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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하는 할머니 20121028-29 밀양 NX70 녹취 49 – 59 밀양으로 가는 길 60 현수막 “송전탑공사! 공사가 아니므니다. 살인이므니다!!” 61 밀양으로 가는 길 62 - 64 퍼레이드 출발하기 전 모습. 65 퍼레이드 출발 전 구호외치기 66 – 76 퍼레이드 모습 77 – 80 강 81 – 82 퍼레이드 모습, 한옥순 할머니와 이금자 할머니 83 퍼레이드 모습 84 현수막 “전자파 먹인 밤, 대추 깻잎 너나 먹어 한전놈들아” 85 퍼레이드 모습 86 – 87 공연모습, 이동. 88 트럭에서 인터뷰 실패 89 트럭에서 찍은 어두운 풍경 90 이금자 할머니 인터뷰 여기 마을 이름이 뭐였죠? 여기 마을 이름이 어디지? 아부리라는 마을이라네. 우리가 그 저기 유영에서 막아내는거 엄청 열심히 하니까 여기 사람들이 그 간신이 하나 있어 오인숙이라는 남자가 그래 동네동네 다니면서 막 아무 이유도 없이 도장을 찍고 그래가 여기가 사람이 안나오는 거야 이렇게 이렇게 반대 그래가 안나와가지고 우리가 온다 아이가 우리가 여까지 크아 많이 와 막. 도장은 어떤 도장이에요? 도장을 어떤 도장을 하느냐면은 무조건 도장을 찍으라고 찍으라고 하고 땅 여기 한전을 한전으로 그것 말 안하고 땅권에 도장찍으라고 해가 이게 순 사기지 그래서 할머니들 다 넘어 갔잖아 다 그래가 할머니들이 찍어주고 후회를 하고 너무 아파하는 할머니들도 계시고 응. 그러면 나는 인제 우리 뭐 그 그거한거 하라고? 저 데모했는거 ? 사연을 하라고? 아니요 그건 조금있다가 말씀해주시면 되고요 지금 행진하는게 어떤 행진이에요? 아 지금 행진하는거 뭐하느냐고 우리 몇일전에 서울에 가가 열심히 우리쪽에 온 수녀님들 우리쪽에 온 학생들 그 사람들도 엄청히 많이 왔잖여 서울에서 그러는데 그 날 그 분들이 오는 걸 보니까 와 방방곳곳 전국에 우리 765에 대해서 맘 아파하는 거 응 그 엄청히 방방곳곳 그 메스컴이가 갔는거 아닌가 그래서 너무 기뻤어요. 근데 오늘 여기 또 그로하여금 온다 하니까 막 오고싶어서 다들 이렇게 왔죠. 이렇게 와가 그 인자 이 간신들 고놈아들 보게 할라고. 근데 증말로는 이집에가 참 잘한다. 할머니 이름이? 이금자. 평밭마을 부북 평밭마을. 91. 이금자 할머니 인터뷰 이 모르고 했지만은 몰르고 했지만은 맘아파 하는 할머니들이 너무 많어 인쟈. 인쟈. 근데 그 오인숙이라는 사람은 자기 한옥순 할머니 : 아 한마디로 목숨 내 내 재산, 다 뺃기니까 목숨 내 놓고 막는다케 딴소리는 할 것 없어. 이금자 할머니 : 우리는 증말로 생사를 던지고 하는 거야 던지고. 왜 후손들한테 썩은땅 안줄라고 후손들한테 썩은땅을 안줄라고 나는 뭐 인쟈 다 안살았겠냐 만은 우리 후손들또 물론이지만 또 이 세상에 젊은이들을 위해서 여기 69개나 철탑이 들어온다면 못살아 못살아 그르니까 이 목숨을 걸고 이렇게 해 진짜 생사를 걸고 그래서 힘들다 괘안하다가 없어 놓고 하니까. 92 퍼레이드 출발 알림 93 – 98 집 앞 공연 99 - 101 집 앞. 욕하시며 떠나는 할머니들 102 - 104 트럭 인터뷰 장재분 이 지금 단장면 대책 전 대책위원장이 오윤석이라는 사람은 이 마을 주민들을 회유를 해서 한전편에 서서 지금 합의를 할라코 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절대 철탑은 들어오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런 진짜 오윤석이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대책위원을 새로 구성을 해가지고 대책위원장을 없앴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한전은 계속 회유를 하고 막 이렇게 우리 주민들의 뜻을 그 한 사람의 뜻을 우리 주민들 모두의 뜻으로 이렇게 하는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폐단을 없에기 위해서 이제 대책위원을 구성을 해가지고 각 면에 이 사람을 우리가 인정을 안해요. 그런데 자기는 자기 맘대로 이장들을 인제 이렇게 만나고 다니면서 뒤로 합의 해가지고 자기 집 앞에 자기만 보상받을라고 지금 하는 거에요 지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모두가 지금 한 마음으로 철탑 백지화를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그런 그 내부의 적 때문에 너무 우리가 힘들고 배신감에 정말 주민들이 힘들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을 절대 인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전에 우리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책 위원회를 이론화 하라고. 이쪽 저쪽 만나서 거짓말만하고 한전은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정을 할 수 가 없다 새로 구성해서 우리는 모든 그걸 공문을 다 보냈어요 보냈기 때문에 한전은 우리 지금 새로 구성된 대책위원들하고 대화를 하고 풀어나가야 해요. 그런데 지금 그런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회의를 할라면 항상 생각을 하고 다시 또 공문을 보내고 응 우리의 뜻이 관철이 됬을 때 우리는 또 회의에 들어가고 그렇게 할 거에요. 예. 한전이 하라는 데로 우리는 인제 안할거에요. 너무 많이 속았고, 너무 많이 거짓말에 우리가 상처를 받았고 예예. 이제 앞으로 잘 될 거에요. 이제 이런 사람들이 발 붙히지 못하도록 우리들이 주민들이 전부 똘똘 뭉쳤기 때문에 예예. 이제는 사개면에서 사람들이 다 뭉친거에요? 네네 똘똘 뭉쳐서 지금은 누구도 아무도 대책위원장이 없어요 각 면에 대책위원 5명 뽑아가지고 4개면에 딱 대책위원들 모여서 회의 하고 모두가 오픈해서 주민들도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알고 같이 동참하고 같이 인식하고 어쨌든 철탑이 들어오면 우리 목숨이나 생존권이 보장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 까지 목숨을 내놓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 105 – 106 마을 축제 모습 107 마을 축제 양윤길이장님, 문정선 시의원 김정일 대책위원장 발언. (발언 중간에 관객모습을 비춘다.) 주민어르신들 입니다. 이 마을의 주인은 주민어르신들이고, 또 주민들을 지켜주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누구겠습니까? 한전 사장이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이장님이 계십니다. 양윤길 이장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 그 4개 선하지 주민들 특히 우리 오늘 고생하신 우리 면민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동화전에서 이렇게 봉사칠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막을 수 있습니다 끝까지 우리가 백지 아니면 기중화 될때까지 끝까지 싸우고 또 이렇게 뭉쳐야 합니다 헤어지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 우리 면민과 같이 우리 철탑이 언젠가는 없어진다는 각오하에 우리가 열심히 한 번 살아보입시다. 고맙습니다. 예. 야 멋진 인사말 맞지예? 고맙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우리 또 이장님도 계시지만 우리 지역에는 시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어른이 있습니다. 머슴을 하고 계시는 분들들이 계십니다. 어떤 분이겠습니까? 시장님? 시장님은 아닌 것 같은데 내 보기엔. 그렇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시 어떤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민주통합당의 시의원님 소개해 드립니다. 나와주십시오. 어머님 아버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예. 오늘 이렇게 큰 잔치 할 수 있는 거 어머님 아버님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거짓말 앞에도 진실이 이렇게 통하는 날이 온다는 걸 우리가 동화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부북어머님들이 최전방에서 또 지키고 계셨고 또 삼동과 상해에서 또 살을 붙혀주셔서 이 단장면이 온전히 살아남았습니다. 제가 오늘 낮에 사실은 청도면 갔다왔습니다. 그래서 청도면 가보니까 딱 올라갈 자리가 하나 있드라고요. 그래서 삽도장하고 거기 헬기장 있는데 가봤는데 어 정말 뭐 어떤 식으로든지 저들이 강행하면 철탑에 올라갈 수 밖에 더 있겠나 싶어서 한 번 가봤는데 충분히 올라가겠더라고요. 일오사도 가보고 어 삼사호 그 담에 765까지 한 번 다 돌아봤는데 아무것도 아닙디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뭐 그까짓꺼 한 번 뽑아서 우리 엿바꿔먹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했습니다. 예문정선 시의원님은 사실 혼자온게 아니고 남편분도 같이 오셨는데 남편분은 민주통합당의 도당 부의원장님으로 하고 계시거든요. 같이 오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단장면에 열심히 이렇게 싸우게된 마을의 중심적 어르신들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또 자기 농사 팽개치고 가족모두가 모여서 어 우리보다 앞장서서 56번 동화전 마을의 중심자리에 쇳말뚝을 꽂으려는 것을 몸으로 막아낸분 계십니다. 그분 누굴까요? 예 맞습니다. 김정일 대책위원장님 모시겠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동화전 마을 동화마을 대책위원장 김정일 입니다. 뭐 실장님이 말씀하신데로 내가 뭐 철탑세운거 뽑아내린건 아니고, 농사도 다 내팽겨친건 아닙니다. 요즘도 하고 있거든요 근데 그래도 너무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많아가지고 제가 안할 수 가 없어가지고 약간만 앞에 섰을 뿐입니다. 뒤에서 너무 많이 도와주시고 해가지고 제가 많이 힘이 되고 참 일하기 좋습니다. 근데 다른 지역에서도 이렇게 많이 와주셔가지고 너무 감사들립니다. 끝까지 한 번 싸워 보겠습니다. 다같이 싸워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예 말씀도 잘하십니다. 그져? 예. 말씀도 잘하시고요 참고로 오늘 요 노래방 빵빵하게 준비되어 있거든요 식사하시면서 대충 목도 쫌 풀고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거 점수 해가꼬 지금 표상장 나가고 이래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뭐 케이 뭐 스타 나가고 다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부터 쭉 싸워왔습니다. 보라마을의 이치우 어르신이 우리 앞에 죽음으로서 항의를 하시고 돌아가신 이후에 마을에 평화가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전은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고, 그 마을의 중심점에 보라마을과 동화전 마을 그리고 오래 전부터 시작했던 부북마을 산외마을 삼동 다 이렇게 있습니다. 어르신들 퀴즈 한 개, 다 아시겠지만 퀴즈한개 내겠습니다. 밀양에는 현재 가동되고 있는 농성장이 몇 개 있을까요? 예 맞습니다. 산 속에 8개 시내 민주통합당이 운영하는 한국전력앞에 한 개 합해서 아홉개의 농성장이 주 야로 돌아가면서 밤 낮을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정도하면 한전놈이 못올거 맞지예? 맞습니다. 지금 핵발전소를 지어야 될 것이 아니고 탈핵과 햇빛과 바람의 시대가 와야되는데 우리 곁에는 차디찬 송전탑이 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의 기록들 어르신들이 전국각지로 돌아다니면서 만들었던 탈핵의 역사들, 송전탑저지의 역사들을 영상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여러분 같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같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108 – 113 마을 축제. 노래 부르시고 춤추는 모습
114 조한혜정 교수님, 히옥스 발언 이자리에서 만나뵈니까 더 이 정말 이 해방구 천국 같은 그런 느낌이 나네요 . 엄 할튼 저는 서울에서 왔고요 아까 너무 추워가지고 저기 면사무소에 가게에 들렀더니 그래서 이제 그 시골같은게 있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이 밑에 동네에서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7년 전부터 싸워서 너무 지쳐가지고 투표해서 그쪽은 찬성을 했다. 굉장히 후회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여러분들이 인제 이기실 것 같에요. 그래서 정말 전혀 겁먹지 마시고 이제 이미 그 분들을 조금 불쌍하게 여기시면서 가주시면 어 즐거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서울에서 왔지만 왔는데요. 제 생각에는 정말 핵발전소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거라면 한강에 지으라고 이야기를 하세요. 예. 그래서 서울에 한강에 지으면 송전탑을 지을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렇게 위험한 거를, 위험하지 않다면 그렇게 해라 이런 식으로 우리가 같이 싸워서 어 한국이 핵없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을 하도록 같이 힘써서 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분명히 이거 기계를 전기로 돌리고 있는데 자꾸만 잡음이 나는 것은 한전의 책동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단결된 힘으로 지금 학교를 이끌고 계시는 선생님 모셔야 될 것 같습니다.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 나오지 않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나오라고 하셔가지고 겨울에 네 (마이크 교체 ) 네 한전탓. 일월에 카톨릭회관에서 처음 여기 이 이야기를 들었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여기 좀 와보고 싶었는데 저희 학생들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만큼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드디어 삼척 영광 갔을 때에 뵜었고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 때 잠깐 어르신들한테 공연 보여드렸었는데요 여기 밀양에 와서 여기서 해보고 싶다 (마이크 없음 ) 생각했었고요. 드디어 와서 너무 좋고 잔치까지 벌여주셔서 이제 저희가 뭔가 할 수 있다는게 아마 저희 학생들도 ???? 마이크 안되니까 감사드리고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115 신부님 발언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진짜 이제는 동아전이 밀양의 희망이 될 것 같습니다. 시작은 늦었지만 가는길은 똑같기 때문에 누가먼저 시작했다 누가 늦게 출발했다. 너희들은 우리 따라와라 이런거 없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하나니까 뜻이 똑같잖아요 그래서 정말 한사람한사람 보배롭게 여기면서 끝까지 싸울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신가요 불빛밑에 계셔가지고, 김옥인 사모님 맞구나. 그러면 이거 우리 이계삼 선생님이 전해달랍니다. 우리 분신 대책위에서 오늘 마을잔치 한다고, 저희 양윤기 이장님한테 저희 대책위에서 후원금 조금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장님 잠시만 나와ㅈ시겠습니까. 이장님이 오늘 패션에 신경을 좀 쓰셨네요. 오늘 너무 좋은 잔치 이거 동아전 만의 잔치가 아니라 4계면 함께하는 잔치 우리가 초대받아서 왔기 때문에 조금하게 준비했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하고 끝까지 함께 잘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116 이금자 할머니 발언+노래 말안해도 알겠조? 네 감사합니다. 대동강~~노래 117~118 이금자 할머니 노래~ 노래방 00119.MTS 이금자 할머니 인터뷰 할머니가 바래고 싶은거는요. 정말 인제 옛날 할머니 되다 보니까 사회 공로 은 전혀모르고 대동아 전쟁때 에이우에오 그거를 공부를 하다가 팔이오 해방때 일본사람들이 가고 가이가 거이가 배우다가 또 육이오 사변이 난거에요. 그러니깐은 피난다니고 공부할절이 없잖으니까 그러다보니까. 그러는데. 내가 어떤걸 뚜렷하게 했냐면 아 먼저 사람이 되라. 이 할매가 공부는 못했지만 사람은 먼저 되야한다는 걸 알았나봐요 그래서 내 마음이 우주하고 하나가 되가 같이 되가지고 서서이 서서이 남한테 싫은소리 않하고 남한테 나쁜소리 안듣고 노력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내가 젊은나이에 남편이 갔어요. 기가 너무 막혀가지고 내가 팔하고 손하고 딱 붙어버렸어. 나이 너무 젊었을떄. 애기 넷을 놓고 딱 들어붙었는데 병원에를 애들이 다 어리잖아요? 애들이 병원애를 가가 우리어머니가 죽는다. 약을 투입해가지고. 우리엄마가 못산다. 다리하고 손하고 딱 붙어가지고 엎고다니고 일으켜주고 대변소변 받아주는데 엄마가 아무래도 못살겠다고 손하고 이렇게 기를 잡아가지고 내가 기를 너무 맥혀가지고 죽게생겼어. 한의원 원장이 기를 해서 살게됬어요. 손도 떨어지고 발도떨어지고 길을 걷고 하는데. 그 원장이 하는 말이 내가 인자 내가 이 할메가 아줌마가 이 병이 다시 도지면 자신이 없다고 저게 녹색이 가득한 산으로 많이 가가 접하고 살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부산 할매였는데 밀양에 평범마을로 오솔길로 다니면서 내가살았어요. 살면서 내가 너무너무 좋았고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해가지고 내 생명의 연장이 되고 인자 병은 물론이나 회복이 됬고 그때부터 평밭에서 살고 살고 맨날 밤이로 낮이고 일만 일만 하는데 낮에는 엄청이 바쁘니까 맨날 괭이질 하고 호미질 하고 심어야 하고 하니까 밤에 밤에 마지막 성당에 미사를 다니면서 그 십리길을 걸어다니면서 생활을 했어요. 비가 막 오면 오솔길이 파여가지고 솔에 발을 체서 아퍼가면서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살았는데. 엄청이 내가 땅도 부지런히 하니까 살겠더라고 그러는데 그 산에 와가지고 그래도 내 보금자리. 땅 이렇게 있고 한데 지금 내가 한 이야기는 삽십년전의 얘기지만은 지금부터 7년전해서 부터 칠육오가 온다고온다고 철탑이 온다고 온다고 했는데 그때 칠육오 하는 사람이 데모를 해도 내가 못알아 들었어. 칠육오가 온다는데 내가 뭐 어떻다고 그러느냐고 내가 예사로 알았는데 그 인자 한마디 한마디 이렇게 위험하다라는 말을 들으니까 와.. 이게 엄청시리 진짜 위험한. 칠십육만오천... 오천.. 프로의 철탑인거에요. 그 밑에는 벌도 하나 못길르지. 그 아픈사람들이 거기 많이 모여 사는데 나만이 그렇게 사는게 아니고 거기 오는 사람마다 전부다 엄청이 많이 아파서 수족을 못써는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와가 이렇게 매매 해가 멀쩡하게 사는 사람이 우리 회장님이랑 그런 사람들이 이남우 선생이랑 그렇게 많이 와가 그렇게 유지를 하고 사는데 어느날 남한밤중에 날벼락이 떨어졌는거에요. 철탑이 들어와가지고 이렇게 한다라는 거니까. 그렇게 겁이나고.. 그게 뭐 어데어데 했는데 암이 생겨가지고 살기가 어렵고 그런데 우리 하악산에는 정말로 정말로 좋은데요. 우리 금수강산이 다 좋겠지만 평밭으로 유난히 더 좋아요. 봄이면 꽃으로 하악산을 물들여가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 여름에는 녹색으로 가득 차가 너무 또 마음을 즐겁게 해주지. 가을이면 울긋불긋 사람이 어떻게 아픈 사람이 다 치유가 되고. 그 유명한 명산이야. 그 하악산이 끝이 없이 없이 막 일석아 이석아 이 전체가 다. 그러는데. 육십아홉개나 철탑이 들어온다라는 건 우리 밀양이 망하겠는 거에요. 왜 . 내가 그거는 너무 잘알잖아. 우프가 하다가. 병도 낫고 그랬는데. 철탑이 들어온다는 건 있을수 없다. 물론 나는 인자 다 이렇게 팔십이 넘도록 살았으니까 다 살았는데 내 자녀들 이세대들이 있잖아요. 그러는데 내 자녀들 이 세대들을 생각을 하니까 이게 아니고 모든이들을 다 모든 이들이 이렇게 우주안에 한그릇에 몽땅 담겨가 산다면은 니하고 나하고 전부가 하난데. 이 썩은땅은 물려줄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다. 내가 생사를 걸고 집념코 생사를 걸고 지키기만 지키면 누구는 어떻게 하겠노. 내가 죽겠다고 뒹굴고 흙구덩이 파면 그 밑에 들어갈꺼고 나무를 자르면 나무를 보듬고 뒹굴거고 이렇게 막는다면은 한전이 아무리 재주가 용해도 못할꺼 아닌가. 그러는데 그 사람들을 훓어보니까는 이거는 진짜 자기네들이 일을 못하겠더라고. 왜. 우리 주변에 이렇게 훓어보면 사람들이 보이는 사람 있잖아. 아 너는 그러니까 그만큼 복을 받아가지고 살고 공부도 잘 하고 부모 덕도 보고 그러는구나 보이잖아요. 또 어떤사람보면 니 꼬라지가 그러니깐 또 그렇게밖에 안되겠다라는게 보이듯이 하는사람들이 절대 안되겠다는게 보이는 거에요. 왜. 이렇게 좋은 하악산을 내가 말한거와 같이 내가 좋아서 느낀거와 같이 이렇게 좋은산을. 이 명산을. 그렇게 절단을 시키고 자연을 훼손을 시키고 또 자연을 훼손을 시키는게 아니고 썩은땅으로 썩은땅으로 이 밀양이 되겠고. 또 그산이 엄청좋으니깐은 딴데는 막 어디를 가면은 그게 안좋은거야. 뭐시 막 환경..나쁘게 해가지고.. 안좋으니깐. 우리 하악산은 부산에서 막 엄청나게 등산객이 와요. - 할머니 저희는 송전탑얘기.. 요거 얘기하면서. 그 하악산에 그렇게 등산객들이 오는데 거기 송전탑이 세운다면은 등산객들 안와요. 안오고 차츰차츰 밀양은 망하는 거에요. 망해. 그래서 그 송전탑을 말키고 말키고 나무를 한전사람들이 와가 막 이런나무를 톱으로 막 자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들이 그 나무를 보듬고 막 나무 자른다고 안돼안돼 하고 울고. 그러면 저 밑으로 내려가. 산이 가파르잖아요? 저 밑으로 내려가면은 거기까지 따라가서 나무를 보듬어야 하는거야. 그러면 위에로 올라오면서 자기네들은 남자들이니까 위에로 올라오는데 아 팔십칠십되는 할매들이 힘이없어서 잘못하면 넘어지고 하잖아요. 다쳐가지고 넘어져가지고 막 병원에도 사람들이 몇번 수없이 불려가고. 또 뭐 총지법을 걸어놓고 저거 땅이 아닌데 일억 몇번 재산이 된다한 00120.MTS 산이라면은 그 몇푼에 그 몇번에 연락이 와 그 돈 찾아가라고. 그러면 난 판단말도 안했는데 빨리 안찾아가면은 거기 또 뭐라고 하냐. 과태로가 붙어서 나와. 십억, 이십억. 우리 위원장같은경우 이십억이 나왔어요. 그래가지고 그거를 하루치면 백만원씩 부채가 나와. 내가 아까 얘기했잖아 그밑에 나무 자르다가 가파라진데 내려가가 내려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올라가고 하면은 이 할매들이 힘이없는 할매들을 진을 뺴가지고 고생을 막 시켜가지고 말하자면은 힘을 잃게 하고. 그러는 정도라. 그 놈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고. 나무 그렇게 하면서 그렇게 강탈을 하고 너거는 될수가 없다. 안된다. 그렇게 자연의 모든것을 전부 사람한테 그 하는 꼬라지들이 인간성들이 안되게 생겼어. 그래서 너거는 절대 안된다. 될수가 없다. 안되는거야. 너거는 진짜 안된다. 안되.안되.안되. 너거는 진짜 안된다 하니까 안되할매야 안되할매. 안되할매가 안보이면 안되할매가 오늘 왜 안나오냐고 그래요. 그러는 정도로. 안된다고 하면 뭐라하는줄 알아 한전사람들이. 할매가 무슨재주로 안된다고 해요. 정부가 들어서 이렇게 다.. - 질문 : 할머니 저희는 할머니의 안되안되얘기보다 기억에 남는게 춤을 너무 잘추시는 거에요. 지난 토요일에도 서울에서도 보통 할머니들추는것 보다 춤을 젊으사람들이 추는 것 같이 추시는 거에요. 근데요. 데모하면서 철탑하면서 때로는 너무너무 억울하니까 막걸리도 한잔하게되고 속풀이를 하는거에요. 그래서 춤도 늘고 노래도 늘고 그랬는거 같애요. 원래는 영감이 그지경이 되가 병이나서 산에 왔는데 맨날 파고파고 농사짓고 그것만 해가지고 새끼들 갖다주고. 무공해 해서 부산에 갖다주고 부산에 여다주고 그렇게 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렇게 이거 데모하면서 할매 우습게 되버렸어. 욕잘하지요 노래도 잘하지요. 춤도 추지요. 안되안되 하면 정부가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할머니가 안된다고 해. 그말하면 더 화가 나는거에요. 정부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니 옛날로 치면 임금이 어떻게 우리 국민을 이렇게 못살게 하고 설명한 서민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나마 이렇게 짓밟고 이렇게 못살게 하니까 그놈의 대통령은 안되겠다는 겁니다. 안되겠다 이말이야. 아까도 노래부르라고 나오라 했는데. 날더러 그랬잖아요. 내가 첫마디 그랬죠. 여러분들. 대선때 가면은 내가 말안해도 알겠죠 하니까. 사람들이 다 대답을 하잖아요. 근데 정말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너무 했어요 너무했어. 대선때좀 잘좀 봐주십소. 내가 부탁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그리고 내가 이렇게 인터뷰도 좀 했고. 이렇게 막 테레비 나오는거 요대로 말을 했는데 내가 수녀님들이 오시면 하루에 70명도 올때 있고 막 스물몇명씩 오면. 수녀님. 수녀님 입이 하나가 열이 됩니다. 입하나가 열사람이 됩니다. 열사람이 되면 백사람이 됩니다. 매스컴을 전국으로 방방곡곡 다니면서 널려주세요. 우리좀 도와주세요. 그러면서 내가 막 울고. 한전하고 싸울적에는 땅바닥에 막 뒹굴고 땅을 치면서 울고 했어요. 내만 한게 아니고 모든 할머니들이 그렇게 헀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말을 다 하려면 밤새 끝내도 다 못끝냅니다. 내가 끝으로 한마디 하고 싶은거는 우리 데모하는 사람이 하나마음으로 하니까 이렇게 해요 그러는데. 생사를 걸고 합니다. 생사를. 하다가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그러다가 잘 백지화가 되면 우리 젊은이들한테 이 금수강산 진짜 아름답고 살은 땅을 주고 싶다라는 것 뿐입니다. 그러고 우리는 보상도 필요없고. 오로지 백지화만. 이상입니다. 말을 할라면 끝도없습니다. 내가 인자 마흔여덞에 아빠가 돌아가셔서 사고로 그런데 내가 딸 하나 아들 셋 그런데 그때에 진정코 나는 재산도 없고 그랬는데 우리 아들이 옛날사람들이 애를낳으면 아들낳아라 아들낳아아 했잖아. 그런데 아들을 첫아들을 낳는데 돈을 벌어가지고 엄마가 막 붙어가지고 위독한 환자를 약을 해주고 보살펴주고 동생들한테 공부도 가르치고 하려니까 큰아들이 외양선을 타게 됬어요. 외양선을 타면서 수년을 동생들 공부를 가르치고. 인자 둘째아들 막둥이. 딸 하나 있어요. 나이가 많은데 시집을 안갔어요. 왜 안갔냐면은 우리집엔 아버지도 안계신데 내가 공부를 잘해가지고 직장을 다녀야 밑에 동생들도 하고 해야한다고 간호대학을 나왔어요. 질문 : 이 빗은 머리가 내려오니까 이렇게 두면 끝나더라고. 이 반지는 십사케인데 우리 며느리가 둘째 며느리가 손을 야위였는데 너무 안타까우니까 내 손가락이 가느니까 껴주더라고. 이 귀걸이는 내가 손에 붙어가지고 이렇게 했다했지. 그때 나 금침을 막 나줬어. 금침놔주는 그 선생이 이렇게 우리나라 귀족들이 귀걸이를 하고 목걸이를하고 가락지를 하고 했대. 그러니까 금이 몸을 건강케 해주니까 그렇게 한게 아니느냐. 그런 개인이 금가락지를 하고 ... 질문 : 멋으로 하시는 건 아니세요..? 선글라스 봐봐. 이거 안경이지. 먼데볼라면은 이걸써야 먼데가 보이고. 아. 이런거는 우리 둘째 며느리가 있어. 아들이 셋이니까. 우리 동네사람들이 다 알거든. 우리 둘째 며느리가 내가 이렇게 가늘잖아요. 내가 삼십오키로거든요. 우리 둘째 며느리가 친정에서 살면서 효녀상을 받은 사람이야. 근데 이 엄마를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맨날 친정엄마처럼 이렇게 나를 약도 해주고. 그러는데 그금침놓는 아저씨가 귀족들이 목걸이 귀걸이를 하니까 몸이 좋아졌다. 그래 금을 이렇게 귀걸이로 하면 머리가 안아프고 몸이 건강해진다 하더라고. 그래서 며느리가 해줘서 했고. 옷들은 우리 손자들이 있잖아요. 질문 : 서울에서 단체복이 아닌걸 입으셨어요. 내가 그걸 안가져 가고 121 이금자 할머니 인터뷰 갔다와가 내 이번에 서울 갔는데 이거 안입고 가가지고 데려온 자식같더라 어딜가면 꼭 가지고 가야한다. 내가 그말을 이해가 갑니까, 그렇게 했어요. 이런 옷들은 하도 어머니가 얇으니까 딴 할매들 처럼 옷을 입혀놓면 허세비 같아노니까 며느리가 맨날 요렇게 입혀주고 요거 입으라 그렇고 또 손자들이 입었던거 이렇게 또 주고 그래, 근데 내가 그말 또 한마디 할께. 테레비에 모델들이 막 나오잖아요 그 모델들이 하나도 살찐 사람들이 없잖아요? 그사람들이 그 모델을 하기 위해서 먹고 싶은 것도 못먹는데요. 몸이 가늘어야 스타일이 나오고 멋이 나가, 그랬는데 나는 살뺄라고도 안했는데, 하도 요래 가늘으니까 그냥 턱 걸치면 옷이 나오는거에요. 이거 말고 어떤 말을 잘해가 유능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고대로여. 그래서 그냥 이렇게 입으면 , 근데 내옷을 딴사람이 입으면 양아치 같데. 근데 나만이 하도 가늘으니까 그래서 이런 말도 갑작스래 물어보는데 이게 거짓말이라면 이런말이 나올수가 없잖아요. 이해가 갑니까? 그러고 진짜 요 보세요 이런직업 이런거 아무나 하는거 아니에요. 그래서 맡은바 의무를 최선을 다하는데 진짜 사람을 사랑하고 하면은 자꾸 이게 높아져요. 신정꿔? 근데 내직업을 항상 하아~ 나는 왜 딴 사람의 일을 못하고 이런걸 하고 이런걸 하고 이러면 안되. 글쎄: 7년동안 가장 기뻣던일 진짜 재미었던거. 우와 그말 물어보니까 너무 멋있다. 진짜! 진짜 멋있어! 내가 7년동안에 이 데모를 하는데 나는 2년동안밖에 안했거든? 왜 데모를 별로 철탑이 들어오는걸 별로별로 생각했는데, 자꾸 책을봐도 이야기를 들어봐도 공부가 같아,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했는데 우리 저 이나무라고 이나무 선생 머리 하얗고 이나무 선생이라는 사람이 동맥경화 환자야 그러니까 막 성질이 엄청 포악해. 동맥경화가 몸으로 오면 몸에서 해소를 하는데, 동맥경화가 머리에가 붙어버리면 막 사람한테 포악을 한ㄴ데 그러니까 막 부인한테도 우리들한테도 막 포악을해. 그래서 그사람이 부산에 여상학교 교수인데, 몸이 아파가지고 하악산에 와가 출퇴근 하면서 이렇게 했어요. 했는데 그분이 정년퇴직이 아니고 무슨 퇴직을 했어, 돈 얼마씩 나오는 저기 대롱에 마음수련원이라는데를 들어갔어. 자기가 몸도 아프고 공부하러 갔는데, 한달만에 왔는데 막 부부하고 막 전에는 막막 싸우고 그랬는데. 입이 막 갑작스레 (웃음표정) 이래가 둘이 부부가 사이가 엄청 좋아진거야. 그 한옥순이 있잖아 한옥순이 나오더라 티비에, 봐봐라 느그 신랑이 어딘가 갔다왔는데 저렇게 많이 바뀌어가지고 저렇게 많이 바뀌어가지고 저렇게 하는데 니하고 내하고 신랑 모르게 나 성당에 다니고 하늘을 빨리 못찾아가지고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마음이 괴로워 하고 막 이랬는데 그런 존데가서 나도 마음이 싹 바뀌었음 싶어서 가자고가자고 해가지고 갔는데, 가가지고 딴 사람은바다로 가는데 그때 여름에 7월달에 우리는 산으로 가자 글로 가자 그래가 갔어요. 우와 가가지고 일과정이 일주일이 일과정 일주일 더하면 이과정이고 삼과정 이렇게 올라가는데요 3과정쯤 했는데 내가 없어. 내가 없단 말은 해봤어야 알지 안해봤기 때문에 그 말이 안통할거에요. 내가 없단 말은 진정 또 내가 다리를 찾아도 내가 없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너무 좋아. 내가 그 공부를 했기에 이렇게 누구라도 좋게보고 아름답게 보기 때문에 이 성격도 바뀌는게 아닌가 그래서 그때 그 공부를 하면서 정말로 진짜 허공이 있어 허공에 있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허공이 부처님이고 하느님이라는 걸 알았어. 그래가지고 그걸 찾고 최고 행복했어요. 최고! 그래가지고 우리딸도 그 공부 시켯고 우리 아들도 공부했고 우리 며느리도 공부했고. 그 이나무 선생때문에 그렇게 공부를 해가지고,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하고 아마 그런 그 은혜로 이 765 막는데도 도움이 되는가 싶습니다. 나 발좀 피어도 될까? 이거는 이렇게 안경을 끼면 보이는데 어떨 때는 민망스러울때가 있어 그러면 어데 놓면 잊어버리고 그러니까 이렇게 올려버리면 편해요. 내가 하나하나 하는게요, 그 마음수련원을 걸어걸음 두걸음 10년을 했어요 그 이선생하고 글쌔: 취미 같은게! 취미는 마음수련 공부하면서 진짜 즐거워가 행복해가 누구라도 좋아하고 누구라도 좋고 하나니까 그래서 그 산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취미는 없어요. 취미라는 거는 그 산꼬라지를 내가 30년을 그렇게 있어가지고 마음수련갔다 오느라고 한동안 비어있었지만 집이 부산이니까는 오며가며 지냈다는 것 뿐이고 아무것도 취미가 없어요. 나는 누가 나에게 감동을 주면 막 울어요. 너무 감격해가지고 감사하고. 근데 약간의 누가 나한테 욕하면은 아유 그거는 니꺼야, 누가 나한테 잘못하는 거는 니꺼야 내가 딴사람한테 잘못하는 거는 내꺼고 그래가, 그냥 그냥 이렇게 살아요. 글쌔: 텃밭 농사같은거나 해요. 지금은 배추도 심고 상추 시금치 뭐 이런거 해가지고 무공해를 유기농을 이래가 사래하니까 그러고 또 유기농 하는 것을 알면서 달라하면 안줄수 없잖아요. 주면 배나 돈을 줘요. 돈을 벌라고는 않는데, 스스로 그렇게 되다로고요 그래가 용돈으로 쓰고. 그리고 내가 애들보고 돈돈 안하기로 약속을 했어요. 왜냐면은 내가 아팠을 때 돈도 너무 많이 썯고 그러고 그 애들이 딴 사람은 엄마아빠 사랑을 받고 크는데, 우리 애들은 이 엄마 사랑만 받았잖아요. 아빠가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그래서 내가 성당에 가면서 그 10리길을 걸어가면서 그 밤에 미사 다녔다고 했잖아요. 오솔길로 걸어가면 막 그 풀이 있잖아요. 풀을 보면 너무 좋으니까. 그래 여보 우리 자녀들이 딴 집은 엄마 아빠가 있어서 사랑을 하고 돈도 많이 쓰게하고 하는데 우리애들은 그렇지를 못하자너 당신한테 내 실망 안주고 애들한테 돈달란 말을 절대 내가 안할게요, 내가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 애들보고 물어보세요. 나 돈좀줘 돈좀줘 안해봤어요. 봉사 같은 건 했어요. 저기 그 마음수련 공부를 해야하는데, 요래 앉아가지고 공부를 막 하고 싶어요, 공부가 너무 좋으니까, 부처님을 알려주고 하늘을 알려줬는데 너무 좋아,해봐야 알아 너무 좋아. 이 학생들도 삐뚫어진 학생들도 거기 오면은 세계가 잡혀가지고 엄청이 봉사일을 해요. 글쌔: 근데 농사요. 농사좀 궁금해가지고 할머니꺼 아니에요?....핸드폰울림 근데 오늘 대화하는 것이 엄청에나 마음에 들고 좋아요. 하나 어색하지고 않고 고대로에요. 실제상황 그대로 내 마음을 의료하고 바꿔가 하나되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야. 이렇게 맨날 즐거워요. 항상 즐거워요. 근데 춤이 저절로 되더라고. 푸른: 궁금한게 있는데요 4개면 마을에서 모여서 단합도 하시고 즐거워 하시고 춤을 추기도 하셧잖아요. 그런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 진거에요? 어떻게 만들어진거냐면은 우리가 아까 내가 말했지 수녀님들도 많이오고 이래가 입이 하나가 열개가되고 열개가 백개가되고 어~ 방방곡곡 그 전달이 많이 되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그랬는데 그게 다 우리 사람들이 하는 것 같아도, 진짜 하늘이 도와주더라고 하늘이. 뭐가 되도록 딱하고 하고. 우리를 많이 도와줘요. 마~~ㄴ~~ㅎ 이 . 저기 부산에 조경태씨라고 계셔. 그분이 엄청나게 도와줘요. 그리고 아까 문정선 시의원, 또 거기 장원날씨라고 의원님 그분도 엄청 도와주고. 글쌔: 그런 춤추고 노래하고 이런 시간 많아요? 안많아. 그 마을에서 어떤 마을에서 어디를 갔다와가 무슨 생각이 이렇게 힘들고 죽도록 고생하고 했는데 뭐가 되는구나. 이제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집히면 좋아가지고 아 이번에는 우리가 할께 자기네들이 여기서 돼지잡고 이렇게 했어요. 그러니까 이 4개면이 같은 이렇게 하니까 왔고, 그리고 인쟈 또 우리 또 인쟈 어디 인쟈, 부국에는 우리 부국거기는 맨날맨날 잔치라, 잔치를 할라고 하는게 아니고 우연히 그렇게 하게 되더라고, 사람이 오면 막 맥여줘 이 젊은이들이 나물을 하고 시래기국을 끓이고, 막 맥여주고 맥여주고 그게 은혜인 것 같아. 그래서 듬뿍 도와주고 도와주고 저 고대롭니다. 아니 여기 와보니까 그런거 안같아요? 진짜 그렇게 됬어. 그랬는데 우리 이렇게 데모하는 사람들이 요즘은 좀 준비가 됬어요. 이 그 할아버지 불타가 돌아가신 뒤로 조금 좀 잔잔해졌어요. 옛날같이 막 못해. 사람이 또 죽을까봐. 그래도 우리는 막 끝까지 그렇게 밤에도 가가 밤에는 자고 오가 가고 2틀밤 자고 또 딴사람 보내고 이렇게 하고 또 그있지 비행기 재료 막 실어가지고 가는데, 글쎄: 요즘에는 할아버지고 분신하시고 나서 오늘같이 잔치도 열고 요즘은 즐거우세요? 그래서 즐거운 건 아니에요. 할아버지 때문에 한전에서 막 심하게는 못해. 옛날에는 우리를 쁘까쁘까쁘까 저 밑에서 빨리 안가면 막 우리를 개처럼 어래어래어래하고 할머니들이 그 가랑잎에 쭉 미끌어지면 저기 불태워라 화장해서 뒤저버리게, 그렇게 심하게했는데, 이치우 할아버지돌아가시고 나서는 사람이 또 죽으면 안되니까 그게 제일 겁내더라고, 그래가 많이 조금은 수월해 졌어요. 요즘은 막 신부님은 물론이고 수녀님들이 막 도와주고 하니까 감히 저것들이 조금 소리서가 요즘 조금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게 좀 보입니까? 서울에서 그때 대통령 나오실분 여자 한분 나왔고, 남자 한분 나왔지, 그분이 엄청나게 이 765에 대해서 어데어데 이 말은 할매가 언변이 없어가 말은 못하는데, 글쌔: 빨리끝내라고 하셧는데, ~~상치라고? ㅁ누러눟러먚;ㅔㅓㅇ품 뭐시기 빨리빨리 끝내작바줭 지금이제 끝날 때 안됫어요? 끝낼까요? 끝
2012.11.20 02:59:11
91: 이금자 할머니 인터뷰 우리는 증말로 생사를 던지고 하는 거야 던지고. 왜 후손들한테 썩은땅 안줄라고 후손들한테 썩은땅을 안줄라고 나는 뭐 인쟈 다 안살았겠냐 만은 우리 후손들또 물론이지만 또 이 세상에 젊은이들을 위해서 여기 69개나 철탑이 들어온다면 못살아 못살아 그르니까 이 목숨을 걸고 이렇게 해 진짜 생사를 걸고 그래서 힘들다 괘안하다가 없어 놓고 하니까 102-104 트럭 인터뷰 장재분 우리는 지금 모두가 지금 한 마음으로 철탑 백지화를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그런 그 내부의 적 때문에 너무 우리가 힘들고 배신감에 정말 주민들이 힘들고 그래요. 한전이 하라는 데로 우리는 인제 안할거에요. 너무 많이 속았고, 너무 많이 거짓말에 우리가 상처를 받았고 예예. 이제 앞으로 잘 될 거에요. 이제 이런 사람들이 발 붙히지 못하도록 우리들이 주민들이 전부 똘똘 뭉쳤기 때문에 예예. 모여서 회의 하고 모두가 오픈해서 주민들도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알고 같이 동참하고 같이 인식하고. 107 마을 축제 양윤길이장님, 문정선 시의원 김정일 대책위원장 발언. 그래서 삽도장하고 거기 헬기장 있는데 가봤는데 어 정말 뭐 어떤 식으로든지 저들이 강행하면 철탑에 올라갈 수 밖에 더 있겠나 싶어서 한 번 가봤는데 충분히 올라가겠더라고요. 일오사도 가보고 어 삼사호 그 담에 765까지 한 번 다 돌아봤는데 아무것도 아닙디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뭐 그까짓꺼 한 번 뽑아서 우리 엿바꿔먹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했습니다. 산 속에 8개 시내 민주통합당이 운영하는 한국전력앞에 한 개 합해서 아홉개의 농성장이 주 야로 돌아가면서 밤 낮을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정도하면 한전놈이 못올거 맞지예? 맞습니다. 지금 핵발전소를 지어야 될 것이 아니고 탈핵과 햇빛과 바람의 시대가 와야되는데 우리 곁에는 차디찬 송전탑이 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00119.MTS 이금자 할머니 인터뷰 대동아 전쟁때 에이우에오 그거를 공부를 하다가 팔이오 해방때 일본사람들이 가고 가이가 거이가 배우다가 또 육이오 사변이 난거에요. 내가 어떤걸 뚜렷하게 했냐면 아 먼저 사람이 되라. 이 할매가 공부는 못했지만 사람은 먼저 되야한다는 걸 알았나봐요 그래서 내 마음이 우주하고 하나가 되가 같이 되가지고 서서이 서서이 남한테 싫은소리 않하고 남한테 나쁜소리 안듣고 노력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내가 인자 내가 이 할메가 아줌마가 이 병이 다시 도지면 자신이 없다고 저게 녹색이 가득한 산으로 많이 가가 접하고 살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부산 할매였는데 밀양에 평범마을로 오솔길로 다니면서 내가살았어요. 살면서 내가 너무너무 좋았고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해가지고 내 생명의 연장이 되고 인자 병은 물론이나 회복이 됐고 삽십년전의 얘기지만은 지금부터 7년전해서 부터 칠육오가 온다고온다고 철탑이 온다고 온다고 했는데 그때 칠육오 하는 사람이 데모를 해도 내가 못알아 들었어. 칠육오가 온다는데 내가 뭐 어떻다고 그러느냐고 내가 예사로 알았는데 와.. 이게 엄청시리 진짜 위험한. 그 밑에는 벌도 하나 못길르지. 그 아픈사람들이 거기 많이 모여 사는데 나만이 그렇게 사는게 아니고 거기 오는 사람마다 전부다 엄청이 많이 아파서 수족을 못써는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와가(중간생략) 그렇게 유지를 하고 사는데 어느날 남한밤중에 날벼락이 떨어졌는거에요. 우리 하악산에는 정말로 정말로 좋은데요. 우리 금수강산이 다 좋겠지만 평밭으로 유난히 더 좋아요. 봄이면 꽃으로 하악산을 물들여가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 여름에는 녹색으로 가득 차가 너무 또 마음을 즐겁게 해주지. 가을이면 울긋불긋 사람이 어떻게 아픈 사람이 다 치유가 되고. 육십아홉개나 철탑이 들어온다라는 건 우리 밀양이 망하겠는 거에요. 왜 . 내가 그거는 너무 잘알잖아. 우프가 하다가. 병도 낫고 그랬는데. 철탑이 들어온다는 건 있을수 없다. 물론 나는 인자 다 이렇게 팔십이 넘도록 살았으니까 다 살았는데 내 자녀들 이세대들이 있잖아요. 내 자녀들 이 세대들을 생각을 하니까 이게 아니고 모든이들을 다 모든 이들이 이렇게 우주안에 한그릇에 몽땅 담겨가 산다면은 니하고 나하고 전부가 하난데. 이 썩은땅은 물려줄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다. 내가 생사를 걸고 집념코 생사를 걸고 지키기만 지키면 누구는 어떻게 하겠노. 내가 죽겠다고 뒹굴고 흙구덩이 파면 그 밑에 들어갈꺼고 나무를 자르면 나무를 보듬고 뒹굴거고 이렇게 막는다면은 한전이 아무리 재주가 용해도 못할꺼 아닌가. 00120.MTS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고. 나무 그렇게 하면서 그렇게 강탈을 하고 너거는 될수가 없다. 안된다. 그렇게 자연의 모든것을 전부 사람한테 그 하는 꼬라지들이 인간성들이 안되게 생겼어. 내가 끝으로 한마디 하고 싶은거는 우리 데모하는 사람이 하나마음으로 하니까 이렇게 해요 그러는데. 생사를 걸고 합니다. 생사를. 하다가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그러다가 잘 백지화가 되면 우리 젊은이들한테 이 금수강산 진짜 아름답고 살은 땅을 주고 싶다라는 것 뿐입니다. 그러고 우리는 보상도 필요없고. 오로지 백지화만. 이상입니다. 말을 할라면 끝도없습니다. 3과정쯤 했는데 내가 없어. 내가 없단 말은 해봤어야 알지 안해봤기 때문에 그 말이 안통할거에요. 내가 없단 말은 진정 또 내가 다리를 찾아도 내가 없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너무 좋아. 취미는 마음수련 공부하면서 진짜 즐거워가 행복해가 누구라도 좋아하고 누구라도 좋고 하나니까 그래서 그 산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취미는 없어요 공부를 하면서 정말로 진짜 허공이 있어 허공에 있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허공이 부처님이고 하느님이라는 걸 알았어. 그래가지고 그걸 찾고 최고 행복했어요. 최고! 저기 그 마음수련 공부를 해야하는데, 요래 앉아가지고 공부를 막 하고 싶어요, 공부가 너무 좋으니까, 부처님을 알려주고 하늘을 알려줬는데 너무 좋아,해봐야 알아 너무 좋아.
2012.11.20 03:08:53
할머니 영상기록이 되어있는지는 몰랐다. 안 그래도 영상내용이 궁금해서 나중에 수정되기 전 영상 좀 보고 싶다고 말하려 했는데 잘됐다. 기록을 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처음에 이금자 할머니를 생각했을때 잡았던 키워드는 '춤추시며 승화시키는 할머니' 랄까.. 쨌든 '춤'이라는 것과 연결지었던 것 같은데 뭐랄까.. 나는 할머니에게 밀양에 오신 뒤부터 하시게 되신 그 공부 그리고 그 뒤로 바뀌신 마음들에 더 집중을 하게 된 것 같아. 밀양에 오시고 자연으로 그라운딩하시게 된 할머니랄까. 우리는 우주 안의 한 그릇에 몽땅 함께 산다는 표현이며, 하늘을 알려주었다는 말이며, 공부가 너무 재미있으시다고 그리고 그 배움들과 거기서 배운 자연의 소중함들을 미래세대들에게 알려주시고 싶어하시는 할머니가 보였달까..? 할머니의 춤추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상상하게 된 할머니의 춤은 자연과 함께하기에 출 수 있는 그런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할머니가 자꾸 하게 되시는 말들도 그런 것 같구. 장일순선생님 책을 알려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미 아시려나..?). 이하 짧은 저의 소견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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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하는 할머니 밀양 nx70 녹취 밑줄긋기.
91. 이금자 할머니 : 우리는 증말로 생사를 던지고 하는 거야 던지고. 왜 후손들한테 썩은땅 안줄라고 후손들한테 썩은땅을 안줄라고 나는 뭐 인쟈 다 안살았겠냐 만은 우리 후손들또 물론이지만 또 이 세상에 젊은이들을 위해서 여기 69개나 철탑이 들어온다면 못살아 못살아 그르니까 이 목숨을 걸고 이렇게 해 진짜 생사를 걸고 그래서 힘들다 괘안하다가 없어 놓고 하니까.
102 -104
장재분아주머니 인터뷰.
우리는 지금 모두가 지금 한 마음으로 철탑 백지화를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그런 그 내부의 적 때문에 너무 우리가 힘들고 배신감에 정말 주민들이 힘들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을 절대 인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전에 우리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책 위원회를 이론화 하라고. 이쪽 저쪽 만나서 거짓말만하고 한전은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정을 할 수 가 없다 새로 구성해서 우리는 모든 그걸 공문을 다 보냈어요 보냈기 때문에 한전은 우리 지금 새로 구성된 대책위원들하고 대화를 하고 풀어나가야 해요.
한전이 하라는 데로 우리는 인제 안할거에요. 너무 많이 속았고, 너무 많이 거짓말에 우리가 상처를 받았고 예예. 이제 앞으로 잘 될 거에요. 이제 이런 사람들이 발 붙히지 못하도록 우리들이 주민들이 전부 똘똘 뭉쳤기 때문에 예예.
107 양윤길 이장님
끝까지 우리가 백지 아니면 기중화 될때까지 끝까지 싸우고 또 이렇게 뭉쳐야 합니다 헤어지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 우리 면민과 같이 우리 철탑이 언젠가는 없어진다는 각오하에 우리가 열심히 한 번 살아보입시다. 고맙습니다.
사회자 실장님
보라마을의 이치우 어르신이 우리 앞에 죽음으로서 항의를 하시고 돌아가신 이후에 마을에 평화가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전은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고, 그 마을의 중심점에 보라마을과 동화전 마을 그리고 오래 전부터 시작했던 부북마을 산외마을 삼동 다 이렇게 있습니다.
산 속에 8개 시내 민주통합당이 운영하는 한국전력앞에 한 개 합해서 아홉개의 농성장이 주 야로 돌아가면서 밤 낮을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정도하면 한전놈이 못올거 맞지예? 맞습니다. 지금 핵발전소를 지어야 될 것이 아니고 탈핵과 햇빛과 바람의 시대가 와야되는데 우리 곁에는 차디찬 송전탑이 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114 조한혜정님
저는 서울에서 왔지만 왔는데요. 제 생각에는 정말 핵발전소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거라면 한강에 지으라고 이야기를 하세요. 예. 그래서 서울에 한강에 지으면 송전탑을 지을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렇게 위험한 거를, 위험하지 않다면 그렇게 해라 이런 식으로 우리가 같이 싸워서 어 한국이 핵없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을 하도록 같이 힘써서 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19 이금자할머니 인터뷰
손도 떨어지고 발도떨어지고 길을 걷고 하는데. 그 원장이 하는 말이 내가 인자 내가 이 할메가 아줌마가 이 병이 다시 도지면 자신이 없다고 저게 녹색이 가득한 산으로 많이 가가 접하고 살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부산 할매였는데 밀양에 평범마을로 오솔길로 다니면서 내가살았어요. 살면서 내가 너무너무 좋았고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해가지고 내 생명의 연장이 되고 인자 병은 물론이나 회복이 됬고 그때부터 평밭에서 살고 살고
우리 하악산에는 정말로 정말로 좋은데요. 우리 금수강산이 다 좋겠지만 평밭으로 유난히 더 좋아요. 봄이면 꽃으로 하악산을 물들여가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 여름에는 녹색으로 가득 차가 너무 또 마음을 즐겁게 해주지. 가을이면 울긋불긋 사람이 어떻게 아픈 사람이 다 치유가 되고. 그 유명한 명산이야. 그 하악산이 끝이 없이 없이 막 일석아 이석아 이 전체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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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인자 다 이렇게 팔십이 넘도록 살았으니까 다 살았는데 내 자녀들 이세대들이 있잖아요. 그러는데 내 자녀들 이 세대들을 생각을 하니까 이게 아니고 모든이들을 다 모든 이들이 이렇게 우주안에 한그릇에 몽땅 담겨가 산다면은 니하고 나하고 전부가 하난데. 이 썩은땅은 물려줄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다. 내가 생사를 걸고 집념코 생사를 걸고 지키기만 지키면 누구는 어떻게 하겠노. 내가 죽겠다고 뒹굴고 흙구덩이 파면 그 밑에 들어갈꺼고 나무를 자르면 나무를 보듬고 뒹굴거고 이렇게 막는다면은 한전이 아무리 재주가 용해도 못할꺼 아닌가.
121 이금자 할머니 인터뷰
테레비에 모델들이 막 나오잖아요 그 모델들이 하나도 살찐 사람들이 없잖아요? 그사람들이 그 모델을 하기 위해서 먹고 싶은 것도 못먹는데요. 몸이 가늘어야 스타일이 나오고 멋이 나가, 그랬는데 나는 살뺄라고도 안했는데, 하도 요래 가늘으니까 그냥 턱 걸치면 옷이 나오는거에요. 이거 말고 어떤 말을 잘해가 유능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고대로여. 그래서 그냥 이렇게 입으면 , 근데 내옷을 딴사람이 입으면 양아치 같데. 근데 나만이 하도 가늘으니까 그래서 이런 말도 갑작스래 물어보는데 이게 거짓말이라면 이런말이 나올수가 없잖아요. 이해가 갑니까?
이거는 이렇게 안경을 끼면 보이는데 어떨 때는 민망스러울때가 있어 그러면 어데 놓면 잊어버리고 그러니까 이렇게 올려버리면 편해요.
그 마을에서 어떤 마을에서 어디를 갔다와가 무슨 생각이 이렇게 힘들고 죽도록 고생하고 했는데 뭐가 되는구나. 이제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집히면 좋아가지고 아 이번에는 우리가 할께 자기네들이 여기서 돼지잡고 이렇게 했어요. 그러니까 이 4개면이 같은 이렇게 하니까 왔고, 그리고 인쟈 또 우리 또 인쟈 어디 인쟈, 부국에는 우리 부국거기는 맨날맨날 잔치라, 잔치를 할라고 하는게 아니고 우연히 그렇게 하게 되더라고, 사람이 오면 막 맥여줘 이 젊은이들이 나물을 하고 시래기국을 끓이고, 막 맥여주고 맥여주고 그게 은혜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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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장재분아주머니 인터뷰.
한전이 하라는 데로 우리는 인제 안할거에요. 너무 많이 속았고, 너무 많이 거짓말에 우리가 상처를 받았고 예예. 이제 앞으로 잘 될 거에요. 이제 이런 사람들이 발 붙히지 못하도록 우리들이 주민들이 전부 똘똘 뭉쳤기 때문에 예예.
이금자할머니 인터뷰.
물론 나는 인자 다 이렇게 팔십이 넘도록 살았으니까 다 살았는데 내 자녀들 이세대들이 있잖아요. 그러는데 내 자녀들 이 세대들을 생각을 하니까 이게 아니고 모든이들을 다 모든 이들이 이렇게 우주안에 한그릇에 몽땅 담겨가 산다면은 니하고 나하고 전부가 하난데. 이 썩은땅은 물려줄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다. 내가 생사를 걸고 집념코 생사를 걸고 지키기만 지키면 누구는 어떻게 하겠노. 내가 죽겠다고 뒹굴고 흙구덩이 파면 그 밑에 들어갈꺼고 나무를 자르면 나무를 보듬고 뒹굴거고 이렇게 막는다면은 한전이 아무리 재주가 용해도 못할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