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이다. 그렇게 거리와 시간을 넘어, 서로의 진심이(To.사이다 짜장!) 가장 잘 담겨있는 시와 노래로 소통하는 이들이라니..
그 중 오늘 지하철에서 오면서 읽다가 욱, 하며  감동이 밀려왔던(내가 음악에서 찾는 것은 뭘까 막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마종기 시인이 루시드 폴에게 쓴 편지중 한 부분을 밑줄 그을께요. 나도 이렇게 진지하고 진심(짜장) 되게 각자의 작업물을 보고싶고 내 작업물또한 이렇게 잘 읽혔으면 ^^ .

서둘러 윤석 군의 <국경의 밤> 앨범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첫 결과는 '어리둥절함' 이었습니다. 내가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아니면 이게 세데 차이 라는 것일까. 그러다가 지인이 '아주 좋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라고 강조하던 생각이 나서 다시 듣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아, 이 노래들은 혹 대화를 나누려는 외로운 영혼의 숨소리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흐처럼 나를 맑게 정돈시키는 힘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나를 압도하고 소름 끼치게 진리를 설파하는 것도 아니고, 모차르트처럼 천상의 황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이 음악이 외롭고 고달픈 또래의 영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같은 세대가 느끼는 동류의 슬픔을 같이 흐느끼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서로가 동료 의식으로 힘이 되는 그런 부드러움. 부드러움이 결국 힘이 되고 열기가 되어 불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는 그런 노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윤석 군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의 의대생 시절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본과1학년, 어둠고 냄새가 심하던 그 교실에서 매일매일 시체 해부를 하면서 드디어 시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내 시는 처음부터 수사학과는 별로 관계가 없었지만 그 어느 때에도 진심이 아닌 적은 없었습니다. 진심 아닌 것이 나를 위로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진심에서 출발한 위로의 표현과 분위기가, 비록 촌스럽고 거칠기는 했어도 차츰 주위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도 내 무식하고 단순한 전개가 고국의 많은 친구들에게 다가가 시집도 항상 괜찮게 팔리는 것은 채수가 좋은 것밖에는 딴 뜻이 없겠지요. 지난 40여 년,늘 죽음을 대면하고 살아야 하는 외국에서의 오랜 의사 생활은 내 시를 일상의 생활과는 정반대로 사랑의 꽅이나 믿음의 강 같은 곳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학생 시절, 문학 개론 강의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문예 사조나 미학이나 시창작법 같은 강의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대학 때 열역학, 함수론, 통계학, 정성분석만 배우기에 지쳤고 미국에 와서는 핵물리학(nuclear physics), 동위원소(isotope) 등의 강의와 시험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내 시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해석할 것도, 분석할 것도 별로 없다고 합니다. 사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내가 정말 무식해서만일까요. 나는 시를 분석의 대상으로나 관념의 방법학으로는 쓰지 않습니다. 아니, 서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문학은 내게 너무나 소원한 존재입니다. 윤석 군의 음악에서 내가 느끼는 가사와 음악의 아름다움이 더 이상 학문적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한 그 아름다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고, 그것만으로 늘 깊이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책<아주 사적인, 긴 만남>중      -마종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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