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에 오기 전 나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도덕선생님의 수업에서 “하느님을 믿는 마을에서 간음을 해서 돌로 맞아 죽을 위기에 있는 여성을 본 예수가 여성을 감싸며 한 말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나와 이 여자를 돌로 쳐라' 그러자 사람들은 뜨끔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했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왜 예수가 한말을 듣고 사람들은 뜨끔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했던 걸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대해 도덕선생님이 말하길 ‘예수의 말이 그들의 양심을 자극을 시킨 거야. 양심은 무엇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양심을 속이려해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잘 인정 못하고 자신의 정당하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거든 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문제 중 하나가 이 부분이야.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잘 인정 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자신의 편함을 위해 양심을 어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그로인해서 많은 무고 사람은 피해를 받아. 그런 피해를 주는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잘 못 느끼고 산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양심을 속이지 않고 양심을 속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양심을 자극 시켜 주어야 돼.’라고 말씀하셨다.

도덕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면 교과서보다는 도덕선생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는 현실, 평등, 사회에서 문제되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런 도덕선생님을 보고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덕선생님의 수업이 끝나면 항상 도덕선생님이 한 얘기에 대해서 태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규와 도덕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내가 항상 하는 말은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잘살까?’였고 태규는 네가 아무리 사회에 대해서 문제에 대해서 부정한 다해도 너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거나 능력이 없으면 누구도 너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 것이라며 공부의 중요성을 거듭 얘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금 고민하고 있는 나는 현실, 사회적 이슈, 문제점 그래서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될까? 생각하고 고민했을 때에는 중학교 2학년 이 두 사람을 만나고부터 이다.

  중학교 3학년 나는 고등학교 진학문제에 고민하게 되었다. 동시에 ‘어떻게 먹고 살지?’ 라고 생각하며 막연함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중3 막바지가 다다랐을 때 첫 번째로 누나가 다니는 대안학교에 성적미달로 떨어지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 라는 고민은 더욱 절박하게 다가왔고 ‘공부를 했어야 됐었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 되?’라는 고민을 하면서 무기력해져만 갔다.
이후 그래도 안양공고에서는 괜찮은 과에 합격하게 되었다. 하지만 1차 소집 일 날 안양공고에 갔을 때 내가 본 그곳은 중학교 때 생활의 연장선이었고 중학교 때 보다는 놀기야 더 놀고 못 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또 중학교 때처럼 1학년 때 정신없이 놀고 2학년 때 공부를 조금씩 하게 될 것이고 3학년 때 정신을 차려 공부한다고 해도 주위를 보면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막막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결국 지난날의 후회를 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면 마음을 먹고 공고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되잖아?’ 묻는 다면 주위에 형들이 다들 그렇게 실업계에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실업계에 가면 공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또 주위에 친구들이 많아 휩쓸려 다닐게 뻔했다. 그래서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볼까? 라는 생각도 해보고 공부해서 인문계로 옮길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엄마를 통해 하자를 듣게 되었고 엄마는 하자를 인가는 안 받았지만 자기를 알아가며 자신이 하고 싶을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안양공고 보다는 하자가 낳겠다. 라고 생각하며 오게 되었다.

하자에 있는 나

 

하자에 오고 나서 나는 이전에 나를 무기력하게 했던 질문인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잊게 되는 듯했다. 아니, 잊고 지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길 찾기 과정이 끝나고 얼마 머지않아 문득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라는 질문이 다가 왔을 때 다시 불안해하며 거기에 겹쳐서 주니어를 할 것인가, 안 할 것 인가?를 두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을 했을 때 ‘주니어를 한다면 내안에서는 주니어에서 네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데?’ 라는 질문이 들었고 주니어를 안 한다면 나는 검정고시와 수능 공부를 해야 했고 그 속에서 ‘왜 지금 공부를 하려고 하는 데? 공부해서 어떤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데?’나는 질문들이 나왔다.

그랬을 때 질문에 답하기 쉬운 것은 주니어를 안 하고 검정고시와 수능 공부를 하는 것이 다. 왜냐하면 지금 공부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돈 이라는 답에 해결이 되었고 공부를 해서 어떤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데? 라는 질문에도 역시 돈을 잘 벌거나 안전한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검정고시와 수능공부는 아직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주니어를 한다는 것에 마음을 돌렸고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나는 대학을 늦게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한번해보자라는 말로 주니어과정을 하는 것을 합리화 시켰다.

달라짐


하자에 있으면서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 데?’, ‘너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등. 내가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질문이다. 또 초반에 사이다와 이야기를 하면서 ‘너는 자꾸 너의 얘기를 안 해?’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 나는 ‘너는’이라는 것에 신경이 쓰였고 마음속으로 툭 한번 ‘나는 뭐지?’라는 질문을 하며 점점 ‘나’라는 것에 신경을 쓰다 그럼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정체성이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도 있지만 살아가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랬을 때 주니어과정 초반 때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라고 묻는 다면 말할 수 있던 것은 내 이름과 내의 국적뿐이었다. 하지만 Poetry Afternoon 시간에는 시, 개인 주제연구에서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연구하면서 최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는 그 최시인이라는 별명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는 시인이라는 것을 정체성에 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했다. 그러면서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시민 문화 워크숍에서 나온 질문인 ‘너는 앞으로 어떤 시민으로 살아갈 것 인가?’에 나는 중간에세이에 매개 역할을 하면서 누군가를 깨우쳐 주거나, 생각하고 있던 것을 분명하게 해주어 그들이 하려던 일을 촉진시켜주는 촉매자가 되려한다고 답했고 그와 같이 최시인도 함께 품어 가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가 길 찾기를 마치고 주니어에 올라왔을 때 사이다로부터 ‘길 찾기 때의 너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을 적 있다. 그랬을 때 나는 그 전의 나는 어떻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사이다에게 길 찾기 때의 나는 어땠고 현제 나는 어떤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때 사이다는 ‘자서전이나 영등포프로젝트를 정리를 하는 단계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내일까지 해온다고 했고 다 못써왔다 해도 정리된 부분을 설명하려고 또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상황을 봐서 물어보거나 사전을 찾아서 알아가는 모습도 있었다. 그렇게 봤을 때 너는 성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성실함이라는 것을 어느 곳에서 든 볼 수 없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 하며 이 때서야 나의 변한 모습을 알게 되었고 성실함을 다시 되찾는 것 보다는 모든 것에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에세이를 쓰고 하자에 왔을 때 나는 사이다로부터 들었던 코멘트와 비슷한 질문인 '최시인 어디 갔어?' '최시인으로 돌아가'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때와 같이 ' 최시인이 어땠 길래?'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들에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추긍하기 시작했다. 

최시인은 무엇이 었나?  

나를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것들은? 나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 나를 봐왔던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

나로부터 시작된 것

먹고 살기

 

나는 먹고 살기에 얼마나 절실했나?

내가 먹고 살기에 대해서 말을 할 때면 항상 돈과 연결 되어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부모님이 고생한다는 것을 부모님에 입으로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반복적으로 들어왔고 또 의식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가족들에게 돈을 달라고 할 때면 항상 꺼렸다. 또 주위친구들은 다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가족들에게 말하면 사주는 것을 보고 내가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이라든지, 돈벼락을 맞고 싶다는 생각들을 자주하며 먹고 살기에 대해서 고민할 때면 커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처음 하자에 와서도 먹고 살기에 대해서 고민했을 때 돈이라는 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주니어과정을 통해 서울대야구부이야기(해야 되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도 같이하는), 하고 싶은 일하며 먹고 살기에 대해서 받아드리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서 먹고 살기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처음 서울대 야구부이야기는 서울대에 야구부가 있는 데 그 야구부는 항상 출전을 할 때 매번 꼴찌를 했다. 하지만 서울대야구부는 항상 출전을 신청했고 그 사실을 안 사람이 서울대야구부를 찾아가 왜 매번 꼴찌를 하는 데 왜 항상 출전을 신청 하냐고 물었다. 그때 서울대야구부는 야구를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다. 이에 덧붙여 히옥스가 말하기를 서울대야구부원들에게 야구는 승패와 크게 상관없이 즐겁기에 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해야 되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의 비중은 크지 않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왜 당장 답하려 했는가?

 

메솟에 있으면서 코멘트 중 ‘지금 구지 답하려 안 해도 돼’라는 코멘트가 있다. 그 코멘트를 받고 나는 ‘왜 바로 답하려고 하는 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답하려고 하는 버릇이 생긴 것을 보아하니 길 찾기 때부터이다. 하자에 오게 되니 전 보다 글과 말하는 것을 많이 했고 글을 쓰면서 나는 문법, 문장 구조, 문맥, 맞춤법까지도 잘하는 게 없었고 말을 할 때면 더듬더듬하며 잘 정리가 안 되어 이야기를 했고 그런 나를 보며 열등함을 느꼈다. 그리고 하자는 나에게는 전에 생각지 못한 질문들과 ‘그래서 네 생각은 무엇인데?’등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근본을 묻는 질문들을 받으면서 남들에게서는 느끼지 않았지만 내게는 말을 못하면 바보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대부분 답하려했다.

바로 답하려는 버릇이 생긴 후부터 나는 전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버릇도 함께 생겨났다.

하지만 이 문제를 의식을 못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정리가 아직 덜됐어요. 라고 말하는 이유

 

말투와 표정 행동에 대해서 영향을 만이 받는 나

사회적기여  
개기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시민문화 워크숍

기호의 성문화
기호의 성문화를 통해 나는 ‘성’에 대한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성적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함이라는 것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고 밤비를 통해서 패미니즘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성에 대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존중이라는 것, 서로 다르다는 것
지금 한국정부에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낙동강
나는 어떤 사람으로 있을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가?
기성세대 탈 서태지 세대 warm 세대
전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세대

 

  왜 실천이 안 이루어 졌는가?
나는 사회적이슈, 문제 점, 생태문제 등 이러한 사실들을 보고 듣고 현장에 가서 느껴보기도 하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고 그냥 머리만 커지고 몸은 그대로 인 것처럼 보였다.


중간에세이를 끝내고

 나는 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었나?
일 년 동안 나에게 하자는 무엇이었나?
그래서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내가 하자를 떠난 다는 게 두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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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지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