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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하자 인문학 5 : 애전별친愛錢別親글 수 387
제목 시장 통 기획의도 서촌에 낯선 이방인으로 들어서며, 우리는 변화의 한복판에 서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 스무 걸음에 한 번 씩 보였던 한옥의 지붕끝자락, 조선후기 문신이자 대표적인 친일파인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지었다던 현재 박노수 화백의 집 등이 우리들로 하여금 옛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201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흔적들에, 우리는 지난 옛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나름의 흔적과 기억을 발견하기도 했다. 끝내 우리가 점찍은 '통인시장'은 사람과 공간의 기억, 지역의 변화를 아울러 '시장을 통해 서촌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눈길을 끄는 옛흔적에 단순한 접근법을 넘어서, 우리는 '시장'을 통해 우리의 생활에 대해, 사회에 변화와의 연결성을 확인했다. 생활의 의식주를 채워주는 공간의 변화는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시장은 돈이 오가는 경제적 관계를 넘은, 상인과 손님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가는 상호공간이었다. *우리들로 하여금 옛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 구체적으로 설명. (아직 완성 아님) 내용 제가 여기서 한 오십년 살았는데, 그때만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장사꾼이 없었어. 나만 있었지. 저어기 노점장수로 나만 있었어. 그리고 이게 다 동네고, 말하자면 쪼끄만 길이었어. 길. 나하고 저기가면 쌀가게 있었어. 저쪽으로. 말하자면 생선가게 거 위에가 쌀가게 하나 있었고. 이쪽으로 쌀가게 하나 있었고. 여기 여자는 나밖에 없었어. 나 젊었을 때. 내가 스물세살에 여기 들어왔거든. 그래가꼬 지금 이렇게 늙어빠졌는데, 응. (송명숙) 내래이션: 2011년 가을,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아직 개발이 되지않은 동네인 서촌을 찾았다. 우리는 역사의 세월을 많이 간직한 서촌에서 옛날 모습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고, 통인시장에서 그 이야길 풀어보려 하였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100년도 더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통인시장은 약 1960년대부터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당시 시장은 사람들이 하나 둘 보따리를 들고 나와 물건을 팔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모여 시장이 되었다. 인터뷰들- (자연스럽게 아케이드로 이야기 넘어감) 약 10년 전 시장 위로 아케이드 지붕이 만들어졌다. 많은 모습이 변했다. 간판도 맞추고, 아스팔트 길도 깔았다. (아직 완성 아님) 표현방법 (재료,예산) 영상을 이용. 사진으로 구할수 없는 과거 같은 경우 그림을 사용한 슬라이드 애니매이션 재료: 영상제작을 위한 편집기, 스캐너, 이미지 , 스피커, 나래이셔너 예산 x 전시방법 (장소,시간) hdtv를 이용한 전시 장소: 통인 아파트 아래 상가 복도 시간: 12월 23일 12시에서 4시 대표 img 통인시장이 잘 나와 있는 곳 공정표 이번주 시놉시스와 기획의도 정리가 끝남으로 바로 팀을 나눠 작업을 시작 (수~목) 대본 작업팀과 녹음취재 파일 정리(툴이용)팀 이미지팀으로 나뉜다.
2011.12.08 22:46:45
-제가 여기서 한 오십년 살았는데, 그때만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장사꾼이 없었어. 나만 있었지. 저어기 노점장수로 나만 있었어. 그리고 이게 다 동네고, 말하자면 쪼끄만 길이었어. 길. 나하고 저기가면 쌀가게 있었어. 저쪽으로. 말하자면 생선가게 거 위에가 쌀가게 하나 있었고. 이쪽으로 쌀가게 하나 있었고. 여기 여자는 나밖에 없었어. 나 젊었을 때. 내가 스물세살에 여기 들어왔거든. 그래가꼬 지금 이렇게 늙어빠졌는데, 응. (송명숙) 내래이션: 2011년 가을,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아직 개발이 되지않은 동네인 서촌을 찾았다. 우리는 역사의 세월을 많이 간직한 서촌에서 옛날 모습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고, 통인시장에서 그 이야길 풀어보려 하였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100년도 더 되었다고 하는 이 통인시장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따리를 들고 나와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팔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모여 1960년대에 지금보다 조금 더 좁고, 조금 더 긴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여기가 가게고 길이 쪼~끄맸어. 이거 이런 것만 지었지, 이건 새로 지은거고, 이건 지은지 얼마 안 됐고. 저기서 저렇게 쭈욱 저 야채가게 있는데 까지는 안 지은 집이야. 그냥 그대로, 말하자먼 담을 헐고 가게를 만들은 거지. (송명숙) -우리도 옛날에 무슨 음 인제 배 같은거 배 . 가을에 우리 아저씨가 저기 배밭에 가서 막 뛰어와가지고 팔고 그랬어 한 척씩 . 그러면 그때는 잘 팔렸어 기냥 내놓고 팔고 지금은 노랑선 있어서 노랑선 쪼금만 내놓지 더 이상은 못내놓지 .옛날에는 뭐 리어카도 뭐 댕기고 그랬어. 다 내놓고 팔았어 . 우리아저씨도 밭으로 많이 댕겼어 그러고 또 여기있는 사람들 야채같은거 사러 일산으로 많이 가고 그랬어 보따리에 다 헤가지고 보따리로 오고 막 그랬어(정윤엽) -보따리 그렇지. 상추보따리,.. 그릇에다 조끔씩 했지 .몇십년 전에는 저 앞에 아줌마들도 그렇게 놓고 팔고, 지금 왔던 아줌마도 놓고 팔고, 나도 이렇게 조끔 놓고 팔고 그랬지. (소영례) (아케이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감) 예전에는 진짜 노점으로만 했지. 노점으로만 했는데, 지금은 지붕도 새로 했고, 다 가게도 가지고 있지. 노점했던 사람들이 다 가게도 하나씩 갖고 있는거야. (개발이 있었다는 언급을 하는 내래이션. 이걸 쓰면 되려나? / 우리는 옛날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가 서촌 또한 개발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변에 자리잡은 한옥들과 세월묻은 건물들 사이로, 통인시장 위에는 아케이드 지붕이 쳐져 있었다. 재래시장 답지 않은 깔끔하고 단정한 내부모습 또한 인상깊은 부분이다. 그 아케이드 지붕은 7,8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와함께 간판도 맞추고, 길도 깔았다.) -이런데 간판 없었어 기냥 와서 기냥 장사들만 했지 간판은 뭐 이런거 써지지도 않았어. 우리는 여기는 싱싱과일나라거든? 그러고 인쟈 이런 간판이 없었어 막 이렇게 막 포장으로 되있어가지고 막 그냥 얕아가지고 막 머리도 찥고 막 그럴 정도고 뭐 비고 뭐뭐 눈이 오면은 포장해가 눈이 막 콱 찼잖아? 그러면 그걸 다 쳐내야되 막 안그러면 막 떨어져 부러 (정윤엽) -어, 그때는 진짜 여기 눈오게 되면 엄청 힘들었지. 눈이 그냥 뭐 위에 덮혀가지고, 그때는 비닐으로 다 포장을 했잖아. 비닐을 다 씌어야 하지. 비오면 비 맞고 장사를 했지 뭐. 눈오게 되면 눈 쓸어내리고. 주저앉으니까, 늘어지잖아. 그러니까 다 쓸어가지고 저기 저기 가가꼬 버려야 되고. 작업이 심허지 뭐. 그때야. 지금은 편한생활 하는거지 이거는. 응? (소영례) -그렇게 변화되기 전에는 비가 드릅치고 눈이 오면 땅이 질컥벌컥했었어요. 이 건물을 좋게 한지는 한 7년? 8년 된거 같은데. (박분순) (변화에 대한 내래이션./ 깔끔해진 통인시장은 상인들의 생활을 많이 바꿔놓았다. 상인회도 생겼고 합창단도 꾸려졌다. 지역활성화를 위해 많은 팀들이 다녀와 시장을 꾸미고, 라디오 방송과 체조를 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라 홍보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여그는 밥먹고 살기도 못먹어. 밥도 못 먹어. 왜그냐며는 진짜 이렇게 주머니가 들었다 나갔다 항게로 잔돈푼을 써. 잔돈푼을 쓰는디 여기서 돈 번다는 건 다 그짓말이야, 그짓말. 그래도 떡볶이 먹는 장사는 돈벌어. 먹는 장사. 떡볶이, 식당 같은 데는 인터넷에 올리지. 저그 떡볶이 노인네(가) 하잖아. 인터넷에 올려갖고 사람들 많이 와. (우리야채) -요 잡지책에 뭐 맛있는 집 소개하는 관광객 뭐 그거 많이 보고 뜯어가지고 오더라고. 오 이거 맛있다면 또 올리고 그러니까 몰라 일본에서도 많이 전화오드라고 여기 찾아올려면 응. 어디냐고 그러고. 응 그렇다고 많이 사가지도 않는데 먹어볼라고. 여긴 사갈 수 가 없잖아. 그냥 단지 먹어볼라고 열명이든 다섯명이든 한 두 개 사가지고 먹어보는 거야. 아 이게 맛있다고 하니까 한 번 먹어보자고 하는 관광코스가 된거지 우리 집이. (손맛김밥) 옛날에 장사하시던 분은 이거 싫어해. 이런거. 지금 오시는 분들은 깨끗하고 한 가지 좋은 건 비 하고 눈 올 때 물 안떨어 진다는 거 그거 하나 빼고는 햇빛도 안들어 오잖아. 지금 봐 지금 낮인데 햇빛이 들어와? 햇빛이 안들어 오잖아. 이게 우울증 생긴다니까 원래 햇빛을 안보면 우울증이 생긴다고 하잖아. 이거 사계절이 이 색깔이야 회색깔. 바깥에 햇빛있는데도 여기 햇빛 안들어 오잖아. 그게 좀 약점이지 (손맛김밥) (상인과 손님이 서로의 의식주를 채워주는 상호공간이라는 내용으로 이어지기 위한 내래이션)상인들도 손님들도 편리하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해줬다. -장사를 하시면서 걱정하는 건 없으세요?/ 그저 어떻게 하면 장사 더 잘 될까 신경 쓰는 거고. 이렇게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가고, 그러면 뿌듯한 기분이 들죠. 우리가 어디 가서 먹어도 비싸건 싸건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덴 싼 걸로 계산을 하잖아요. 손님들한테 (맛이) 변하지 않게 신경을 쓰되, 아침 저녁에 (맛이) 틀려질 때가 또 있잖아요. 그런 거에 신경이 많이 가죠. 내가 하는 만큼 거기에 신경이 또 쓰이는 거죠. (안용숙) -통인시장은 어떤 것 같아?/ 통인시장요? 통인시장은 다들 친절하시고 좋은 것 같아요. 그럼 너네 어머님이나 부모님들이랑 이렇게 와서 야채 같은 거 많이 사가? 네. 다 이 근처에 사는 거지? 네. 여기 신발 고치는 데도 새로 생겨가지고, 우리 엄마가 거기도 잘 가시고 그래요. (백수빈 오채령) 다른 사람들 마트를 가고 그러잖아. 근데 시장이 어떻게 하면 더 사람들이 많이 오고, 시장의 좋은 점을 사람들이 많이 알 수 있을까? (히히) 시장을 좀 더 많이 만들고, 시장을 좀 더 접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포스터같이 시장은 마트보다 더 좋다는 식으로, 그렇게 만드는걸로. 오채령: 니는 시장을 좀 더 알리라는 소리잖아. 그래 그거랑 똑같지. ... 다시 체크해봐야할 것 들은 어느 정도 길이로 할 것인지. 그리고 이미지..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대본이랑 이미지랑 같이 작업 시작해야 하는걸까?)
2011.12.09 01:48:04
-제가 여기서 한 오십년 살았는데, 그때만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장사꾼이 없었어. 나만 있었지. 저어기 노점장수로 나만 있었어. 그리고 이게 다 동네고, 말하자면 쪼끄만 길이었어. 길. 나하고 저기가면 쌀가게 있었어. 저쪽으로. 말하자면 생선가게 거 위에가 쌀가게 하나 있었고. 여기 여자는 나밖에 없었어. 나 젊었을 때. 내가 스물세살에 여기 들어왔거든.(송명숙)
내래이션: 2011년 가을,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아직 개발이 되지않은 동네인 서촌을 찾았다. 우리는 역사의 세월을 많이 간직한 서촌에서 옛날 모습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고, 통인시장에서 그 이야길 풀어보려 하였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100년도 더 되었다고 하는 이 통인시장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따리를 들고 나와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팔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모여 1960년대에 지금보다 조금 더 좁고, 조금 더 긴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여기가 가게고 길이 쪼~끄맸어. 이거 이런 것만 지었지, 이건 새로 지은거고, 이건 지은지 얼마 안 됐고. 저기서 저렇게 쭈욱 저 야채가게 있는데 까지는 안 지은 집이야. 그냥 그대로, 말하자먼 담을 헐고 가게를 만들은 거지. (송명숙)
-우리도 옛날에 무슨 음 인제 배 같은거 배 . 가을에 우리 아저씨가 저기 배밭에 가서 막 뛰어와가지고 팔고 그랬어 한 척씩 . 그러면 그때는 잘 팔렸어 기냥 내놓고 팔고 지금은 노랑선 있어서 노랑선 쪼금만 내놓지 더 이상은 못내놓지 .옛날에는 뭐 리어카도 뭐 댕기고 그랬어. 다 내놓고 팔았어 . 우리아저씨도 밭으로 많이 댕겼어 그러고 또 여기있는 사람들 야채 같은거 사러 일산으로 많이 가고 그랬어 보따리에 다 헤가지고 보따리로 오고 막 그랬어(정윤엽)
-보따리 그렇지. 상추보따리,.. 그릇에다 조끔씩 했지 .몇 십년 전에는 저 앞에 아줌마들도 그렇게 놓고 팔고, 지금 왔던 아줌마도 놓고 팔고, 나도 이렇게 조끔 놓고 팔고 그랬지. (용인야채)
-옛날에는 지저분하고 막 아줌마들 옹기종기 모여가지고 그래서 막 정다운게 있었는데...그럼 다 나물다 까서 바닥에 앉아가지고, 다 까서 팔았지 아줌마들이 콩도 까고 , (손맛김밥)
(개발이 있었다는 언급을 하는 내래이션. 이걸 쓰면 되려나? / 예전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서촌에서도 통인시장은 개발을 겪은 곳이었다. 주변에 자리 잡은 한옥들과 세월 묻은 건물들 사이로, 통인시장 위에는 아케이드 지붕이 쳐져 있었다.
-처음에는 한옥식으로 가게가 있었어요. 그렇게 변화되기 전에는 비가 드릅치고 눈이 오면 땅이 질컥벌컥했었어요. 이 건물을 좋게 한지는 한 7년? 8년 된거 같은데. (그릇가게)
-어, 그때는 진짜 여기 눈오게 되면 엄청 힘들었지. 눈이 그냥 뭐 위에 덮혀가지고, 그때는 비닐으로 다 포장을 했잖아. 비닐을 다 씌어야 하지. 비오면 비 맞고 장사를 했지 뭐. 눈오게 되면 눈 쓸어내리고. 주저앉으니까, 늘어지잖아. 그러니까 다 쓸어가지고 저기 저기 가가꼬 버려야 되고. 작업이 심허지 뭐. 그때야. 지금은 편한 생활 하는거지 이거는. 응? (소영례)
(변화에 대한 내래이션./ 시장의 모습이 변하면서 상인들의 생활 또한 바뀌었다. 통인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을 넘어서 “활성화”라는 것을 목표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와서 통인시장을 꾸미기도 하고, 통인시장 안에서는 체조와 라디오 방송 같은 것도 이루어 지고 있었다. 우리는 시장의 발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시장의 전통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활성화라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 걸까? 그 수 많은 변화들이 상인들의 일상, 우리의 일상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상인회도 있고. 지금은 시에서 또 많이 도와요. 근데 올 2월이면 끝나요. 활성화를 위해서 많이 홍보활동을 하는 거지, 그니까. 근데 그게 2월이면 끝나니까 연말서부터 한 팀 물러가고, 2월이면 모두 끝나는데, 이제 그 사람들이 가면서 어떻게 시장이 변할지. 지금 그 사람들이 많이 이끌어왔어요. 큰 실속은 없는데 손님은 많아졌어요. 지금 뭐 신문 같은데도 많이 나가고, 인터넷 같은 데도 많이 나가고 하니까. 재래시장 같은 데를 많이 살리려고 지원을 하니까 아무래도 홍보활동 같은 걸 많이 한 덕인지 몰라도 멀리서도 많이 찾아와요. 끝까지 그게 이어졌음 좋겠는데.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선 (장사가) 잘 돼야 되는데, 해 될까봐 걱정스러워요. (안용숙)
-여그는 밥먹고 살기도 못먹어. 밥도 못 먹어. 왜그냐며는 진짜 이렇게 주머니가 들었다 나갔다 항게로 잔돈푼을 써. 잔돈푼을 쓰는디 여기서 돈 번다는 건 다 그짓말이야, 그짓말. 그래도 떡볶이 먹는 장사는 돈벌어. 먹는 장사. 떡볶이, 식당 같은 데는 인터넷에 올리지. 저그 떡볶이 노인네(가) 하잖아. 인터넷에 올려갖고 사람들 많이 와. (우리야채)
-요 잡지책에 뭐 맛있는 집 소개하는 관광객 뭐 그거 많이 보고 뜯어가지고 오더라고. 오 이거 맛있다면 또 올리고 그러니까 몰라 일본에서도 많이 전화오드라고 여기 찾아올려면 응. 어디냐고 그러고. 응 그렇다고 많이 사가지도 않는데 먹어볼라고. 여긴 사갈 수 가 없잖아. 그냥 단지 먹어볼라고 열명이든 다섯명이든 한 두 개 사가지고 먹어보는 거야. 아 이게 맛있다고 하니까 한 번 먹어보자고 하는 관광코스가 된거지 우리 집이. (김밥집)
옛날에 장사하시던 분은 이거 싫어해. 이런거. 지금 오시는 분들은 깨끗하고 한가지 좋은건 비하고 눈 올때 물안떨어 진다는 거 그거 하나 빼고는 햇빛도 안들어 오잖아 지금 봐 지금 낮인데 햇빛이 들어와? 햇빛이 안들어 오잖아. 이게 우울증 생긴다니까 원래 햇빛을 안보면 우울증이 생긴다고 하잖아. 이거 사계절이 이 색깔이야 회색깔. 바깥에 햇빛있는데도 여기 햇빛 안들어 오잖아. 그게 좀 약점이지
(또 다른 통/상인과 손님이 서로의 의식주를 채워주는 상호공간이라는 내용으로 이어지기 위한 내래이션)- 장사를 하시면서 걱정하는 건 없으세요?/ 그저 어떻게 하면 장사 더 잘 될까 신경 쓰는 거고. 이렇게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가고, 그러면 뿌듯한 기분이 들죠. 우리가 어디 가서 먹어도 비싸건 싸건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덴 싼 걸로 계산을 하잖아요. 손님들한테 (맛이) 변하지 않게 신경을 쓰되, 아침 저녁에 (맛이) 틀려질 때가 또 있잖아요. 그런 거에 신경이 많이 가죠. 내가 하는 만큼 거기에 신경이 또 쓰이는 거죠. (안용숙)
-통인시장은 어떤 것 같아?/ 통인시장요? 통인시장은 다들 친절하시고 좋은 것 같아요. 그럼 너네 어머님이나 부모님들이랑 이렇게 와서 야채 같은 거 많이 사가? 네. 다 이 근처에 사는 거지? 네. 여기 신발 고치는 데도 새로 생겨가지고, 우리 엄마가 거기도 잘 가시고 그래요. (백수빈 오채령) 다른 사람들 마트를 가고 그러잖아. 근데 시장이 어떻게 하면 더 사람들이 많이 오고, 시장의 좋은 점을 사람들이 많이 알 수 있을까? (히히) 시장을 좀 더 많이 만들고, 시장을 좀 더 접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포스터같이 시장은 마트보다 더 좋다는 식으로, 그렇게 만드는걸로. 오채령: 니는 시장을 좀 더 알리라는 소리잖아. 그래 그거랑 똑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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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서촌에 낯선 이방인으로 들어서며, 우리는 변화의 한복판에 서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 스무 걸음에 한 번 씩 보였던 한옥지붕의 끝자락, 조선후기 문신이자 대표적인 친일파인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지었다던 현재 박노수 화백의 집, 집과 집 사이 1미터 남짓의 골목길 등. 201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흔적들에, 우리는 지난 옛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나름의 기억을 발견하기도 했다.
우리가 본 '통인시장'은 사람과 공간의 기억, 지역의 변화를 아울러 '시장을 통해 서촌을 볼 수 있는' 장소였다. 눈길을 끄는 옛흔적에 단순한 접근법을 넘어, '시장'을 통해 우리의 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사회의 변화와의 연결성을 확인했다. 생활의 의식주를 채워주는 공간의 변화는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시장은 돈이 오가는 경제적 관계를 넘은, 상인과 손님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가는 상호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