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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0. 도피하기. “교복”입은 탈학교 학생
나에게 있어 학교는 언제까지나 ‘대학 입학 후’ 만을 대답하는 자동응답기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끊임없이 나오는 새로운 입시전략 속에서 상담을 원한다면 0번을 누르지만 아무도 네가 누구 인지,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너’ 자체를 묻지 않았고, 지금까지 해온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 1순위, 2순위, 3순위로 이야기를 마무리되곤 했다.
“영화 만드는 거? 그게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그거 대학가서 동아리 활동으로 충분히 할 수 있어.”, “딴 생각 그만해. 지금 중요한건 공부야”
라는 말로 오히려 학교는 나에게 ‘튀지 않는 것이 제일‘인 그렇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로봇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학생의 ’본분‘에 맞게 주어진 역할 안에서 그렇게 열심히 나의 몸을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들에 의해서 판단되고 등수와 점수로 결정되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학교 안에서 ‘넘겨다본’ 하자는 일단 해보면 알 수 있다는, 그러니 해보지 않았으면 판단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곳이었다. 그곳은 나에게 ‘딴 생각’이 가능하다고 믿게 만들기 충분했고 이듬해 3월 나는 교복을 입은 채 “하자에 가서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1. 내가 선택한 길
본격적인 죽돌 생활을 시작하며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첫 번째로 한 것은 영화 찍기가 아니라, 자전적 글쓰기와 인문학이다.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과거를 언어로써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학습은 현재의 내가 이 자리에 있기 까지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를 되짚어보는 과정이었다. 억울하고 분통했던 기억을 써야 할 때는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그런 과정이 오히려 나를 좀 누그러뜨렸다. 우울 할 때면 즐거웠던 기억을 꺼내볼 수도 있었다. 그러한 시간들이 모이고 합쳐져 지금의 내가 만들어 졌다는 것이 뿌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처음 접해본 인문학 수업 혹은 프로젝트 <애, 전, 별, 친>은 너무나 쉽고 익숙하게 생각했던 4개의 테마를 가지고 책을 읽는 과정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책에 밑줄을 긋고 나누고 토론하는 과정은 어쩔 땐 명확했던 개념이 모호해지기도 하고 생각해 본적 없지만 새롭게 알게 된 일도 많았다. 모두 “삶”이라는 키워드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인문학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었다. 하자에서 배우는 경험과 시간들이 너무나도 새롭고 재밌는 거여서 나는 이곳저곳 판이 생기는 곳 마다 참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토록 원했던 주니어 영상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영상팀에 들어왔더라도 영화는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무슨 영화를 찍고 싶니?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니? “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었다. 영상팀에 있는 시간들은 의욕과 의기를 충만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같은 분야의 관심사를 가진 판돌과 동료작업자와 이야기도 즐거웠다. 나는 길찾기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자신의 전공을 가지고 작업자라고 부르는 게 싫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움직이게 되었다. 전보다 영화도 더 많이 보고, 빔 벤더스의 영화와 로드무비에 관한 개인연구를 했을 때는 관련된 책을 또 많이 찾아보았었다. 관객에서 연구가로 연구가에서 작업자로 넘나듦으로 자신의 입장을 위치시키는 일을 해나가는 시간이었다.
2.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법
길찾기 때부터 공동작업은 매번 나에게 ‘공동’이라는 의미를 묻게 했다. 나는 팀원들이 작업에 소홀하다고 불평하고 작업이 내 생각대로 잘 풀리면 혹시 내가 너무 독단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동작업에 있어서 몸에 익은 ‘본분’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은 내게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데 걸림돌이 되어갔다. 그 시기, 양상과 영등포 프로젝트의 편집회의를 해보는 경험을 하면서 원고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전체를 생각해서 틀린 문맥을 다듬기도 불필요한 것은 적절하게 생략하기도 했다. 공동작업에서 중심이 되는 역할은 전체를 판을 읽는 작업을 먼저 요하는 것이었다. 공동작업에서 서로의 관계와 소통의 어려움에서 배움을 시작했던 시간이기도 했었다.
폐광과 카지노가 공존하는 마을의 시간적 역사적 배경을 예술로서 읽고 해석하는 작업을 하는 예술가와 그곳이 삶의 터전인 마을 주민들을 옆에서 사이에서 관찰했던 경험은 <예술마을 고한사북 동+감> 프로젝트에서 마을의 예술가는 보고 있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사라진 것, 봐야 하는 것. 보여 지는 것 에 대한 다른 시선을 제시하고, 탄광유산과 관광산업이 전부가 아니라 보다 다양한 삶이 고한과 사북의 땅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작업자는 내가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고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들 사이 공놀이를 하듯 ‘주고받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공동작업을 한다는 것은 차별화나 특수화가 아니라 서로의 몸과 마음을 함께 협력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서 생각하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부딪혀 보는 경험을 통해서, 서로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3. 세상과 만날 준비
나를 알고 내 주변을 살피는 학습은 더 나아가 시대를 읽고 해석하는 <기후변화 시대의 living literacy>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기후변화라는 글로벌 이슈에 대한 영상,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질문에 맞부딪히게 되었다. 끔찍하게 벌어지는 상황들 속에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에 빠져있었던 찰나, 나는 히옥스가 제안한 <유스토크> 기획팀에 지원했다. HKSC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유스토크>를 위해 나는 기획팀의 일원으로서 집중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발제를 해야 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속도 벌어지는 문제들은 생태적 감수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 급변하는 도시 안에서 살고 있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조건은 무엇이고, 점점 더 삭막해져 가는 도시 속에서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 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를 잃어버린 기억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개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살 곳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더 공감할 수도 있었다. 나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재개발과 도시의 속도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로 발제를 했고 그것이 의외로(?) 이야기가 잘되어서 나는 주로 서울, 홍콩 두 도시에서 살아가는 10대로서 이러한 개인의 경험의 맥락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에 집중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타인과 주변의 문제로만 인식했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가지고 가기 시작했다. 또한 나는 기후변화라는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 좌절감과 죄책감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내가 좀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생각들을 하길 원했다.
<유스토크>를 하면서, 도시가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조건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사람이 상황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저마다의 사연들 속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있다는 것으로 서로에게 좋던 나쁘던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나는 보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았고, 그 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나의 주변에서 내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있지만 본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실천사항을 담은 선언문을 만들었고, 그것을 토대로 제1회 창의 서밋 때, 다시 만나 홍대와 청계광장에서 거리에서 “save my earth, save my self”라는 구호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본 경험으로 이어졌다. save my self 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사회를, 더 나아가서 지구를 지킨다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들이 나의 행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나는 아주 작은 일부터 “책임감”을 가지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탈학교 한 후 나와 세상을 마주하는 첫 번째 과정이기도 했다.
4. 사이에서 만남
약 1년 반 동안, 나는 작업장학교에 속해 있는 학생으로서 내가 “탈” 해온 일반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내가 이전에 인식하고 있던 범위로 안과 밖, 나와 너, 내가 선택한 학교와 떠나온 학교로 설명하기에는 단어도 힘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현실은 그“사이”에 관한 많은 상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메솟에서 버마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불법이주민이나, 공식적으로 “국적 없는” 난민의 상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몸담았던 사회를 “탈”하면서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다른 사람에게 믿을 수 없는 경험을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단체별로 다 같은 맥락상에 위치해있지만 어떤 단체는 독재정부에게 강하게 저항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청소년의 교육을 신경 쓰거나, 그 둘 사이에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아주며, 각자의 경험과 사실들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며 버마의 올바른 정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CDC (Children Development Center)학교의 학생들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태국과 버마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강을 보러 갔을 때, 한 친구는 자신은 버마 사람이지만 어딘가에서 이주해오거나 어딘 가로부터 “탈”해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먼저 버마에서 태국으로 탈출했고, 그 이후에 자신은 메솟에서 태어나 줄 곧 메솟에서 자랐다고 얘기했었다. 나와 말을 하고 있는 나의 친구는 버마를 조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태국도 버마도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말에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대답한 나는 그럼 도대체 그 친구에게 더 뭐라고 말해 주어야 했을까.
버마의 8888항쟁 이후 지금까지 현재 메솟과 멜라 캠프 안에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탈”한 사람들이지만 8888항쟁의 학생운동(지금은 학생이 아닌) 세대와 그 이후의 “국적 없음”의 상태에서 한 번도 버마에 속해 보지 않았던 (조금 특별한 경험을 가진) 세대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참으로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버마의 민주화가 더 지체된다면 이와 같은 상황은 점점 많아지고 그에 따라 발생되는 문제들도 속속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웅저 선생님이나 많은 NGO들이 버마민주화 운동을 지속하되, 운동의 한 갈래로 청소년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5. 서로의 다리가 되어 (다시 떠날 여정을 하는 나.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렇다면, 저마다의 “탈”의 경험들이 모인 일시적 자율공간이라고 불리는 “하자”는 어떨까? 하자에서도 세대변화 혹은 나의 세대라는 것은 매번 이야기 화 되는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로 <고래 이야기>를 만들었던 죽돌 들과 그 다음과 다음에서 지금 시즌1을 마무리하는 죽돌 들까지 매번 다르지만 자신들을 스스로 정의하고 이야기를 만들었거나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공간 안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죽돌 들 가운데서도 출발한 지점도, 서로의 탈의 경계지점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를 표현해 마땅한 단어들이 없어 이야길 만드는데 종종 애를 먹곤 한다. “일반학교” “대안학교” “우리” “탈” “사회” “시민” “정치”는 다 그래- 라는 생각을 뒤집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같은 의미로 나를 설명하거나 지금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거나 과장되어버린다. 성실과 근면으로 단련된 우리의 (혹은) 나의 시대는 ”미친 세상에 정상인 것조차 이상해“라는 노랫말처럼,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게 재밌다“를 부르짖는 것이 믿기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언어, 문화, 처한 상황들을 넘어 “우리”들의 버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사이에서 언어의 다리역할을 해줬던 떠비와 토토, 한국의 상황과 버마의 상황을 넘는 다리역할을 해줬던 마웅저 선생님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할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 후, 내가 원하는 일이 문화작업자인지, 문화매개자인지 헷갈려보는 경험을 하면서 문화 작업자도 매개자도 아닌 다른 방식의 작업자도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우리”세대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소와 같이 해 볼 수 있는 움직임을 제안하고 엮어주기도 하고 만나서 즐겁게 놀게 하는 “문화네트워커” 가 되고 싶다. 그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작업과 기여하는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앞으로 나는 카메라를 들고 기후변화, 평화, 대안교육이라는 이슈와 길과 영화라는 키워드를 가진 네트워킹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현실과 마주하는 경험들을 통해 또 다시 길을 떠날 수 있는 자기만의 방향을 잡으면서 학습했다. 그리고 하자작업장학교는 정처 없이 떠돌 뻔한 나의 여정에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다.
![]() When we meet a desert, make it a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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