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이바쇼

 

Keyword : 공간, 이웃, 문화

 

소싯적 나는 동물농장 주인의 아들로 자랐다. 게임기랑 노는 것 보다 오리를 몰고 다니고, 소를 타고 노는 것이 더 익숙했다. 지금은 폐허가 된 탓에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되어버렸지만. 이젠 더 이상 오리를 쫓아다닐 일도 없다. 이젠 소보다 버스와 지하철을 더 많이 타게 되었다. 그야 내가 더 이상 농장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고, 도시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상은 변화되었다.

 

우리 집 앞마당과 뒷마당에 농작물을 심는다. 작년엔 옥수수를 심었었는데 누군가에게 납치 된 적도 있다. 그런 탓인지 민심이 흉흉해졌고, 내 것을 사수하기위해 경계한다. 대표적인 예로 내 주변 이웃은 자기 집 앞에 남이 주차하는 것은 용납 못 하는 태도가 있다. 그런 이웃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이웃의 정, 마을의 인심은 이제 모두의 마음속 따듯한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걸까?

 

어떤 환경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에 따라 '마을'이라는 공간이 생기거나, 혹은 단순히 거주지역이 되는 것처럼 공간은 사람의 삶의 양식을 좌우한다. 내가 서촌에서 알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도시에서 소박한 일상이 모인 지역은 특별해보이기 그지없다. 마치 [우리가 잊은 정을 도시에서 만날 수 있다니!] 라는 식의 씁쓸한 기쁨 같은 오묘한 감정과 함께 말이다.

 

어떤 공간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먼저 그 장소의 모습을 생각한다. 홍대를 예로 들자면 젊은이들의 거리, 즐길게 가득한 문화적 요소들 등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 있다. 어떠한 요소든 지간에 어딘가에 머무를 이유가 있다.

서촌은 아주 평범하다. 밖에 뛰노는 아이들, 밖에 나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르신들, 학생들의 하굣길 등 쉽게 볼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습들이 있다. 범상치 않은 장면은 없지만 그런 평범함이 도리어 특별함으로 읽혀진다. 흔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시라는 장소를 생각할 때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니까. 도시의 팔각정은 언제나 비어있고 모두들 제 갈 길에 바쁘지만 서촌은 그렇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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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작업자들이 서촌으로 모이는가?

Q. 작업자들이 각별하게 생각하는 서촌. 왜?

 

서촌은 코너를 돌 때마다 공간이 바뀌는 느낌이다. 일반 사무실쯤 되어 보이는 크기의 정류소에 덩그러니 놓인 정유기. 그 옆길에는 옷가게, 공방, 중국집, 친환경 물품 판매점, 비디오 대여점, 예쁜 카페, 구멍가게, 신문사, 아주 오래된 서점 등. 마치 이 거리는 대형 마트의 카테고리를 옆으로 뉘어놓은 느낌이었다. 그 사이에 오래되고 새로 지은 건물들이 얽히고 설 켜서 말이다.

그 사이에 이름 없는 간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시선을 끈다. 다 떨어지는 옛날 문짝에 찢어진 창호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공간을 꾸미고 있으니 이 마을의 생김새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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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지' 자연디자이너 이유정]

 

만들지는 재료부터 결과물까지 자연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을 이용해 디자인을 작업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사실 개인의 작업공간으로 보이지만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곳이기도 하다. 때 마침 다녀가신 할아버님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알고 보니 깨진 조각을 건네주시려 오셨다고 한다. 이렇게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물건들을 재활용하게 만드는 것이 만들지 자연디자이너인 이유정씨의 역할이다.

 

[틈새 사진 1)지난 번 이 길을 지날 때 한 몸에 시선을 받던 고양이는 낮잠을 잘 시간이라 어디 가셨단다.]

 

"이쪽 마을 분들이요? 오지랖들이 아주 넓으시죠!"

(+사진)

만들지의 작업물로는 한국의 야생화를 그린 책갈피와 휴지의 일회성과 방수가 되지 않는 손수건의 결함을 보완한 손수건집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그 밖에도 하고 있는 다른 작업은 서촌의 파편과 재료들을 이용해서 문을 만들고 있어요. 저기 보이는 문들도 버려진 틀이었는데 다시 리사이클링 한 것이죠.

 

젊은이들이 홍대를 중심지로 시작하여 문화 작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에 젖은 젊은이들이 ‘홍대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모여들다 보니 점차 소비의 거리, 유흥의 대표 공간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서촌에서는 부대끼고 사는 것을 보면 젊은이들이 점거하고 판치는 느낌은 아니지만, 여기는 어떻게 될까?

 

원래는 홍대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저를 비롯한 친구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홍대의 대부분의 공간이 유흥가로 바뀌면서 정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다른 작업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수소문 끝에 서촌을 알게 된 거죠.

 

서촌은 작업하기 굉장히 좋은 공간이에요. 굉장히 재미있지요. 앞서 말하신 것과 같이 건축도 다양하고, 흐르는 문화들도 다양해요. 조용히 작업하기도 좋은 공간이구요. 2층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그런 건물의 형식은 근대시대의 대표적인 상가 건물이에요. 근대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한옥을 2층으로 짓기 시작했어요. 2층으로 짓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콘크리트를 사용했었다고 하지요. 재미있는 것은 지붕을 기와로, 창문을 유리로 한다는 거예요. 복합적인 형태죠?

서촌에는 적산가옥이라는 형식의 벽돌집이 많아요. 이건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식 가옥인데요. 서촌에는 아직 이런 적산가옥이 많아요. 적산가옥의 형태는 2층에 좁고 나무 계단 등이 있는데 변형되거나 훼손되어 큰 모양이나 부분만 남아있는 집들이 많아요.

 

'백년골목'이라고 아세요? 뒤쪽 길에 가면 백 년 전의 모습을 유지해오고 있는 골목이 있어요. 오랜 시간동안 지켜져 온 것은 건축물이나 어떤 물질들이 아니고, 삶의 형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의 집 앞에 꽃을 매일 가꾸는 주민의 집이 있어요. 이렇듯 이 마을 사이에서는 주민들끼리만 아는 재미있는 비밀들이 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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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골목은 꽤 짧은 길이였습니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어요.

좀 눈에 띄었던 것은, 굉장히 낡은 집이 있는 반면 그 바로 옆집은 새로 지은 한옥이 있어 대조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100년이란 느낌은, 기대했던 것만큼 실감나게 드러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100년 전 골목을 다녀온 뒤, 대체 100년이란 것을 어떤 개념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혀서

‘만들지’로 돌아가 다시 질문했습니다.

100년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습관의 변화가 크지 않고, 먹던 걸 먹고, 하던 걸 하고, 살던 사람들이 살며, 새로운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와도 원래 그 골목의 모습에 스며들고……. 그런 걸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큰 개발이 없고, 그 골목의 생활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을 그냥 100년이라 칭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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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제품 제작/판매 공간 리즈솝RIZSOAP 변진숙 대표님

Q. 수소문 끝에 '문화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저희는 마을공동체 ‘품애’에 소속되어 있어요.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공동체 속에서 무언가를 하자'는 거예요. 문화놀이터는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 마을에서 재미있게, 잘 지내보자'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들과 함께 그렇게 하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지역에는 작가들도 많이 살고, 공방들도 많고, 자기 작업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뭔가를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이 프로젝트는 홍대 프리마켓과는 조금 달라요. 우리는 작업을 하는 작가의 그룹은 아니에요. 그걸 지향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그게 매개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이 마을의 작업자들이 핸드메이드, 리사이클링을 하고 있었고, 제가 하는 것도 친환경에 가까운 것들이다 보니 가치관들이 맞아떨어졌어요. 그래서 공유했던 가치관들을 알리고, 사람들을 하여금 관심을 갖게 하려 했어요.

그런데 이왕이면 우리끼리 놀지 말고 다 같이 놀자는 거예요. 우리는 자기 작업을 하지 않는 일반주민들도 작업자로 생각해요. 집에서 혼자 무언가를 만들면 똑같이 작업의 일환이 되는 거고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동네의 작가를 발굴하는데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이 벼룩시장이었고요. 문화놀이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우리가 하려고 했었던 것이 ‘놀이터’이기 때문이에요. 외부에 가서 무언가를 얻어오는 것이 아니고 외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와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끄집어내자’라는 거예요. 다 같이 재미있게 놀자는 거지요.

다만 예쁜 동네를 만들자, 이런 취지는 절대 아니거든요? 그냥 있는 것을 내보이자. 그런 것을 내보였을 때 우리는 살아가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거고, (지역에 대한 애착이야 다른 동네에 비해서 워낙 크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건) 지역에 대한 애착을 더 느낄 수 있을 거지요.

 

초기에는 작가그룹으로 시작되었는데요. 당시엔 단순히 우리를 ‘아 저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인식에서는 좀 벗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지향하는 것은 확대 된 거죠. 마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또 우리 스스로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다보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도 일치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같은 경우에도 다른 곳을 섭외한 적은 없어요. 이 마을에 독립 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가 있거든요. 처음에는 그 곳으로 가서 문의를 했고, 인디스토리에서도 아주 호의적으로 여러 부분을 지원해주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목표하는 대상이 어린 아이들과 가족이었기 때문에 인디영화로는 포괄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이왕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 동네 ‘명필름’이 있는 거죠. 그래서 문을 두드렸는데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지역을 위해서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해주셔서 실제 상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틀 동안 한 600명 정도 주민들이 영화를 보셨어요. 그것도 자치회관이나 여기 평일에는 제공되지 않는 교회, 이런 곳들을 빌려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거죠. 영화제는 기획을 또 할 거예요. 앞으로는 인디영화 쪽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겠죠?

 

문화라는 것이 되게 포괄적인 것 같으면서도 추상적인 것 같더라고요. 즐길 수 있고, 뭔가 생활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문화라고 한다면 내가 그냥 방안에 썩혀놓았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물물교환을 하는 것 자체도 문화예술인 것 같아요. 또한 뭔가 이름 있는 작가의 그림 전시를 본다든가 산다던가 하는 것도 문화예술일 수 있는데, 문화놀이터의 취지는 '동네에 맞는 문화를 공유하자'는 거예요. 그 정도죠.

 

Q. 주민들의 반응은 굉장히 호의적인 것 같네요.

A. 네, 아직까지는 좋으신 것 같고요.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네? 누구 엄마네? 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기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것에는 호의적인 것 같아요. 저희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우리가 뭔가 전문가 집단이라는 것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아요. 작업을 하더라도 같이 하려고 하구요. 그래서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열심히 한 것을 선보이듯이 와서 보고 구경하라는 의미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아요.

 

Q. 이쪽 지역에는 어떤 경로로 들어오시게 된 것인가요?

A. 저희 남편이 이쪽지역 토박이예요. 원래부터 이 지역은 알고 있었고, 이쪽에 집이 나지 않아서 2년을 기다렸어요. 그런 다음에 겨우 입주하게 된 거죠.

 

Q. 이 마을이 좋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주민들의 관심은 많지만 간섭이 심하지 않고, 무심한 척 하지만 항상 주시한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작업하기에도 좋고요. 때문에 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곳이 상업공간인 것은 맞거든요? 하지만 완전히 이익을 위해서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공방들이 들어오는 것이 (상업적인 면에서 보면 똑같은 수도 있겠지만) 다른 기업들이 들어오는 것 보다 그래도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저희들은 해요. 그게 얼마나 성공적으로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위해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거예요.

 

Q. 사실은 저희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소소한 것'을 이해하고 도시 속 마을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을 하는 것이거든요.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들을 보면서 이 마을을 탐색하고 있어요. 저도 서촌이 대단하게 격이 다른 마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안의 주민들과 작업자들이 맺는 관계, 예를 들어서 사랑방에 오가면서 소식을 주고받고 물건을 나누고 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마을'이라는 느낌을 계속 받아요. 저희 팀 잡지 가제가 '여기는 아직 하늘이 보이는 동네다'인데요. 서촌이 한옥개발지역, 고층빌딩건설제한지역이라는 공간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내세운 것도 있지만 그런 장소에서 사는 주민들의 관계가 빡빡하지 않고, 야박하지 않고 서로 둥글게 잘 지내며 살아가시는 것 같아서 그런 제목을 짓기도 했어요. 이 공간을 조사할수록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그 안에 사시는 분들은 어떨까? 라는 질문이 계속 드는 거죠. 외부인이니까 별달리 알 도리가 없지요.

A. 현재 이 마을이 '세종마을'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어요. 이 지역은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아요. 서촌이 갑자기 세종마을로 바뀌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생각이 드는 거죠.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죠. 하지만 여전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촌'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서촌에 오는 거지, 세종마을에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이렇게 서촌으로 불리는데 작업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문화작업을 벌이고, 서촌이 계속 서촌으로 불리게 될 명분을 계속 제공하는 역할, 그런 거죠.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하는 이유는 이곳이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동네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설령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좋아서 하기 때문에 계속 이 프로젝트를 잇고 있는 거죠. 대대로 프로젝트를 돈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래 못가요. 그리고 우리 같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자발성 없이는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저희는 주민과의 소소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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