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것 까지만 올립니다. 뒤로 가면서 정리되지 않은 문장, 문단들이 많아요. 추가되어야할 것들 체크하면서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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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메솟에 가서 만난 상황들은 메솟에 가기 전 자료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던 사실과 조금 달랐다. 메솟에 가기 전, 나는 자료 검색을 통해 버마 내 군부독재정치와 인권유린, 88사태 등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정보들을 접한 것은 간접적인 검색을 통해서였지만, 그것들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 충격적인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으며, 버마의 상황에 대해 인식하려 했다. 하지만 자료 검색만으로 무언가를 인식하겠다는 것은 섣부른 생각이었고, 나는 과연 어디까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자료 검색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은 이동학습을 통해 내가 어떤 만남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의 밑바탕이 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자료검색을 통해 알게 된 먼 시대 안에서의 현실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안에서 내가 어떤 현실을 인식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본 것도, 들은 것도, 한 것도, 만난 것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경험이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웠고, 내가 뱉은 말이 내가 경험한 것을 한마다로 ‘어떻다’라고 정의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때문에 나는 말과 행동, 단어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야 했고,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을 때도, 어떤 질문을 할 때도. 모두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몇 번 더 생각해야했다. 과연 내가 어떤 사람으로서 행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였다. 그 고민으로 나는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 같은 삶의 조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 고민으로 인해 버마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 말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내 맥락에서 그 이야기를 설명해보려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입장에 대해 고민이 됐는데, 한 가지, 한국 사람의 입장으로, 버마 사람의 입장으로 우리 만남의 경계 같은 것을 만들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절대로 싸구려 동정심 같은 거 갖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사실 완전 결심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내 입장에 대해,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복잡한 상태 그대로 남아있었고, 메솟은 그 고민의 연장선이었다.

메솟에서 나는 그들의 삶의 조건과 나의 삶의 조건에 대해 따져보게 되었다.

그들은 군부독제정치 아래 삶이 제한되어있다. ‘난민’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도 ID카드가 필요하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메솟에 가기 전, 내가 어느 정도 선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사실 그들을 만나면서 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들의 무엇을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CDC와 LMTC등의 십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처해있는 삶의 조건들은 달라도 십대로서 하고 있는, 자기 삶을 어떻게 꾸려갈까에 대한 고민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정치제약의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꿈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하지만”이라는 말이 꼭 따랐고, 그들에게 나는 좋은 조건에서 살아가는 ‘운 좋은’사람이었다. ‘함께 살기’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는 그들과의 만남에서 어떻게 ‘함께 살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사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머리로 떠올리는 상상에조차 제약의 한계가 따른다는 것에 가슴이 턱하고 막혔고, 내 바로 앞의 친구에게조차 아무 말 못하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것이 싫어졌다. 그들이 말한 내 삶의 조건은 ‘운 좋은’ 것이었으나, 실로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의 삶의 조건은 비슷한 것들이 있다고, 우리가 처한 상황의 맥락은 다르지만 나와 너의 삶의 조건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들에게 내가 십대로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 잘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자신이 어떤 입장인지 잘 알지 못했고, 그들이 말하는 내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이 말한 내 삶의 조건이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에 이어, 현재 내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내 삶의 조건 안에서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도리어 반문하게 되었다.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나는 내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면서 공간과 상황의 차이가 어떤 삶의 조건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나와 내가 만난 버마 친구들을 생각했을 때는, 우리가 처한 상황의 맥락은 다르지만, 그 맥락 속에서 거쳐야할 비슷한 조건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나의 위치에서, 그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방문했던 대부분의 단체들은 ‘인권’에 대한 키워드로 피해 받고, 상처 받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었으며, 버마의 민주화를 목표로 그들 자신들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버마의 민주화’였지만, 자신들의 상황이 결국 세계의 문제임을 말했다. 나 역시 하자에서 ‘글로벌 이슈’라는 말을 사용하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제 나의 관계를 인식하려고 했다.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인식하면,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됐다. 나는 물리적 거리로 인한 무관심을 갖고 싶지 않았다. 실은 나에게 직접 다가오지 않으면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기후변화와 재개발 그리고 이번 이동학습을 통해 마주쳤던 버마의 현실도 내 가까운 일이 되었다. 메솟에서는 그동안 거리감을 느꼈던 문제가 내 친구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타인을 통해 다른 현실에 대해 인식하는 바가 가까워졌다. CDC친구들은 당장에 학교를 졸업하면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그들은 ID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ID카드는 나와 그들 모두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나에게는 ID카드가 의무이고, 내(나이와 신분)에 대한 증명이다. 하지만 버마 사람들에게는 마치 ID카드가 최소한의 권리처럼 보인다. 나에게 ID 카드는 어쩌면 신분증명을 해주지만 존재에 대한 증명으로는 가치가 있나 싶다. 하지만 내가 만난 친구들에게 ID카드는 존재에 대한 증명이며, 생존과도 관련 있다. 이동하기 위해, 보기 위해, 듣기 위해, 말하기 위해 그들은 ID카드를 필요로 한다. 나에게 그들의 ID카드는 자유(가 아닌 자유)를 얻기 위한 허가증인 것처럼 느껴져, 그동안 내가 ‘자유’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그런 필요에 의해 생겼지만, 불필요한 삶의 조건으로 나의 삶, 그들의 삶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짓인 것 같다. 삶의 조건의 비슷함 안에서도 나와 그들의 의미는 달랐다. 나는 그 다름이 물리적인 공간으로 인한 다름이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와 만남의 내용으로 물리적인 다름을 넘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내 삶의 조건에 대해서도 집중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 삶의 조건에 대해서는 늘 익숙하게만 생각해왔기 왔지만, 삶의 조건이라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다. 어떤 것들을 ‘삶의 조건’이라고 포괄하는 것도 사실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내 삶에 있어서 ‘조건’은 대개 주어진 것들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굳이 조건을 만들 필요 없이, 주어진 것들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 만족에 대해 약간의 모순을 느낀다. 그동안 나의 만족은 안정감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내 삶의 조건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누군가 만들고 있는 조건으로 나의 삶의 조건들이 구성되고 있었고, 이제 나는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될 계기를 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질문해보고 있다. 메솟에서는 상황과 공간이 어떤 삶의 조건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의 상황과 공간의 조건은 대안(적)학교다.

사실 이 조건은 9살 때 스스로 선택한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제도를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어렸을 때 제도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비제도를 택한 것도 아니었다. 비제도를 택했을 때는 너무 어렸던 터라 자발적인 ‘탈’을 했다고 볼 수도 없다. 내게 ‘탈’이라는 것은 그저 당연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자연스러웠던 조건을 다시 경험하고 있으며, 익숙한 환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하자작업장학교에 다니는 것은 더 이상 당연한 조건이 아니다. 내 선택에 의한 조건이며, 책임감도 느낀다. 나의 현실이 결코 내 친구 현실의 조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설명해야했다. 내가 일반적인 제도를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이 아닌, 내 입장에서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대안학교가 생기게 되었고, 내가 대안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제도에 대해서도 인식하는 바가 있어야했다. 나는 대안학교를 다닌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만큼의 시간만큼 ‘대안’이라는 인식은 부족했다. 시간이 지나 ‘왜 대안이냐’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는,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이 어떤 것이었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데 왜 ‘대안’이라는 말이 자꾸 붙는 건가 의문이 들기도 하면서 그간 내가 보냈던 공간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내가 왜 대안학교를 다니고, 왜 그런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나의 입장에서의 신념이 있어야 함을 느꼈다. 그 신념으로 나의 위치에 대한 설명을 잘 할 수 있길 바란다. 나는 대안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과 대안교육을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반 제도교육을 택하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많이 접한다.

지금 나의 삶의 조건 안에서, 대안적인 ‘학교’를 택한 것은 공간에 의한 변화로 대안적인 ‘인식’을 하게끔 한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나는 ‘대안’적 인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이제껏 익숙하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왜’라는 질문을 해가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이 의무화되는 일반적인 제도권 학교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입장에서의 주장이다. 내가 제도에 대한 대안적 공간에 있다는 위치만으로 그들을 비관하기는 싫다. 하지만 나는 20살을 위한 10대를 살고 싶지 않기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금하고 있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제도와 대안에 대한 조건의 괴리로 나와 너를 구분하고 싶지 않기에, 내가 선택한 대안이 나 혼자로만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안적 공간에 대한 내 나름의 설명해보려고 한다. 사실 어렵다. 아직도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하자작업장학교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리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막연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대안학교를 선택한 것과 더불어 내 삶의 조건을 자신이 구성하려고 한다. 내 삶의 조건을 구성하면서 나는 나와, 나의 공간의 시선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자에서 내가 처음 갖게 된 시선은,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다시 ‘왜’라는 질문을 던져 봐야했다. ‘왜’라는 질문에 직면하기 전에는,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림, 사진, 여행.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는, ‘왜, 왜’ 굳이 하고 싶은 것에 이유와 근거가 필요한가 싶어 짜증나고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생각의 실체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덧붙여야 함)

지난 학기 나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 내가 익숙하게만 생각했던 것을 다시 낯설게 바라봐야 했다. 그 ‘왜’라는 질문은 주제연구를 하면서 더 구체화되어야 했다. 나는 ‘사라지는 것’을 주제로 연구를 해보고자 했다. ‘사라지는 것’을 주제로 잡게 된 계기는, 주변의 사라지는 풍경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주변에서는 내가 좋아했던 공간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으며, 나는 사라지는 것들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아쉬움만으로 주제연구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왜 사라지는 것에 대안 아쉬움과 그리움을 느끼며, 사라지는 것은 왜 사라지는 것인지, 그 과정이 어떤 것인지. 더 집중해봐야 했다. 그렇게 나는 도시화가 되어가는 시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와 고유한 것이 획일화 되어가는 과정, 도시화, 재개발, 간판, 기호 같은 더 세분화된 키워드를 뽑아냈다. 그리고 주제연구를 하게 되면서 ‘기억’이라는 키워드에 새롭게 집중하게 되었고, 내가 단편적으로 느꼈던 아쉬움이나, 그리움. 그것들을 총 아우를 수 있는 말을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기억은 사회적 기억의 매개물, 혹은 부가적 장치일 뿐이다. 기억 속의 개인은 늘 사회적인 존재이며, 개인과 사회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억의 주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다”

나의 기억이 사회적 매개물일 때, 나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과정’없이 맹목적으로 재개발, 변화를 추구하는 도시화 시대에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었다. 무엇을 위한 변화인걸까. 나는 ‘사라짐’에 대하여 이동학습을 가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PWO 단체를 만나 소수민족인 'Ta'ang'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버마에서는 군부독재정치로 인한 또 다른 ‘사라짐’이 존재하고 있었다. Ta'ang민족은 군부독재정치 아래 자시들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 땅과 일자리까지 잃어간다고 한다.

내가 주제연구 한 한국사회의 도시화와는 다른 맥락에서의 사라짐이지만, 현재 변화하는 시대에서는 변화를 대신한 사라짐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라지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된 것에서 낡은 것으로 취급되어진다. 나에게는 오래된 것이 낡은 것이 아니다. 오래됨 속에는 어떤 기억이 묻어있으며 나는 그 기억으로 어떤 감정을 갖게 된다. 기억이 나와 사회적 기억의 매개물이라면, 나에게 ‘사라지는 것’은 나와 나의 기억을 매개해주는 것이었다.

현재 사회에서 ‘기억’ 없이는 고유함도, 언어도, 문화도. 과정 없는 ‘사라짐’으로 인해 잊혀 질 거다. 나는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해 기억하고 싶다. ‘더 좋은’ 것을 위한 사라짐은 하얀 거짓말이다. 주제연구를 하면서는 사회와 내가 밀접한 관계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기억을 가질 수 있는지, 나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지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 기억은 ‘나의 기억과 사회적 기억의 매개’일 때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공간에서의 ‘기억’도 포함된다. 내가 살아왔던, 속해있던 공간을, 만났던 사람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일방적인 기억은 하기 싫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으로 기억되는 것도 싫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내가 속해있던 공간을, 내가 했던 움직임을 나는 그것과 나의 ‘관계’에서 기억하고 싶다. 나에게는 관계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기억하고 싶다. 그 기억을 위해서는 ‘지금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내가 속한 공간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어디에 속해있는가는, 지금 내가 어떠한 생각에 미쳐있는가를 말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속한 ‘공간의 시선을 잃고 싶지 않다’ 공간의 시선을 잃고 싶지 않을 때는, 그 공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그 공간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내가 속해있는 공간을 더 잘 알 수 있는 것은, 그 공간을 벗어난 후부터 인 것 같다. 나는 볍씨에서 배운 것이 나에게 어떤 것이었는가를 하자에서 더 잘 알게 됐다. 하지만, 하자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나는 현재 나로서 조금은 정리해보고 싶다.

처음 하자를 선택할 때는,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익숙한 공간에서 느끼는 안정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자는 내가 처음으로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게 된 경험이었다. 나는 그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기록은 나에게 부가적 장 그 이상이다.

나는 ‘기억’을 하기 위해 ‘기록’한다. 혼자서 끄적거린 글과 낙서에서부터 어떤 목표를 가진 기록까지. 그 기록들은 나를 위한 중요한 기록이었다. 내가 기록을 하는 방식은 주로 사진과 그림, 글이었다. 어떤 상황과 사실에 대해 기록하는 도구는 주로 사진기였고, 내 감정과 기분, 상태를 표현하는 도구는 주로 그림이었다. 그리고 글은, 가장 기본적인 기록의 방식이자 가장 어려운 기록의 방식이었다.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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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나는 ‘시민’에 대해 말했다. 시민문화워크숍을 통해 만난 7분의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그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고민했고, 낯설었던 ‘시민’이라는 단어를 내 맥락에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시민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고 내가 시민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민은 뜻과 움직임의 일치가 필요했다. 뜻과 움직임에서 항상 괴리감을 느끼는 나는 움직임이 필요함을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움직임은 퍼질수록 더 힘이 있다는 걸 알다.

언젠가 히옥스는 ‘기꺼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하자의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는 때’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제안은 나에게는 격려였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한 격려는 ‘함께 살기’위한 기반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함께 살기’라는 말은 하자에 오기 전, 볍씨에서도 자주 사용했던 말이다. 볍씨에서는 ‘함께 살기’라는 말 대신, ‘더불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이란 말을 사용했다. 볍씨에서 나는 이 말을 가장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을 가진 것은 어렸을 때부터였다. 어렸을 때는 단순히 함께 서로가 다름을 존중하며, 그 다름을 통해 배운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은 내게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자에서 ‘함께 살기’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주어가 ‘나’가 되는 연습을 해야 했고, 단순히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그것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도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익숙하게만 생각해왔던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그동안 내가 속해있던 공동체는 어떤 곳이었는지, 내가 말하는 공동체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었다. 볍씨에서 ‘더불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이란 공간의 문화와 생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볍씨 공동체의 지향점은 더불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속했던 공간의 시선을 잃 지 말자고, 볍씨를 딛고 나의 시선으로 이어가고 싶었던 지점은 바로 그 지향점이었다.

하자에서도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다. 지금 나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함께 살기’를 해나가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하고 싶은 것과 연관 있다. 나는 단순히 내가 속한 공간에서의 참여자가 되고 싶지 않으며, 소속감을 가진 구성원이고 싶다.

볍씨에서는 ‘더불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이란 생각을 작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내가 속한 세상과 나의 관계에서 나는 더불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지금 역시 내 삶으로부터 어떤 질문을 꺼내고, 그 질문들을 서로와 함께 구체화시켜가는 것. 그러면서 나와 나의 주위에 대한 사고가 깊어졌으면 한다. 하자에서 나는 이제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공간과 마주치면서,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질문들에 직면하였다. 그 질문들로 나는 자기 삶을 낯설게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와 나의 주위,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설명시키기 위한 질문으로 이어져야 했다.

내가 하자에서 가장 충돌했던 부분은, 나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한다는 부분이었다. 내가 하려는 말 뿐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신념을 갖기 위해 나는 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매체를 통한 학습을 하면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그림이 나의 매체로,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놓은 작업이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놓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충동과 욕구만으로도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배운 것, 본 것, 들을 것, 만난 것의 경험을 내 언어화시키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경험을 언어화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과 나누는 것을 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어렸을 때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그림을 그리자!”라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게는 공책이 있었고, 공책은 나에게만 허용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생각과 기분, 상태를 아무런 규칙 표현할 수 있었다. 표현의 방식은 대개 그림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거나, 보여주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자에서 내가 어느 상황에 속해있는가를 인식하며, 그 상황 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한다. 그 고민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인식에서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생각이 범주가 넓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나는 매체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에서 그 표현방식이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까. 내가 바라는 것의 키워들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