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이 필요했을 땐 짧은 호흡을 했고, 짧은 호흡을 해야 할 때 긴호흡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나는 어려서부터, 386 운동권 세대의 부모 밑에서 자라, 시대의 문제들과 시대를 읽는 것에 대해 또 이 시대의 소수자 (약자)들과 같이 살기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우며 자랐다. 우리 아버지 또한 노동자 당사자로서 '노동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시며, 네이버 인물 검색에 '정치인'으로 검색되는 분이셨고, 어머니는 제도권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학습을 누릴 수 있게 대안을 실천해가시는 분이셨다. 나는 그런 부모의 모습과 배움에 영향을 받아, 발견하는 문제에 대해 바꿔가는 삶을, 자본주의 시대에서 생겨나는 '소수자, 약자'없이 사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그 꿈을 갖게 했던 내 감수성은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생태적 가치'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자란 난, 2007년 하자를 다니기 위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던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독립을 해 첫 발을 내딪은 곳은 '서울'이었다. 그것은 즉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개발/자본/미디어의 공간에 나 홀로 노출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상황 속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내가 생각하게 된 것은 부모와 독립된 '나'라는 것이었다. 내 생각과 지키고 싶은 것, 내가 살고 싶은 세상 짚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는 것.


그 과정에서 내가 다녔던 하자는, '니가 왜?', '그럼 너를 그곳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이니?'등의 기본적인 감수성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그래, 그렇게 문제 많은 시대 속에서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라며, '어떻게'를 통해 나를 이끌어 주었다. 이 물음들로 이루어진 과정이 나에게 의미있는 이유는, 문제 많은 현실 속에서 그 나를 자극하는 문제들로 인해 '나'라는 중심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같이 살기'를 지켜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감수성에 상처를 주는 '문제상황'을 직면했을 때. 분노와 충격으로 좌절에 머무는 것이 아닌, 더 나아가 그 구조를 '인식'하고, 그 상황 속의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내 삶을 생각해보는 것. 그렇게 하자가 내 감수성에게 더해 준 것은, 느끼는 것에서 공부와 관찰을 통한 인식의 '학습'과, 그것을 통해 내 스스로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틈을 주는 긴 호흡의'여유'였던 것 같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돌봐도 괜찮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을 막론한 시대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말라' 직설적 명령을 '경쟁' 강령으로 지독한 홀로의 시대로 향해가고 있는 같았다. 몸을 돌보려 하는 소비조차도 최빈국의 노동자들을 착취한 산물이고, 가난한 사람이 소비하는 값싼 제품이 그보다 값싼 저임금 노동자에 의해 생산되는, 그것 자체가 '기후변화' 타격을 주는 복잡한 구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꼼짝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의도적이면서 의도치 않게 착취/피해를 범하게 되는 시대의 이상한 구조. 나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물음을 갖았었다


 하자에서 나의 주된 이슈는 '사회적 문제'였다. 자본과 개발로 무성한 서울에서 내가 발견 할 수 있는 문제상황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에 난 사회 구조의 문제 상황을 발견 때면, 바로 '현실을 바꾸자'라는 실천의 활동을 떠올리며 이상한 구조가 움직임을 어렵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위해 내가 있는 일을 모색하고자 했었다. 사실상 항상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긴 호흡의 물음보단, 어떻게 현실/문제 상황을 바꿀 있을까라는 짧은 호흡의 물음을 갖았었던 같다. 그렇게 나는 하자에 있으며, '4대강 살리기와 선전 정치', '정선의 카지노 자본', '용알의 토건자본주의와 환상들'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비판적 작업들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항상 딴에는 조심스럽게 한발짝 내딛은 작업은 '섣부름'이라는 하자의 코멘트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때에 자신에 대한 코멘트에 대해선 나를 모두 열어 체로 그것을 나에 대한 채찍의 비평으로만 가져갔었다. 한편으로 어찌 공간들이 직면한 고리들을 있을까? 정말 고리들을 염두에 체로 내가 있는 것이 있기는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나를 갑갑하게만 했다.


시대의 '(자본)자유주의' 착취와 억압의 고리는 연쇄/교차적으로 짜여 있고, 그럴수록 개인들은 그것을 개인이 모두 감당해야 무게로 어깨에 올려놓을 밖에 없었다. 나도, 우리아버지도 사회적 문제의 당사자들도 그러했다. 이상하게도 지나치게 무거운 무게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항상 '소수'였고, 변화를 이루고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연쇄적 고리로 생성된 '문제 상황' 발견 때면 아무리 쉽게 바꾸기 어렵 다해도 '그렇지만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분노의 의문을 했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피부색, 국적의 세계적 위치에 따라서 미워하며 벽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 언제까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직업을 생각하며, 홀로 교과서라는 속에만 머물며 것인가? 이렇게 비판적 물음을 갖기는 했었지만 그것을 바꾸기 위해선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당장에 무엇을 하지 않으면,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항상 문제 상황을 직면 할 때면 갑갑함과 짜증만 쌓아두곤 했었다


그렇게 시대가 꼼작도 만큼 연쇄적이고 촘촘한 고리들로 짜여 있다 해도, 그럼에도 '내가 있는 ' 찾고, 만들려 했었다. 그렇지만 내가 문제 상황 앞에서 아무 것도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꼈을 , 나는 순간 자체가 싫고 슬펐다. 그렇게 항상 사회 구조와 문제를 일으키는 '무엇' 미웠고, 파헤쳐 바꾸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구조와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들에 무관심하게 '돈을 많이 버는 직업' 위해 밤낮으로 공부를 하는 또래 10대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미워졌고, 그들이 다수였기에 10대시절의 나는 스스로가 왕따를 자처했었다. 그것에 더해 그런 '분노' '바꾸고 싶어!'라는 마음이 앞서고 강했던 홀로 서울에 올라와 있는 나에겐, '섣부르다'라는 코멘트를 날리는 하자를 다니는 일상은 힘들고 애석하곤 했다. 또한 알아가고 공부해가는 과정에서 뭐라도 해보려 했었기 때문에 범한 타협이자 섣부름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섣부름에 대한 지적의 과정은 하자와 사이에 벽을 만들어 냈었다. 그렇게 하자 안에서 내가 있었던 일은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들과 그것을 무시하며 벌어지는 '문제 상황'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save my city') 은평 재개발지역에서의 갑갑함과 분노에 근거한 짱돌을 허공의 '무엇' 향해 던지는 것이었고, 그와 함께 '섣부름' 끌어내는 '비판' 작업을 계속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차례의 내가 하게 되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비판의 섣부름에 답답하고 힘들어 하며, 이상 무언가에 대해 비판해 힘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실마리도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나는 학교를 나왔다. 이상 학교를 다니며 내가 했던 말과 비판들을 떠올리는 것이 힘들었고, '섣부름'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무엇하나 해볼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 동안을 학교 ''에서 지내며, '대안교육'이라는/'대안 ' 대한 시간을 설명해야 했었고,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내가 지내 하자에서의 시간에 대해, '탈학교생'이라는 위치에 대해 자각 있었다. 내가 하자에서 3 동안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으로 지키고 싶은 것과 그 감수성을 기르기며 집중한 '시민 됨'을 통한 인문학적 배움은 자본 생산성이 1 판단기준이 되는 학교 밖에선 생소한 것인지, 가치 없는 것인지, 귀찮은 것인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치고 배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교 '' 현실을 마주 순간, 내가 열심히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물어왔던 시간들에 대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하며(현실성)' 연결시키는 것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곧잘 하자에서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었다. 그렇게 '매일'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학교 '' 현실에서 앞으로를 그릴 힘도 없이, 그저 '막막함' 두려워 눈물만 흘리며 지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지내온 시간을 '무의미함'으로 남겨둠에서 시작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내가 배움과 일상을 만들었던 '하자'에서의 시간들에 대해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해주고 믿어 주어야만이 다시 패기도 의욕도 생길 같았다. 의미부여를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 '일시적 자율' 따르는 책임이고, 적어도 학교 '' 현실 앞에서 '두려움' 지지 않을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런 맥락에서 '일시적 자율 공간'에서 내가 배운 것은 '스스로'라는 것을 잊지 않는 '자립' 지켜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학교를 마무리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다시 학교로, 메솟으로 향하길 마음먹게 되었었다


그때에 내가 메솟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현실을 비판하는 '섣부름' 반복하게 되는 것과 메솟의 상황을 이미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었고, 그곳은 세상 어느 보다 내가 싫어하기에 '바꾸고 싶어!'라는 나의 거친 감수성을 자극하는 '문제 상황' 뚜렷한 곳이기 때문에 나에게 학습의 공간으로서 메솟은 두려운 곳이었다


그렇게 두려운 메솟으로 향하면서, '그냥 열심히 들어보자. 그냥 열심히 보자..' 속으로 되뇌였었다



만남을 통해 인식하다

매솟 이동 학습

메솟은 태국과 버마의 국경지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그곳의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다. 메솟은 버마와 태국의 국경지대이기 때문에 버마에서 (불법)이주를 사람들이 머물러 있었고, 우리가 머물며 만난 이들도 버마와 관련된 '사회 운동' 하는 단체와 학생, 개인들이었다. 나는 메솟에 머물면서는 10여개의 단체들을 멜라캠프에서는 LMTC, LMC, EPS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직접 그곳의 상황을, 직면해 있는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 버마의 상황에 대해서 커다랗게 SPDC(버마군사정부) 원인 점으로 마약, 난민, 정치범, 아동군인, 교육, 여성 등과 관련된 문제들과 직면해 있었고, SPDC 민주화를 넘어서 문제가능성의 '소수 민족'이라는 어려운 과제도 있다고 정리된다



시선

이제 변성기가 시작되거나 끝났을 무렵의 아이에게 총을 쥐어주는 사람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마을을 통째로 마약중독자마을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 고향, 아니 돌아 곳을 지우고 그것을 넘어서 그곳을 떠올리는 것조차 눈물이 흐르게 만드는 상황. 이런 상황을 경험하고 아직도 '난민'이라는 상황에 존재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자체가 나에겐 '편치 못함'이었다. 앞에 마주해 나에게 자신들의 강도 높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인간을 만들어 '상황/현실'(권력도 돈도) 너무 미웠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들' 탓하기에는 지역적 문제가 이상 지역의 문제만이 없기에  커다란 '세상' 밖에 없었다. 그곳을 감싸고 있는 문제들은 SPDC 하나를 적으로 지목해서 공격한다하여 해결되는 문제들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공평하지도, 자비롭지도 않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지 않은 절망을 느끼며 '무엇을 있을까' 떠올렸었다. 그때에 나는 당장에 있는 일이 없었기에 무기력하고 갑갑해지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 하는 것을 시작(바탕)으로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그들 또한 한비야가 말한 '사랑'이라는 사회를 구하는 근원적이고 지구적인 관심을 깔고, 자신들의 지역이 직면한 문제를 풀어가는 일을 꿈꾸고 해나가고 있었다. 크게 보면, ' 같이 사는 세상'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주변을 구해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메솟에서 머물고, 들었던 이야기는 시간에 비례해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그곳의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다. 지금 초에도 누가 어느 곳에서 어떤 폭력을 경험하고 좌절하고 있을지. 굳이 메솟이 아니라 세계를 두고도 말을 수는 있겠지만, 메솟은 21세기에서 특수한 상황인 또한 확실하고 심각하기에 '세계 시민'이라는 정체성으로 그들이 직면한 문제 상황/현실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성실하게 묻지 않을 없는 상황인 확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을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고 고맙다고 생각했다. 당장에 변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지역의 문제가 그들 자신의 문제이기에,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말을 포함한 ' 있는 ' 하는 . 이것이 '운동'이다. 계속해서 ' 있는 ' 하는 찾아 해나가는 . 이들에게는 목적이 '사회' 있는 것이고, 그렇게 그들 지역의 문제를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 있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단체)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의 지역에 시선을 두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리고 세계 시민이 문제가 예를 들면, 자신들 마을의 마약 문제가 세계적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SPDC 마약상이든 쉽게 '잘못 '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그들은 아슬아슬한 '변할 거야', ' 꺼야'라는 믿음을 지켜가며 계속 일을 한다. 나는 믿음을 갖는 일이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 앞에서 좌절을 반복하게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믿음을 지켜가는 힘을 존경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응답/응원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나는 일단 '무엇을 있을까.'라는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며 그들이 내게 전해준 '세계 시민'으로서 '시선' 두는 일부터 내가 있는 일로 그들의 일에 응답하는 것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그곳에 '시선' 어떻게 있을지를 고민 중이다.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이유


이번 '버마 이동 학습'에서 내가 느끼고 현실/상황은 거지같고 강하면 강했지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행에서 경험한 상황 속의 ''들과의 직접 만남을 통해서 내가 현실에서 변화를 상상할 때에 아주 중요한 키워드를 발견한 같다. 문제 상황의 인식과 변화의 운동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같다. 문제 상황 속에서 문제를 직면하고 있는 본인들과 만나는 . 만남을 통해서 서로의 현실을 알고, 사이에서 생겨나는 '우리의 이야기(권리 혹은 문제 상황)' 시작으로 서로의 현실을 연결시키는 . 그렇게 만들어진 연결지점을 통해 내가 같이 살고 싶은 ''들의 범위는 넓혀가고, 같이 '' 살기 위해 '문제 상황'이라는 이름을 지워가기 위해 필요한 서로의 현실에 대한 인식. 그것은 내가 현실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실천을 상상하기 '실천/운동' 만들어 가는 것에 필요했던 서로 다른 현실과의 연결과 인식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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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라는 '존재/위치/상황',  어떠한 이유로 '국가'라는 것에서 배제당해 존재하고 있음에도 존재가 인정되지 않아 항상 불안한 불법과 합법의 경계지점에서 자유롭지도 못한 '난민'이라는 위치/상황. 그들의 이야기/위치는 나와 그리고 내가 지난 1년과 집중했었던, '용산의 철거민'들과 닮아 있었다.  



내가 처음 접한 그들의 위치/상황/삶은 충격이었고 이상함이었다. 나에겐 '난민', '난민 캠프' 그것의 존재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캠프 안에 머무는 동안 무척이나 이상하고 슬픈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존재 자체가 문제인 상황 속에 내가 있다'. '이들의 존재는 인정되지 않고, 추방의 대상으로 '캠프'안에 몰려 머물고/갇혀있다.' 생각들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갈 없이 갇혀 있음에서 근거한 그들이 나에게 말하는 "you are lucky, becoz you have freedom." 그곳에 머무는 동안 편치 못함 자체였다. 내가 그곳에 있는 '' 가지고 계셨던 우리 어머니가 'lucky' 것이지, 또한 나의 이동권을 결정하는 '' 없었기에 '' 결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들 앞에서 그런 나의 자유롭지 못함을 견주기란, 강도의 차이는 너무 확연했기에 그들의 말에 그저 인정을 밖에 없었다

그때에 도대체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있을까? 라는 물음을 가자보곤 했었다. 그렇지만 1차적으로 내가 도움을 있는 나의 일상적 공간과 캠프는 물리적으로 너무 거리였고, 쉽게 존재들의 위치/상황을 변화시키기엔 내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무엇' 힘이 작용하고 있었기에 혼란스럽고 무기력해질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 돌아와

'난민'이라는 나에겐 존재 자체가 '문제' 특수한 상황에 살고 있는 버마의 ''들과 막연했던 어떻게 같이 있을까를 고민하던 , 그들의 위치적 존재를 아감벤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쉽게 없지만, 그랬을 때에 나와 아니 한국의 상황과 그들은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현실의 강도는 다르지만, 한국의 철거민들이 겪게 되는 개발로부터의 이주 그리고 자본으로 부터의 억압과 닮았었고, '케피탈리즘' 도시 서울에서 돈이 많지 않은 '대안학교 학생'으로 살아가며, 제도권으로 부터 존재가 인정되지 않음과 자유롭지 못함은 그들과 닮았었다. 또한 그들은 한국으로 이주해 노동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도 닮았었다. 모두 , 우리 사회에서의 주변인으로 인식되는, '무엇/자본'으로 부터 부름/요구/억압을 받아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이라는 것으로 연결되는 같았다. 또한 '대안 교육/탈학교생'이라는 이유로 '메인 그라운드' 아닌 '어라운드' , 어느 부분에선 주변인으로 인식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어떠한지를 알고 함께 해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와 함께 살고 있고, 나는 '우리'라는 말에 메인과 어라운드를 구분하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서로를 주변부로 내몰아,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일상과 내가 속한 사회의 모습에서 짚어보게 된다


또한 주변부지만, 주변에는? 우리 사회의 '주변부'?. 

나는 내가 속한 '대안학교'라는 '제도 학교' 부터의 주변부 말고도, 비정규직 노동자, 난민,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커다란 '메인'이라는 '사회'에서 배제당하지만 '메인/자본' 요구를 받아 불법 혹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있었다. 나는 메솟의 '' 그러니까, 난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과 닮은 한국 사회의 '/(호모 사케르)' 들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며 살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메솟의 ''들과의 만남에서 생겼던 '어떻게 같이 있을까?'라는 물음을 무기력하게 했던 이유 '물리적 거리' 넘어서 조금 풀어볼 수가 있을 같다



물론 메솟의 '난민'들의 상황/현실은 특수하고 강했다. 쉽게 없어 조심스럽지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와 한국의 시대의 '난민' 같은 주변인들을 '호모 사케르'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나는 메솟에서 만나 '/(호모 사케르)'들의 모습을 나의 주변인 한국의 '불법, 비정규, 테러범'이라는 머리말을 달고 있는 '이주 노동자', '철거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찾아 수가 있었다. 우리 한국 혹은 세계 사회에서 '다른 민족' 혹은 '국민' '좋지 않은 학벌' '여성'등의 이유로 또는 '무엇'으로 부터 배제를 당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선 그들의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배제인 동시에 억압/포함의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치/상황

모교수는 그들을 '초대받은 손님'으로 역설하고,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이라 말하며, 그들의 존재적 상태를 '예외 상태' 칭한다. 그리고 그들을 ''라고 부르며, 나와 너를 칭하는 '우리'로서 살고 싶다.


메솟에서 만난 ''들의 이상하고 충격적인 위치/상황은 나에겐 '충격'이고 무기력을 함을 주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과 같은 주변에 있는 '/(호모 사케르)/'들을 생각 했기에 막연한 '어떻게 같이 있을까?'라는 물음을 조금이라도 풀어 수가 있었다


지금 나는 내가 메솟의 ''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의 주변부에 ''들과 '다르지 않다' 인식하게 됨으로써 한국의 '/(호모사케르/주변부)들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것은 메솟의 ''들과 어떻게 함께 있을까를 이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시대의 주변부의 '/(호모사케르)'들을 인식하게 이상, 무시하지 않고 같이 살고 싶다. 때문에 나는 우리(한국) 사회에서 배제됨과 동시에 억압의 경험을 새겨가는 삶을 살고 있는 '/호모사케르'들의 탄생과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같이 /바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이렇게 '그들' '' 구분지어, 타자화 시키는 글쓰기조차도 나에겐 불편함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나에겐, 나의 불편함에서 근거한 커다랗고 거친 물음/과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배제당하고 억압받는 주변부의 삶을 누가/무엇이 가능하게 것일까?' 

'항상 중심과 주변은 격차를 두고 문제 상황 속의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낼 밖에 없는 구조인걸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고 싶지 않은 물음인

'그들과 같은 시대의 '시민/인간'으로서 어떻게 함께 살아 가야할까?'


  나는 ''들과 '같이 살기'위해 지금 있는 일을 떠올려 본다. 지금 나는 이렇게 글을 씀으로서, 굳이 나처럼 태국까지 길을 날아 '충격' 받고서 알게 , 같은 우리 사회의 '주변부/호모사케르/난민' 대한 인식을 '시민'들에게 전해, 길을 날아갈 수고를 덜어주는 일을 있을 같다. 어떻게?. 지금 주변을 둘러보는 . 어제 읽었던 신문을 펼쳐, 다시 주변에는 누가 함께 살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 그렇게 ' 주변' 짚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그들과 '같이 살기' 떠올려 보는 것이다. 또한 지금으로선 막연히 '같이 잘 살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이런 호모사케르/주변부의 삶을 '무엇' 만들어 냈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렇게 주위에도 어쩌면 나까지도, 그리고 세계 곳곳에도 '호모사케르'라고 있는 삶들이 있다는 생각이든다. 앞으로 공부 거리지만, 나는 이것을 '세계/지구 시민' ' 지구적 상황'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랬을 , 지구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시민들의 수고를 덜어 주고자 했듯이, 혼자서 품는 '같이 살기'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부 또한 우리 사회의 안과 둘레에 존재하고 있고, 무엇보다 함께 존중받고 자유로워야 '인간/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메솟 이동 학습에서의 ''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 그들과 나의 삶을 연결시켜 '함께 살기' 고민하는 것은 내가 커다랗게 가져보는 과제이다. 동시에 지구 시민 사회의 시민들이 '일상'에서 함께 풀어가야 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메솟과 멜라에서 만나 이들은 문제 상황 속에서 좌절하기 이전에지역의 '지도자' '선생님' '의사' 문제 상황을 바꾸기 위한 '기여' '혁명' 꿈꾼다. 그들의 꿈의 결과와 방향까지는 없지만, 뜀박질의 힘으로 충분히 문제 가능성과 방향을 바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와 같이 '함께 살기' 바라는 시민들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민이라는 존재? 그들의 ? 쉽게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나에게 들려 그들의 상황, , 바램은 상황과 바램 그리고 한국의 상황은 닮았었다. 그래서 그들과의 만남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껴가지만, 그들이 앞에서 들려주었던 현실 경험의 강도 차이는 너무도 경험 이상이었기에 슬퍼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서로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현실/상황의 무게를 갖고 있는 이들과 만나 공감하는 것을 시작으로 '같이 살기' 상상 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닮았다' 인식과 같이 살고 싶다는 바람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경험을 잊지 못할 같다. 내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식한 '닮음' '믿음' 통해서 연결과 연대를 떠올리는 '같이 살기'라는 사명감과 과제들을 얻었다. 그렇게 나에게 생겨난 믿음과 사명감의 과제들은 그곳을 떠나온 나에겐 위로고 희망이기에, 지금 그곳을 떠올리며 웃을 수가 있다





'소셜 워커'


서로 다른 현실, 조건을 읽어가는 . 그리고 '같은 시대'라는 것을 통해서 접촉하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자 의식인 걸까?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운동을 하고 싶은 거다. 운동의 모습은 절대 거리의 운동으로 규정하지 않을 것이며, 언어와 위치라는 것을 통한 세상 읽기와 움직임을 하고 싶다.


이번 메솟 이동 학습을 통해서 만난 학생들에게서 ''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하자에서의 '시민 됨'을 이어가며, 내가 즐거운 언어로서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바람에 대해 소위 '현실성'이라는 경제적 측면을 고려 했을 때엔, 당장에 20살이 된 내가 하자 밖을 나가 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하고 싶은 일'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당장에 한달 뒤면, 닥쳐올 현실에 대한 '막막함'도 컸던 내게, '꿈'에 대해 물어오는 것은 나를 갑갑하게만 만들었었다. 그렇게 내가 갑갑한 이유를 영어로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 질문을 피하던 ,  '사회 운동/시민'으로서 살고 싶기도 '작업' 하고 싶기도 하다는 것을 복잡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워 "my dream is social worker."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더랬다

나는 거기서 깜짝 놀랬다. 이유는 'social worker'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발견은 의미이다. 비록 구체적이지 않고 경제적 측면을 연결시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지만, 적어도 내가 기분 좋게 상상 '/실마리'라도 잡았다는 .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조금 '여유'를 갖고 앞으로를 그려 이유가 됐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타고 있는 시대의 스펙터클 (자본)자유주의 사회는 자본과 경쟁의 환상 속으로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을 이끌어가려 한다. 이끌림의 힘은 때로는 그것을 거부한 선택과 그렇게 해보려는 /시도까지도 조여 온다. 그것을 따르는 자본과 경쟁이라는 '쌍두 강령' 버마의 군사정부처럼, 나와 너들의 집과 꿈을 잃게 하고, 때로는 친구를, 심지어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붙잡지 못하게 하기도 했었다. 나는 속에서 '그럼에도 어떻게 것인가' 묻는 '쏘샬 워커' 꿈꾼다.


꿈에 대해 자본을 중심으로 '' '직업' 설계하는 제도의 흐름을 넘어, 그에 대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있는 '소셜워커'. 머릿속에 '소셜워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거의 있는 위치로 아주 넓은 가능성의 것이다. 나는 문제 상황에 대해서든, 개인적 삶에 대해서든 시대를 살아가며, 물음과 사회/너와 나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재조합해내는 한명의 작업자로서 살아 보고 싶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사회적 문제가 구경거리로 여겨지는 분위기에 대해 '너는 어디서 누구와 살고 있는 거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그렇게 나는 눈에 걸리는 것들을 ''들에게 물음을 하며, ''들의 응답과 질문을 나누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나를 위한 삶이 남을 위한 ''들에게 힘이 되는 나는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힘이 적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누구와 어떻게 같이 살아볼 것인가' 대해 함께 살아갈 방법과 물음을 고민하고 건네는 '소셜워커' 상상하고 있다.


거대하게 뱉어내보자면 '시민사회' 관계를 생각하며, 기여가 되는 삶을 꿈꾼다. 나는 그것이 '경쟁'이라는 강령에 따른 '개인화' 다르게 말하자면 '파편화' 시대에서 '관계' '같이 살기' 거들먹거리며 나를 시작으로 '시대/사회 혹은 다른 ''들의 현실과 연결 짓고, 그것을 통해서 이야기되는 것을 ''들과 나누는 '언어'까지 훈련하는 '소셜워커' 상상하고 있다.  -아직 상상하는 단계이지만 지금 머릿속의 '소셜워커' 아래와 같다


소셜워커란

-'지구/세계 시민' 유형


-시대의 흐름에서 사회적 기여와 작업() 비례의 관계 지향한다.


-시대의식을 갖으며, 시대를 기록한다

 *어느 위치에서 어느 현실을 어떻게 '/기록' 것인가를 고민하고 싶다. 제도권 학교시절 역사를 좋아했지만, 역사 교과서는 싫었다. 1세계 제국주의와 승자 중심의 역사/세계사에 대한 이견이 있기 때문이었다

 *작업자로서 하게 되는 작업들이 시대에 점을 찍게 되는 (기록이 되는 )이라는 생각을 하며, 적당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싶다.


- 새로운 것을 생산 수도 있겠지만, 재조합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 수많은 정보와 시각물, 사건들의 홍수를 겪고 있는 시대에서 그것들을 어떻게 읽어내고, 무엇을 고민하고 재질문/해석/활력 해야 하는지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매체를 언어로 사용해본다.

*하고 싶은 말을 건넬 , 그것이 그저 뱉어내는 것이 아닌 '이야기' 만들어지기 위해선, 그것을 전할 때에 적합한 방법과 과정에서 '어떻게' 섬세하게 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술 혹은 작업을 개인이 품어가는 질문에 대해 ''들과 나누는 '매개' 아닐까? 라는 물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어떤' 놓치지 않는다.

*전시, 음악, 영상, 그림, 디자인 등을 떠올려 작업을 했을 , 그것이 실체 없이 감수성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닌,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중요시 생각하는 실체 있는 이야기와 작업을 하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누구와 관계하고, 내가 목소리를 높여주고 힘을 실어야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실험해가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꿈꾸는 것을 힘들게 함에서 멈춰 유토피아적 환상으로만 남기는 것이 아닌, 이제 상상하기 시작한 '소셜 워커' 시작으로 현실 속에서 직접 구체화시켜 만들어가 보려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지금 있는 것을 찾아 '기꺼이' 일로 만드는 공부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을 '지속'하는 것부터가 기본이 되야 것이다.



나가며


나는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위치,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정리했었다.

전후의 전위적이고 시대에 재질문을 하는 '다다이스트' 비롯한 예술가들을 만나면서는, 나도 시대와 함께 살아가며 재질문하고 시대를 기록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지난 학기 본격적으로 '시민' '시민 사회'라는 것을 만나서는 또한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시민이 갖추고 만들어야 하는 '사회' 모습을 상상하며, 용산 재개발에 대한 작업으로 이어가게 되기까지. 나는 하자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나의 정체성 시대를 이야기하고 '같이 살기' 모색하는 시민이고자 했었다


과정에서 감수성에서 생겨나는 '답답함' 근거한 외침과 움직임이 현실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나와 함께 '같이 살기' 이야기 있는 이가 생겨나기 위해선, 뭉뚱그려진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감수성이 시작이 되어야지 하지, 그것에서 끝나서는 된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가 지키고 싶은 것만을 고집하며, '나의 적은 현실의 문제 상황이다'라는 태도는 학교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내가 경계해야 함정이다. 만약 그렇게 했을 때에는 누군가가 현실로 다가설 수도 없을 것이며, 타인의 현실에 대한 '같이 살기' 위한 '운동' 때에도 그것은 다른 '섣부름' 만들어 내고, 그저 '피만 뜨거운 부적응아' 남게 것이기 때문이다.


하자에 있는 동안 내가 말하던 ' 나은 세상' '같이 살기' 되었고, 뭉툭한 '사회적 약자' 넘어 앞으로 나와 만나게 이들은 ''들이 되었다. 순간 나는 내가 ' 나은' 상상하며 '운동' 하고자 했던 과정에 나와 같은 시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들과의 만남/연대를 생각 있게 되었다. 이렇게 에세이를 쓰다 보니, 하자에서 내가 배운 것은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자본' '경쟁') 무방비상태로 흡수되지 않고, 속에서 내가 지향하는 '너들과 같이 살기'라는 생태적 가치를 통한 '어떻게 같이 살아 있을까?' 묻는 감수성을 기르고, 지킬 힘이었던 같다


 나는 지금 '' 현실과 '' 현실이 직면한 문제들을 마주 했을 , 서로에 대한 '연민' 혹은 '좌절' 빠져 서로를 끌어안는 것이 아닌, '너도 그래?, 그럼 우린 어떻게 같이 있을까?' 라며 '공감' 에너지로 앞으로의 상상을 함께 이들과의 만남에 관심이 있다. 그렇게 나는 하자 밖을 나가서 정말 방식대로 있는 '운동' 해보려 한다. 내가 이제 상상하기 시작한 '소셜 워커'라는 것을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어쩌면 '소셜 워커' 만들어가는 자체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나는 앞으로 시대의 ''들과 함께 살기 위한 시도들로 동료를 만들고 그들과 하게 '작업'으로 '운동' 지속하는 꿈을 꾸고,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비로소 스스로를 왕따로 내모는 것이 아닌 ''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한명의 ''으로서 위치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아마도 하자를 수료한 뒤의 나는 하자에서보단 외로울 같다. (save my city 프로젝트의) 은평 재개발지역 영상 속에서 처럼 허공의 '무엇' 향해 '짱돌' 던지지도 않을 같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social(감수성/의식/생각)' 'work(언어/말하기)' 생각하며, 이런 나는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계획하고 꿋꿋하고 떳떳하게 살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살게 학교 밖에서 만나게 나와 '' 만나 '우리'가되고, '우리' 되었을 생겨날 에너지에 대한 상상을 하면 무척이나 두근거린다. 아마도 ''들은 주변 가까이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같이하기 위해서, '' 갖춰야 것은, '같이 살기' 필요한 공부와 만남을 기꺼이 받아들일 가짐과 '함께 살고 싶은 세상'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는 '' 갖는/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나에게 꿈은 멀리 있어서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서 부터 그려보고 만들어가는 것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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