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수료 에세이 / 동녘

나로부터, 세계로 번져나가는 노래에 대하여. / 노래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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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를 나온 이유는 두 개 정도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작 중학생이었던 내게 이사를 다니든 학교에 배정되든 데에 자유는 별로 없었다. 친구는 어쩌다 내가 가게 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과 만들어야 했고, 학교야 어디를 가든지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필이면 내가 있던 곳이 좁아터진 시골 동네라 매일 보는 사람이 그 사람이고, 나는 도망칠 곳이 아무데도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라 부르며 지내는 또래 아이들은 따끔하게 코멘트를 해대는 게 재수없어하거나 내가 선배들과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알랑방귀 낀다느니 하며 어느 날 급작스레 날 외면하다가도 다음 해가 되니 다시 우린 친구라며 쉽게 가고 쉽게 온다. 소모적인 대화로 일상을 채워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선배들이나 교사들 또한 언어적, 신체적인 폭력으로 아랫사람을 다루듯이 사람을 대했고, 그런 일방적으로 오고 가고 하는 말들, 시선, 행동들에 난 여지없이 흔들렸다, 진지할 수 없었고 또 그런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내는 것이 싫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시달리는 것을 해결할 배출구는 기타와 음악이었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어느 날 불현 듯이 음악을 듣게 되고 기타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기세가 한차례 바람든 것은 아니었던지라 난 계속 기타와 음악을 파기 시작했고, 중2 즈음에는 프로 뮤지션이 되겠다는 포부도 갖게 되었다. 난 기타리스트가 되어야만 했고, 꼭 예고 실용음악과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에게는 참기 힘들었던 무조건적인 지식주입과 체벌, 강제적인 학습시간 참여 등 내 자율성과 개성은 하나도 존중받을 수 없는 학교와 선생님들이 이야기하는 ‘음악은 대학가서도 할 수 있어.’와 ‘대학 안 나오면 인정받을 수 없다, 일단 대학부터 가고 생각해라.’라며 딴에는 나를 위한 격려의 말들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대안 학교를 알아보게 되었고, 하자 작업장 학교의 매체 학습,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해야 하는 일도 할 거다.’ 라는 약속과 일, 놀이, 학습을 통해 스스로 찾아 배운다는 점에 동감하고 나는 작업장 학교로 오게 되었다. 당시 입학지원서에 쓴 내 언어는 ‘나는 지극히 정상이라 이것을 견딜 수 없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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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는 길찾기로 들어오면서부터 이미 음악을 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사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던 나는 음악으로서 그 이야기와 내 생각들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같이 목소리를 내게 만드는 메시지를 주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입학 설명회에서 이미 들었 듯이 작업장학교가 기타 연주가가 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지만 악기연주의 스킬, 테크닉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음악을 작업장학교로 데리고 들어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내 음악으로 무엇을 말할 것인지에 의미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장 학교에서 음악도 하고 공부도 하며 고민해보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각종 프로젝트에 유스토크, 리뷰 등으로 기타 칠 시간도 부족하다고 느낄만큼 줄어들어서 -> 밑에 거랑 연결

1. Tristeza를 같이 부르기 시작하다.

길찾기 동안 나를 괴롭혔던 고민인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찾아온 작업장 학교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없다.’를 해소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작업장학교에서 삶의 문해력과 감수성의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해결책은 공연팀에 입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길찾기였을 당시, 우리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매력적인 브라질리언 퍼커션 공연을 보였던 팀은 ‘촌닭들’이라 불렸었다. 그들은 공연과 연습을 통해 몸을 움직이며 주된 학습을 가지는 것 같았고 음악도 신나게 즐기면서 그 안에서 학습해나갈 것을 기대하며 나는 공연팀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입단하고 나서, 촌닭들로 불릴 줄 알았던 우리는 불현 듯 이름을 바꾸고 다시 가다듬게 되었다. 사실 나로서는 얼

-Embrace

나의 삶을 읽고 쓰는 문해력을 넘어 타인의 삶을 듣고 볼 수 있는 위하는 힘.

타인의 삶을 글로만 읽고 이해하는 것은 그저 사실의 확인과 다른 경험의 이해만이 아니다.

세계의 일들을 받아들이고 내 이야기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나의 역할, 마을의 음악가.

시민문화 워크숍을 통한 세계의 인지와 역할.

-같은 문을 열고나올 수 있다면

메솟, 멜라로의 여행. 그리고 홍콩에서 들었던 Change making을 위한 유대를 가진 ‘Journey’ 누구와 만날 수 있을까,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마음, 잊지 않는 것, Keep sight.

어디서든지 TCK TCK TCK를 할 수 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벵골 망그로브 숲의 호랑이 보호구역, 기후난민과 전 지구적 문제, 세계관과 우주(중간 에세이 때 언급했으나 그때 것은 너무 생각이 부족했다.). 그리고 나. 가장 기본적인 감수성의 한 부분을 깨닫다.

-Route making

제도권 학교 내에서 정해진 것과 다르기 때문에 약자로 불려야 했고, 또한 스스로를 약자로 불러야만 했던 나는 생애 최초로 스스로 결정해서 이곳까지 와야 했다. 백분율로 보면 80%가 안전하다고 믿으며 벗어나면 바로 천길낭떠러지라고 생각하는 그 ‘탄탄대로’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말하자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20%다. 확실히 우리가 그 길에서 뛸 준비를 할 때, 모든 이가 뒤를 돌아보지 않는 확신만을 가진 채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주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동안 적응되려 애써야 했던 곳을 어느 날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막연하기만 한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었으면 한다는 생각. ....still writing.

- Festeza의 퀄리티

촌닭에서 Festeza로의 전환, 처음부터 음악을 이야기하는 죽돌들이 모였다. 그래서?

촌닭에서 지향한 프로페셔널한 공연자로서의 퀄리티, 글로벌학교가 사라진 작업장 학교가 움직이는 것, Festeza가 움직이는 것.

페스테자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 합의된 것은 무엇? 그럼에도 의미가 다른 두 퀄리티의 충돌. (정선)

처음부터 음악을 말하며 그것과 같이 갈 다른 의미를 찾고 싶었다면.

그렇다면 프로페셔널, 테크니컬한 퀄리티는 개인이 챙기도록 노력했어야 하는 것?

공부하느라 바빠서 그랬겠구나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싶었음에도 한편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구심.

그렇다면 우리 매체로서의 공연은 어떤 역할을 지니는 것?

학교의 공연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는 부분은? 이야기를 가진 공연/ 매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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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정리하지 않으면 수료할 수 없어.

N. Title of mine

그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기에 통용되는 줄 알고 멋모르고 쓴 단어들이나, 스스로에 대해서 어떠한 사람이고, 작업자이며, 어떤 꿈을 꾸는 사람인지 대답하려면 ‘마을의 음악가’이상의 스스로에게 내줄 답이 필요했다.

정선 이후로 그 단어가 계속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받음,

홍콩, 메솟에서 마을의 음악가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I have a concern How I contribute and participate in this society. I'm musician. I want to contribute this world through my music. 이라는 세 문장으로 내 작업과,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었다. 영어로 대화했어야 한다는 핸디캡은 있었지만, 사실 면밀히 따져보면, 그저 문자로서의 언어라는 것은 장벽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어로 이야기했어도 내 언어는 그 정도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작업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눌 수 있으며 내가 배웠던 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공부하고 체험한

N.

....파편화된 삶 속에서 매일 모두가 다른 현실에 직면하고 조금만 눈을 돌려도 셀 수 없을 정도의 문제들과 위기가 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힘든 싸움의 끝없는 연장선상에 올라가 있고 가끔은 서로의 지독할 정도로 슬프고 괴로운 현실과 경험의 차이가 ‘다름’을 정말 ‘다른 것’으로만 느껴질 때도 있다.

정말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걸까싶을 정도로 말이다. 작업장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기후변화와 개발, 정치, 빈곤층, 소수자 등의 모든 현실은 정말로 다른 걸까?

2009년 봄학기 작업장학교에서는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Living Literacy’를 진행하며 기후변화 시대를 어떻게 읽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야기했었다.

나는 십대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그래서 우리는 어떤 액션을 취할 것인지 이야기 나누고 기획하는 팀인 Youth talk에 참여해서 홍콩 창의력학교(이하 HKSC)와의 비디오 컨퍼런스의 기획 과정을 통해 각국의 다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십대들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서로 들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2009 창의 서밋이 개최되었을 때, 비디오로만 만나던 HKSC 학생들과 미리 정해놓은 선언문의 내용이나 각자가 중요시 여기는 기후변화 관련 메시지들을 피켓으로 만들어 청계광장, 홍대 놀이터 부근에서 다 같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도 하며 시민들에게 선언문들을 보여주고

동의와 응원의 뜻을 담은 서명을 받았다.

youth talk 안에서 이야기하며 변화되었던 점이라고 한다면, ‘환경’에서 ‘생태’로 단어의 사용이 옮겨 갔다는 것일테다. 사실 이전까지 나는 이 두 단어의 뜻을 구별하지 못했지만 그 의미의 차이를 알게 되고, 또 내 인식이 한차례 변화함으로서 나는 ‘생태’라는 말과 함께 생태적 가치에 대해서 앞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 우주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감.

우리가 흔히 쓰는 ‘환경’이라함은, 자연을 포함하긴 한다. 그렇지만 그 환경, 즉 주위를 돌아본다는 것은 결국 인간 중심이며 우리의 세계관으로서만 우리 이외의 것을 대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초래하는 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생태라는 것은 인간 또한 전체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으며, 그러니 자연을 대하는 것은 우리가 속한 전 세계, 전 생물적인 관점과 감수성을 지녀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주변을 인식하고 그 안의 내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지녀야 할지 고민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니어가 되고나서 부터는 리빙리터러시 시간을 ‘ 시민문화 워크숍 :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이라는 제목으로 출발했다. 내게 있어서 지난 학기 Living Literacy가 ‘주위의 현실을 인지하고 그 안의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해주었다면, 시민문화 워크숍은 마주하는 현실들을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눌 것인가, 나의 ‘시민 됨’과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했다.

시민문화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죽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시인들‘市 詩 時 施 視 翅 始’을 만나며 각자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더해갔다. 그 자신을 향해 되묻는 질문들은 정선, 그리고 태국 국경 지대인 메솟,멜라를 여행하고 그곳에서의 현실들과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더해져갔다.

정선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