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도 이미지 탐구생활 시즌2를 했다.
영상을 보면서 시작했는데 '모던을 향한 발칙한 도발, 마네의 올랭피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올랭피아라는 그림은 하얀 피부를 가진 벌거벗은 여인이 정면을 (그러니까 보는 사람과 그림의 여자가 보는 시선이 마주친다.) 응시하고 있고 옆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는 흑인 하녀와 검은(암)고양이가 있다. 그 시대의 누드는 신화를 주제로 하였고 벌거벗은 여인(신) 옆에는 요정이 날아다니면서 여자(신)이 벗은 모습이 당연하게 그려졌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마네의 올랭피아는 여성이 차고 있는 목걸이와 팔찌, 흑인하녀가 꽃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아 매춘여성이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옆에 있는 암고양이는 프랑스 은어로 여성의 성기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 당시의 미술계는 신화나 요정이 아닌 현실의 여인을 그린 마네를 조롱하였다. 하지만 마네는 후세에서 봤을 때는 미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고 평가된다.

어쨌든 그 당시에 마네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비판이 아닌 비난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시선 이상으로는 볼 수 없을 거 같다. 지금의 세계에서도 새로운 것 또는 다른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처럼.

모네가 화가로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는 도심계획에 의해 재개발 되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몰렸다. 1800년대 상류층만 상대하는 매춘부가 성행했다. 올랭피아도 그 중 한명이다. 마네는 이런 현실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왜 그랬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마네도 그 상황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마네도 그런 그림을 그리면 파장이 크다는 것을 알았을 것 같다. 올랭피아는 시대를 고발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관람자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여성의 눈빛은 신사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당시를 살지 않았던 나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선은 뭔가 나를 간파당하고 있는 것 같아 금세 시선을 돌리곤 한다. 그림에 있는 현실의 여성은 나를 똑바로 보면서 지금의 시대를 똑바로 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이 전달하는 힘은 대단하다. 사진과 달리 그림은 같은 주제라도 화풍에 따라 느낌이 다른 거 같다.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의 여러 가지에 의한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나는 것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개인적인 것들, 그러니까 습관이나 색을 표현하는 것,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 지 등등이 그림 안에 들어가고 반영되고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같은 맥락에서 하는 말이라도 하는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말을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르게 전달된다.

이미지 또는 사진을 생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나 또한 지난 학기 사진을 찍었다. 그 때 내가 찍을 때는 단순히 기록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다. 기록이 아닌 사진을 찍을 때는 아름다운 순간을 담고 싶을 때(내가 여태 찍어왔던 대부분의 사진은 자연 풍경이다.) 사진기를 들게 된다. 순간을 소장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진과 ucc등이 판치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이미지와 영상을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접할 수 있고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만큼 그에 따른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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