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들다

처음 나는 어떠한 무리로 되어있으면 모두 공동체인 줄 알았다.
최초로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 것은 집(가족), 학교를 통해서이다. 내가 경험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있었고 일방적인 관계였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로서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들에 불과했다. 나는 아이였고 당연히 어른(엄마, 아빠)의 말을 들어야 하며 그것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경우 난 나쁜 아이였고 어른인 엄마, 아빠에게 미움 받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는 말들은 나와 함께 나눈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어떠한 설명 없이 "~해라" 이였고 나는 왜 그러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어찌하였든 그 말에 따라야 했다. 하지만 난 납득하지 못했고 또한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복종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계속해서 숨기려 들었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솔직한 관계를 맺지 못하였던 것 같다. 난 이러한 일방적이고 깔끔하지 않은 관계가 너무 싫었다.
학교라는 공동체 또한 일방적인 관계였다. 학교에서는 지향하는 점이 있었고 학교 운영체제는 학교의 지향점을 향해 진행되었다. 학교에서 지향점을 향해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과정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생태'가 모토였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은 "꾸밈없는 삶"이었다. 왜 생태적으로 사는 것이 꾸밈없는 삶과 연결이 되는지 항상 이해를 하지 못했다. 또한 각자가 생각하는 '생태'는 분명 다를 것인데 학교는 그저 학교가 생각하는 생태로만 진행되어 갔다. 그러니 나는 공동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튕겨져 나왔다.
내가 집과 학교라는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고 '공동체' 혹은 '우리'라는 단어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괜한 무리의식에 잡혀 있고 공동체에서 지향하는 점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척될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라는 단어에는 서로 돕고 사는 관계를 생각하였지만 결국에는 일방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며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거부감을 느꼈다. 또한 내가 공동체에 들어가는 순간 내 개인이 사라지고 공동체 의식에만 잡혀 사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난 의식적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어떠한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다 메솟과 멜라캠프를 접하고 나서 나는 다시 공동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들은 '우리'와 '공동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였다.
그들은 왜 그렇게 '공동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였을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했고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였다. 그들은 이러한 위치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고 위험에 처해있었다. 또한 그곳은 독재에 의해 소수민족들이 계속해서 배척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의 민족의 문화, 전통의상, 춤, 음식 등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싶어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신의 민족을 말할 때 '우리' 혹은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또한 그들은 계속해서 소수민족이 배척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은 '리더'가 되어서 자신의 민족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어 하였고 자신의 민족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혹은 '공동체'에 대하여 자주 말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상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질문이 들었다. 그들이 갖추고 있는 형태가 과연 공동체일까?
옛날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나의 언어로 다시 정의해본다면, 공동체란 공통된 생각이나, 상황들을 계기로 어느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사람들이 그저 하나의 무리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 그 지향점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함께 맞추어 나가고 그것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의 지향점을 두고 그것을 위한 과정을 함께 맞추어 나가고 있었을까?
물론 그들은 하나의 뚜렷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원하는 점이나, 요구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었다. 모두 같은 대답이었다. 독재가 그만 끝나고 민주주의가 되기를 원하고 난민이나, 불법체류자의 위치를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하였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과정을 함께 걷고 맞추어 가고 있었을까?
멜라캠프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캠프는 하나의 공동체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들의 원해서 만난 모임이 아닌 난민,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모임이었지만 모두 자유를 원하고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을 위해 다 함께 힘을 합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상상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였고 나의 고정관념일 뿐이었다.
멜라캠프는 어떠한 공동체보다는 그냥 하나의 마을에 불과하였고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향하는 것을 향해 함께 도와가는 것이 아닌 재정착을 위한 잠시 동안 있을 곳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을까? 왜 그들은 내 예상과는 달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뭐라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과 함께 나눴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측을 해보면 너무나 급박한 상황 때문이지도 않을까? 지향점은 같지만 그것을 위해 함께 어떠한 엑션을 취하기에는 너무 위험했고 그것을 하기 위해선 굉장한 각오가 필요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 막막했었던 것들도 있지 않았을까?

이들의 공동체를 보고 난 다시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고 공동체가 무엇인지 내가 왜 공동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와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를 비교하게 되었고 이전에 내가 경험하였던 공동체가 아닌 대안적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며 대안적 공동체는 절대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하나의 개인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이때 다양한 개인들의 공통점은 지향하는 점이 같으며 이 지향하는 점을 풀어가는 과정을 함께 해나가겠다는 동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개인을 존중해주고 개인마다 지향하는 점을 다양하게 풀어나가지만 결국 원초적인 것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또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존재의 부딪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럴 때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함께 지향점을 향해 맞추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공동체를 비난하고 계속해서 거부만을 하게 된다면 어떠한 것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향하는 점은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관심조차 없었을 뿐더러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닌 그저 불평을 늘어놓기만 했었다.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나는 그냥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아서 나 혼자 즐겁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떠한 문제에도 쿨하게 대응하였고 그저 그 문제들 때문에 즐겁게 살고 싶은 나의 계획에 착오가 생가는 것 같았다. 어떠한 문제에 섬세하게 살펴보며 어떠한 것이 문제인지 인식하는 것이 아닌 겉으로 보았을 때 왠지 나쁜 것만 같았고 그것이 나에게 피해로 오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저 정부만 욕했었다. 어떻게 보면 피해의식이었는지 모른다. 정부는 너무 강했고 나는 어떠한 힘도 내지 못하는 약자라고 생각하며 정부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면 그저 짜증만 냈었다. 하자에 들어오고 나서 피해의식에 갇혀 어떠한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며 그저 불평만 늘어놓는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 이제 불평만 늘어놓는 것을 그만 멈추고 싶었다. 겉으로만 꿀 발린 소리였고 그러했기 때문에 어떤 누구에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가장 가깝고 일부터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항상 난 돈이 부족하였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는 항상 부족하였다. 그것으로는 나의 모든 욕구가 체워지지 않았다. 또한 항상 돈이 내 인생에서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라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 세상에서는 무엇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계속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돈이 부족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하였다. 또한 이 문제는 내가 십대이기 때문에 더 하다고 생각하였다. 십대가 알바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나이를 속일 수밖에 없었고 경제적으로 십대가 자립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불평을 하게 되었다. 난 내가 느끼는 욕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돈이 너무 부족하였고 이 만큼의 돈을 부모님은 충족시켜주지 않았고, 근데 사회 또한 이것들을 막는다는 막연한 불만이랄까.
이런 불만을 가지고 '내 용돈'이라는 타이틀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십대이기 때문에 더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십대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세워놓고 시작하였었다. 또한 내가 여성이기에 다른 여성들과 하나의 공감대를 느끼고 싶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십대와 여성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자주 사용하였던 것 같다. 사실 십대와 여성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자주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떠한 학습을 시작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런 단어들을 의식적으로 사용을 하게 되어서일까. 집에서의 아빠에게 느끼는 불만들이 나에게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서 엄마와 내게 집안일을 요구하는 것이나,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항상 할머니나 엄마만 일하고 아빠나 삼촌은 쉬고 있는 것이 짜증나게 느껴졌다. 이때 마침 하자에서 '페미니즘 모임'이 생겼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모임에서는 서로의 경험을 말하는 것에 포커스가 되어버렸다. 사실 공부모임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떠는 정도로 멈추어졌다. 사실 공부하기를 많이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하였고 굳이 시간을 내서 이렇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나의 불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지 않았고 더 쌓여가기만 하였다. 더 이상 이렇게 불만들만 늘어놓고 싶지 않았기에 다른 방식의 공부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을 하였다.

사실 하자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오고, 싫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공동체와는 다른 구조의 새로운 공동체였다. 단순한 같은 반의 학급친구가 아니었고 언제나 선생님은 말을 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도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선생님'이라는 단어 조차 어색했던 공간이었다. '또한 여기서 난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난 하자에서 '시민'에 대해 생각하고 사회에 주파수를 세우게 되었다. 나뿐 만이 아니라 죽돌들도 각자의 '시민'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다른 것은 개인이 그것을 자신의 맥락으로 어떻게 풀어내고 작업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에는 '동료작업자'라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꼈다. 처음 겪어본 관계였기 때문에 이것을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인정해버리는 순간 어떻게 내가 이곳에 맞추어 갈 수 있을 것인지 막막해졌다. 이 막막한 감정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고 신선한 감정보다는 낯선 감정에 두려움을 느끼기기도 하였다. 그때는 '동료작업자'라는 것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내리지 못해서 더욱 막막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막막함을 섬세하게 바라보며 풀어나갈 생각을 하기보다는 익숙한 것이 그리웠고 그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물론 '동료작업자'라는 관계뿐 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복잡한 일에 시선을 가지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것을 단순히 아이돌 이야기나 주고받는 친구가 아닌 다른 '동료작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나의 언어가 필요했지만 나의 언어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것을 찾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언어가 아직 없었고 그래서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나의 탓보다는 그들이 작업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다는 그들의 탓으로만 변명을 하였던 것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느끼게 되면서 모든 것들이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어떠한 것도 귀찮았고 짜증났다. 마음 편하게 어떠한 생각도 필요 없는 무인도로 사라지고 싶었다. 어떠한 학습을 하는 것에도 시작부터 회의감이 나를 찾아왔고 그렇다고 노는 것 또한 귀찮게 느껴졌다.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인정을 하고 나는 순간 이 공간에 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마음은 이미 내가 익숙했던 곳에 가있었고 이 공간에 와도 나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아웃사이더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여러 힘든 일들을 계속 겪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는 그저 이런 형태의 공동체에 맞지 않는 체질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손을 씻어버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결국에는 도망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겪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어릴 때부터 난 쿨하고 시크하고 차갑다 등등의 말들을 자주 들어왔고 이 말들은 내가 어디에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따라다녔다. 어떻게 보면 나의 근본적인 성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믿어온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무의식적으로 '더 쿨하고, 더 차갑게'라며 요구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부터 사람들과 '존재의 부딪힘' 혹은 진심을 다해 관계를 맺는 것에 두려워했다. 내가 언제나 따뜻하고 감수성 넘치는 사람으로 있으면 계속해서 상처를 받을 것 같았고 이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더 쿨해지고 시크해지고 무감각적으로 변하기를 요구했었던 것 같다. 또한 이것들은 친구관계에서 까지도 나타났었던 것 같다. 어떠한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말을 못하게 더 패거리를 짓게 되고 계속해서 위계질서를 만들어갔던 것 같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왔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난 자존심 상하게 지지 않을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은 지는 것이고 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방어해나가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하자에서는 계속해서 나에게 감수성을 요구하였다. 또한 여러 가지의 오해를 받게 되었다. '쿨함'이 나의 습관이 되어 성격과 외향적인 모든 것들에서 베어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밖에서 어떠한 누구도 나에게 감수성 등의 것들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나만의 매력이라고 들어왔다. 그러나 하자에서 감수성을 듣고 '쿨함'이 여러 오해들을 가지고 오게 되면서 많은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해를 하고 변하려 하였지만 이해도 되지 않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십대, 여성,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학습을 하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도 감수성이 조금은 생겨나게 되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의식적으로 감수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학습을 해보니 이러한 것들에 그저 쿨하고 시크하게 대응할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고 이것들의 문제를 근본적인 것까지 깊숙이 들어가 보면 그저 단순한 문제가 아닌 사회의 다른 문제들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내가 그저 단면적인 것에만 주파수를 세울 수는 없었고 다른 것들까지 감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자신감 있게 감수성을 키울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상처를 받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였지만 어쨌든 나의 학습을 위해서 또 학습을 하고 보니 어떤 문제에도 쿨하고 시크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이 쓰이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인지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감수성이 생겼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 많은 일들에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팠다. 순간 또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고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파서 '난 어떻게 대응할 것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사실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하기도 하였지만 나의 마음을 추스르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피해의식을 가지고 무조건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겠다는 각오도 하게 되었으며,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막연한 희망감과 동시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자가 되겠다는 용기 또한 생겼다.
이것들은 내가 생각하는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현실을 인정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어떠한 참여를 하는.

하자에 있는 동안 나는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지금까지 나의 잘못들을 인정하는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잘 살기'위한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사실 이런 경험들을 쉽게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한 부분, 한 부분 씩 계속 들춰보곤 그것을 하나씩 인정하기까지는 항상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고 인정을 하고 나서도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등의 생각으로 그냥 주저앉고 싶은 마음도 컸다. 또한 너무 크고 믿기 힘든 여러 글로벌 이슈를 접할 때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아는 게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가끔은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고 '사회에 대한 희망 또한 없는 것 같아 그저 막막해 도망치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망치고 주저앉기에는 내게 미안한 일이었다. 전에 내가 관계라던가 너무 거대한 일들을 접하기에는 벅차다는 이유로 도망치려는 나를 붙잡으며 내게 스스로 하였던 말이 있었다. 내가 지금의 나로서 사는 건 분명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일 것이고 그러니 한 번 사는 거 '멋지게 살아보자.'였다. 나의 이런 각오들에 다시 도망치게 되는 것은 나에게 너무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나를 추스르며 일단 많은 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든 시기까지 겪고 어찌하였든 생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나 꿈에 미안하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동료작업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였다.
사실 여러 혼란스러움을 겪을 당시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그 모든 것들은 지금의 나까지지 오게 해준 좋은 거름이었던 것 같다. 다시 추스르며 책임감도 더 키울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더 구체적으로 상상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런 혼란스러움이 없었더라면, 그냥 수료까지 참고 견디자는 심정으로 계속 버티기만 했었더라면 지금에 와서 모든 것이 허무하였을 것이다. 그때라도 인정을 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좋고, 싫음을 따지며 언제나 좋은 것들만 하고 싶어 했던 것을 벗어나 일단은 모든 지 해보는 경험을 해봤다. 지금까지 필기, 기록에는 소질이 없다며 항상 하지 않았지만 노트를 필수품으로 가지고 다니며 들리고, 생각나는 모든 말들은 모두 적게 되었다. 관심이 없는 일에는 시크하게 돌아섰지만 일단은 집중해서 들어보곤 했었다. 이런 과정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고 여러 고민을 하면서 '멋있게, 잘 살기'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는 거름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치거나 귀를 막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색다른 관계와 색다른 공동체 색다른 학습 그리고 신선하였던 내가 성장하는 과정들을 모두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경험들을 무시해버리는 비겁한 행동은 더 이상은 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현실성'이라는 것이 나를 따라다니며 이 모든 경험들을 무시해버리게 되는 것이 있다. 이런 색다른 관계를 밖에서도 맺을 수 있을까?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이전에 경험하였던 공동체가 아닌 다른 공동체를 더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돈이 가장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할까?
내가 하자에서 학습하는 것들은 사회에 나가는 순간 쓸모없는 것들로 취급되고 더 이상은 이런 '신선한'경험들을 겪지 못할까봐 막연한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내가 서서 기다리고만 있기 때문에 드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새로운 공동체를 경험하고 싶다면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면 어딘가에는 '동료작업자'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가 하자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 또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어떤 이유에서든 난 탈학교를 하였고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며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대학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괜한 오기였다. 나는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고 대학에 가는 순간 사회의 현상들에 인정을 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인권과 소수자에 대해 학습을 멈추고 싶지 않고 소수자를 상대로 하는 심리학 상담원이 되어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지금의 생각이 더 학습을 하고 지식이 생긴 후에는 어떻게 변할 지도 굉장히 궁금하게 되었다. 이렇게 원하는 것들이 있고 이것들을 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현실과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한 지금에서의 생각은, 대학에서는 지금까지도 하고 싶다고 하였지만 하지 못했던 '대중들의 리서치'도 필요로 할 것 같고 지금보다는 많은 객관적인 상식들에 대해서도 많이 들을 것이고 또 내가 공부해야 할 것이고 지금과는 다른 느낌의 체계적인 학습이나 다른 관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일반 제도권에서 학습하는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서 등의 공부도 굉장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현실세계가 있을 것 같고 이것들이 기대가 된다.
나의 이런 계획들은 내가 되고자 하는 글로벌 이슈에 주파수를 세우고 나의 언어로 그것을 재해석 할 수 있는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사회에 참여를 하는 '시민'이 되는 하나의 밑바탕이 되어 줄 것이라 기대한다. 여러 경험들을 겪고 여러 지식들을 습득하게 되면 될수록 여러 글로벌 이슈들을 재해석 하는 것들도 달라질 것이고 나의 언어도 달라지지 않을까? 후에 좀 더 성장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웃고 있는 나를 기대한다.
여러 실수들과 고통, 기대들을 가지고 잇는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