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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주민들의 이바쇼 Keyword : 공간, 이웃, 문화 소싯적 나는 동물농장 주인의 아들로 자랐다. 게임기랑 노는 것 보다 오리를 몰고 다니고, 소를 타고 노는 것이 더 익숙했다. 지금은 폐허가 된 탓에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되어버렸지만. 이젠 더 이상 오리를 쫓아다닐 일도 없다. 이젠 소보다 버스와 지하철을 더 많이 타게 되었다. 그야 내가 더 이상 농장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고, 도시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상은 변화되었다. 우리 집 앞마당과 뒷마당에 농작물을 심는다. 작년엔 옥수수를 심었었는데 누군가에게 납치 된 적도 있다. 그런 탓인지 민심이 흉흉해졌고, 내 것을 사수하기위해 경계한다. 대표적인 예로 내 주변 이웃은 자기 집 앞에 남이 주차하는 것은 용납 못 하는 태도가 있다. 그런 이웃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이웃의 정, 마을의 인심은 이제 모두의 마음속 따듯한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걸까? 어떤 환경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에 따라 '마을'이라는 공간이 생기거나, 혹은 단순히 거주지역이 되는 것처럼 공간은 사람의 삶의 양식을 좌우한다. 내가 서촌에서 알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도시에서 소박한 일상이 모인 지역은 특별해보이기 그지없다. 마치 [우리가 잊은 정을 도시에서 만날 수 있다니!] 라는 식의 씁쓸한 기쁨 같은 오묘한 감정과 함께 말이다. 어떤 공간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먼저 그 장소의 모습을 생각한다. 홍대를 예로 들자면 젊은이들의 거리, 즐길게 가득한 문화적 요소들 등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 있다. 어떠한 요소든 지간에 어딘가에 머무를 이유가 있다. 서촌은 아주 평범하다. 밖에 뛰노는 아이들, 밖에 나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르신들, 학생들의 하굣길 등 쉽게 볼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습들이 있다. 범상치 않은 장면은 없지만 그런 평범함이 도리어 특별함으로 읽혀진다. 흔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시라는 장소를 생각할 때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니까. 도시의 팔각정은 언제나 비어있고 모두들 제 갈 길에 바쁘지만 서촌은 그렇게 달랐다. ----------------------------------------- Q. 왜 작업자들이 서촌으로 모이는가? Q. 작업자들이 각별하게 생각하는 서촌. 왜? 서촌은 코너를 돌 때마다 공간이 바뀌는 느낌이다. 일반 사무실쯤 되어 보이는 크기의 정류소에 덩그러니 놓인 정유기. 그 옆길에는 옷가게, 공방, 중국집, 친환경 물품 판매점, 비디오 대여점, 예쁜 카페, 구멍가게, 신문사, 아주 오래된 서점 등. 마치 이 거리는 대형 마트의 카테고리를 옆으로 뉘어놓은 느낌이었다. 그 사이에 오래되고 새로 지은 건물들이 얽히고 설 켜서 말이다. 그 사이에 이름 없는 간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시선을 끈다. 다 떨어지는 옛날 문짝에 찢어진 창호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공간을 꾸미고 있으니 이 마을의 생김새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만들지' 자연디자이너 이유정] 만들지는 재료부터 결과물까지 자연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을 이용해 디자인을 작업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사실 개인의 작업공간으로 보이지만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곳이기도 하다. 때 마침 다녀가신 할아버님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알고 보니 깨진 조각을 건네주시려 오셨다고 한다. 이렇게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물건들을 재활용하게 만드는 것이 만들지 자연디자이너인 이유정씨의 역할이다. [틈새 사진 1)지난 번 이 길을 지날 때 한 몸에 시선을 받던 고양이는 낮잠을 잘 시간이라 어디 가셨단다.] "이쪽 마을 분들이요? 오지랖들이 아주 넓으시죠!" (+사진) 만들지의 작업물로는 한국의 야생화를 그린 책갈피와 휴지의 일회성과 방수가 되지 않는 손수건의 결함을 보완한 손수건집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그 밖에도 하고 있는 다른 작업은 서촌의 파편과 재료들을 이용해서 문을 만들고 있어요. 저기 보이는 문들도 버려진 틀이었는데 다시 리사이클링 한 것이죠. 젊은이들이 홍대를 중심지로 시작하여 문화 작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에 젖은 젊은이들이 ‘홍대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모여들다 보니 점차 소비의 거리, 유흥의 대표 공간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서촌에서는 부대끼고 사는 것을 보면 젊은이들이 점거하고 판치는 느낌은 아니지만, 여기는 어떻게 될까? 원래는 홍대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저를 비롯한 친구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홍대의 대부분의 공간이 유흥가로 바뀌면서 정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다른 작업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수소문 끝에 서촌을 알게 된 거죠. 서촌은 작업하기 굉장히 좋은 공간이에요. 굉장히 재미있지요. 앞서 말하신 것과 같이 건축도 다양하고, 흐르는 문화들도 다양해요. 조용히 작업하기도 좋은 공간이구요. 2층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그런 건물의 형식은 근대시대의 대표적인 상가 건물이에요. 근대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한옥을 2층으로 짓기 시작했어요. 2층으로 짓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콘크리트를 사용했었다고 하지요. 재미있는 것은 지붕을 기와로, 창문을 유리로 한다는 거예요. 복합적인 형태죠? 서촌에는 적산가옥이라는 형식의 벽돌집이 많아요. 이건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식 가옥인데요. 서촌에는 아직 이런 적산가옥이 많아요. 적산가옥의 형태는 2층에 좁고 나무 계단 등이 있는데 변형되거나 훼손되어 큰 모양이나 부분만 남아있는 집들이 많아요. '백년골목'이라고 아세요? 뒤쪽 길에 가면 백 년 전의 모습을 유지해오고 있는 골목이 있어요. 오랜 시간동안 지켜져 온 것은 건축물이나 어떤 물질들이 아니고, 삶의 형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의 집 앞에 꽃을 매일 가꾸는 주민의 집이 있어요. 이렇듯 이 마을 사이에서는 주민들끼리만 아는 재미있는 비밀들이 좀 있지요. ------------------------------------------------- [100년 전 골목은 꽤 짧은 길이였습니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어요. 좀 눈에 띄었던 것은, 굉장히 낡은 집이 있는 반면 그 바로 옆집은 새로 지은 한옥이 있어 대조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100년이란 느낌은, 기대했던 것만큼 실감나게 드러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100년 전 골목을 다녀온 뒤, 대체 100년이란 것을 어떤 개념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혀서 ‘만들지’로 돌아가 다시 질문했습니다. 100년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습관의 변화가 크지 않고, 먹던 걸 먹고, 하던 걸 하고, 살던 사람들이 살며, 새로운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와도 원래 그 골목의 모습에 스며들고……. 그런 걸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큰 개발이 없고, 그 골목의 생활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을 그냥 100년이라 칭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친환경 제품 제작/판매 공간 리즈솝RIZSOAP 변진숙 대표님 Q. 수소문 끝에 '문화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저희는 마을공동체 ‘품애’에 소속되어 있어요.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공동체 속에서 무언가를 하자'는 거예요. 문화놀이터는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 마을에서 재미있게, 잘 지내보자'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들과 함께 그렇게 하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지역에는 작가들도 많이 살고, 공방들도 많고, 자기 작업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뭔가를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이 프로젝트는 홍대 프리마켓과는 조금 달라요. 우리는 작업을 하는 작가의 그룹은 아니에요. 그걸 지향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그게 매개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이 마을의 작업자들이 핸드메이드, 리사이클링을 하고 있었고, 제가 하는 것도 친환경에 가까운 것들이다 보니 가치관들이 맞아떨어졌어요. 그래서 공유했던 가치관들을 알리고, 사람들을 하여금 관심을 갖게 하려 했어요. 그런데 이왕이면 우리끼리 놀지 말고 다 같이 놀자는 거예요. 우리는 자기 작업을 하지 않는 일반주민들도 작업자로 생각해요. 집에서 혼자 무언가를 만들면 똑같이 작업의 일환이 되는 거고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동네의 작가를 발굴하는데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이 벼룩시장이었고요. 문화놀이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우리가 하려고 했었던 것이 ‘놀이터’이기 때문이에요. 외부에 가서 무언가를 얻어오는 것이 아니고 외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와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끄집어내자’라는 거예요. 다 같이 재미있게 놀자는 거지요. 다만 예쁜 동네를 만들자, 이런 취지는 절대 아니거든요? 그냥 있는 것을 내보이자. 그런 것을 내보였을 때 우리는 살아가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거고, (지역에 대한 애착이야 다른 동네에 비해서 워낙 크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건) 지역에 대한 애착을 더 느낄 수 있을 거지요. 초기에는 작가그룹으로 시작되었는데요. 당시엔 단순히 우리를 ‘아 저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인식에서는 좀 벗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지향하는 것은 확대 된 거죠. 마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또 우리 스스로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다보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도 일치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같은 경우에도 다른 곳을 섭외한 적은 없어요. 이 마을에 독립 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가 있거든요. 처음에는 그 곳으로 가서 문의를 했고, 인디스토리에서도 아주 호의적으로 여러 부분을 지원해주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목표하는 대상이 어린 아이들과 가족이었기 때문에 인디영화로는 포괄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이왕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 동네 ‘명필름’이 있는 거죠. 그래서 문을 두드렸는데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지역을 위해서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해주셔서 실제 상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틀 동안 한 600명 정도 주민들이 영화를 보셨어요. 그것도 자치회관이나 여기 평일에는 제공되지 않는 교회, 이런 곳들을 빌려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거죠. 영화제는 기획을 또 할 거예요. 앞으로는 인디영화 쪽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겠죠? 문화라는 것이 되게 포괄적인 것 같으면서도 추상적인 것 같더라고요. 즐길 수 있고, 뭔가 생활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문화라고 한다면 내가 그냥 방안에 썩혀놓았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물물교환을 하는 것 자체도 문화예술인 것 같아요. 또한 뭔가 이름 있는 작가의 그림 전시를 본다든가 산다던가 하는 것도 문화예술일 수 있는데, 문화놀이터의 취지는 '동네에 맞는 문화를 공유하자'는 거예요. 그 정도죠. Q. 주민들의 반응은 굉장히 호의적인 것 같네요. A. 네, 아직까지는 좋으신 것 같고요.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네? 누구 엄마네? 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기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것에는 호의적인 것 같아요. 저희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우리가 뭔가 전문가 집단이라는 것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아요. 작업을 하더라도 같이 하려고 하구요. 그래서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열심히 한 것을 선보이듯이 와서 보고 구경하라는 의미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아요. Q. 이쪽 지역에는 어떤 경로로 들어오시게 된 것인가요? A. 저희 남편이 이쪽지역 토박이예요. 원래부터 이 지역은 알고 있었고, 이쪽에 집이 나지 않아서 2년을 기다렸어요. 그런 다음에 겨우 입주하게 된 거죠. Q. 이 마을이 좋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주민들의 관심은 많지만 간섭이 심하지 않고, 무심한 척 하지만 항상 주시한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작업하기에도 좋고요. 때문에 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곳이 상업공간인 것은 맞거든요? 하지만 완전히 이익을 위해서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공방들이 들어오는 것이 (상업적인 면에서 보면 똑같은 수도 있겠지만) 다른 기업들이 들어오는 것 보다 그래도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저희들은 해요. 그게 얼마나 성공적으로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위해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거예요. Q. 사실은 저희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소소한 것'을 이해하고 도시 속 마을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을 하는 것이거든요.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들을 보면서 이 마을을 탐색하고 있어요. 저도 서촌이 대단하게 격이 다른 마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안의 주민들과 작업자들이 맺는 관계, 예를 들어서 사랑방에 오가면서 소식을 주고받고 물건을 나누고 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마을'이라는 느낌을 계속 받아요. 저희 팀 잡지 가제가 '여기는 아직 하늘이 보이는 동네다'인데요. 서촌이 한옥개발지역, 고층빌딩건설제한지역이라는 공간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내세운 것도 있지만 그런 장소에서 사는 주민들의 관계가 빡빡하지 않고, 야박하지 않고 서로 둥글게 잘 지내며 살아가시는 것 같아서 그런 제목을 짓기도 했어요. 이 공간을 조사할수록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그 안에 사시는 분들은 어떨까? 라는 질문이 계속 드는 거죠. 외부인이니까 별달리 알 도리가 없지요. A. 현재 이 마을이 '세종마을'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어요. 이 지역은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아요. 서촌이 갑자기 세종마을로 바뀌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생각이 드는 거죠.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죠. 하지만 여전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촌'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서촌에 오는 거지, 세종마을에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이렇게 서촌으로 불리는데 작업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문화작업을 벌이고, 서촌이 계속 서촌으로 불리게 될 명분을 계속 제공하는 역할, 그런 거죠.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하는 이유는 이곳이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동네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설령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좋아서 하기 때문에 계속 이 프로젝트를 잇고 있는 거죠. 대대로 프로젝트를 돈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래 못가요. 그리고 우리 같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자발성 없이는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저희는 주민과의 소소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2011.12.01 22:09:55
요즘사람들은 도시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일단 빌딩의 숲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또한 도시하면 빌딩의 숲을 떠올렸었다. 점점 오래된 동네들이 새롭게 아파트나 빌딩으로 탈바꿈을 할 때 서촌에 갔다. 서촌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요즘 도시에서는 보기힘든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중에서 재미있게 본 것이 바로 하늘이 보이는 동네라는 것이 였다. 도시를 다니면서 느끼는 답답함이 아닌 골목을 다니면서 느꼇던 시원함과 쾌적함이 나에게는 너무 새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곳은 건물이 낮고 작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 작은 여관, 작은 서점등을 보게 되면서 나는 이부분에 점점 흥미를 얻었고 이부분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대오서점같은 경우에는 예전부터 상당히 유명하고 티비에서도 많이 나오고 워낙이 유명하고 60년이라는 오랜시간 동안 있었던 서점이다. 6.25때부터 지금까지 운영을 하고 계시고 권오람할머니의 아버님이 모으신 책으로 장사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연세가 있으시고 해서 60년동안이나 지켜오신 서점을 내놓으셨다고 한다. 정류장은 내가 생각한 정류장과는 조금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네 정도로 넘겼던 정류장이 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궁금해졌다 보통 정류장하면 생각하는 지붕이 있는 정류장이 아니고 하다못해 철로된 정류장안내판도 아닌 벽에 붙어있는 조그만한 간판인데 처음에는 미용실이라고 크게 적혀 있어서 미용실표지판인줄 알았다. 근데 밑을 자세히 살펴보니 버스노선이 있어서 신기했었다. 그리고 옆에 우리약국이라는 약국이 있어서 우리약국 정류장일 줄 알았다. 그런데 칠성약국역이라고 해서 의아해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원래는 한아름마트앞에서 섰는데 한아름마트 아저씨께서 매연 때문에 서지 말라고 해서 조금 내려와서 미용실 앞에 서게 되었다. 미용실표지판과 정류장안내판같이 붙어있는 이유는 주변에 벽도 없고 땅도 개인의 땅이기 때문에 마땅히 안내판을 세울 수가 없어 미용실이라는 글자를 써줄테니 벽을 내어달라고 버스회사 사장님이 말씀하셔서 미용실과 버스안내판이 같이 있게 된 것이다. 보안여관같은 경우에는 서촌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80년이라는 세월동안 존재했던 곳 이다. 원래 이곳은 다른지방에서 올라온 젋은 작업자들이 서촌에 자리를 잡기 전에 장기적으로 투숙는 공간이 었다. 2층짜리 방도 몇 개 없는 보안여관은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크기의 여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도시에서의 장기투숙이라면 호텔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텐데 보안여관은 투숙의 의미뿐만 아닌 모두 유흥가로 바뀌고 재건축으로 점점 작업자들의 공간이 없어지고 수소문 끝에 찾은 서촌이라는 공간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새롭게 시작하기위한 시발점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지금은 건물의 외벽은 그대로지만 내부는 작업자들의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다. 세계일보는 20년째 운영해왔으며 본사에서 가져온 것을 돌리는 보급을 위주로 한다. 헤럴드경제는 40년째 운영중이며 세계일보와 마찬가지로 본사에서 가져온 것을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은 광고지를 신문과 합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문을 찍어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옛날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배달을 했지만 지금은 오토바이를 이용한다고 한다. 요즘은 인터넷사용이 많아져서 인터넷사용을 잘하지 못하시는 노년층분들이 자주 받아본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옛날보다 받아보는 사람이 줄었다고 한다. 서촌을 지나다보면 허름하고 상당히 작으며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지나칠 수 있는 오래된 이발소가 있다. 남자들도 이제 미용실을 가기 시작하면서 점점 수가 줄어들고 있는 이발관, 이 건물은 60년 전부터 이 서촌을 지켰다고 하는데 김재호 이발사님이 20년 전에 이곳에서 이발소를 만드셧다고 한다. 이발소의 분위기는 기다리면서 돌아다니며 이야기하는 편안한 분위기이고 이곳은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청와대 직원분들도 많이 오신다고 한다. 형제이발관은 이 근방의 가장 오래된 이발소이다. 처음 서촌에 같을 때 상당히 눈에 뛰던 건물 중 하나였다. 왜냐면 주유기가 앞에 있어서 나는 처음 그 건물을 봤을 때 미니 주유소인가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조사해보다보니 주유소 같은 것이 아니라 석유,경유같은 기름을 배달하는 곳이였다. 아마 하나있던 주유기는 유조차에 기름을 실어서 주유소라던지 기름이 필요한 곳으로 옯기기 위해서 있는 것 같다.
2011.12.01 22:12:32
골목길의 녹색들 - 서촌, 이 동네는 집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부대끼며 사는 모양새다.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 위에 이곳의 모든 집들과 골목길들이 즐비해있다. 직접 이 곳을 돌게 된 때는 여름과 가을 사이였는데, 골목 골목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녹색의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문 앞, 담벼락 앞, 골목 어귀에 놓여진 화분들과 가꾸어진 곳곳의 화단들에서는 꽃과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채소만 해도 고추, 배추, 부추, 깻잎과 상추 그리고 겨자채까지 밥상 위에 올라갈만한 것들도 많았다. 아마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 녹색의 식물을 키우는 것 같고 이들은 대부분의 골목길마다 자리잡고 있었다. 나름의 도시 농업이 아닌지 생각도 해보았다. 따지고보면 아니랄 것도 없다. 대파가 화분에서 자라는 모습이 어쩐지 우스워보이기도 하다. 전에는 몰랐던 사실인데, 대파를 슈퍼마켓에서 매번 사다먹을 필요없이 이렇게 화분에 심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잘라먹으면 다시 파가 자라난다는. 베란다 농업의 스타블로거로부터 알게 된 정보이지만 아마 이 동네에서는 화분이 있으면 작은 텃밭을 만들어 필요한 만큼의 채소 정도는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파 뿐만 아니라 많은 종류의 텃밭채소들을 작은 화분에 기르고 있다. 화분에 달랑 배추 하나만 기르는 집도 있었는데 심지어 속이 꽉 차라고 지푸라기로 묶어주기까지. 자기네 집 담벼락이나 울타리 속에 꽁꽁 숨겨두는 법은 거의 없다. 골목 어귀에, 문 옆에, 담 위로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덕분에 골목 골목이 푸르다. 좁은 길 옆으로 오밀조밀 나있는 집들이 모여있으니 더욱 문 앞이라든가, 대문 위, 마당, 짚 앞 등의 공간을 적극 활용한다. 문 옆, 담벼락 밑 화단이 보통이고 가끔 대문 위에다 대파 같은 것의 화분을 올려다두기도 한다. 골목길의 모퉁이, 전봇대 옆, 집 앞, 정류소 등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장소에 놓아둔다. 마을 어디든 다 가꿀만한 곳들이다. 이리저리 물어보거나 관찰해보니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키우기도 하는데 그것이 경제적인 이익이기도 한 사람도 있었고, 자기 집을 좀 더 화사하게 꾸밀 수 있는 방법으로 꽃과 덩쿨 식물을 화단에 심은 사람도 있었고 기르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길가에 놓아둔 화분에서 피어진 꽃은 이 동네의 정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골목 가장 자리에서 주변을 싱그럽게 만들어주는 이 식물들은 주민들 한명 한명에 의해 가꿔졌고, 이 길 또한 주민들의 공간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집 뿐만 아니라 동네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골목길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공간을 꾸미고 가꾼다는 것은 아마도 그곳에 어떤 애틋한 정서 같은 것 때문에 하게 되는 일일테다. 집과 집이 마주보고 부대끼는 좁은 골목길들에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동네를 가꾸게 하는 식물들이 서촌에 있다. 이것들은 서촌이라는 ‘공간’을 주민의 정서가 있는 ‘장소’로, 골목길을 나누며 부대끼고 살아가는 ‘동네’의 중요한 한 부분이 아닐까?
2011.12.01 22:14:34
1. 서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문이었다. 일상적이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이라는 요소가 왜 눈에 띄었을까? 우리는 어느 동네에서나 사람과 집과 함께 ‘문’을 볼 수 있다. 문은 집의 문이 되기도 하고 창고의 문이 되기도 하고 자동차의 문이 되기도 한다. 문은 각각의 건물 혹은 물건의 특성과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서촌 또한 여느 동네처럼 많은 문이 있다.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일상적으로 무수히 많이 마주치는 문이지만, 서촌의 문들은 그 일상적인 요소 앞에서 날 잠시 멈칫하게 만들었다. 나는 서촌의 문들에 흥미를 느꼈고, 서촌의 다양한 문들을 찾아 나섰다. 2. (오지랖 이야기는 넣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문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 유치원 작은문 대체 저건 누구 쓰라고 저다지도 자그마한 것인가! 혹시 정말 ‘어린아이’의 집인 것을 배려한 디자인?!!! 어른들의 간섭이 싫었던 당돌한 꼬마가 설립한 ‘정말 어린이집’이 시초였던 걸까?!!! 서촌의 작은문2 빚쟁이에게 쫓기던 사람이 숨어있던 문이었을까. ‘설마, 창고라고 생각하고 지나치겠지-’하는 생각에 만들었을까? 아 그런데 보통 빚쟁이들은 덩치 큰 형님들이라 작은 문으로 들어가다간 복부나 엉덩이가 낄지도 몰라. 혹시 그걸 노린건가?!!! 3.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듯, 과거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과 닮아 있는 요소여서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의 세월도, 장소의 세월도 흐른다. 흐른다는 것은 일정한 모습으로 영원히가 아니라, 흐르는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을 말한다. 서촌은 변화의 흐르는 모양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그냥 어떤 동네의 '공간'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보냈던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낸 '장소'를 그리워한다. 서촌에 있는 문들의 모습은 내 기억속의 '장소'와 많이 닮아있었고, 그래서 나는 문에 흥미를 느꼈다. 4. 서촌에는 100년 골목이 있다. 그곳은 오래되어 낡은 집이 있는 반면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한옥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100년 골목이라 부르는 것은, 그 곳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같이 흘러왔기 때문이다. 서촌은 그렇다, 100년 골목뿐만 아니라 서촌이란 곳 전체는 그 흐름을 따라 자연스레 흘러온 느낌이다. 5. 세월의 두께가 다양함을 만들어낸다. 다양함은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서촌 사람들에게는 딱히 특별한 것 없고, 일상에서 보이는 문들일테지만, 나는 그 다양한 문들을 보고 재밌다고 느끼며 여러가지 상상을 할 수 있었다.
2011.12.05 23:40:00
의자로 소통하다. 요즘 우리가 하나씩 지니고 다니는 핸드폰, 컴퓨터와 티비 등 전자제품들이 우리 생활에 녹아들고있다. 이것들이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버린 지금 우리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사람들은 말이 적어지고 시선은 컴퓨터 핸드폰 티비에만 꽃혀있다. 스마트 폰이 생기면서 이 작은 박스로도 할수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음악도 만들기도 듣기도 하며, 인터넷에서 티비까지 그리고 게임 소셜네트워크, 전화 메세지 카메라 기능도 되고 이젠 이 박스에 멀리있는 사람들과 화상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스마트폰과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같은 말을 반복해주는 어플이 생기면서 심심하면 핸드폰 안에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심심이‘ 같은 말을 대꾸해주는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이런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사이가 아닌 사람과 기계사이인 관계가 많이 형성되고 있다. 연애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남녀간의 연애가 예전 같았으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라던가,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마주보고 이야기한다거나 등 단순히 글자를 찍어내는 것이 아닌 다양한 고백과 이별 방식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의 연인들의 사랑고백과 이별통보를 카카오톡으로 한다고 한다. 모든 연인들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흔한 모습이 그러하다. 메세지를 주고 받는 것에 대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계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편리하다고 해서 우리의 감정과 표현들이 그 작은 박스안에 모두 담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연인들, 가족들은 말수가 적어지고 스마트한 기계는 늘어났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보다 채팅과 문자가 더 편해지는 세상이 되고있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폭이 줄어들고 이야기가 줄어듬으로써 입을 틀만한 공간과 자리도 없어졌다. 돗자리 깔고 앉을 자리, 앉아서 쉴수있는 자리, 그 흔한 밴치 조차 요즘에는 찾아볼수없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떠도는 사람들은 카페로 간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어가거나 이야기를 하는 장소로 많이 이용한다. 요즘은 그런 공간을 이용하는 값조차도 부담이 된다.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공간은 한정되어있다. 나또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그런 시점에서 나는 서촌 안으로 들어갔다. 서촌이란 동네는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않은 공간이였고, 마을이였다. 서촌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겐 공간이 한정되어 있지도 않았고, 길과 좁은 골목길에는 언제든지 이야기할수있는 혹은 길거리가 사적인 공간이 되버리게 하는 의자들도 있었다. 서촌을 알아가면서 거리마다 가정집 의자가 나와있는 모습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냥 지나쳤다면 쓸모없을 의자였지만 할머니들이 앉음으로써 이야기장소가 되면서 의자라는 것에 대해 조금 재미있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간에 구속받지않고 동네자체를 자기집 앞 마당처럼 생각하며 계시는 할머니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서촌의 문화에 대해 궁금했다. 숨어있는 골목길들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을 만났었다. 만났던 장소도 재미있었고, 쉬고 계시는 모습들 마저도 그냥 지나치지않고 눈길이 많이 갔다. 그런 소소함에 대한 재미를 가지다보니 이런 밖으로 나온 의자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의자의 종류는 다양하다. 등받이가 있거나 없는 의자도 있고, 천으로 되거나 쿠션, 쇠, 플라스틱의 재료를 쓴 의자도 있다. 서촌에서 보였던 의자들도 다양했다. 가정집에서 흔히 식탁에 놓여있는 의자들이 밖으로 나와있기도 하고 나무 판때기로 만든 것같은 박스 모양의 의자도 있었고, 포장마차에 있을 플라스틱 의자들도 보였다. 의자들이 있었던 장소들도 재미있었다. 큰 길 앞 인도에 있던 의자, 문을 마주보고 있던 의자, 계단 옆 의자, 작은 가게 앞 의자, 그냥 인도에 놓여있던 의자, 그런 의자 주변에는 또 다르게 앉을수있는 것들이 놓여있었다. 그것들은 꼭 장소만 보더라도 어떻게 앉아서 이야기를 했을 지 상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할머님이 혼자 의자에 앉아계시다 다른 할머님들이 모여앉는 장면도 보았다. 서촌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였다. 어쨌든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이야기공간이 되었다. 사람이 오고가고 하는 길은 개인이 소유할수 없다. 그러나 서촌은 개인적인 가구들을 내놈으로써 그 공간이 사적인 구역이 되어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의자를 치우라거나 사적인 공간에 대해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공공공간이 어떻게 사적공간이 되는지, 도시에서 상상을 해보지 못한 일이다. 어쩌면 그런 공간을 만들어내고 자연스러운 게 서촌의 숨겨진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파트와 주택들의 담이과 벽이 높아지면서 마을이란 개념도 사라지고,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런 시대에서 의자하나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이웃들과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할수있는게 가능한건지조차 모르고있었다. 그 마을은 그렇게 소통하고 있었다. 의자를 가지고 나옴으로써 이야기 장소가 생기고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서부터 먹고사는 문제까지 열띤 토론의 장소가 되기도했다! 사람들이 의자에 몇명씩 모여앉아있는 것도 보았지만, 그냥 사람이 없더라도 집앞에 혹은 그냥 길에 의자가 나와있는 것을 보았다. ( 사실 이야기하는 것보다 집앞에 나와있는 의자를 더 많이 보았다 ) 그런 의자들이 어쩌면 이야기할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닐까, 혹은 언제라도 이야기할 장소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게 아닐까? 이야기할 장소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면 우리는 그 장소에 한번 앉아보는 건 어떨까? 어떤 사람이 어떤 이야기가 다가올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짜여진 틀, 만들어진 공간이 아닌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이야기를 해보아야한다.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에만 돌진하지 않고 의자하나 가지고 밖을 나와 사람들과 소통해보는 건 어떨까, 할머님들과 서촌 마을사람들과 함께 의자에 혹은 길에 어떤 무언가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거나 나누거나 했을때 참 재미있었다. 그냥 그들이 이야기를 듣고있는것도 재미있었고, 함께 껴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듣고 했을때도 그냥 분위기 좋고 편안한 쇼파가 있는 카페가 아닌 서촌의 길에서 서촌의 의자에서 나는 많은 걸 느끼고 생각 할수있었다.
사적인 공간에 대하여 생각추가 동네라는 것에 대해 동네의 문화 그리고 소통에 대하영 의자가 조금더 상징적이여도 좋을 것같다는 코멘트 받아서 의미적인걸 더 부여할 생각이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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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로 소통하다.
요즘 우리가 하나씩 지니고 다니는 핸드폰, 컴퓨터와 티비 등 전자제품들이 우리 생활에 녹아들고있다. 이것들이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버린 지금 우리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사람들은 말이 적어지고 시선은 컴퓨터 핸드폰 티비에만 꽃혀있다.
스마트 폰이 생기면서 이 작은 박스로도 할수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음악도 만들기도 듣기도 하며, 인터넷에서 티비까지 그리고 게임 소셜네트워크, 전화 메세지 카메라 기능도 되고 이젠 이 박스에 멀리있는 사람들과 화상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스마트폰과 연애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남녀간의 연애가 예전 같았으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라던가,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마주보고 이야기한다거나 등 단순히 글자를 찍어내는 것이 아닌 다양한 고백과 이별 방식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의 연인들의 사랑고백과 이별통보를 카카오톡으로 한다고 한다. 모든 연인들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흔한 모습이 그러하다. 편리하다고 해서 우리의 감정과 표현들이 그 작은 박스안에 모두 담을순 없을 것이다. 친구와 연인들, 가족들은 말수가 적어지고 스마트한 기계들이 늘어났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폭이 줄어들고 이야기가 줄어듬으로써 입을 틀만한 공간과 자리도 없어졌다. 돗자리 깔고 앉을 자리, 앉아서 쉴수있는 자리, 그 흔한 밴치 조차 요즘에는 찾아볼수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페로 간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어가거나 이야기를 하는 장소로 많이 이용한다. 그 공간을 이용하는 값조차도 부담이 된다.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공간은 한정되어있다. 그러나 서촌이란 동네에서는 조금 달랐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지도 않았고, 길과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나와있는 의자들도 있었다.
서촌을 다니면서 특별하게 보였던 것들 중 하난 ‘의자’ 였다. 그냥 없어도 있어도 모를 의자였지만 할머니들이 앉음으로써 이야기장소가 되면서 의자라는 것에 대해 조금 재미있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간에 구속받지않고 동네자체를 자기집 앞 마당처럼 생각하며 계시는 할머니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서촌의 문화에 대해 궁금했다. 숨어있는 골목길들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을 만났었다. 만났던 장소도 재미있었고, 쉬고 계시는 모습들 마저도 그냥 지나치지않고 눈길이 많이 갔다. 그런 소소함에 대한 재미를 가지다보니 이런 밖으로 나온 의자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의자의 종류는 다양하다. 등받이가 있거나 없는 의자도 있고, 천으로 되거나 쿠션, 쇠, 플라스틱의 재료를 쓴 의자도 있다.
서촌에서 보였던 의자들도 다양했다. 가정집에서 흔히 식탁에 놓여있는 의자들이 밖으로 나와있기도 하고 나무 판때기로 만든 것같은 박스 모양의 의자도 있었고, 포장마차에 있을 플라스틱 의자들도 보였다.
의자들이 있었던 장소들도 재미있었다. 큰 길 앞 인도에 있던 의자, 문을 마주보고 있던 의자, 계단 옆 의자, 작은 가게 앞 의자, 그냥 인도에 놓여있던 의자,
그런 의자 주변에는 또 다르게 앉을수있는 것들이 놓여있었다. 그것들은 꼭 장소만 보더라도 어떻게 앉아서 이야기를 했을 지 상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할머님이 혼자 의자에 앉아계시다 다른 할머님들이 모여앉는 장면도 보았다. 서촌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였다.
어쨌든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이야기공간이 되었다.
사람이 오고가고 하는 길은 개인이 소유할수 없다. 그러나 서촌은 개인적인 가구들을 내놈으로써 그 공간이 사적인 구역이 되어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의자를 치우라거나 사적인 공간에 대해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공공공간이 어떻게 사적공간이 되는지, 도시에서 상상을 해보지 못한 일이다.
어쩌면 그런 공간을 만들어내고 자연스러운 게 서촌의 숨겨진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파트와 주택들의 담이과 벽이 높아지면서 마을이란 개념도 사라지고,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런 시대에서 의자하나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이웃들과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할수있는게 가능한건지조차 모르고있었다.
그 마을은 그렇게 소통하고 있었다. 의자를 가지고 나옴으로써 이야기 장소가 생기고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서부터 먹고사는 문제까지 열띤 토론의 장소가 되기도했다!
사람들이 의자에 몇명씩 모여앉아있는 것도 보았지만, 그냥 사람이 없더라도 집앞에 혹은 그냥 길에 의자가 나와있는 것을 보았다. ( 사실 이야기하는 것보다 집앞에 나와있는 의자를 더 많이 보았다 ) 그런 의자들이 어쩌면 이야기할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닐까,
혹은 언제라도 이야기할 장소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게 아닐까?
이야기할 장소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면 우리는 그 장소에 한번 앉아보는 건 어떨까? 어떤 사람이 어떤 이야기가 다가올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짜여진 틀, 만들어진 공간이 아닌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이야기를 해보아야한다.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에만 돌진하지 않고 의자하나 가지고 밖을 나와 사람들과 소통해보는 건 어떨까,
할머님들과 서촌 마을사람들과 함께 의자에 혹은 길에 어떤 무언가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거나 나누거나 했을때 참 재미있었다. 그냥 그들이 이야기를 듣고있는것도 재미있었고, 함께 껴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듣고 했을때도 그냥 분위기 좋고 편안한 쇼파가 있는 카페가 아닌 서촌의 길에서 서촌의 의자에서 나는 많은 걸 느끼고 생각 할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