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이번 프로젝트 초기에 서로의 마음의 고향을 떠올려보고 이미지화해서 서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당시 떠올랐던 키워드는 '거처'다. 나에게도 머무르고 싶은 장소, 좋은 기억, 지키고 싶은 곳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누구도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폐허가 되어버렸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옛 고향의 이웃의 정과 공간에 대한 애착을 찾을 수 없다. 쌀쌀맞고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동네, 흐르는 문화가 하나도 없다 보니 사람들과 접촉할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서촌이 대단하게 격이 다른 마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안의 주민들과 작업자들이 맺는 관계, 예를 들어서 사랑방에 오가면서 소식을 주고받고 물건을 나누고 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마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서로에게 야박하지 않고 둥글게 잘 지내며 지내는 것 같다. 실제로 이 마을에 사시는 분들은 어떨까? 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다. 일단 나는 외부인이니까 별달리 알 도리가 없으니, 그 궁금증은 더 커졌다.

 

------------------------

(***거리사진)

서촌 거리의 가게는 대부분 땅딸막하다. 작은 사무실쯤 되는 정류소, 옷가게, 나무공방, 중국집, 친환경 물품 판매점, 비디오 대여점, 예쁜 카페, 구멍가게, 신문사, 아주 오래된 서점 등. 마치 이 거리는 대형 마트의 카테고리를 옆으로 뉘어놓은 느낌이었다. 오래되고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얽히고설켜서 말이다.

 

(***만들지 스케치 사진)

그 사이에 간판 없는 가게가 눈에 띈다. 그 안에는 창호지가 덕지덕지 남은 낡은 문, 물고기 그물 같은 커튼, 벽면에 붙은 계란반. 범상치 않은 공간인 듯하다.

 

이곳은 [만 들 지]다.

만들지는 '생각한 것을 현실화하자, 상상한 것을 종이란 세상에 풀어보자, 무엇이든 만들어보는 나만의 세상'이라고 한다.(이유정 디자이너 블로그 참조. blog.daum.net/mandleji) 이곳은 재료부터 결과물까지 자연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을 이용해 디자인을 작업하는 공간이다. 갈피표, 손수건지갑 등을 수제로 만들고 접시에 수채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

 

(***클로즈업 사진)

['만들지' 자연디자이너 이유정]

 

(***작업물 사진들)

-만들지의 작업물로는 한국의 야생화를 그린 책갈피와 휴지의 일회성과 방수가 되지 않는 손수건의 결함을 보완한 손수건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그 밖에도 하고 있는 다른 작업은 서촌의 파편과 재료들을 이용해서 문을 만들고 있어요. 저기 보이는 문들도 버려진 틀이었는데 다시 리사이클링 한 것이죠.-

 

궁금한 점이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홍대를 문화 작업의 중심지로 시작하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 문화작업지에 대한 환상에 젖은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점차 소비의 거리, 유흥의 대표 공간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반면 서촌에서도 젊은이들이 들어오는 것 같았지만, 점거하고 판치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곳은 무엇 때문에 오게 되는걸까?

 

-원래는 홍대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저를 비롯한 친구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홍대의 대부분의 공간이 유흥가로 바뀌면서 정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다른 작업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수소문 끝에 서촌을 알게 된 거죠.-

 

서촌에는 이곳저곳 젊은이들이 많다. 주로는 카페, 개인 작업실이 가장 많았는데 대부분 열린 공간이었다. 소문으로는 마을주민들이 카페에 가서 신 메뉴를 제시하기까지도 한다던데?

 

(***할아버지 사진)

중절모와 신사복을 차려입은 멋쟁이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한 손에는 깨진 컵, 한 손에는 우편물을 들고 계셨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니 서로 가까운 사이신 듯 보였다. 그 두 개를 이유정 디자이너에게 건네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이쪽 마을 분들이요? 오지랖들이 아주 넓으시죠! 제 작업실은 개인 작업공간이기도 하지만 일종에 마을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이기도 해요. 보셨듯이 깨진 컵이나 망가진 것들을 많이 갖다 주시는데요.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물건들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만들지 제 역할이에요.-

 

-서촌은 작업하기 굉장히 좋은 공간이에요. 굉장히 재미있지요. 앞서 말하신 것과 같이 건축도 다양하고, 흐르는 문화들도 다양해요. 조용히 작업하기도 좋은 공간이구요. 이 마을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혹시 '백년골목'이라고 아세요? 뒤쪽 길에 가면 백 년 전의 모습을 유지해오고 있는 골목이 있어요. 오랜 시간동안 지켜져 온 것은 건축물이나 어떤 물질들이 아니고, 삶의 형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의 집 앞에 꽃을 매일 가꾸는 주민의 집이 있어요. 이렇듯 이 마을 사이에서는 주민들끼리만 아는 재미있는 비밀들이 좀 있지요.-

-------------------------------------------------

(***백년골목을 조명하는 사진들)

-백년골목

이곳이 바로 백년골목. 기대에 부풀어 100년이나 된 골목은 얼마나 옛 되었는지 새삼스레 했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구석구석 보수된 낡은 집들과 얼마 되지 않은 새 한옥이 나란히 있는게 조금 특별해 보인다. 그 외에는 어느 동네에도 있을법한 풍경이다. 별 특징이 없음에도 이곳이 100년 골목이라 부르는 것은 이곳의 모습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같이 흘러왔기 때문이다.

 

(***백년골목을 조명하는 사진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의 세월도, 장소의 세월도 흐른다. 흐른다는 것은 ‘일정한 모습으로 영원히’가 아니라 흐르는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을 말한다. 서촌이 바로 그렇다. 서촌은 낡다고 버리지 않고 고치고 오랫동안 쓰는 옛 사람들의 정서가 여전히 존재하는 골목길이었다. 백년 골목뿐만 아니라 서촌이란 곳 전체는 시간을 따라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쳐 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고 성급한 변화가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를 거쳐 왔다는 것이다. 백년골목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었다.

-------------------------------------------------

 

최근 인사동이나 북촌이 문화유흥지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이 서촌으로 넘어온다고 한다. 맛집거리와 화려한 갤러리나 숍들이 들어서면서 제 2의 홍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나에게 홍대는 이미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만 남아있는 소비의 거리고 작업자들은 망명하는 곳인 느낌이다.

(주님의 코멘트에 동의하는 바.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데 어색해서 억지로 끼어넣은 감이 있다고 생각함)


두 번째로 찾은 핸드메이드 천연 화장품과 비누 가게 RIZ Soap 리즈솝. 이곳은 숯, 녹차, 커피 등 천연 재료 100%로 만든 핸드메이드 천연 화장품과 비누, 향초를 판매 및 제작워크숍을 진행한다. 몇 차례 서촌 뒷 골목길을 가다가 이 가게를 보면서 ‘아, 방향제 하나 사두면 요긴하게 잘 쓰겠군.’이라 생각했다. 때마침 이야기도 나눌 겸 했는데 문은 잠겨있었다. 외출 중 팻말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드렸더니 금세 오시더니 일이 많이 있으신 듯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었다.

 

[***리즈솝RIZSOAP 변미숙 대표님]

Q.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금속공예공방 Helena에 방문했었다. 비록 주인장님이 너무 바쁘셔서 많은 대화를 하지 못 했지만 이쪽을 추천해주시면서 '문화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문화놀이터는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 마을에서 재미있게, 잘 지내보자'라고 할 수 있죠. 처음에는 그런 생각과 더불어 실행에 옮기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사이에 주변을 둘러보니 이 지역에는 작가들도 많이 살고, 공방들도 많고, 자기 작업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뭔가를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았죠. 아울러 우리는 자기 작업을 하지 않는 일반주민들도 작업자로 생각해요. 집에서 혼자 무언가를 만들면 똑같이 작업의 일환이 되는 거고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거죠. ‘있는 것을 끄집어내자’라는 거예요. 다 같이 재미있게 놀자는 거지요.

 

Q. 이 프로젝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호의적인가요?

네. 아직까지는 좋으신 것 같아요. 여기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것에는 호의적인 것 같아요. 저희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우리가 전문가 집단이라는 것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아요. 우리는 작업을 하는 작가그룹은 아니고, 그걸 지향하지도 않고요. 저희는 우리가 열심히 한 것을 선보이듯이 와서 보고 구경하라는 의미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다보니 마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또 우리 스스로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다보니까 일치점이 생기더라고요.

 

Q. 마을 곳곳이 꾸며져 있는 것을 보고 이 마을에는 재미있는 문화가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마을의 문화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문화라는 것이 포괄적이면서 추상적인 것 같더라고요. 뭔가 생활이 더 풍요로워지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문화라고 한다면 방안에 썩혀놓았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물물교환을 하는 것 자체도 문화예술인 것 같아요. 또한 뭔가 이름 있는 작가의 그림 전시를 본다든가 산다던가 하는 것도 문화예술일 수 있는데, 문화놀이터의 취지는 '동네에 맞는 문화를 공유하자'는 거예요. 그 정도죠.

 

Q. 이 마을이 좋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주민들의 관심은 많지만 간섭이 심하지 않고, 무심한 척 하지만 항상 주시한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작업하기에도 좋고요. 때문에 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현재 이 마을이 '세종마을'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어요. 이 지역은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아요. 서촌이 갑자기 세종마을로 바뀌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리고 여전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촌’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서촌에 오는 거지, 세종마을에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이렇게 서촌으로 불리는데 작업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문화작업을 벌이고, 서촌이 계속 서촌으로 불리게 될 명분을 계속 제공하는 역할이 바로 우리들의 일이 아닐까요?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하는 이유는 이곳이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동네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설령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좋아서 하기 때문에 계속 이 프로젝트를 잇고 있는 거죠. 대대로 프로젝트를 돈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래 못가요. 그리고 우리 같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자발성 없이는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저희는 주민과의 소소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현 시대에 개발로 인한 이웃과 고향이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서촌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면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마음의 고향을 찾아 귀향하는 곳이 있다면, 도시 속 마을이 이루어지면 어떨까? 지금 시대에 필요한 공간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내가 서촌을 통해 발견한 것은 Hardware와 Software, 즉 공간과 삶의 방식이다. 조건이 갖추어진 자신만의 완벽한 고향으로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어떤 공간을 주민으로서 '함께' 가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거처’이며 서촌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