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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글 수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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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7 11:21:24
그리고 "나비청소년센터" 개관을 앞에 두고 다시 야마오 산세이의 산문집 <어제를 향해 걷다>를 펼칩니다. 거꾸로 몇 편을 다시 읽으며 옮겨 적어보려고요. 1990년쯤 쓰여진 책. 후기 (pp.291-294 중 발췌) - 어제를 향해 걷다 ...내가 (수령 칠천이백년의) 조몬삼나무를 생각하고, 또 조몬삼나무가 나를 생각하는 이 관계는 물론 행복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도시에서 자란 두뇌 인간인 내가 당연히 맛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자연이 본래 나타내보여주는 호모 사피엔스를 향한 애정에 내가 어떻게 응할 것이냐 하는 시험이기도 했다. 내게는 힘든 시험이었다. 섬의 숲은 그 만큼 큰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한편 날마다 돌아오고, 봄여름가을겨울로 돌아오고, 한 세대에서 또 한 세대로 돌아와도 거기서 불편한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은 직진함과 동시에 회귀한다. 회귀하는 시간은 지구의 자전 및 공전에 따라 일어나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자연시간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4백만 년이라고 하는 인류의 역사는 최근의 백 년이나 이백 년을 빼고는 그 회귀하는 시간과 함께했다. 하루하루, 봄여름가을겨울, 우기와 건기, 생로병사의 반복과 함께 4백만년간 함께했던 것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자각하게 됨에 따라 내게는 새로운 지구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쫓아갈 필요는 이론적으로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새로운 것이 낡아지고, 낡은 것이 새로운 것이 되는 이 반복 속에서 지구는 호흡하고 자족하고 있다. 북쪽에 사는 공업문명권의 우리는 남쪽 사람들처럼 맨땅에 편히 앉아 쉬며 한숨을 돌리고, 남쪽 사람들로부터 하나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배워야 한다. 우리가 남쪽 나라들에 대해 어떻게 압력을 가해왔고, 착취를 해왔는지 반성하고, 압박과 착취, 때로는 학살이라는 끔직한 일을 당하면서도 남쪽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구를 믿고, 지구의 시간과 함께 풍요롭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풍요와 평화를 향한 지혜로써 진지하게 배우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직진하는 문명의 시간과 회귀하는 지구의 시간은 둘 다 지구에서 나온 두 줄기의 수맥이다. 지구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남북이 함께 지구를 새로운 가치로서... 각자의 지역에서 지구의 호흡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기술과 소양을 길러가야 한다. 그것을 지금 지구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거기서 죽고 싶은 곳 (pp. 235-236 중 발췌) ... 이 섬이 고마운 것은 어느 산에 가더라도 시냇물이 있다는 것이다. 시냇물만 있으면 더위를 피할 수 있다. 더워서 견딜 수 없을 때는 거기에 내려가 신발을 벗고 맨발을 물속에 넣으면 된다. 찬물은 금방 더위를 몰아내 준다. 아울러 힘을 소생시켜 준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자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주 하다 보면 시냇물에 사로잡혀 직사광선 아래로 돌아오는 것이 고통스러워진다. 휴식 때에는 말없이 구름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의 흐름에 몸을 노출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 물소리에 귀를 씻고, 시냇물의 흐름과 함께 나를 흘려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 서두를 일은 하나도 없지만 너무 오래 쉬는 것도 좋지 않다. 잠시 쉬고 눈부신 태양 아래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 반 시간쯤, 상태가 좋으면 한 시간쯤 나무를 벤다. 그렇게 조용히 작업을 계속해 간다. 해가 서산 저쪽으로 넘어가며 밤이 오면 우리 마을은 어둠과 별과 달에 둘러싸여 정말로 시원해진다. 추울 정도다. 마을 한복판을 흐르고 있는 시라강의 물소리가 한층 높아지며, 이 강이 있는 한 더 이상 살 곳을 찾기 위해 떠도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그런 여행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리라 싶은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편해진다. 톱니바퀴에서 벗어난 삶 (pp. 221-224 중 발췌) ... 남은 인생을 도요타의 부품으로서 마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도요타와 같은 방식이 가장 오기 어려운 지역, 예를 들어 우리 섬과 같은 곳으로 이주하여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우리 섬과 같은 곳에 살면 과연 절로 도요타적이 것과는 별개의 인생이 살아질까? 어쩌면 그것은 안이한 몽상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그녀가 온몸으로 털어놓은 문제 속에는 단순히 '아, 탈도시!'라는 말로 치부해 버리고 말 수 없는 현대사회의 근본 문제가 숨어 있는 것만은 틀림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선 지구호라 불리며, 이 지구호를 유지하는 에너지에는 한도가 있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한도 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말할 수 없이 위험한 핵에너지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경에까지 와 버렸다. 이와 같은 시대에 우리는 상반되는 두 가지 방향의 꿈을 꾸고 있다. 그 하나는 미국 대통령이 연초에 발표한 유인 우주스테이션으로 상징되는, 합리주의와 기술에 의지해 살아가려고 하는 방향의 꿈이다. 그 반대편에는 대규모 기근에 시달리며 사하라 사막의 불모의 모래를 파며, 먹을 수 있는 나무나 풀뿌리를 찾고 있는 부시맨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부시맨의 꿈은 악몽이고, 레이건의 꿈은 신년 벽두를 장식하기에 어울리는 현대의 꿈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레이건이 꾸는 꿈의 방향으로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끌려 간다면 도요타적 부품인생은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 이 지구의 일체 생명의 존속자체를 위협하는 핵무기의 작열로 이어져 가리라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한때는 악몽으로 여겼던 부시맨의 꿈 쪽으로 참다운 꿈으로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더 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에서는 한 해에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굶어죽어간다고 한다. 핵으로 죽는 것이나 굶어서 죽는 것이나 인간에게는 같은 죽음이다. 그와 같은 죽음을 피해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선택을 한다면 나는 분명히 레이건의 꿈쪽에 등을 돌리고 저 슬프지만 평화로운 부시맨과 함께, 다른 민족에게 결코 상처 입히지 않는 부시맨의 편에 서서 죽음을 맞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합리주의에 기초를 둔 기술 문명에는 이미 미래가 없고, 인간을 포함한 더욱 큰 자연의 섭리에 눈길을 돌리고, 그 소리를 듣고, 그 호흡과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참다운 인류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 산에서 사는 즑거움 (pp. 183-186) ... 중국 진나라 말기에서 명대 초기에 걸쳐서 활약했던 이어李漁라는 문인이 있다. 이어는 도시를 버리고 이산이라는 이름의 산간 벽지에 틀어박혀 요즘 말로 하면 자연생활을 즐겼다. 그곳에 친구들이 찾아와 이런 궁벽한 곳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가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어는 즉석에서 '열 가지 편리하고 좋은 점'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이 물음에 대답했다. ... 편리라는 말은 내가 아무리 해도 좋아할 수 없는 말의 하나다. 그러나 사전을 들춰보니 편리의 '편'이라는 글자에는 평온함, 마음의 여유, 편히 쉼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고, 이어의 말대로 시골생활의 열 가지 이상의 편안하고 여유있는 세계를 취재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여도 좋겠다 싶었다. ... 이어의 원래 시에는 '우리 집 부엌은 샘물과 담 하나 거리를 두고 있어 대나무 하나로 물을 끌어올 수 있다. 이보다 어찌 더 편리할 수 있으랴! 그 물로 좋을 차를 다려 손님에게 대접하면, 그때 차에서는 샘에 있던 돌의 골수로부터 스며 나온 향기가 난다"고 돼 있다. 한문으로 읽으면 더욱 격조가 있겠지만 물맛에서 돌의 골수에서 스며 나온 향기까지 보아내고 있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나는 땀을 흘리며 일한다는 점에서 이어의 일 없이 차를 마시는 문인 사상에는 동의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하지만 돌의 골수에서 스며 나오는 향기 나는 물을 좋아하는 데 있어서는 남에 뒤지고 싶지 않다. 우리가 마시는 산의 샘물조차도 체르노빌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미량이라고는 하지만 방사능에 오염돼 있을 것이 틀림없고 보면 우리는 더 이상 그냥 앉아 있을 수만 없다. 한편 그 사실은 아무리 산간 벽지에 살더라도 원자력에 의지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지구의 운명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열 가지 좋은 점' 중에는 비에 관한 것도 있다. 비 또한 좋다는 뜻으로, 원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냇물이 불며 물소리가 높이 울려 퍼진다. 돌아가는 어부나 나무꾼의 모습이 추워보인다. 골짜기나 산이 비에 휩싸여 어둑해진다. 자연은 이런 풍경을 한 시인에게만 보여 주고 있다."올해의 장마는 예년과 달리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비야말로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 느껴진다. 커튼을 열고 창 너머를 보면 뒤뜰에 수백 송이나 되는 산수국 꽃이 피어 있는 것이 보이고, 그것이 내 가슴을 밝게 만들어 준다. 모든 수국과의 꽃이 그렇지만 산수국 꽃도 맑은 하늘 아래서는 그 아름다움이 크게 줄어든다. 비가 내리면 내릴수록, 세상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꽃들은 그 본래의 고귀함과 가련함으로 빛난다. 나는 비가 내리는 날에도 비옷을 입고 밭에 나간다. 이어처럼 일없이 '바라보는 자'의 입장에서는 빗속에서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 추워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비옷을 입고 밭이 앉아보면 비의 참다운 맛은 그 속에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낫으로 풀을 베다 보면 차츰 자신이 인간이기보다는 식물과 비슷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된다. 비를 피하지 않고 그냥 맞는 식물들의 고요와 기쁨이 가슴속에 분명하게 전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과 기술이 진화하여 초인간의 방향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공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물론 후자다. ... 할아버지 삼나무를 뵈러 가다 (pp. 166-169) 조몬삼나무를 뵈러 갔다. 일 년 반 만이었고, 다섯 번째였다. 이번에는 아내의 간절한 희망에 따라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막내 미치토도 데리고 갔다. 여기에 살면 언제라도 갈 수 있을 듯 하지만 1박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용이하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나 또한 이 섬에서 산 십 년 동안 이번을 포함하여 다섯 번밖에 오르지 못했다. 이 년에 한 번 꼴이다. 적어도 한 해에 한 번 정도는 가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 조몬삼나무로 가는 등산로는 하나가 아니다. ...표고 1,000미터쯤에 위치해 있는 아라카와 댐까지는 차로 올라간 뒤 그곳에서 하룻밤을 차 안에서 자고 아침 일찍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점심 때는 조금 지난 시간에 조몬삼나무에 도착, 거기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 뒤 하산을 시작하여 어둡기 전에 댐까지 돌아올 예정이었다. ... 조몬삼나무는 수령이 칠천이백 년이라고 하고, 둘레 43미터, 높이 30미터 가량의 거목으로 나를 이 섬으로 오게 한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조몬삼나무를 만나러 가는 것은 내게는 나 자신의 뿌리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사람이 한곳에 산다고 하는 것은... 보다 큰 이유가 있을 것이 틀림 없다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다. 그 지역의 문화적인 공기가 정말 좋다든가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그 사람을 그 땅에 살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곧 주거지의 형이상성으로, 내게는 조몬삼나무가 그것이다. 한 해에 한 번씩은 뵈러 가야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등산에선느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작년에 섬을 덮친 대형 태풍의 영향으로 조몬삼나무의 큰 가지가 하나 부러졌다는 정보를 사람들을 통해서 들었는데, 그것은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사건과 맞먹을 만큼 내게는 나쁜 뉴스였다. 어떤 가지가 부러졌나, 상처는 어떤 정도일까,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일까 온갖 생각이 다 났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처럼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로서, 내 세계, 나의 형이상성은 이미 상처를 입고 말았다. ... 조몬삼나무에 도착하는 것은 오후 한 시경이었다. 떡하니 정좌를 하고 있는 거대한 삼나무를 향해 절을 한 뒤 나는 곧바로 부러진 가지를 찾아보았다. 가지가 꺾인 것은 일 년도 더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이미 상처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조몬삼나무는 이전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고, 몸이 큰 탓인지 조몬삼나무의 우듬지나 줄기로부터도 크고 작은 수백 그루의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삼나무는 단 한 그루의 나무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몸에 수많은 나무를 키우는 대지 노릇도 하고 있었다. 뿌리 둘레가 43미터라는데, 그것은 어른 스물두 명이 손을 벌리고 이어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굵기다. 그런 거목이기 때문에 어떤 가지가 꺾였는지 쉽게 알아낼 수가 없었다. 불교에서 하는 탑돌이처럼 나무 주위를 여러 번 돌며 살펴보니 땅위로부터 10미터 가량 되는 부분에 가지가 부러진 것처럼 보이는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잘 살펴보니 그것은 삼나무가 아니라 삼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던 끈끈이나무가 부러진 것이었다. 우리 섬의 산에서는 천 년을 넘게 산 야쿠삼나무와 끈끈이나무가 서로 뒤엉켜 자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조몬삼나무의 경우는 본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휘감긴 끈끈이나무 또한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삼나무의 아주 작은 일부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끈끈이나무라서 가지가 부러져도 괜찮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내심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끈끈이나무가 그런 것처럼 조몬삼나무가 부러졌다면 부러진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겠지만 다행히 조몬삼나무는 무사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 형이상성의 나무에 탈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신비한 사람이라 불렸던 아사히라 사이치는 평생동안 나막신을 만드는 장인으로 살며 약 만 수 가량의 신앙으로 노래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하나로 사이치는 임종을 마치고 장례식을 마치고 나무아미타불과 이 세상에 있다 사이치는 아미타불이 되고 아미타불은 사이치가 되리라 고 하는 노래가 있다. 사이치는 아미타불이 되고 아미타불은 사이치가 된다고 하는 단언이 신비한 사람 사이치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같은 표현으로 하면 이렇다. "내 임종을 마치고, 장례식마저 마치더라도 | 조몬삼나무는 이 세상에 있다 | 조몬삼나무가 이 세상에 있다면 나도 또한 이 세상에 있다"는 느낌 속에서 나는 나의 뿌리이기도 한 조몬삼나무 앞에 서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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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crossing and sharing 시간이 있다고 해서 무얼 가져갈까 하다가 세 가지를 골랐어요.
십년전쯤 하자센터를 개관하던 그 때에는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했던 고래를 위하여 - 타무라 시게루의 애니메이션 "고래의 도약"을 가져갑니다. 또 하나는 고정희추모여행으로 시인의 마을을 찾을 때마다 묘소 동산을 찾아들던 나비를 기억하면서 만들게 되었던 나비문양의 목걸이.
그리고 한 때 너무도 좋아했던 찰스 키핑의 그림책 "조지프의 마당".
고철나부랭이들만 즐비한 마당을 나무와 벌레와 나비들이, 그래서 꽃이 가득한 마당으로 가꿔나가는 외로운 소년 조지프의 끈기있는 기다림과 시도가 돋보이는 멋진 그림책이지요. 누구에게 드리게 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