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여는 글

하자에 온 이유부터 되짚어봐야겠다. 내가 하자에 온 이유는 작업장학교의 공연 팀이었던 촌닭들에 반해서였다. 음악을 좋아했고 내가 마리학교 다닐 적에 밴드 하는 애들이 ‘오마이스쿨’이라는 단체에 공연하러 간 적이 있는데 거기 촌닭들도 공연 순서에 있었다. 촌닭들은 브라질 퍼커션을 하는 공연 팀이었고 나는 그런 장르는 처음 접했었다. 리듬들이 너무 신나고 떨렸다. 이 떨림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공연을 봤을 때도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자리에서 벅차고 일어나 기차놀이도 하고 무척 신나게 놀았다. 촌닭들의 몸동작, 표정, 소리가 모두 나를 매료했고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이 때 촌닭들을 보고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음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 정도였고 아직도 브라질리언 퍼커션 리듬들은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직 촌닭들이 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하자에 왔었다. 촌닭들은 그 당시 활력을 팔고 있었고 아주 열정적이고 파워풀해보였다. 딱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일이었다. 사실 이 당시 내 누나 유란도 하자작업장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하자에 대한 좋은 소리를 많이 듣게 되어서 길찾기로 들어가게 되었다. 중학교3학년의 나이였지만 마리학교에서 1년 동안 충분히 놀아서 이제 뭘 해볼까 해서 하자에 온 것이기도 하다. 길찾기 과정을 거치고 주니어가 되어 촌닭들에 들어왔다. 연습을 아주 많이 했고 할 때마다 무척 신이 났다. 우리는 악기 연주를 한 가닥씩 하게 되었고 공연의 퀄리티도 높아졌다. 내가 하자에 온 이유가 짙어지던 시기였다. 이때는 우리 공연 팀을 담당하는 판돌이 없었고 우리끼리 열심히 악기를 치며 놀았다. 스틱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치면서 놀았고 리듬에 맞춰 흥얼거리는 것도 아주 잘했다. 음악은 정말 항상 우리 주위에 있었다.

내가 2학기(?)가 되며 우리 공연 팀에도 판돌이 생겼다. 히옥스였다. 히옥스는 공연 팀이 악기만 계속 치기보다는 공부를 하기 바랐고 우리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비중 두는 쪽을 악기에서 공부로 돌렸다. 난 공부를 태어나서 처음 해봤다. 공부는 악기처럼 테크닉이나 스킬, 박자감각 보다는 많은 생각과 연구, 지식을 필요로 했다. 공연을 잘 해서 얻는 성취감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공부해서 얻는 성취감도 꽤 달콤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누군가의 표현을 빌려서 머리만 커지게 되었고 움직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관심 있어 하고 개인연구주제 키워드인 ‘생태’적인 행동을 하고 싶었다. 지난 summit 때 50명도 넘는 사람들이 'Save My City'라는 팻말을 들고 명동에서부터 청계천광장까지 걸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런 움직임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환경이나 지구의 문제점들에 무감각한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는 행위였다. 난 공부를 했고 공부는 행동과 짝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행된 건 많이 없지만 여러 가지 계획들을 많이 해봤고 움직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해보았다.

 

 

 

너와 나는 친구인가

공연 팀 안에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트러블도 많았고 따뜻함도 많았다. 몇 년 동안 만난 우리들은 어떤 관계일까? 관계나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생각을 좀 해보고 나니 친구라는 단어가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관계, 소통 부분에서 생각해서 나온 것은 서로 배려를 하면 좋은 관계, 상대방과 밀고 당기기를 잘하면 좋은 유대가 만들어다는 생각들이 있었는데 사실 어떤 부분으로는 친구는 자연스레 유대가 만들어져야 하고 서로 끌리는 게 있어야 하고 궁금해 해야 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며 자연스레 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 이번 학기에 찾은 또 하나의 ‘친구 되기’ 방식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배려하고 맞춰주고 하다가는 친구 보다는 예의 있고 둘 사이에 조그만 벽이 있는 관계가 될 것 같다. 궁금한 것도 턱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이런 저런 말도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연 팀 친구들은 각자의 생각이나 취향, 성격이 일치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다들 너무 다르기 때문에 친구가 되는 게 무척 힘든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법들을 총 동원하여 마음을 열고 친구에게 다가가면 반응을 보여주곤 했다. 거기서 더 나간 적이 별로 없었단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친구다. 여러 날 동안 연주도 같이 하고 싸움도 하고 울거나 얘기도 많이 했으니까. 서로 끌리는 게 딱히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꿇리는 것도 없다. 우리는 같은 팀이고 친구라고 믿으니까. 같이 놀기 좋아하고 웃는 얼굴 보기 좋아한다. 나와 너무도 다른 친구들을 사귀는데 서툴렀을 때 그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할지 몰라서 너무 답답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 이런 사실을 느끼고 있었고 어느새 누군가가 한 발의 총성처럼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꺼내니 모두 동감하고 서로 마음을 조금씩 열고 결국엔 편안해졌다. 절대 내려놓을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이제는 내려놓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 해보기

“한 번 해봐.” 무척 좋은 말이다. 어쩌면 많은 일에 해답이 될 수 있는 말이다. 공연 팀과 관계 문제에 있어서 쩔쩔 메고 있을 때도 ‘한 번 마음을 열어보자, 한 번만 더’스킬 로 얼굴을 맞대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에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소심한 사람이 자신감을 좀 얻으려고 공연 팀에 들어온 것도 한 번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행동은 존경할 만하고 대단하다. 자신에게 도전해보는 거니까. 나는 철판 까는 걸 잘한다고들 한다. 인정한다. 근데 이것도 한 번 해보기의 힘이다. 버스에서 기사님께 인사를 한다든가 옆 사람에게 과자를 권한다던가. 내가 들으면 좋은 소리를 한 번 해본 적이 많다. 그럼 살면서 약간의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사도 그렇다. 나는 하자에서 얼굴을 마주 본 사람마다 거의 인사를 하고 다녔다.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만약 거절당하거나 실패하면 어떤가. 잃을 게 있지도 않은데 도전해본다고 잃는 건 없다.

 

공부

여는 글에서도 말했듯이 내 평생 공부는 이곳에서 처음이다. 내가 이곳을 16살 때 왔는데 그 전에는 아예 공부라는 개념이 없었다. 몸으로 움직이는 걸 정말 좋아하고 게임하는 것 이외에는 앉아있지도 못했던 내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느낀 이유는 내가 한 과제에 내 생각이 충분히 들어간 것 같지도 않고 항상 과제를 “했다고 말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무슨 생각만 하면 길게 못가고 한 5분 정도 생각 하다 내린 결론으로 글을 작성했다. 그래서 들었던 코멘트가 생각 하고 써라였다. 나름대로 생각하고 쓴 글이라고 반박을 해보니 생각도 아는 게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했다. 공부를 하면 내가 공부하는 비슷한 주제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성취감도 얻을 수 있다. 공부해서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난 공부를 했다. 처음 했던 공부는 개인연구주제였다. 생태를 주제로 정했고 아직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기후변화의 문제점들을 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게 되었고 자그맣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여러 명에서 같이 움직이려고 하는 현재는 준비 중인 프로젝트다. 수료 후에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연구주제 뿐 아니라 학교에서 했던 프로젝트들을 가지고 더 알아보며 생각을 숙성시키고 다른 친구들과 토론도 했다. 이제는 프로젝트가 없어도 내 의욕만 있으면 공부를 할 수 있다. 공부 방법을 찾는데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생태적 인간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때 내 지구에 대한 의식은 깨어났다. 주위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고 제안했고 나도 나만의 원칙을 세웠다. 종이컵은 되도록 쓰지 않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 아직까지 지구를 위한 소소한 원칙들이 습관화 돼서 지켜지고 있다. 학기가 끝나며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 프로젝트가 갑자기 끝나버려서 아쉬워하던 중 다음 학기에 이어서 ‘세계를 구하는 8명의 시인들: 시민문화 워크숍’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기후변화시대의 living literacy와 이어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는 여러 시인들이 생각하는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일, 시민이 하는 일들에 대해 듣고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내가 하고 있는 일, 생태에 관한 일들로 세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시민’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단 ‘생태’라는 단어도 홍성태 시인의 얘기를 듣고서 쓰게 된 단어인데 설명을 하자면 생태라는 단어는 일반 대화 속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단어를 별로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홍성태 선생님은 ‘생태적 민주화’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민주화는 원래 인간이 주가 되어 하는 정치를 뜻했는데 생태적 민주화라 하면 동식물, 자연, 인간 모두를 생각하며 정치를 하자는 뜻이 된다. 그리고 뉴스에서나 기사에서나 환경이라는 말을 많이 거론하는데 내 생각엔 “환경”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자연을 보며 쓰는 말이고 “생태”는 생물체가 서로를 보며 쓰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환경이라는 말 역시 생태적 민주화라는 개념과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생태’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고 사용하고 있다. 생태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이 지구로 움직이다

난 생태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 하고 열심히 수칙들을 지켰다. 그런데 지구의 문제점은 더 커져가고 이제는 종잡기 힘든 상태로 변했다. 지구의 사람들에게 탄소배급제가 실시되는 가능할 법한 소설도 나오고 여러 가지 환경에 관련한 프로그램이나 방송들도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여는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공부하며 머리만 커졌다. 그래서 움직이려 한다. 나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혼자 움직이기에는 생태가 얼마나 변할까. 역시 나 혼자 잘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려고 시도를 많이 해봤다. 내가 학기 중 시도해본 것들은 학교 게시판에 있는 기후변화의 living literacy란에 스크랩 해놓기, 친구들에게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권유하기, Buy Nothing Day 캠페인 포스터 만들어 뿌리기 등을 해봤다. Buy Nothing Day 캠페인 설명을 잠깐 하자면 매년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인데 되도록 소비를 하지 않고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포스터를 만들었었다. 이 포스터를 만들며 누가 왜 이 캠페인을 만들었고 한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움직이는데 있어서 용기가 된 것 중 하나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의 만남이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도 원래는 기후변화연구소로 하려다가 어떤 분이 꼭 행동을 붙여야한다며 행동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붙여진 이름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행동은 무척 중요하다. 사실 지금부터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지구가 엉망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아직은 평화로운 한국 같은 주위만 보지 말고 같이 지구로 움직이고 싶다.

 

판 읽기

사북사태는 작업장학교가 정선에 갔을 때 일어났던 큰일을 말한다. 사북은 정선에 있는 우리가 돌아다녔던 읍이다. 공연 팀은 정선 시장에 갔을 때 재미로 공연을 하나 하려고 했다. 하지만 퀄리티를 따지며 못하는 사람은 같이 안했으면 좋겠다고 누군가 말했고 이 말 때문에 상처받아서 마음도 다 상했었다. 하지만 이 때 놀 생각 하지 않고 그날 저녁에 있을 공연 연습을 하는 게 사실 옳았다. 왜 옳다고까지 말 하냐면 작업장학교는 정선예술마을의 예술가들에게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예술가들과 그 동네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않아서 약간 저기압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공연을 잘 해서 호응을 얻고 예술가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벽이 좀 허물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날 시장에서 한바탕 했기 때문에 공연을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게 ‘판을 보고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맥락을 잘 읽었더라면 정선시장에서 놀 생각은 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이랑 나눴던 대화들도 더 이해가 잘 됐을 것이고 정선에 가서 각자 생각할 거리나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맥락도 이해 못하고 일단 정선에 가고 본 사람들이 많아서 심지어 왜 간 건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맥락을 읽는 것, 판을 읽는다는 게 자신이 무슨 작업을 할 때, 어디를 가게 되었을 때 무척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 맥락을 이해하려면 사전조사 해봐야 할 것도 많고 상상도 잘 해봐야 한다.

또 하나 느낀 건 ‘과정과 결과의 조율’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판을 잘 읽지 못해서 라고 생각된다. 정선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어떤 예술가가 너무 과정을 즐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좌절했다. 정선시장에서도 결과를 못 보고 과정을 즐기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고 과정을 잘 살피고 맥락도 읽고 주위도 보며 결과로 걸어갔어야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 사태는 큰 교훈이 된 것 같았다. 맥락 읽기와 과정과 결과의 조율. 작업자로서 꼭 갖춰야 할 것.

 

ACT NOW

수료를 하고도 학교를 조금 더 하자를 나와야 한다. 글쓰기 프로젝트가 5월까지 진행될 것이고 아직 끝내지 못한 개인연구주제가 있다. 개인연구주제는 4월 달에 있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워크숍과 같이 가져갈 것이다. 연구소와 활동 하다보면 같이 지구로 움직이다를 더 잘할 수 있다. 내가 배우고 학습한 것들을 가지고 수료 후에도 여러 사람들과 같이 지구로 움직이고 싶다. 내가 생태적인 인간이란 걸 더 뚜렷하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내존재를 계속 알리고 퍼뜨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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