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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2010. 11. 4. 목. 평화워크숍 1 날개 : 시작하기에 앞서 나누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 우리가 너무 평화에 대해 추상적으로 접근한다. * 우리가 평화수업을 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평화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우 리가 만들어가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이끌어가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인지, 우리에게 필요 한 과정은 무엇인지. 망구 : 우리끼리 이야기하면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우리끼리만 이야기를 하면 무엇을 먼저 이야기해야할 지 몰라 큰 틀에서 밖에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마까라상과 조진석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것에 관해 토론할 수 있었다. 씨오진 :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다. 그런데 이야기의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다.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날개 : 그럼 방향성만 잡고 토론을 하는 게 좋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동녘 : 평화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모두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다. 각자도 그렇고 전체적인 수업에서도 방향성을 잘 잡지 못한다. 무엇을 이야기하면 좋을지 몰라 '평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만 하는 것 같다. 이마까라상과 조진석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이야기'를 기반으로 토론거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망구 : 평화란 단어에 정의를 내리고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딱히 정의를 내릴 수 없고, 표현이 되지도 않아서 구체적인 얘기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 날개 : 그럼 오늘 하기로 했던 이야기의 방향을 잡아보자. * 평화적인 방법 쇼의 에세이를 보면 제주도 4.3 항쟁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가족 부모 심지어 자식까지 죽인 원수가 세월이 흘러 지금 내 이웃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런 사람을 자기 자신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이제는 내 무덤까지 갖고 가야하는 비밀이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들이 원하시는 하나의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에서 '평화적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날개 :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자주 한다. '말하지 못하는' 그래서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 지겨워할 정도로 학교에서는 '사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나는 (쇼의 에세이 중 내용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회피)라고 생각했다. 쇼 : 나는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에세이에 쓴) 이야기는 제주도여행을 갔을 때 지금종선생님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였다. 평화적이라고 느꼈던 이유는 하나의 폭력적인 사건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일들을 되풀이되지 않게... 히옥스 : 쇼의 이야기를 도와주자면, (영화 '여인의 향기'이야기) 한국사회에서 '무엇이 진리인가, 정의인가'하는 질문을 하고 있다. 우리가 '관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누가 관용을 한다는 것인가?' 유태인 대학살 상황에서 '관용'을 말한다는 것은 마치 허위의식처럼 느껴진다는 주장도 많았다. 과연 누가, 어떻게 '관용'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작업장학교에서 '관용'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어 'Empathy'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다. '평화'도 우리가 직접 추구할 수 있는 문제인가? 어떤 갈등에 의해 고안된 단어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여러분이 여러 가지 사례들을 놓고 (구체적이고 많은 사례) 그 사례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생각이 진전되지 않는 난관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한다. 동녘 : 쇼가 말한 4.3. 이후 그분들의 선택은 일종의 '선택'일 수 있었을 것 같다. 날개 : 옛날에 (광주에서) 학교 다닐 때, 일본회사에 근로정신대로 일을 하러 가신 분들이 있었다. 저분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인 것인 것 같다. 그런 경험을 말하기까지 어려운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히옥스 : 그런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어떤 커미트가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다. 우리 사회 안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게' 아니라 데리고 살겠다고 했을 때, 그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같이 사는 방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홍조 : 저번에 '기억의 정치'라는 책을 읽었는데, 4.3. 항쟁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다. 집단적으로 벌어진 사건의 기억을 개인이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내용이었다. 히옥스가 말했 듯이 자기가 당했던 일들, 가했던 일들이 그 당시의 맥락에 따라 퇴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경험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경찰의 입장을 보자면 '국가'로 인해 스스로의 기억을 지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쇼가 말한 4.3. 항쟁 때의 그 사람들은 아직도 제주에서 살아가고 있다. 날개 : 오늘 하기로 한 얘기 중에서, '보이콧'을 찾아보다가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 이야기가 나왔다. 이스라엘에서 '무인양품' 수입을 보이콧하자는 주장이 나온다고 한다. 무인양품과 관련된 롯데마저 보이콧하자는. 동녘 : 한때 스타벅스커피 마시지 말자는 주장도 내가 했었다. 그런데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날개 : '보이콧'이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효과를 실질적으로 거둔 '보이콧' 사례에 대해 자료를 찾아본 사람이 이야기 해주었으면. 홍조 : '사라, 버스를 타다'라는 책이 있다. 내용은 그 당시 '흑인이 버스 앞좌석에 타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었단다. 결국에는 흑인도 앞좌석에 탈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책의 결말이다. 동녘 : 보이콧에 대해 찾아보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하지 않을 권리'라는 것이었다. 예전에 '보이콧'을 하자! 라는 문제의식이 나에게 생겼었다. 대기업 같은 경우는 근로자들 문제 등의 여러 문제가 얽혀있었다. 한쪽에서는 아우성, 한쪽에서는 뭔 일이 터진다. 홍조 : '보이콧'이 무언가를 할 권리, 하지 않을 권리라는 '선택의 권리'를 주는 것인데, 요한 갈퉁의 윈윈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목적으로써의 평화'에 대해 나온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은 나쁜 수단인데 간디와 루터스의 비폭력적 수단이 있다. 만약 세 사람이 있다면, 무언가를 두 사람만 독차지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세 사람이 다 좋게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드는 것이다. 2 히옥스 : 일정확인. *11/19-20 준비 11/23-26까지 부르노와 평화워크숍. *우리가 초대하려는 사람들을 언제부터 초대하면 될까? : 오늘부터 최대한 빨리. -필통, 볍씨학교, 간디학교, 작은학교, 마리학교 *몇 명을 초대할 수 있을까? = 20명 *볍씨학교, 간디학교, 마리학교, 작은학교, 공동체, 만다라, 도덕수업에서는 평화를 어떤 식 으로 이야기하나? 우리가 시간이 별로 없다. 개념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일 수는 없다. 우리가 평화수업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 연락할 수 있는 사람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세부적인 사항(회비 등)을 빠른 시일 내에 공지해야 한다. 날개 : 어쩌면 갈통의 이야기가 간디, 루터스 등의 사상을 통합할 수 있는 것 같다. 간디학교에서는 '간디'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 하는가? 빈 : 인권, 평화, 간디학교의 철학 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 밖에 '간디'와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없다. 날개 : 그럼 빈은 간디의 비폭력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피 : 간디에서는 싸움 안 하나? 빈 : 몸싸움은 거의 없다. 날개 : 갈등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하나? 빈 : '식구들의 솔직한 회의(식솔회)'를 해서 이야기를 같이 나눈다. 날개 : '평화를 구상할 때는 창의력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_갈퉁 홍조 : 갈퉁이 이야기하는 평화는 서로가 win-win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식솔회'를 할 때, 나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빈 : '공동체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라는 것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홍조 : 우리 같은 경우는 기숙사 안에 CCTV도 있었고, 학생을 (심한 경우) 강제전학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날개 : 디벨레에서 '서로 평등하다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양면성을 지닌 이야기들이 많았다. 흰교복의 경우 '개성을 없애는' 기능이 되기도 하지만, '평등'을 주장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빈 : 대부분의 대안학교를 보면 '우리는 식구다'라는 의식이 강하다. 가끔 공동체에 대해 '왜 다 같이 해야 하는가'라는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개인의 잘못 하나가 연대의 책임으로 오는 것이 귀찮은 것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다. 날개 : '동의했기 때문에 따라야한다' 라는 게 과연 맞는가? 최근에 성미산학교는 '공동체'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동체과 그 밖의 것들을 배제하는 단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동녘 : 지속, 지탱하기 위한 규율들이 공동체 속에 있다. 대다수가 동의하고, 자신이 공동체에 들어갈 때도 동의를 하고 들어간다. 만약 지내다가 동의하지 않게 된다면 그 규율이 '폭력'으로 작용되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공동체의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디벨레에서는 그게 조금 무서웠다. 규율이 어떤 사람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만약 공동체의 단위를 국적으로 본다면 영화 '터미널'처럼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공동체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나도 공동체 속에 있었는데, '왜 내가 한 일도 아닌데'레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쇼 : 개인에게 '공동체'의 규율이 폭력으로 간다면 그것이 반대로 공동체 속에서 피해가 될 수도 있다. 망구 : 공동체에서 한 명이 다른 입장을 가질 때 그게 공동체에서 피해가 된다. 그럼 그 사람이 빠지면 그 공동체는 잘 돌아갈까? 날개 : 거기서 빠진 사람이 그 공동체에 대해 가장 잘 보고 있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율리아 : 디벨레에서 실험을 한다. 작년에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했다. 일반학교 경우에는 평소 교복을 입기 때문에 체육대회 날은 서로 입을 옷을 (반별로) 경쟁하게 된다. 나는 반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반에서 영향력이 강한 애가 '환자복'을 꼭 해야겠다고 주장했다. 나는 환자복을 우리가 장난식으로 입는 것에 대해 반대를 했지만 반의 대다수가 환자복을 입는 것에 동의를 했다. 결국 나는 체육복을 입고 다른 반 애들은 여자는 빨강, 남자는 파랑 환자복을 입게 되었다. 그때 안 좋은 눈초리를 많이 받았다. 일반학교에서는 일률적인 것을 주장한다. 디벨레에서 나왔듯이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은 잘 사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을 평등하게 보이도록 할 수도 있지만, 운동회 때 반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디벨레에서 나오는 '빨간 옷'입은 여자애와 비슷했다. 날개 : 그런 부분에 대해 학교에서 이야기를 해봤나. 율리아 :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3학년인데 그냥 한 번 해보자'라는 식으로 돌아갔다. 운동회 때 나는 단체줄넘기에도 끼지 못했다. (내가 힘이 약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환자복을 주장했던 애는 학교에서 일진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히게오 : 디벨레에서는 하나의 실험을 해본 것이다. 공동체가 있으면 그 공동체에 동요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쇼 : 디벨레는 '하나의 실험'으로 시작해 안 좋게 끝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율리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디벨레에서는 '실험'인 상황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듯하다. 내가 있었던 공동체는 '신앙심'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피해를 주는, 혹은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타격을 주는 것들이 있었다. 요즘 사회 안에서 공동체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는데 그런 것들이 '특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벨레에서 보여준 공동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사회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율리아 :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중학교부터는 교복을 항상 입어야 하고 똑같은 것을 강요한다. 그게 너무 짜증이 나서 시험 시간에 백지를 냈다. 날개 : 무브가 쓴 평화에세이에서 '앞서 나간 사람'이라는 문장은 무엇인지? 무브 :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한다고 했을 때, '앞서 나간 사람'은 소외된 사람, 조금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권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우리가 평화워크숍을 지속하기 위해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라는 질문을 더 던져보았을 때, 글로벌이슈가 되는 일이 세상에 닥쳤을 때 가장 먼저 피해보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연결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다. 나는 평화라는 단어가 주는 개념과 뉘앙스보다 '연결'되어있는 것에 이제는 접근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동녘 : 확실한 동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무브 : 버마, 과테말라, 돈의동을 생각해보면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시작하게 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개인의 동기, 이유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와 일의 연결지점이 아니라 나와의 연결지점이라는 생각으로 '평화'라는 키워드에도 접근을 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율리아 : 디벨레에서 빨간옷 입은 여자애 남자친구가 '디벨레'에 가입을 하고, 여자애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만약 '공동체' 안에 내가 있을 때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느낄 때 돌아설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게 아닐까. 날개 : '잘못 돌아간다'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도 생각해보자. 그리고 무브가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나와의 연결지점'을 찾았으면 한다. 오늘 쇼랑 4.3.항쟁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료를 찾아 공유하는 게 잘 안 되었던 것 같은데 각자가 찾은 자료를 정리해서 올렸으면 한다. 히옥스 : 10년 전, 하자센터에서 유행했던 단어 중에 '부족'이라는 말이 있었다. 저번에 만났던 일본의 문화학습협동네트워크는 '일반학교가 내 자리가 아니었다'라는 학생들로 구성이 되어있었다. 우리 사회 안에서는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지지가 많이 없다. '부족'은 그런 물음을 같이 하면서 연결이 되어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지금은 우리가 '부족'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서밋을 계기로 자주 듣게 되었다. 오히려 현재 우리는 '이웃사촌'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가 이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냐면, '너는 내가 아니야'라는 말, '배제'가 아니라 '수용'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연결'보다 '상호연결'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지난 하자 초기에는 '부족' 찾기를 열심히 하다가 2003년 쯤, 같은 것들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어떻게 같이 살까?'라는 돌봄의 원리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하자 초기에는 '마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문화가 조금 있기는 했었다. 사건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했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그 방안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고쳐보았으면 한다'라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추방'은 없었다. 우리가 '마을'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마을 안에 있다'는 인식이 있었으면 한다. 현재는 사회 안에서 구체적인 '마을'에 대해 상상하기가 어렵지만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서 같이 잘 살아보자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공동체'는 동질적인 것들이 모여서 이질적인 무언가가 생기면 떠날 수 있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에 대해, '마을'에 대해, '부족'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길 바란다. 지금까지 하자에서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중요한 키워드로 뽑은 것이 '돌봄'이다. *다음 주 -일정체크, 진행사항 체크 -히옥스가 하신 질문에 대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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