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판

 하자 작업장을 들어오면서 2가지 판이 형성되었다. 하나는 하자 작업장을 들어오면서 나의 문제로 자리 잡힌 공동체라는 판이 있고 또 하나는 하자 작업장이라는 판이 있다. 벤 다이어그램으로 봤을 때 하자라는 큰 판 안에 공동체라는 작은 판을 달고 들어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다.공동체를 우물이라고 느꼈고 좀 더 넓은 판에서 놀기를 원했던 내가 하자라는 커다란 판에 발을 담기도 전에 공동체라는 판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지금 나의 위치를 본다면 그 공동체라는 판에 들어갔던 것도 아니었고 그 두 가지 판에서 다리 한쪽씩을 걸치고 그 중간에서 머뭇거렸던 것 같다. 어느 한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뛰어들고 자신을 투신 한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민문화 워크숍을 하면서, 섶의 시인이 되어 길에서 벗어나 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내가 하고 있던 공동체 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나의 질문과 고민은 주니어를 들어오고 중간 에세이를 쓰면서 정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중간 에세이에 하고 싶었던 말을 풀어냈고 그것에 답을 내리긴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때 다짐했던 것들을 풀어 내지 못했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도 있고 자신에게 화도 난다.

각자의 판이 있고 그 것을 넓혀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것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듯 공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민문화 워크숍을 하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듣고 반복했지만 그것이 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감도 하기 싫다는 마음도 아닌 열정이 부족했고 그것에 대한 의심이었다. 하자 작업장에 들어오면서 좀 더 내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보다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고 멈추어 버렸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너에게 만족이란 질문을 다시 해보게 된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하자 작업장 안에서 내가 정말 만족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었다기보다는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이끌어 갔던 것 같다.

 저번 학기 중간 에세이에도 이렇게 쓴 것이 기억에 난다. ‘내가 있던 공동체는 우물이었다. 그래서 나왔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의 공동체를 찾고 만들어 나가야겠다.’ 몸은 밖으로 나왔지만 정신이나 생각은 그곳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자 했던 것들이고, 앞으로 살면서 그곳에서의 정신을 이어 살아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문제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내 현실에 직시하고 직면한다고 말했듯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것은 곧 하자에서의 생활을 말한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전부 모순처럼 느껴졌고 내가 말하는 것들이 그저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한 일회용 카드밖에 안된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어떤 것에 계속해서 끌려 다니고 그것에 어쩔 수 없이 만족하는 나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라는 생각에 왜? 라는 폭탄을 떨어트림으로써 질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가지고 들어온 공동체라는 판을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공동체라는 판이 아니라 하자 작업장이라는 큰 판에 뛰어들어 공부하고 경험 해 볼 때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판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섶 시의 시인으로써 지도 밖으로 다녀온 것처럼 내가 알고 있는 판이 아닌 새로운 판으로 뛰어 들고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하고자 했던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내가 나오기 전 가지고 있던 그 열정으로 대하고 마주하면서 좀 더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

 내가 하자에 들어오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도 교우 문제였다. 학교가 싫어서 떠났지만, 친구들과의 교류까지 끊기면서 혼자서 한다는 것에 실증을 느꼈고, 무엇을 하든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도시로 나오면서 내가 하자에 들어와서 내가 하고 들에 충실했었나. 라는 의심이 아닌 질문을 해본다.

 하자 안에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보따리를 풀어보자 라고 얘기했던 내가 생각난다. 타인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단순히 친구관계를 위해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니었고 서로의 고민 보따리를 풀어 보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를 맞대어 생각해 보고 서로에게 코멘트를 해주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 역시 힘들었던 부분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싶다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이번 학기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다짐 했던 것 중 하나가 예스맨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한번 해보려고 노력해보고, 그것에 빠지기 힘들어도 빠져보자 도전해 보자는 다짐이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이대 공연을 하고나서 무브가 나에게 했던 코멘트는 쫄지 마라였다. 네가 상상하고 있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것이 곧 현실로 된다고. 이것뿐만 아니라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뛰어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자를 마무리 짓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 어떤 결정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 에세이를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동체를 나온 것이 나의 의지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나와서 어떤 것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처음 생각은 3월에 한 학기 수료를 하고 한 달 정도 다시 공동체로 들어가 보려 했다. 내가 하자에서 공부하고 배웠 던 나의 생각이나 생활들을 다시 한 번 그곳에서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다시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 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내가 하자로 오면서, 공동체를 떠나면서, 도시로 나오면서 하고자 했던, 내가 상상했던 것들을 느껴보고 할 만큼 했는지 그리고 그것들에 처음 내가 나오면서 가지고 있던 마음처럼 열정적으로 마주하고 대했는지.

  <같은 하늘 다른 곳.>

태국 이동 학습.

  멜라와 메솟에 있으면서 내가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환경적으로는 개인적으로 매우 편했다. 끝없는 지평선과 그것을 이루고 있는 밭들이 나에게는 익숙했고 좋았다. 그곳이 자연가 가까워서 좋았고 또 다른 10대들과 함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너무 환경적인 부분만을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과하고 내 편한 것에 너무 만족 했고 그만큼 고민도 부족했던 것 같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너무 나의 자유로움을 들어내면서 지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내가 메솟과 멜라를 오가면서 그곳 10대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꿈이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 였다. 같은 십대로써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도 궁금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어떤 부분에서는 자극적인 질문이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들었기에 항상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곳에 있는 많은 10대들이 자기 부족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리더에 대해서 좀 더 듣고 싶었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롤 모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그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메솟과 멜라를 오가면서 그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자극을 주었다. 자신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와 꿈과 직업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나를 두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들의 꿈과 직업은 현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고 그 두개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들이 내게 말해준 자신들의 꿈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 )이지만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 )을 직업으로 갖고 싶다.

  나의 입장에서 풀어내자면 ‘음악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면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나 짓지 뭐.’ 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게 들려왔다.’ 음악을 한다는 것과 농사를 짓는 다는 것에 대해서 한 창 고민하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할지 몰랐던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기 전에 현실과 그 안에서의 직업 그리고 크게는 돈이라는 이야기가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신의 직업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그들에게는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 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쓰러웠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들이 현실로 인해서 2번째로 밀리는 것도 그렇고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도 그랬다. 하지만 그 생각 안에서 나에게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그럼 내가 마주 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 것인가? 지금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도 모르면서 남을 안쓰러워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같다.

  지금 나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자에서 했던 고민들에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공동체라는 개인의 고민으로 그것을 회피한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현실과 마주 한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만남 - 그것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것.> 

Culture exchange를 했던 날 저녁, 리뷰를 정리하면서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그냥 단순히 기억으로 남을까? 하나의 추억으로? 나는 이것이 너무 싫었다. 우리가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느끼고 배우는 부분이 클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면 그들도 그들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일상생활일 수도 있겠고 삶 자체일 수도 있다.

내가 있던 공동체는 한 달에 많으면 150명 정도의 외부인(손님들)이 오고 갔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항상 긴장해 있었고 항상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내게 남은 것은 그들이 떠나고 난 그 허전함과 허망함 뿐이었다. 나는 그 허전함과 허무함이 싫었고 그 감정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와 다른 점은 내가 ‘외부인’ 이라는 것이다.

메솟 방문이 우리 하자 작업장 뿐 아니라 이우학교부터 여러 단체들이 방문했다고 했다. 우리가 처음이 아이었으며 끝도 아니다. 이 점에서 어떻게 보면 우리도 지금까지 방문했던 많은 단체들 중 하나이고 그 단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이 아닌 같은 방문객으로써.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내가 느꼈던 그런 허전함 허망함을 그들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했던 그 허망함과 허무함은 그들이 왔다 감에 대한 허무함도 있었지만 내게 가장 컸던 허무함은 그들이 그저 손님으로써 왔다 갔다는 것이었고, 그들의 흔적이었다.

만남은 좋은 것이다. 그 대상이 서로 알건 알지 못하는 관계건 간에 만남으로써 나에게 또 다른 친구 혹은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남은 헤어짐이 있어야 완벽해 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만남은 단순히 한번 보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교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저 손님으로써 접대하는 입장으로써의 만남은 만남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그들에게 그런 허무함과 허망함을 안겨주기 보다는 어떠한 행위나 사물로써 그들에게 좀 더 다른 것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느꼈던 그런 허무함과 허망함을 그들에게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들에게 딱히 남겨 줬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은 없다. 돌아온 처음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고 오려고 했을까? 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내가 느낀 허무함이 아닌 함께 했다는 추억으로라도 그들에게 남기고 싶었고 남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너무 공동체 안에 있던 기억이나 경험들만을 가지고 갔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까지, 중간 에세이를 쓰고 난 이 시점에서도 내가 있었던 공동체 경험과만 비교했던 것 같다. 이번 여행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이런 생각들로 정리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보냈던 그 많은 시간들 안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들 그리고 그들이 내게 가르쳐준 춤 노래들, 그들하고의 exchange를 지속한다는 것이 내가 얻어오고자 했던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에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르쳐줬고 남겨줬던 모든 것들을 그들이 기억하고 추억한다면 그것 또한 내가 원했던 그런 만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이러한 허무함이나 허망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나 이런 것에 붙잡혀 있을 수도 없고 또 그러기도 싫다.

<미완>

<하자! 한다는 것>

 이번 3월 달이 끝나면 시즌 1이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이 마무리를 위해 8개월이란 시간을 쉼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이 글이 마무리 되어 탈고를 하고 나면 시즌 1이 종료된다 도시로 나오면서 하자작업장에 들어왔고 그 안에서 길 다면 길겠지만 짧다면 짧다고도 말할 수 있는 1년이란 시간을 보내왔다. 하지만 마무리 하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내가 하고 있는 그리고 해왔던 공부를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아직 막막하다. 그리고 다른 판으로 넘어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내가 알몸으로 도시로 나왔을 때처럼 다시 그렇게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나왔고 들어왔다. 그리고 시즌 1이 마무리 되는 이 시점에서 내가 정리해야 되는 부분도 있다. 전체적인 하자 생활 중에서 과연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지속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족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는 그 8개월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너무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놀려고 했던 것 같다. 도시에 나오는 것은 좋았지만 도시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많은 것을 내가 만들어 간다는 것이 힘들었다.

저번학기 에세이에는 내가 어떤 것이 부족하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썼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다. 이번 학기가 아지 끝나진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그 판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앞으로 음악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다는 것에,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혼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노력하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고 함께 배움으로써 얻어가는 것이다. 시즌 1이 끝나는 이 시점이 나에게는 워밍업을 마치는 기간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일들을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항상 고민하고 공부하며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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