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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홍조 : 평화에 대해 처음부터 짚어볼 필요는 없지만 정리해보자면, 평화라는 것을 한 관점이나 이미지와 같은 한 면으로만 볼 수가 없다. 서로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에 주력하면서 문제상황에 마주하고 있는 평화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평화가 무엇인지 질문을 하면서, 서로 자신들의 입장과 자신의 모습을 보고 서로에게 어떻게 질문을 해갈 수 있을까.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이해하는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쇼 : 저번에 '디벨레'이야기를 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다수로부터 소수가 피해를 받게되는 상황이 나온다. 우리는 '배려'나 'care'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는 두 가지 관점 중에서 어떤 것을 봐야 하는지 난감했다. 개인과 공동체와 같이 어떤 상황에서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봐야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어떤 면을 봐야할까? 싶으면서 만약 폭력적인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두 가지 관점 중 어떤 입장도 취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어제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글을 써는데, 나한테 만약 나를 이루고 있는 이웃들이 폭력적인 상황을 당한다면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마음 속에서 풀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폭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루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내가 이겨낼 수 있고, 어떻게 행동할 지는 막막하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내가 '폭력은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글을 쓴 이후에 들었다. 히게오 : 폭력을 당했고, 폭력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나도 보복을 한다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폭력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하고, 그것에 대해 같이 생각을 해보는 것이 평화적 방법인 것 같다. 히옥스 : 내가 쇼의 글에 단 댓글의 내용은, 폭력에는 '정당방위'라는 게 있고, 우리가 폭력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상황을 교란시키는 것은 '이해의 관계'다. 사실 가장 평화로운 관계는 '이해의 관계'가 걸리지 않을 때이다. 문제는 '이해의 관계'가 걸려있을 때의 문제이다. 그럴 때는 분명히 이 부분에서 조정과 협의가 진행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고는 평화로운 관계가 진행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폭력적 상황이 나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해의 관계'를 어떻게 다룰까? 자연도 이해의 관계에 얽혀있다. 그래서 아주 '폭력적인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정말 '이해의 관계'에 얽혔을 때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인가를 자신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자신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언어로도 생각할 수 없으면 당연히 부딛치기 마련이다.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적어도 하자가 '민관산학'이라는 것에 대해 말 한다면, 그 네가지 언어를 모두 이해해보려고 해야한다. 남의 언어를 이해도 못하고 듣는 것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이해의 관계'에 대해서는, 타인의 생각의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쇼 : 내가 말했던 극단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극단적인 폭행에 당했으 때 어떻게 하는가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폭력을 말린다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히옥스 :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은 전쟁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어떠한 커뮤니케이션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황을 '중지'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옛날에 할아버지들이 싸우는 아이들에게 물을 끼얹으면 싸움이 멈추는 때가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동네 어른들이 싸움을 말렸던 지혜다. 요즘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동네 어른들도 무서워서 피한다. 너울 : 평화에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 '배려'에 대해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가 내 동생을 때린다면 나도 때리고 싶고, 시선이 달라진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것은 전쟁이 되는 것인데… 히옥스 : 그러니까 너울이 스스로도 그런 문제를 이해 하고 말한 것인데, 그런 종류의 질서를 가장 잘 지키는 것은 '조직'이다. 율리아 : 너울의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났는데, 내가 초등학교 2학년 한창 월드컴을 할 때, 할머니가 아프셔서 엄마가 간호를 해야했기 때문에 집에 나 혼자있었다. 엄마는 홍명보열쇠고리가 달린 열쇠를 나에게 주었는데, 학교에서 그 열쇠고리를 들고 놀리는 친구가 있어 나의 언니가 '야 너 왜 그러는거야'라며 혼내준 적이 있다. 만약 우리 학교 사람이 밖에서 폭력을 당한다면 막 끌어오를 것이다. 그런 사회의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만큼, 어쩌면 가족이상의 마음을 먹게될 수 있을 것 같다. 히옥스 : 예를들어 구약에는 원칙이 있다. '눈에는 눈' 만약 '이방인'과 '타자'의 관용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Inner-circle 안에서만 생각할 것이냐 '이해'와 '관용'에 대해 생각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이다. 너울 : 이런 이야기가 있다. UFO에서 외계인이 지구에 내려오는데 인간 남자가 그 외계인을 내쫓으려고 서명을 받는다. 그렇지만 결국 그 사람도 외계인이 된다. 갑자기 떠오른 것이라 잘 설명이 되지는 않는데.. 나에게 그 영화는 외계인에 대한 시선을 바꿔준 영화였다. 히옥스 : 그러면 그 이야기라 너울이 전에 말한 '배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주나? 너울 : 뭔가 해결을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망구 ; 내가 저번주에 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버스에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 싸움이 심하게 벌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싸움을 구경한다고 돌아가지도 않고 버스도 출발하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었는데 아무도 그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그 싸움이 자칫 크게 번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 사람들의 싸움을 지켜보다 보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더라. 떠비가 이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해준 것 같다. (지하철 폐륜녀) 나와 모른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그저 멀뚱멀뚱 보게만 됐다. 쇼 : 주앙에 서서 싸움을 말린다는 것은 뭔가 해야할 일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면서도 선뜻 나아가기 힘든일인 것 같다. 더 큰 상황으로 퍼져갈까봐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히게오 : 사람들이 싸운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연륜이 있는 노인들이 저들만의 싸움을 말리는 방법을 쓰는 것처럼 생각의 차이인 듯 하다. 히옥스 : 할아버지가 만약 물을 끼얹어 싸움이 멈춘다면 그것은 '마을'이 있어서 이다. (할아버지 앞에서 크게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있다) 만약 모르는 사람들이 싸운다면 말을 못한다. 사촌이 싸우는 것이랑 모르는 중학생들이 싸우는 것이랑은 다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관계가 있다. 몇 사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것으 아는 게 너무 어렵다. 만약 사람들이 서로가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런 종류의 싸움은 못한다. 관계에 대한 존중이 있고, 관계의 질서를 이해하는 힘이 있다. 어른들도 섣부르게 아이들에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라는 말을 안 할 것이다. 서로가 알고 있으면 알기 때문에 행하는 나쁜 질서도 있겠지만, 우리가 복원시키고 회복시키고자 하는 관계는 '존중'과 '배려'다. 모든 게 감시체제로 되어있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존중과 배려의 관계를 찾아야 한다. 지금 시대에는 '나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이라는 광고를 한다. 근대가 처음 시작될 때, '모든 사람들은 동일하다'라는 생각을 갖고자 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똑같다는거야?'라는 질문이 나오면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어떤 사람은 '사람은 이리와 같다'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누구라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해치지 않도록 약속을 해야했다. 지금 사회계약서를 쓰면서 '계약이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보면, 이유는 타인이 어떻게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근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이런 종류의 사회가 형성된 것도 있다. '사람은 이리와 같다' 매일 뉴스에 보면 '조금 더 많은 CCTV가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에니미 오프 스테이트'라는 영화에는 CCTV가 국가 전역을 감시하면서 통제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영화는 미국의 오락영화인데 오락영화에서 조차 다루는 CCTV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를 한국에서는 만들지 않는다. '당연히 국가가 해야하는 일 아니야?'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해의 관계'라고 했을 때, 요즘 일본 영화 중 'Negotiator'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완전히 이해의 관계로 거래를 하는 내용이다. Negotiator는 이 영화에서 '협상'을 하는 딜러다. 반면 Communicator를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소통을 하는 사람이다. 구나 : 히옥스 : 감수성이 무엇인가? 동녘 : 기호랑 성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뭔지 잘 몰랐었다. 누가 누구를 불렀을 때 어떤 식으로 반응을 하는 것인데 내가 어떤 일이나 어떤 것을 받아들였을 때,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냐는 것이다. 홍조 : 어떤 문제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닌가? 율리아 : 나는 감수성이 예민하단 소리를 많이 듣는다. 히옥스 : 감수성은 '반응의 지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작은 것에도 크게 반응할 수 있고, 무디게 반응할 수도 있다. 평화감수성이라는 것은 작은 것에도 크게 반응하면서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폭력적인 언어가 난무할 때 그것을 그냥 덮어버리는 동네는 평화감수성이 낮은 동네인 것이다. '뭘 그런 일 갖고 그래~'라고 하는 것이랑 '이건 희롱이야'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감수성'이란 표현은 (21세기 적으로) '예민한 사람의 반응을 배려하자'라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가장 예민한 사람에게도 '너 너무 예민하다'라고 말하지 않고 '너가 힘들구나'라고 이야기하며 힘들지 않도록 조정을 하는 게 가장 그 사회의 감수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과 인간관계에 대한 논의의 수준을 높이는 것. 그런 논의를 주로 하는 사람은 감수성의 센서가 아주 예민하게 작용하는 사람이다. 율리아 : 내가 학교에서 가끔 기분이 안 좋으면 말이 없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왜 그런 것 갖고 그러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히옥스 : 율리아가 말한 감수성과 우리가 '평화' '성' '생태' 등의 단어를 붙인 감수성은 다르다. 이것들은 우리가 어디까지 문제삼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합의가 아직 되어있지 않은 사회적 의제이다. 이것들은 아직 합의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율리아 : 아까 궁금했던 게 있는데, 너울과 내가 이야기를 했을 때 '이해' 외부사람과 내부사람들 과는 경계는? 히옥스: 그런 경계가 점차 사라져가는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 개인주의가 점차 넓혀지면서 부 족, 조직이 세계사회로 넓혀지면서, 타인의 대한 이해, 공부가 깊어질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율리아: 감수성의 기준을 어디까지를 문제삼을지 논란이 많은데, 기준을 정할 수는 없는 것인지? 히옥스: 그 기준을 지금 넓혀가고 있는것이다. 율리아 : 사람들이 지역에 따라 감수성이 무뎌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히옥스 : 감수성이 없는 곳도 있다. 어떤 부분에서 감수성은 연습할 수 있는 것이다. 연습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전쟁은 일상이다. 승자독식의 논리가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느끼는 것은 훈련된 것 일 수 있다. 어떤 1등들의 사이에는 나머지 99%에 대해 생각하는 감수성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평화감수성이라는 말도 '연습'하고 '훈련'될 수 있다는 말과 통한다. 감수성이라는 것은 주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더 예민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율리아 : 미국에서 전쟁을 할 때, 컴퓨터 프로게이머들을 고용해서 게임을 하듯이 미사일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충격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게임하는 사람들은 정말 아무 감수성이 없나? 히옥스 :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훈련되어 있는 것이다. 감수성이라는 것을 다시 말하면, 연습할 수도 있고, 길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동녘 : 예전에 서든어택이라는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게임 안에서) 총의 맞아 죽어 무서워서 게임을 그만둔 적이 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무뎌지더라. 율리아 : 내가 집에서 한 동안 나가지 않았을 때 게임에 빠졌었다. 메이플스토리에서는 괴물을 죽이면 돈이 나온다. 처음에는 너무 징그러웠다. 귀여운 달팽이를 죽여서 돈을 얻는다는 게. 그런데 나중에는 내가 레벨 업을 해야하고, 돈을 얻고 아이템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하게되었다. 심지어 게임에는 '사람'캐릭터를 이용해 싸움을 하는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옥스 : 그렇게 조금씩 더 강렬한 실감을 원하다가 실제 전쟁터로 가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를 것이다. 그렇게 폭력적인 상황에 우리가 무뎌지면서 '다른 식으로 반응'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동녘 : 어떤 사람들은 어제 연평도 사건을 장난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더라. 히옥스 : 그게 두 개의 반응이 있다. 현재는 폭력에 대해 무딘 반응의 지수가 높은 반면 감수성의 지수도 굉장히 높다. 옛날 고대의 처벌방식을 보면 정말 무자비하다. 그때의 상황에 비교하면 전혀 있을 수 없을 만큼 '예민한'상황이다. 그런데 폭력의 수준도 나날이 높아셔 감수성과 폭력의 괴리가 점점 벌어진다. (사실 이런 경우의 감수성은 사회적의제로 만들어지지 않는 감수성이기 때문에 개별화될 위험이 있다. 그럴 경우, 나에게 예민한 것에만 반응을 하거나 나 혼자만 잘나게 되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내 주변 사람은 어떤지에 대한 감각없이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개별화된 자기 감각에만 시달린다면 사회의 '무딘 감각'은 더 늘 수 밖에 없다.) 그런 일이 지금 사회에서 굉장히 많다. 현대 사회에 '감수성'이라는 말이 중요하게 된 이래로 가장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 이런 상황이다. 우리가 과감히 이 문제들을 뛰어 넘어 자기 센서로 문제를 다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율리아 : 자기를 알아달라는 식으로 '죽고싶다.. 죽고싶다..'라는 글을 많이 올리는 사람들을 봤다. 히옥스 : 옛날에 국어선생님들이 매일매일 해야했던 소리가 '병도 없는데 앓는 소리하지마라'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굉장히 흔한 말이었다. 율리아 : 내가 많이 느꼈던 것이, 인문학 책을 접했을 때 (나는 보통 일본소설과 같은 감수성이 충분한 소설을 읽으며 혼자 취하곤 했는데 그럴 때 너무 내 자신에게만 집중해 주위를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면 눈이 넓어진 것이, 지난 면접 때 '이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그때 읽었던 책의 내용에 대해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설명했다.) 이해는 되지 않더라도 읽어보고,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보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내 고민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고민도 내가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으면서 스스로 약간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씨오진 : 나는 이야기를 정리를 해보려고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할 것 같다'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히옥스 :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생각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오피 : 어제 '돌봄' '이해' '감정이입'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이것에 대해 어제 글을 써봤다.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되어보는 감정이입이 필요하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서로의 안에서 화만 쌓여갈 것이다. 그렇지만 화를 쌓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는 돌봄이있다. 돌봄 안에서 평화는 자라고 지켜질 수 있다." 빈 : 나는 아직 세계의 평화를 걱정하는 것보다 내 안의 관계에서의 평화를 찾고 싶다. 아직 세계의 평화는 나에게 조금 버겁다. 동녘 : 오늘 학교에 오면서 '위안부'문제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그 문제는 민족, 국가, 여성 등과 같은 여러 관점에서 받아들여진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스펙'이 중요한 사회에서 자기만 돌보는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인지하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돌봄과 배려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한다. 무브 : 평화워크숍 6회를 보내면서, '평화'라는 커다란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화에 대한 이상, 현실적을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등.. 나는 우리가 이상적인 이념을 소망하는 것과 현실적 으로 할 수 있는 일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어떻게 평화와 연결되어있을까? 저번에 정대혐 20주년을 갔을 때, '평화는 쟁취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비물질적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번에 조진석선생님이 '공포심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는데, 왜 우리가 굳이 '공포'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총대신 무엇을 들어야 할까. 이제 평화라는 말을 할 때 '너가 없으면 안돼'라는 말 보다 '니가 있었으면 좋겠어'란 두 문장의 차이와 같이 평화적으로 '더 나은' 것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다. 평화워크숍을 통해 이 생각을 진전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번에 홍보를 잘 못했는데, 우리가 평화워크숍 공부를 잘 하고 기록해서 널리 퍼뜨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 느낌이 든다. 히옥스 : 언젠가는 한국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보면 좋겠다. 한국도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사건들이 굉장히 많다. 한국은 '종교적'이유로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종교적 전쟁에 대해 잘 이해해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은 '유일신'이 다른 차이로 싸우지 않고 '철학'의 차이로 싸움을 해왔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특이한 케이스다. 이게 무슨 의미냐하면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한국은 '이(합리)'와 '기(물질)'의 싸움을 해왔다. 한국에서 무엇을 갈등으로 인식하는가, 어떤 사회가 좋다고 생각하는가도 역사적인 내력이 있다. 여러분이 어떤 식의 분위기에서 자라고 있는지, 여러분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우리는 '서양식' '일본식'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실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제 우리는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한번에 한가지씩 생각을 잘 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잘 들으면서 말이다. 무브 : 우리가 전체적으로 '입시경쟁'이나 '스펙쌓기'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에는 수능을 '망쳤다'라는 말에 사람들이 많이 공감을 한다. 스펙을 쌓고 싶은데도 쌓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현재 사회에 대해 말할 때 조금 더 잘 생각해보고 말해보았으면 한다. 동녘 : 우리가 사회에 대해 말할 때는 '보편적'인 시선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무브 : 나도 알고 있지만 호기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히옥스 : 오늘 평화워크숍에서 여우가 혼자오게 될 수도 있는데 잘 반겨주고, 영어로 자기 소개를 잘 생각해보고 오늘 워크숍 잘 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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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오를 것이다 -> 끓어오를 것이다.
구나가 바쁘게 치느라 오타가 났나보구나..
(미안.. 망구의 말장난 개그는 옮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