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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음악글 수 566
1887년 10월 20일자 ‘Seattle Sunday Star’지에 실린 헨리 아담스박사(회담에 직접 통역으로 참석한 장본인)의 버전 시애틀추장의 연설문 :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우리들에게 연민의 눈물을 뿌려주었고, 우리들에게는 변함 없이 영원한 것처럼 보이는 저 하늘도 이제는 바뀔 지도 모른다. 오늘은 개었지만 내일은 구름으로 뒤덮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말은 변치 않는 별들과도 같다. 나 시애틀이 하는 말은, 워싱턴의 대추장의 말을 해가 다시 뜨고 계절이 다시 돌아 오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 백인추장이 말하기를 그의 대추장이 우리에게 우정과 선의의 인사를 보낸다고 한다. 이는 친절한 일이다. 우리는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정 같은 것은 그다지 필요로 느끼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부족들은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저 광대한 초원의 풀과 같이 무수하다. 반면에 나의 부족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폭풍이 쓸고간 벌판 여기저기에 흩어진 나무와도 같다. 위대하고도 선한 백인 추장은 우리 땅을 사고 싶으며, 또한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충분한 땅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이것은 참으로 공정하고도 관대한 처사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 붉은 사람들은 더 이상 존경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넓은 땅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생각할 때, 그것은 현명한 제안일 지도 모른다. 한 때는 우리 종족이 온 땅을 가득 메운 시절이 있었다, 조개 껍질이 깔린 바다 밑을 바람에 부대껴 물결 치는 파도가 뒤덮듯. 하지만 그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고, 종족들의 위대함도 이제는 거의 잊혀져 버렸다. 나는 우리 종족의 때 아닌 쇠락을 슬퍼하지도, 또한 이를 재촉했다 하여 백인 형제들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충동적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사실이거나 또는 상상에서 비롯된 불의에 분노하여 그들의 얼굴을 검게 문신을 새기면 그들의 마음 역시 일그러져 검게 변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잔혹성은 무자비할 뿐더러 그 끝도 없다. 우리 늙은이들은 이들을 만류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 종족들과 백인 형제들 간의 적대감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우리에게 해만 될 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젊은 용사들이 목숨을 바칠 만큼 복수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 때에 집에 남아 있을 늙은이들과 싸우러 나갈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워싱턴에 있는 우리들의 위대하고 선한 아버지 – 이제 그의 영토를 북쪽까지 넓혔으므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된 것으로 믿는다 – 우리들의 위대하고 선한 아버지는, 우리가 그가 바라는 대로 따르면 우리를 보호하겠다는 전갈을보내왔다. 그의 용맹한 군대들은 우리에게 든든한 보호벽이 될 것이며, 또한 그의 거대한 전함들이 우리의 항구를 채우게 되면 북방에 있는 우리의 오랜 적(敵)인 하이다스족(Haidas), 심시암즈족(Tsimsians)도 더 이상 우리 부족의 여자들과 노인들을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들은 그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대들의 하느님은 우리의 하느님이 아니다. 그대들의 하느님은 그대들은 사랑하지만 우리 종족은 미워하신다! 그는 애정어린 손길로 백인들을 감싸 안고 마치 아버지가 갓난 아기를 이끌 듯이 그들을 끌어주지만, 그는 피부가 붉은 자식들은 내버리고 말았다. 그는 날이 갈수록 그대들 종족을 강성하게 만들고 있기에, 조만간 온 땅은 백인들로 가득 찰 것이다. 반면에 우리 종족들은 마치 재빨리 빠져나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썰물처럼 스러져 갈 것이다. 백인들의 하느님은 피부가 붉은 자식들은 사랑할 수도 없고 또 보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아무 데서도 기댈 곳을 찾을 수 없는 고아들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한 형제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당신들의 아버지가 우리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주고 다시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위대함을 찾으리라는 꿈을 돌려줄 수 있단 말인가? 그대들의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불공평한 것 같다. 그는 백인들에게만 찾아갔으므로, 우리는 그를 보지도 그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다. 그는 백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었지만, 한 때 별들이 저 창공을 채우듯 이 광대한 땅을 가득 메웠던 수백만 명의 피부가 붉은 자식들에게는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다른 종족이다. 우리의 기원이 다르듯이 앞으로의 운명도 다르게 될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는 거의 공통점이 별로 없다. 우리 조상들의 유골과 재는 신성한 것이며, 그들이 마지막 안식을 취하고 있는 곳은 거룩한 장소이다. 이에 비해 그대들은 아무런 후회도 없이 그대들 조상들의 무덤에서 멀리 떠나 떠돌아다닌다. 그대들의 신앙은 그대들이 망각하지 않도록 성난 하나님의 강철같은 손가락에 의하여 석판 위에 쓰여졌다. 우리 종족들은 이런 것을 결코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우리들의 신앙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이다. 그것은 위대한 정령(Great Spirit)이 우리의 늙은 현자들에게 전해준 꿈이며, 우리들의 추장들이 본 환영(vision)으로서 우리 종족들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대들의 조상들은 무덤의 입구만 지나서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그대들과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 멀리 하늘의 별들 너머로 세계로 멀어져 간다. 그리고는 곧 잊혀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조상들은 결코 그들을 존재케 했던 이 아름다운 세상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 웅장한 산들, 그리고 외진 계곡들을 변함없이 사랑한다. 그들은 언제나 지극한 애정으로 우리들의 외로움을 애처로이 여기기 때문에, 종종 다시 이곳을 찾아와 남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위로해준다. 밤과 낮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 붉은 사람들은 아침 햇살에 안개가 스러지듯, 백인들이 다가오면 언제나 뒤로 물러서왔다. 하지만, 그대들의 제안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 부족들도 이를 받아들여서 그대들이 제공하는 보호구역으로 이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멀리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위대한 백인 대추장의 말은 마치 짙은 어둠 속에서 우리 종족을 인도하는 대자연의 목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를 따를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이 남지도 않은 나날들이다. 인디언들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울것이다. 지평선 위에는 별빛 같은 희망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슬픈 바람 소리는 저 멀리서 흐느끼고 있다. 우리 뒤로는 우리 부족의 무서운 적들이 쫓고 있도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마치 상처 입은 암사슴이 사냥꾼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무자비한 파괴자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최후를 예비하게 되리라. 달이 몇 번 더 기울고 또 겨울이 몇 번 더 지나고 나면, 옛날 이 광대한 땅을 가득 채웠던 강대한 이땅의 주인이며, 또는 지금 뿔뿔이 흩어져 광야 속을 떠돌고 있는 종족들 중 그 누구도 살아 남아서, 한 때는 그대들 만큼이나 강하고 희망에 넘쳤던 종족의 무덤 앞에서 슬퍼해 줄 수도 없으리라. 하지만 내가 왜 이를 불평해야 하는가? 내가 왜 우리 부족의 운명에 대해 불평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그저 각각의 인간들로 이루어졌을 뿐인 것을. 부족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 가버리기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백인들이 멸망하는 시대는 아직 멀리 있는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때가 되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대들 하느님과 함께 친구처럼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일지도 모른다. 두고 보면 알게 되리라. 그대들의 제안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겠다. 그리고 결정이 나면 그대들에게 기별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설혹 우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한 가지 조건을 달고 싶다. 즉 우리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리 조상들과 친구들의 무덤을 마음대로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 땅의 어느 곳도 우리에게 성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모든 언덕, 모든 계곡, 모든 벌판과 덤불 숲들은 우리 부족의 과거의 아렷한 추억이나 슬픈 경험으로 인하여 신성한 장소가 되어 있다. 엄숙한 위엄 속에 잠겨, 고요한 해변을 따라 묵묵히 누워 있는, 저 태양열에 달아오른 바위들 조차도 우리 부족들의 운명과 연관된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전율하고 있다. 그대 발 밑의 흙 조차도 그대들보다는우리들의 발소리에 더욱 다정한 응답을 보낸다. 왜냐하면 그 흙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유골이며, 우리의 맨발 또한 우리 형제들의 생명이 충만한 토양이 보내는 따뜻한 촉감을 절절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이 곳에서 살면서 기쁨을 누렸지만 이제는 이름조차 잊혀진 검은 문신을 한 용사들과 다정한 어머니들, 생기발랄한 처녀들과 어린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고독한 이곳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숨겨진 안식처는 황혼녁이 되면 음울한 정령들의 출현과 함께 어슬픗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리하여 마지막 인디언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그의 기억마저도 백인들 사이에서 옛이야기가 되고 난 다음에도, 이 해변들은우리 부족의 보이지 않는 영혼들로 가득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벌판이나 상점, 차도 또는 숲의 고독속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도,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곳도 절대적으로 고독한 곳이란 있을 수 없다. 밤이 되어 그대들 도시와 마을의 거리에 정적이 내려서 그대가 인적이 모두 끊어진 것으로 여길 때, 그 곳에는 한 때 그 곳에 살았고 아직도 아름다운 그 땅을 사랑하고 있는 영혼들이 모여들 것이다. 백인들도 결코 홀로 있을 수는 없다. 죽은 사람들이라고 완전히 힘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디 살아있는 우리 종족들과 죽은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죽음이라고 말했나? 사실 죽음이란 없다. 단지 변해가는 것일뿐.
출처: 이목수님 블로그에서 가져와서 새벽안개가 수정한 번역본. 최초작성(2008.0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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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10:35:34
추장의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내게는 마치 하나의 가사처럼 들려왔다. '우리는 마치 폭풍이 쓸고간 벌판 여기저기에 흩어진 나무와도 같다.' 첫 문단부터 와.. 대단한걸? 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추장이 자신 혹은 동료나 동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들이 마치 내일 처럼 감정이 잘 들어나 있다. 미래를 위한 선택, 그 선택으로 일어나는 복받치는 감정이 마치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을 하는 한 혁명가의 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분의 감정이 담긴글은 한명의 감정을 표현하는 MC로써 본받아야할 점이 많다고 본다.
2009.04.11 10:25:02
,한 때 별들이 저 창공을 채우듯 이 광대한..... 가장 맘에 드는 표현이구요 언어로 이렇게 멋진 말을 할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대단하다 느끼네요 사실 이글을 읽으면서 언어의 한계는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깔끔하면서도 그문장 하나 하나에 감정들이 잘 묻어 나오는 글인 것 같아요. 이 글을 읽으면서 "비장하다". 라는 느낌이 정말 강했어요. 마치 구석에 몰린 생쥐가 고양이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느낌이였어요. 글자들로 이렇게 심하게 얻어맞은건 정말 오래간만인 것 같아요.
2009.04.13 17:12:23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이 남지도 않은 나날들이다.
-우리들에게는 변함 없이 영원한 것처럼 보이는 저 하늘도 이제는 바뀔 지도 모른다. 진짜로 와닿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이네요. 쉼표 느낌표 마침표들이 이렇게 힘있게 와닿은 글은 처음 읽어요.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주제를 놓고 조목조목 짚어가며 돌려말하는 것 없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풀어내는 시애틀추장, 존경스럽습니다. Ex)이러하다 -> 왜냐하면 '백인추장' 이라는 말에서 시애틀 추장은 사람을 얼마만큼 공평하게 보고 자연을 얼마만큼 받들이는지 눈치를 챌수 있었어요. 이 글을 통해 [자신의 것, 혹은 모두의 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끔 합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마음이 있는곳을 사랑하고 있다면 이정도 글은 나와 줘야지요.
2009.04.15 05:20:53
젊은이 들이 얼굴에 검게 문신을 새기고 그들의 마음역시 일그러져 검게 변해 버린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네요.
젊은이 들이 충동적이란 말은 왠지 다른 말들보다 더 공감이 잘 가는군요. 약간 찔리는 것은 저쪽 사회 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든지 있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전쟁 때에 집에 남아 있을 늙은이들과 싸우러 나갈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죠. 이 부분에서는 꼭 예를 전쟁으로 들지 않더라도 무엇 에서든지 말입니다. 예로는 나쁜 짓을 하려고 하는 자식을 둔 어머니. 글 전체를 이해하기란 어렵군요. 두 번 읽는데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읽어볼게요. 글 감사해요
2009.04.17 06:31:51
간혹,
오피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는데... 왜 그럴까...
글 전체를 이해하지 않아도 좋지만, 오피가 밑줄을 긋고 마음 쓰이는 문장들이 저 두 개뿐?
2009.04.20 03:03:37
문신에 대해서 알아봐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찔린다는 것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썼는지 잘 모르겠네요.. 처음 읽었을 때 너무 어려워서 이해를 바보같이 하고 헛소리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든 예도 어려워서 대충 썼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하고 싶은 말은 시애틀 추장이 추장으로서가 아닌 다른 젊은 전사들의 부모님으로서 처럼 걱정하는 게 잘 느껴진다는 것과, 모든 부모들을 대신해 부모가 걱정하는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싸움터에 나가는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들을 가졌을 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적을 죽이기만 하고싶다 라던가 복수의 마음 이라던가 부족을 지키는 마음 이라던가 부모님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가 라던가 말입니다. 그리고 히옥스가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말씀해주신 부분은 잘 알겠습니다. 소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2009.04.20 06:35:51
2009.04.15 07:07:10
글을 읽으며 그냥 문득 등하교 길이 생각났습니다. 다시 푸러진 등하교 길을 걸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있어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 나뭇잎들이 춤 출 때, 작은 새들이 지저귈 때, 달콤한 꽃향기를 맡을 때, 매번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인디언들도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지내지 않았을까? 백인들에 의해 그 아름다움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 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존경하고 성스럽게 여기는 자연이 무너져가니까..그들에겐 돈을 벌게 해주는 소유물이 아니라 선조들이 살아숨쉬는 정령이니까..
2009.04.21 08:38:17
'정령'이란 건 참 많은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에는 아예 '정령계'라는 세계에서 '정령'들이 살고 있는데, 결국 그 정령들은 자연을 다루고 인간을 초월하죠.
제가 생각하기로는 자연=정령이기도 하고, 자연 합집합 정령 = 정령(이 공식 맞죠? 갑자기 기억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령이 바람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정령이 나무의 새싹을 트게 하는 게 아닐까? 정령이 하늘의 비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결국 인간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정령의 일부로 스며들지 않을까요?
2009.04.22 00:11:00
추장의 연설속에 그런 "인격화된" 정령이 있다고까지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꼭 그렇게 의인화하여야만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과 연결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혹은 기껏해야 선조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정도로 이해하면, 자연을 대하는 추장의 마음, 경외심 같은 것이 짐작되기 어려운지? 정령이 나무의 싹을 트게 한다든가, 하늘의 비를 내리게 한다든가 하면 인간과 자연(나무나 하늘과 같은) 외에도 뭔가 다른 존재를 가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또 다른 논쟁이나 전제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얘기를 했으면 한다. 자연과 인간을, 정령과 인간, 혹은 정령계/인간계 하는 식으로 대립시켜 놓지 않아도 좋을 수준에서 충분히 얘기가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나서 그 이상의 '신앙', 정령이란 것이 있냐 없냐 얘기를 해도 좋을 듯.
2009.04.16 12:44:32
"내가 죽음이라고 말했나? 사실 죽음이란 것은 없다. 단지 변해 가는 것뿐"
이런 말을 전에 한번 어딘가에서 들었던 것 같다. 사진 속에 담겨진 예전엔 항구 였다던 우리동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 그 항구의 마지막 뱃고동 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과연 그 항구는 죽지않고 살아 있는 것일까요? 기억이 생명이라면 언젠간 모든것들은 다 죽어버릴지도...
2009.04.20 06:28:47
'젊은이들은 충동적이다ㅡ그리고 그들의 잔혹성은 무자비할뿐더러 그 끝도 없다.'
'밤과 낮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 땅의 어느 곳도 우리에게 성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모든 언덕, 모든 계곡, 모든 벌판과 덤불숲들은 우리 부족의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나 슬픈 경험으로 인하여 신성한 장소가 되어 있다. 엄숙한 위엄 속에 잠겨, 고요한 해변을 따라 묵묵히 누워 있는, 저 태양열에 달아 오른 바위들조차도 우리 부족들의 운명과 연관된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전율하고 있다. 그대 발 밑의 흙 조차도 그대들 보다는 우리들의 발소리에 더욱 다정한 응답을 보낸다.' '이 세상 어느 곳도 절대적으로 고독한 곳이란 있을 수 없다.' '사실 죽음이란 없다. 단지 변해가는 것일 뿐.'
2009.04.20 06:30:27
절대적으로 고독한 곳이란 있을 수 없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표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그리고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표현 결코 쉽게 쓰지 못할 것 같구요. 그런데 '절대적으로 고독한 곳'이 없다면 '절대적으로 고독하지 않은 곳' 또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사실 개인적으로, 이 문장이 전혀 와 닿질 않아요. 저는 집, 가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절대적으로 고독하거든요. 이 문장 보자마자, '내가 모든 것들과 너무 무의미한, 혹은 형식적인 관계를 맺어서 그런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저처럼 절대적인 고독함(나이 열아홉에 걸맞지 않는 정말 부담스러운 표현이지만)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 연민에 빠져 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2009.04.20 06:49:36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고독할 거라 생각해. 주변의 관계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든 주변의 관계들이 나에게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든 나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이 그 고독의 원인이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추장의 시대에는 '개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사실 의미 없는 말이었을 거야. 삶의 목표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으니까. 태어난 대로 그 부족의 사람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현대사회는 삶의 목표가 개인들마다 다르고 방식도 다 다르게 되었지.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누가 상상할 수 있겠어? 서른의 양파는? 마흔의 양파는? 각자 마주하고 있는 자신들의 삶이 각각 따로 있으니까 자기 삶을 이해하는 데도 무척 힘이 들지. 자기도 자기 삶이 잘 이해가 안되는데, 어떻게 남이 나의 삶을 이해하겠어? 이해받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마음을 닫게 돼. 그런데 그러면 나 또한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거리두고 생각해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자기 삶은 더 이해하지 못하게 돼. 그런 이해불능의 관계가 무한하게 진행되면 진짜 고독에 빠지는 거라고. 그래서 자기의 '준거그룹'을 만들고 동료와 친구가 생기는 것, 자신의 '마을'을 만드는 것이 다시 중요해지는 이유도 그런 거라네. 그럴 때 '소통'이란 말도 쓰는 것이고. 나를 알고 위로하고자 하면 실은 타인을 알고 위로하려고 노력해보면 때때로 실마리를 쥐게 될 때가 있더라.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면 그래서 무한한 이해불능상태로 자기 자신안에 "갇혀" 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처럼.
2009.04.21 02:37:29
더이상 물러설 방법밖에는 없었던 시애틀 추장의 이 멋진 연설문을 보고 백인 추장을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2009.04.22 00:21:18
단지 백인 부족에 '비에' → '비해'
삶과 운명에 대한 태도가 다르니까, 그런 태도의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이면 이 연설의 무게를 느낄 것이고(그래서 아마도 이 연설이 글로 다시 기록되어 남겨졌을 것이고), 단순히 미개인이나 (종교적) 이방인의 마지막 항변정도로 취급할 수도 있었겠지. 당시 인디언들과 유럽의 이주민들간의 전쟁은 종교적, 정치경제적, 문화적 모든 맥락에서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만으로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아무튼, 지금의 우리에게 유럽이주민들보다 추장의 연설이 더 와닿는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우리가 어떤 시각에서, 혹은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2009.04.21 05:49:24
오피의 아버지가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지 만남은 헤어짐의 시작이고 우리의 생은 죽움의 시작이라고 모든것은 낳고 살아가고 죽는것의 반복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해가는 것이지 그래서 모든 인연은 소중한 것이야~~~ 어느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이지구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항상 자기자신이야~~ 특별한 관계를 맺은 부모 자식이 두번째고~~ 사랑한다 아들~~참으로 멋진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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