것 시도하는 건 좋은데,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는 왜 이 재료들을 썼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었는지 네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라는 디피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띵했다. 그렇게 좀 나누어보고 싶다고 했건만 그때도 나에겐 시각적인 작업물이란 내 감정이나 생각의 순간을 포착한 기록물까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작업물'이라고 부르며 사람들과 나누길 원한다면 그러길 원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장 같은 것은 굳이 사람들과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나의 경험을 나눌 수 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왜 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가 필요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자 나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어 했던 나의 작업물이 오히려 소통을 배제하고 표현만 남는 상황은 정말 아이러니컬한 것이었다. 

나는 다시금 나의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것들을 보고 듣는지 역 추적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적어도 나의 이야기가 '표현'만 남는, 대상없는 외침으로 남게 하고 싶지 않다면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무엇으로 인해 표현하는지, 움직이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어떤 것들을 보고 듣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자작업장학교 안에서의 1년 반가량의 학습과정은 나에겐 나의 시청각을 인식하고, 또한 나는 앞으로 무엇을 볼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하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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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흔히들 정보의 시대라 부르는, 인식이라는 단어가 무안해질 만큼 온갖 정보들과, 미디어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가청권은 유린되고 만다. 더불어 핫뉴스들을 시시각각 전달하는 매스미디어 덕에 더 이상 어지간하게 '핫' 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운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어떻게 인식하고 아는 것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듣고, 인식하는 나의 가청권과, 어떤 사실들에 조명할 것인지에 대한 설정이다. 하자는 나에게 그 설정에 대해 계속해서 물어왔다. 너의 가청권은 어디까지냐고, 너는 어떤 이야기들에 시선을 주고 싶으냐고 말이다. 또한 그 설정은 개개인이 혼자서 고민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도모하고, 고민해 볼 수 도 있는 것이었다. 

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에서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대해 처음으로 시대적, 지구적 사고라는 것을 해보았다. 더 이상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단순히 주변만의 일이 아니고 전지구적차원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그렇다고 나를 뺀 나머지의 이야기 역시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의 일이였던 것이다. 나의 일로써 가져가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함께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 역시 생각해야했다. 우리는 환경에 대한 문제는 실천이 시급한 것이라고 느끼고 하자 안에서의 실천을 도모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동시에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들의 참여를 제안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TCK TCK TCK 캠페인 영상을 만들었다. [ tck tck tck 영상에 대한 설명 필요 ] 

인식이 인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발자국 더 깊숙이 들어왔을 때 나는 책임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구성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큰 단위를 구성하고 있는 소소한 개인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써 어떻게 능동적인 참여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세상을 구하는 시인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민문화 워크숍을 통해 나는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인식하며 끝내는 시민 문화 워크숍 에세이에 "나는 나를 설명하는 정체성들 중 하나로 '시민' 이라는 단어를 크게 가져오고 싶다" 라는 선언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내가 인식한 시민의식이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현실이 단순히 세상일이 아니라 '내가 포함된 세상일'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공동체 안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세계" 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며 내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시민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정선으로 현장학습을 가서 본 예술가들의 모습은 역할에 대한 내 고민에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였다. [예술마을 고한-사북]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그들의 작업 방식은 폐광과 카지노가 공존하는 마을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힘을 쏟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이 어떤 의미에서 치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예술과 예술가가 그곳에 꼭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예술의 역할은 시선이 필요한 곳에 시선을 주고, 그것을 각각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사람들로 하여금 재조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나의 매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정선에 다녀온 후 시작한 이끌림을 넘어 이야기하기' 라는 제목을 가진 연구주제는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매체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상해본 경험이었다. 연구주제 후 나는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과거의 포착된 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기억을 추적하게 하는 연속성을 지닌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2. (   )
나는 잘 살아가고 싶다. 나에게 잘 살기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기이다. 하지만 혼자 잘사는 것은 싫다. 혼자 잘살기는 재미없고, 심심하고, 외롭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우리" 라는 단어를 서서히 내놓기 시작했다. 시민의식은 내가 속한 세계를 인지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시대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함께 잘 살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과 신념들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그러기위해 내가 이야기하는 "우리"의 범위는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야했다. 세계 곳곳에서 탈 경계, 탈 민족의 양태가 벌어지고 있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으로써 가져야할 책임의식, 시민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전 지구적인 상황과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 메솟으로의 두 번째 이동학습을 가게 되었고 나는 그곳 사람들과 서로 만나 내가 '우리' 라고 부르는 나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또 각자가 '우리'라고 부르는 개개인의 세계를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메솟은 SPDC(버마 군사정권)가 자리 잡고 있는 버마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모여있는 버마와 태국의 국경지역이다. 나는 그곳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NGO단체와 버마에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가 만나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자기소개'였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나는 나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서 나를 둘러싼 나의 세계를 설명해야 했다. 나 역시 끊임없이 물었다. 너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또한 우리의 현실에서 나의 입장과 위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국가의 주권이 그들 자신에게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들이 현실에서 갖는 위치는 '난민'이라는 것이었다. 난민은 정치참여권 차원의 문제가 아닌,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민주화에 대해 열망하나 그들의 현실에서는 존재증명조차 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정말이지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내 앞에 존재하고 있는 파치가, 미누가, 클라우가, 툰툰이, 구구가, 그러나 현실에서 그것만으로는 존재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상황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태국과 버마의 사이에 있는,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폭이 좁은 강이었으나, 내 옆에 서있던 클라우에게는 절대 열려있는 경계가 아니었던, 반짝거리고 있던 강을 마주했을 때, 난민캠프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의 일시적인 공간, 그러나 일시적일 수 없었던 캠프의 거대함과 무기력함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우리가 헤어지던 날, 네가 나올 수 있는 만큼, 그러나 그것이 캠프 안으로 들어가는 다리 너머까지였던. 우리에게 손을 흔들던 너를 보았을 때. 나는 너를 둘러싼 수많은 상황들과 마주했다. 

내가 너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너와 만난다고 했을 때는, 너뿐만 아니라 네가 속한 '너들'의 문화, 질서, 규칙들을 포함한 너의 세계와도 충돌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에 각자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칙과 신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설명하는 '묻고 답하기'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대화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며 또한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인식했을 때, 안테나를 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너와 내가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그러나 너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너의 세계, 나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이곳은, 하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공감하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이 있기에 함께 나누고,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만났을 때, 닿았을 때, 그 세계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공감이라는 것을 할 때, 너와 나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된다. 만남은 너와 나의 세계가 닿은 것이다. 우리가 닿은 이상, 내가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함께 가슴이 뛰는 순간, 너의 현실, 너의 세계는 내 안으로 들어와 내가 인식해야 할 나의 현실, 내가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할 나의 현실이 되었다.

내가 들은 너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버마의 현실에 대한 정보와 달랐던 것은 내가 만난, 직접 닿은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인, 혹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친구의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지금, 여기 나의 현실에서 나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규칙들을 바꾸어 나가고 싶다고 강하게 말하던 너의 목소리를 듣던 순간을 기억한다. 자신의 세계에 기여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스킬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던 파치의 얼굴을 기억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라는 물음에 시선을 주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해주셨던 HREIB 선생님과의 대화를 기억한다. 자신의 과거와 같은 끔찍한 기억을 갖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게 하고 싶다던 툰툰의 눈빛을 기억한다. 항상 농담을 주고받았던 미누가 자신의 가족과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가끔은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한다고 이야기했던 밤의 무릎위에 놓인 깍지 낀 두 손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각각 이 현실 속에서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NGO단체들과의 만남을 기억한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을 기억한다. 함께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고 싶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너의 현실과 마주하는 그 과정에서 내가 다시 깨닫게 된 것은 나의 바운더리였다. 내 세계 안에서 통용되는 규칙들이 있었다. 너의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 아찔하고 당황스러웠던, 가끔은 무기력해져버렸던 순간들은 또한 내 세계의 규칙과 신호들에 대해서 들여다보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보았던 그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 좀 더 필요. /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였는지 ]

3. (    )
9살 이전의 나는 흔히 말하는 조기교육과, 영재양성을 다 체험했었다. 어린아이였던 나에겐 그저 그 구조가 끔찍한 기억일 뿐이다. 같은 공간에 있던 아이들끼리 서로의 아이큐로 누가 최고인지를 겨루고, 누가 문제를 더 빨리, 더 완벽하게 푸느냐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간식조차 달랐던 구조는 나의 존재가치에 대해 끊임없는 의구심을 만들었고 나는 내가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문제를 풀어야했다. 결국 견디지 못했던 나와 이런 구조에서는 과감하게 '탈'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부모님의 판단아래에 정말 과감히, 학교도 다 그만두고 대안을 이야기하는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내가 8년의 시간을 보낸 볍씨학교는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모토 아래 만들어진 학교였다. 그냥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학교는 나에게 치유의공간과도 같았다. 가치의 구조가 완전히 다른 공간에 들어와서 나는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었다. 애초에 나는 도대체 친구는 어떻게 만드는 건지도 몰랐다. 내가 친구관계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나는 그게 너무 어려워서 학교에서 매일 울었다. 

생명을 가진 것은 다 소중하다는 인식이 구현된 공간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 몸으로 하는 폭력, 말로 하는 폭력 모두 하지 않겠다. /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 와 같은 약속들을 만들었고 나는 이 자율이 통용되고, 보호 받는 작은 세계를 구현한 공간까지만 인정하기로 마음먹고 그 이전의 기억들은 지우려고 애썼다.

사실은 아무리 듣지 않으려고 해도 일시적 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라고 하나 인간의 존재조차도 신자유주의라는 시장경제의 흐름 속에 있는 역설적인 상황들이 내 귀에는 너무 잘 들렸다. 그것은 계속해서 나를 분노하게 했지만 그것은 분노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나는 분노에 찬 표현을 내뱉었지만 개입하려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계속 화는 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져있었다. 내가 계속 도피하며 이 안에서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공동체를 나와 하자 작업장 학교에 원서를 냈다. 

하자에 들어와 처음에는 자율 공간 앞에 왜 '일시적'이라는 말이 붙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는 이 자율공간만 인정하고 싶었는데 하자는 자꾸 나에게 너는 어디만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느냐고 물었다. 대안을 이야기하게 된 사회의 흐름과 맥락에 대해서 알아야한다고 그랬다. 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와 세상을 구하는 시민문화 워크숍과 같은 프로젝트들은 그런 충돌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나의 세계 밖 너의 세계와 만났을 때, 그리고 그것이 너의 세계일뿐만 아니라 나의 현실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일시적'이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현실 어디에서나 자율이라는 규칙이 통용되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의 나로썬 나의 세계를 넘어 타율이 통용되는 대부분의 현실과 마주했을 때 계속해서 절망하거나 도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현실이며 또한 나와 직접 닿았다고 생각하는, 만난, '너'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린아이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정지되어있으면 안 된다. 나는 정말로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지키고 싶은 것을 가지고 현실과 마주했을 때 자칫 잘못하면 현실의 권력과 룰이 대항해야 하는, 거대하고 뭉뚱그려진, 괴물과 같은 '악' 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 한번 데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실은 굉장한 분노가 차오른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에만 사로잡혀 이분법적인 사고를 했을 때 생기는 권력(사회적 힘)의 괴물화는 오히려 그 정체를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SPDC가 자리 잡고 있는 버마의 현실에서 겪은 경험에 대해선 내가 섣부르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현실을 바꾸고 싶다.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싶다. 라고 이야기하는 그들과 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과연 무엇이 민주화인지 헷갈리는 현실에서 살고 있는 내가 서로에게 함께 해야 했던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였다. 상황과 조건에 대한 섬세한 구분과 인식이 없으면 우리의 목소리는 판타지가 되어 움직임이 버거워지는 무기력한 상태를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하는 시인들과 버마의 NGO들을 보면서 나는 나도 그냥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걸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HRIBE선생님이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시선을 주는 것부터 시작인 것 같다. 나의 시선이 불빛이라던 조원규 시인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내가 앞으로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디에 시선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그러한 능동적인 인식활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신호를 수신 받을 수 있게 하는 안테나와 같은 그것은 감수성이다.  

이 바운더리 안에서 자라며 내가 기른 것은 자율의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일시적 자율공간 안에서 기른 타율이 아닌 자율의 감수성이란 외부의 권위나 권력이 아닌 나 자신의 목소리가 행동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감수성을 가지고 현실 안에서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자율의 감수성을 지켜나가겠다는 것이 현실 안에서의 아웃사이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며, 유치하다. 이 감수성을 가지고 '현실' 안에서 '살아가겠다.' 라는 것은 그것이 유토피아적인 상상의 만족, 혹은 도피처로써 끝나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자율의 약속들을 인지하고, 지키는 과정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써 나의 세계를 잘 가꾸고 싶다. 그 안에서 잘 살고 싶다. 라는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하자라는 공간 안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나는 이제 내가 자율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며 나도 나의 매체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참여자이자 기여자가 되고 싶다고 선언했다. 과연 내가 뱉어놓은 말을 나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기대가 된다. 

4. (   )
신호란 인간의 시청각이 도달하는 범위 내에서 통용되는 통신 방법이다. 신호는 신호 자체로써 존재하는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 또 신호를 받는 대상이 있을 때 의미를 갖게 된다. 혹은 신호를 '읽는 사람' 신호를 '전달하는 사람' 이 필요하기도 하다. 

나의 목소리가 혼잣말이 되지 않기 위해선,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굳이 신호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대상이 있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신호를 서로 보내고 받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규칙이 통용되는 세계에서 그저 각각의 이야기를 대상 없이, 허공에다 쏘는 것이 아니다. '보낸다.' 라고 표현했을 때에는 그것은 상호적이며, 자신의 가시권 안에서만 야기되는 자위적인 표출, 표현을 넘어 현실을 바라보는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도모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언어가 일방적으로 쏘아지는 방식의 폭력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써 존재하길 바란다. 의무와 책임을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닌 나의 자율에 의해 능동적인 사명감을 갖는 것. 그 소명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상호적 신호관계를 위해서 나는 언어가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자 안에서 영상 팀으로써 보낸 나의 시간은 매체가 시각적인 순간에 매료되어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아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신호가 되어 현실에서 나의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과정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언어로써 나의 신호를 보내고 싶다. 이제는 그것이 나만의 경험, 과거의 포착된 순간으로 존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길 바라며. 나의 언어가 신호를 공유하는 하나의 운동으로써, 나의 시도들로써 존재하길 바란다. 

나의 세계에서 핵심적인 코드인 '나의 목소리'를 가지고 이 현실에서 '어떻게' 능동적으로 살아갈까 는 9년간 나의 세계였던 자율공간의 경계 밖을 나오려는 내 앞에 놓인 과제다. 그것은 대안적인 공간 안에 있는 것이 '가능'했던 환경 속에서 자란 내가 가져야 할 의무와 책임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인식이 현실에서의 도피가 되지 않으려면, 쫄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그 정도의 배짱과 의지는 생긴 것 같다. 자율공간에서 기른 나의 감수성을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읽고 응답하는 상호적 신호관계로써 구현할 것을 다짐하며 나는 이제 나의 세계를 넘어 현실의 구성원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